26권 5화
북미 사람들은 블랙기업의 표본 과 같은 케이블 회사에 시달리기만 했지, 이 정도로 고객 친화적인 서 비스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다.
덕분에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가 입자 수는 매주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발등에 불이 떨어 진 건 경쟁 케이블 회사들이었지만, 비디오테이프 대여점도 직격탄을 맞는 중이었다.
비디오테이프 3개를 빌릴 돈이 면, 타임플릭스를 한 달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디지털 스트리밍이 되는 타임플릭스의 화질과 음질이 VHS 방식의 비디오테이프보다 월등히 좋았다.
심지어 최신 영화의 경우엔 HD 화질도 가능했다.
화질을 제대로 느끼려면 브라운 관 TV가 아닌 투르 시네마 디스플 레이 같은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긴 한데, 일반적인 컴퓨터 모니터로만 봐도 VHS 비디오테이프와는 비교 할 수 없는 화질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관객들은 이러한 ID 그룹의 서사에 대해 잘플레이스테이션1으로 대박을 친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2 개발에서 ID 그룹과의 협력을 중단했다는 것 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유재원이 게임기 사업에 진출한 지대한 요소 가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니의 배신을 유재원 이 얼마나 강력하게 응징해줄 것인 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유재원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100% 만족시켜줬다.
"게임기의 형태는 아직 구체적으 로 정해진 게 없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 X박스처럼 말이죠."
무대에 등장할 때 가지고 나왔던 X자가 표시된 박스는 빈 종이박스 였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의미가 없진 않았다. 대 신 게임기의 명칭에 대한 강력한 힌트였다.
X 박스.
과거 MS사가 내놓았던 그 게임 기의 이름과 같았다.
의미도 좋았고, ID 그룹이 MS를 인수했다는 역사적 맥락도 있었기 에 유재원은 자체 개발 게임기의 이름을 X박스로 하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없었다.
"대신 여러분께 몇 가지 약속을 하고, 확실히 지켜나가겠습니다."
유재원의 멘트에 맞춰 메인스크 린에 그림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X박스의 가격은 최 대 300달러를 넘지 않을 것임을 약 속합니다."
객석에서 다시금 환호가 터졌다.
게임기의 미덕은 유재원의 말과 같이 부담이 없는 가격이었다.
그런데 300달러라고 하면 게이머 들이 생각했던 적정선보다 훨씬 아 래에 있는 가격이었다.
사실 플레이스테이션2의 출시 가 격이 299달러인데, 유재원이 먼저 초를 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생산원가는 이보다 훨씬 높은 400에서 500달러 사이 인데, 기기 보급을 위해 손해를 감 수하고서 본체를 싸게 푸는 것이다.
소니는 이 가격으로 엄청나게 생 색을 냈는데, 유재원은 플레이스테 이션2의 발표보다 1년 앞서 300달 러를 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며 '저렴하다'는 단어를 선점해버렸다.
나오지도 않은 게임기로 말이다.
"혹자는 이렇게 저렴한 가격이면, 그만큼 스펙이 다운되는 거 아 니냐고 걱정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런 분이 계시다면, 저 유재원을 잘못 보신 거라고 이 자리에서 단 언하겠습니다."
곧이어 메인스크린에 X박스의 목표들이 열거되었다.
"X박스의 구조는 당연히 PC와 매우 흡사할 것이고, 운영체제 역 시 게임 전용으로 커스텀화 된 안 드로이드 운영체제가 탑재될 겁니 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기의 성 능은 차세대 게임기 중 최고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플레이스테이션2의 스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유재원이다.
감정을 전달하는 수준에 이른 CPU를 채용했다고 난리였지만, 실 상은 MIPS 테크놀로지사의 R5900 이란 CPU의 커스텀 모델이었다.
작동 속도는 294MHz 였는데, 지 금은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가 좀 더 빨라진 덕에 R5900의 작동 속 도는 400MHz까지 올랐다.
플레이스테이션에 탑재될 녀석은 이보다 10% 정도 더 빨라질 가능 성도 있다.
유재원은 X박스에 AMD 의 애슬 론X2 커스텀 버전을 넣을 작정이다.
물론 예산 때문에 최고급 모델을 그대로 탑재할 수는 없다.
듀얼코어 모델 중에 가장 저렴한 것을 넣고, 게임 전용에 맞게 커스 텀을 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애슬론X2를 만들다가 나 온 불량 감자들이 재활용될 가능성 이 매우 높다.
여기서 불량 감자라는 건 CPU 생산 중 리소그라피나 다른 공정에 서 잘못되어 칩이 설계대로 완성되 지 못한 걸 의미한다.
작동 속도가 낮거나, 캐시가 부족하거나, 연산회로 일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칩이다.
이렇게 불량이 난 칩은 보통 폐 기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 은 매우 드물다.
불량이 난 부분을 커팅하거나 봉 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서 든 살려낸다.
반도체 사업이 흙을 퍼서 하는 사업이라고 해도, 생산 설비를 운 용하는 단가가 매우 높았기에 마진 을 극대화하려면 버려지는 칩이 없 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애슬론X2는 수율이
매우 낮았다.
듀얼코어 칩이라 칩의 면적이 상 당히 커졌고, 면적이 커진 만큼 불 량률도 늘어난 탓이다.
AMD 측에선 인텔을 성능으로 능가한 것에 대해 고무적이면서도, 이렇게 늘어난 불량을 처리하는 것 을 두고 고심했다.
어쩔 수 없이 불량 감자를 되살 려 엔트리모델을 만들 수밖에 없었 는데, 여기서 유재원이 등장한 것 이다.
유재원은 X박스의 CPU로 애슬 론X2를 선택했다. 그리고서 불량감자들을 대량으로 구매할 것을 약 속했다.
그 수량은 최소 1천만 개 이상!
X박스의 판매량을 천만 단위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숫자 였다.
AMD 역사상 단일 거래로 그만 큼 판매를 해본 적은 없었다.
당연히 뒤도 안 돌아보고 계약서 에 사인을 했다.
유재원이 계약서에 명시한 커스 텀칩의 요건은 간단했다.
작동 속도는 800MHz인 듀얼코 어 CPU.
원래 X박스에 탑재된 건 인텔의 펜티엄3 733MHz모델이었으니 성 능은 단번에 2배 이상이 된 것이 다.
GPU 역시 마찬가지였다. 엔비디 아의 지포스3 기반의 커스텀칩으로 목표 성능은 대략 40기가플롭스였 다.
이를 통해 유재원은 X박스로 기 본 HD해상도에서 고정 60프레임 을 달성하고, 일부 최적화가 잘된 게임은 풀HD 게임도 지원하는 것 을 목표로 삼았다.
"패키지는 당연히 DVD가 될 겁니다. 여기에 10기가바이트 용량의 하드디스크를 탑재해 세이브 데이 터, 버그 패치나 서비스팩이 원활 하게 작동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DVD롬이 장착되어 있으니 DVD 재생은 기본이죠."
유재원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객 석에선 열화와 같은 반응이 나왔다.
딱 봐도 절대 300달러의 예산으 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스펙의 기 기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게이머들에겐 희소식이었 으니 좋은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 했다.
반대로 IDDC 99의 실시간 스트 리밍에 눈과 귀를 고정하고 있던 경쟁사들의 얼굴은 검게 죽어나가 는 중이었다.
문제는 유재원의 말이 아직 끝나 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설마, 이게 끝이라 생각하는 분 이 있을까요? ID 그룹이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게 된 건 언제나 하나를 더 준비하기 때문이죠. X박스도 마 찬가지입니다."
유재원의 멘트에 맞춰 메인스크 린에 라이브!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X박스에는 고성능 랜카드가 기본 장착될 겁니다."
오오오!
역시 IDDC 99를 찾아준 관객도 보통은 아니었다.
랜카드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 를 바로 깨닫고서 환호하는 사람들 이 무척이나 많았다.
"과거의 게임기는 멀티플레이라 는 개념이 무척이나 약했지요. 같 은 방에 있는 친구들끼리 패드를 나눠 들고 즐기는 게 전부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게임기들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죠. 곧 21세기이 고, 인터넷이 전 세계 곳곳에 깔려있는데 말입니다."
멀티플레이는 대세다.
웬만한 게임들은 모두 멀티플레 이가 담겨 있었고, 아예 멀티플레 이 전용 게임들도 쏟아지는 중이었 다.
FPS부터 대규모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까지.
게이머들에게 멀티플레이는 선택 이 아닌 필수였다.
"랜카드가 기본 탑재된 X박스는 출시와 함께 멀티플레이를 지원할 것입니다."
X박스를 그대로 따왔는데, 라이 브라는 멀티플레이 서비스를 계승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유재원은 과거 MS의 모델 을 그대로 가져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MS는 엑스박스 의 멀티플레이를 유료화했기 때문 이다.
멀티플레이용 서버를 구동하는 데 제법 많은 돈이 드는 건 사실이 었지만, 유료인 탓에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숫자가 게임기 보 급 숫자에 비해 많이 적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선택한 방식은 반반씩 부담하자는 것이었다.
멀티플레이가 적용된 모든 게임 에 대해서는 3개월간의 무료 기간 을 주고, 이후에도 계속 멀티플레 이를 즐기고 싶은 플레이어는 포인 트를 구매하면 된다.
그러면 사용 시간만큼 포인트가 차감된다.
여기선 게임 개발사 혹은 유통사 와의 협의가 가능한 부분이 있다.
멀티플레이에 중점을 두고 만든 게임이라면 개발사나 유통사가 일 정 사용료를 대신하면 라이브 서비 스로 차감되는 포인트가 적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도전 과제도 있었다.
또한 게이머들이 구매하는 라이 브용 포인트는 단순히 돈으로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게임에서 일정 미션을 달성하면 보너스가 나오고, 이를 라이브 포인트와 교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와아!
실체는 X자가 새겨진 종이 박스 하나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모두 유재원의 입에서만 나온 것이었음 에도 반응은 대단했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오픈하면 내년 E3쇼에서 뭘 보여줄 게 없을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보여줄 게 왜 없겠는가.
그땐 실제 기기가 나올 것이고, X박스에서 구동되는 게임들을 보 여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번지 소프트의 헤일로는 X 박스의 동시 발매 타이틀로 점찍어 놓은 물건인데, ID 그룹의 자본과 기술 지원으로 원래보다 훨씬 더 좋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게이머들이 보여줄 뜨거운 반응 에 유재원의 기대가 참으로 컸다.
동시에 오늘의 발표는 경쟁사에 대한 강력한 압박이기도 했다.
단적으로 X박스의 CPU로 낙점 된 애슬론64 X2 CPU는 가장 저렴 한 물건이라도 350달러를 훌쩍 넘 는 가격을 자랑했다.
리테일 가격이긴 해도 CPU 하나 만으로 예산이 훌쩍 초과되고 말았 다.
여기에 차세대 GPU와 하드디스 크, 랜카드까지 포함되면 어마어마 한 가격이 된다.
이런 X박스와 스펙 경쟁을 하려 면 어마어마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실물은 내년 E3쇼에서 보여드리 겠습니다."
마지막으로 E3 쇼를 기약하자는 말로 X박스 발표를 마쳤다. 게임기 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아 직 IDDC 99가 끝난 건 아니었다.
-곧이어, 세계 최초 SNS 서비스 인 톡톡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발 표자는 유재원 회장 그리고 길버트 오웬입니다.
IDDC 99의 피날레는 베일에 가 려진 SNS 서비스 톡톡의 몫이었다.
두 사람이 등장하자 객석에서 웅성거림이 생겼다.
이제까지 IDDC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등장한 건 처음이었던 탓이 다.
게다가 유재원과 나란히 등장한 길버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객석의 의구 심이 반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 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IDDC 99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 지막 발표를 담당하게 된 SNS 서 비스 톡톡은 길버트 오웬이 이끄는 벤처팀의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길버트와 그의 팀은 본인들이 만들어낸 아이템이 얼마나 대 단한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그들의 인식 을 일깨워주기 위해 함께 무대에 서기로 했다.
길버트 오웬이 IDDC 99 준비에 여념이 없던 유재원을 찾은 건 불 과 5일 전이었다.
길버트는 만남이 성사된 자리에 서 이제껏 자신이 만든 비즈니스 모델과 인터넷 서비스 등의 아이템 을 주섬주섬 꺼내 늘어놓았다.
유재원은 길버트가 꺼내는 아이 템을 흥미롭게 보았다.
그러다가 톡톡을 보고 깜짝 놀랐 고, 곧장 투자를 결정했다.
그것도 모자라 IDDC 99의 마지 막 발표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더는 학교에서 버틸 수 없었던 길버트 오웬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재원을 찾았다가 대박을 맞은 것 이었다.
더욱이 내심 자신 있던 기프티콘 이나 슈퍼페이가 아닌, 그저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톡톡에 유재원 이 관심을 보일 줄은 예상하지 못 한 것이다.
더욱이 단순한 투자금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IDDC라는 ID 그룹 의 가장 거대한 행사에 유재원과 나란히 서서 무대로 올라가는 지금 의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덕분에 길버트 오웬의 뇌리엔 몇 년 전 스탠퍼드의 신입생 오리엔테 이션에서 유재원과 처음 만났을 때 의 상황부터 지금까지가 주마등처 럼 흘렀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