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권 25화
T터치폰은 돌풍이자 대세였다.
핸드폰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 구나 갖길 원하는 그런 제품이었다. 사람들 중에 주머니 사정이 괜찮은 이는 ID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언락 폰을 구매했고, 아니라면 통신사 대리점에서 기본 2년짜리 약정 계 약서를 쓰고서 손에 넣었다.
24개월 동안 통신사를 바꾸지 않 고 꾸준히 사용하는 대신, 24개월 할부 구매에 통신사로부터 약간의 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비싼 가격의 T터치폰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한국 TG 모바일에서 처음 시작 된 방식인데, 반응이 너무나 좋아 서 전 세계 통신사들도 같은 방식 을 채용했다. ID 플래그쉽 스토어 에서도 카드사를 이용한 할부 판매 를 지원하기는 하는데 보조금의 차 이가 컸다.
덕분에 사람들은 통신사로 몰렸 고, 통신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 르며 가입자를 끌어 모았다. 하지 만 8월이 가까워지면서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물량이 바닥난 것이다.
한국의 대형 전자 회사 셋을 통합해버린 ID 일렉트로닉스는 모바 일 디바이스 사업부를 새롭게 구성 해 T터치폰 생산에 주력을 다하고 있었다.
아직은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 였지만, 현재는 월 200만 대를 찍 어낼 수 있었다. 체계가 잡히게 된 다면 300만 대까지도 올라갈 거라 고 예상했다.
문제는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주 문량이 300만 대를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7월 한 달간 ID 플레 그쉽 스토어에서 팔아치운 게 100만 대가 넘었다. 통신사 대리점의 경우엔 200만 대는 거뜬했다. 합쳐 서 300만 대인데, 거기다 주문량이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동통신 서비 스는 선진국에 한정되어 제공되는 고급 서비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개발도상국도 이동통신이 서비스가 되기 시작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제공되는 이동통 신 서비스는 한정되어 있었고, 가 격도 비쌌다. 가격 부담 때문에 상 류층이 먼저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 데, 개발도상국의 상류층이라고 해 서 얕잡아볼 건 아니었다. 그들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최고의 제품 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그것이 바로 T터치폰이라는 건 두말 하면 입이 아팠다.
-T터치폰, 물량 부족 심각
결국, 뉴스에 물량 부족 기사가 뜰 수밖에 없었다.
?T터치폰 P마켓에서 수백 달러 프리미엄 붙기도 -한정판 매트릭스 폰은 부르는 게 가격물량이 부족하니 프리미엄을 주 고 사려는 사람까지 나왔다.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P마켓에서 실 제 벌어지는 일이었다. 수백 달러 의 프리미엄이 붙은 T터치폰이 매 물로 올라왔고, 그게 또 팔렸다.
그야말로 신드롬이나 다름이 없 었다.
반대로 열심히 신제품 휴대폰을 만들어 출시했던 업체들은 된서리 를 맞았다. 소비자들은 마치 T터 치폰 말고 다른 휴대폰은 눈에 들 어오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세계 최대의 휴대폰 업체인 노키 아에서는 1630이란 모델을 내놓았 고, 모토롤라는 레이저라는 신제품을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이를 선 뜻 구매하는 소비자는 적었다. 결 국 가격을 내려도, 보다 좋은 조건 을 내밀고 나서야 약간의 판매량이 올랐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 업체들의 휴 대폰과 T터치폰을 나란히 놓고 보 면 T터치폰에 손이 갈 수밖에 없었 다.
디자인이며 성능이며 어느 것 하 나 T터치폰을 능가하는 건 없었다.
절대적 성능만 따진다면 전자수 첩에서 출발했던 PDA가 T터치폰 을 능가하긴 했다. 하지만 가격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기본적으 로 천 달러 후반대였으니 PDA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사들이 타도 ID 테크놀로지를 외치는 건 당연했 다.
그런 사람들 중엔 한 입 베어 물 고 남은 사과를 단순화시킨 로고의 회사도 있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 스였다.
"흐음."
애플이 자랑하는 파워맥이란 컴 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네티즌 의 반응을 살피고 있던 스티브 잡스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온통 T터치 폰 이야기밖에 없었던 탓이다. 소 비자들의 반응뿐만이 아니라 개발 자 커뮤니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음잡고 서너 달이면 만들 간단 한 퍼즐 게임으로 수백만 달러의 대박을 터트린 인디 개발자 이야기 가 화제였다. 앱스토어는 단번에 화제의 서비스가 되었고, 수많은 개발자들이 몰리면서 등록된 애플 리케이션의 숫자를 빠르게 늘리는 중이었다.
"성장 속도가 너무 비정상적 아닌가."
스티브 잡스의 후덕한 얼굴에 잔 뜩 주름이 올라왔다.
앱스토어는 스티브 잡스도 진작 에 알고 있던 서비스였다. 라이브 팟이란 mp3플레이어에서 선보였던 전자 소프트웨어 판매 서비스다. 그걸 처음 봤을 때부터 이건 무조 건 성공한다고 봤던 스티브 잡스였 다.
편리한 개발 환경, 놀라울 만큼 공정한 분배 비율 그리고 가장 중 요한 기기 보급률에서도 압도적이 었으니 말이다. 다만 라이브팟의 경우엔 통신 모듈이 없는 mp3플레 이어라는 한계 때문에 성장 가능성 을 낮게 봤지만, 앱스토어가 탑재 된 폰이 나오면 분명 성공할 거라 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T터치폰이 보여주 는 속도는 스티브잡스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적어도 2000 년 후반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가 시적인 성과가 나올 줄 알았다. 그 런데 출시한 지 두 달이 조금 지난 지금 매출액이 수백만 달러인 앱이 서너 개나 나왔다.
특히 비주얼드라는 게임은 대박 중 대박이었다.
단적으로 애플 본사 주변의 공원 에 산책을 하러 나가보면 비주얼드 의 보석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 고 들릴 정도였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요즘은 그 좋아하는 산책도 끊어버렸다. 덕분에 후덕한 얼굴은 더 후덕해졌 지만, 괜한 짜증으로 부하 직원들 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보단 나았다.
"그렇다고 틈이 없는 건 아니지 만."
스티브 잡스는 각오를 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사용자들은 완벽하다고 입을 모으는 T터치폰이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눈에는 비 집고 들어갈 틈이 조금은 보였다.
애플사의 엔지니어들과는 정반대 였다.
ID 테크놀로지에서 신제품이 나 올 때마다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해 보는 건 IT 업계의 유행이었다. 혹 시나 ID 테크놀로지가 자사의 기술 을 무단으로 도용하지 않았나 검사 해보겠다는 명목이긴 했지만, 진짜 이유는 반대로 기술 습득을 위한 리 버스엔지니어링이었다.
물론 ID 테크놀로지는 웬만한 기 술은 대부분 특허로 보호되고 있어서, 섣불리 가져다 쓰면 ID 그룹의 악명 높은 법무팀과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특허가 보호하 지 못하는 무형적 지식들도 대량으 로 얻을 수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못했다.
애플사도 마찬가지였다.
극비리에 리버스엔지니어링을 진 행했고, 관련된 보고서가 며칠 전 올라왔다.
리포트를 보면 T터치폰의 분해 난이도는 역대 최고였다. 배터리 일체형의 매끈한 디자인 때문이었 다.
전자 제품에서 흔히 보이는 나사 가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비밀은 접착제였다. 본드처럼 단단 하게 붙은 건 아니었고, 뜨거운 히 터로 뜨끈하게 구워주면 접착력이 약해져 분해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을 찾기 전까지 힘으로 분해하려다가 날려 먹은 T터치폰이 족히 네 개는 된다. 그렇게 수백만 원을 날려먹은 다음 부품을 파괴하 지 않고 분해할 수 있었다.
분해의 결과는 지금 스티브 잡스 의 책상에 있었다.
'기'자 형태의 예술적인 보드와 네모난 배터리, 그리고 카메라 모 듈 등등.
커다란 칩, 작은 칩, 그리고 저항 들의 배치가 너무도 예술적이었다. 이 자그마한 부품들이 모여 컴퓨터 와 같은 성능을 낸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옥에 티가 있 는 것처럼 보드에서 몇 개의 빈 자 리를 발견했다.
엔지니어들은 테스트를 위해서, 혹은 원가 절감을 위해서 비워둔 것으로 보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빈 자리의 용도가 단지 그뿐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 오히려 빈 자리는 미래를 위한 대비인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빈 자리에 들어 갈 부품이 무엇인지 스티브 잡스는 어느 정도 감이 왔던 탓이다.
거기에서 빈틈을 찾은 것이다.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의 얼굴에 비장한 각 오가 서렸다.
T터치폰이 놀라운 진보를 보여줬 지만, 오히려 그것이 ID 그룹의 발 목을 잡을 거라고 봤다.
바로 시간이었다.
유재원이라면 이미 차세대 휴대 폰에 대한 콘셉트를 완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콘셉트와는 별개로 ID 테크놀로지가 T터치폰의 후속작을 내는 데에는 최대 2년의 시간이 걸 릴 것으로 봤다.
근거는 현재 통신사들이 고객들 에게 제공되는 약관이었다. T터치 폰을 선택한 이들은 대부분 2년 약 정을 골랐다.
이들의 숫자는 수백만이었다. 앞 으로 천만 단위 돌파도 시간문제였 다. 이 사람들은 모두 ID 그룹의 열성적인 추종자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T터치폰의 사용자들이 새로 운 모델로 교체하는 시점은 20()1년 여름 시즌이다.
스티브 잡스의 계획은 2001년 여름보다 이른 시점에서 휴대폰의 개념을 대대적으로 완전히 뒤바꿀 물건을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 물건에 대한 정의가 쉽 지 않았다. T터치폰의 리버스엔지 니어링 리포트를 보고 나서는 가물 가물 감이 오긴 했는데, 이거다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러다가 순간 스티브 잡스의 머 릿속에 불빛이 번뜩였다.
"스마트……. 스마트폰."
스마트라는 단어였다.
스마트폰이란 단어 하나로 스티 브 잡스가 이제껏 고민했던 것들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그 이름 은 아이폰이 될 것이다."
심지어 전설로 남았던 스마트폰 모델의 모델 이름이 스티브 잡스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문제는 머릿속에 있는 개념들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것인데, 이미 애플사의 개발 인력은 총동원 된 상태였다. 심지어 개발팀을 꾸 리고 작업에 들어간 지는 제법 시 간이 지났다. 다만 개발팀에선 그럴듯한 물건이 꽤 나왔지만, 어느 것 하나 스티브 잡스의 커트라인을 넘지 못했을 뿐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제대로 된 지침을 내려주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이젠 완벽해졌다.
"모나, 지금 당장 임원 회의를 소집해주게."
-예, 사장님.
스티브 잡스는 방금 떠오른 빛나 는 아이디어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 해주기 위해 바로 비서에게 부탁해 임원 회의를 소집했다.
"아, 워즈니악과 엔지니어들도 부르게. 회의실도 "
-예, 확대 회의로 소집하겠습니 다.
지시를 마친 스티브 잡스는 두근 거림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 나 사무실을 서성였다.
스마트폰이란 그야말로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이자 개념이었다. 게다가 아이폰이라는 이름까지도 동시에 떠올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잔뜩 상기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같은 시각.
길었던 러시아 출장길을 마치고 돌아온 유재원은 디데이가 얼마 남 지 않은 IDDC 99를 본격적으로 챙겼다.
ID 그룹의 가장 큰 행사인 만큼, 그룹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었지만, 유재원이 교통정리를 해줘야 할 일 은 많았다.
가장 급한 건 라인업을 정하는 것이었다. 계열사마다 IDDC 에서 보여주고 싶은 물건들을 정리했고, 그것을 유재원이 다시 한번 정리하 면서 최종 라인업을 만드는 일도 마무리했다.
여러 가지 신제품들이 있었지만, 올해 IDDC의 주인공은 안드로이드 와 ID 오피스였다.
버전 이름도 정해졌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