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11화 (511/1,007)
  • 25권 20화

    흐름이 바뀐 건 작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고서 반짝 매출이 상승했던 애플이지만, 이후 로 아직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지 않았다. 복귀한 스티브 잡스의 혁 신은 애플 사 내부에서 격하게 진 행 중이지만, 아직 출시된 제품은 없었다.

    애플사가 매년 신제품을 발표하 는 행사가 맥 월드였다. 올해 맥 월드에서 뭔가 커다란 한 방을 보 여줄 거라고 기대하는 팬들이 많지 만, 유재원은 기대감이 적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번지 소프트웨어가 작년부터 극심한 경영난 에 시달리게 되었다. 맥이 안 팔리 니 맥킨토시 게임을 내는 번지의 매출도 당연히 쪼그라들 수밖에 없 었다. 그렇기에 번지에서는 애플에 복귀한 스티븐 잡스를 만나 지원을 요청했다.

    돌아온 건 차가운 거절이었다.

    애플사와 번지가 조금 특별한 관 계이긴 했지만, 번지를 받아줄 만 큼의 여유가 애플사에는 없었던 탓 이다.

    끈 떨어진 번지를 주워온 곳이 바로 ID 엔터테인먼트였다. 당연히 유재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스테판 바버 사장은 '왜'라는 의문 을 느끼긴 했지만, 유재원의 지시 를 잘 수행했다. 번지를 과감하게 인수한 건 작년부터 이들이 제작한 게임 헤일로 때문이었다.

    둠이 90년대를 평정한 FPS게임 이라면 헤일로는 2000년대 초반을 휩쓴 게임이었다. 엑스박스가 플레 이스테이션2의 공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헤일로의 공이 지 대했다.

    유재원은 MS가 사라진 지금 헤 일로가 맥용으로 나오는 건 볼 수 없었고, 헤일로 게임 자체를 좋아 서 번지를 인수를 지시했던 것인데, 소니의 이탈로 게임기 분야의 진출 이 확정된 지금은 훨씬 유용한 아 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최대한 빨리 기획서를 만 들어서 정식으로 보고 드리겠습니 다.

    처음엔 매트릭스폰에 대한 보고 로 시작된 엘런과의 화상미팅은 게 임기 사업 진출로 마침표를 찍으며 종료되었다.

    며칠 후, ID 그룹과 소니의 결별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고, 관련 업 계는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떠들썩 해졌다.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ID 그룹과 결별-차기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독자 적 운영체제 사용해 게이머 이익 극대화할 것-쿠타라니 켄 사장, 게이머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불 가피한 선택-하위 호환 완벽 보장!

    쏟아지는 속보 속에서 온갖 소문 이 무성하게 일어났다 특히 소니와 관련된 업체들은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려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추렴되는 여론은 긍정보단 부정이 많았다. 특히 게임 개발사들의 동요가 컸다.

    플레이스테이션1의 무지막지한 보급량에 혹한 게임 개발사들은 소 니로부터 라이센스를 얻어 여러 게 임을 출시했다. 아직 대박이라고 할 만한 게임은 일본 개발사에서 나왔지만, 미국의 게임 개발사도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운영체제는 물론이고 개 발 환경까지 싹 바꿔버리겠다고 하 니 영세한 게임 개발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ID 그룹, 게임기 시장 진입 초 읽기?

    여기에 ID 그룹의 게임기 시장 진입에 관한 썰이 전자 업계에 돌 기 시작했다. ID 테크놀로지나 유 재원이나 공식 입장을 발표한 건 없었지만, 테스크포스팀이 CPU나 VGA 업체와 접촉하면서 말이 나 오기 시작한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졌던 미국의 게임 개발 회사들은 ID 그룹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ID 그룹이 게임기를 낸다면 안드 로이드 운영체제 그리고 C 혹은 C++ 언어 기반의 개발 환경, 여기 에 ID테크엔진과 같은 범용 게임 개발 엔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은 것 정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소식이 그 이상 으로 들리진 않았다.

    게임 산업 진출에 대한 유재원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테스 크포스팀이 올린 최종 기획안을 확 인해보고 사인을 할지, 아니면 좀 더 준비를 할지 따져볼 생각이었다.

    이후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수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린 5 월 8일이 되었다.

    5월 8일.

    한국은 어버이날이었고, 미국은 평범한 토요일이다. 하지만 실리콘 벨리의 컨벤션 센터는 달랐다.

    축제의 분위기로 한껏 달아올랐 다.

    바로 오늘, 베일에 가려져 있던 T터치폰이 정식으로 발표되는 날이 었다. 발표가 끝나는 즉시 ID 테크 놀로지 홈페이지와 전 세계 플래그 쉽 센터에서 예약을 받고, 다음 날 9일부터 정식 구매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리셀러들을

    흥분시켰던 매트릭스폰도 마찬가지 다. 추첨된 500명에 배송될 준비는 진작에 끝났다.

    원래는 T터치폰은 IDDC 99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ID그룹의 모든 신제품이 발표되 는 행사가 바로 IDDC였으니 말이 다. 그룹 자체적으로 치러지는 행 사였고, 그 규모도 상당히 거대했 다. 언론들의 주목도도 상당했으니 T터치폰의 발표도 IDDC에서 하는 게 정답이었다.

    그런 계획이 달라진 건 T터치폰 이 너무 잘나왔다는 점이다.

    유재원이 요구한 스펙도 완벽히 충족했고 최종 디자인도 컨셉에 맞 춰 잘 나왔다. 그리고 명품을 좌우 하는 마감도 완벽해졌다.

    T터치폰부터 TG컴퓨터의 위탁 생산이 아닌 ID 일렉트로닉스 자체 생산으로 전면적으로 바뀌게 되었 다. 직원들이 T터치폰과 같은 고성 능 휴대폰 조립은 처음 해보는 것 이라 불량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 데, 의외로 적응이 빨랐다.

    그도 그럴 것이 IMF의 여파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한국이었다. 특히 대호 그룹은 IMF 시대의 상 징과도 같은 기업이었다. 대마불사라는 한국 경제의 신화는 대호 부 도로 완벽히 무너져버렸으니 말이 다.

    대호 그룹 계열사들이 해체되는 가운데 그나마 내실이 있는 계열사 는 백호 펀드가 인수하면서 회생했 고, 그중 대호 전자는 제일 빠르게 회복세를 탔다. ID 그룹이 제조하 는 전자제품의 생산 기지 역할을 하면서 일감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다.

    더욱이 직원들의 대우도 ID 그룹 수준에 맞춰지면서 대호 그룹에 속 해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유 일한 불안감은 백호 펀드라는 새주인은 가격만 맞으면 언제든 다시 팔아버릴 수도 있는 금융회사라는 점이었다.

    만약 해외 제조사, 혹은 국내 기 업에 팔리면 체질 개선의 명목으로 혹독한 구조조정이 시행되지 않을 까 하는 불안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런 불안감도 ID 일렉트로닉스 출범과 함께 완전히 해소되었다. 대호라는 딱지를 뗄 수 있는 것은 물론, 일성 전자와 미래 전자까지 통합되면서 세계적 수준의 전자 회 사로 발돋움했다. 게다가 ID 그룹 의 일원으로 완벽히 편입된 덕에 직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뚫을 듯했 다.

    물론 ID 일렉트로닉스로 통합된 건 최근의 일이었지만, T터치폰의 생산은 너무도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현재의 수준이라면 쏟아지 는 주문량도 모두 소화할 수 있다 는 자신감도 붙었다.

    덕분에 8월 예정인 IDDC에서의 발표가 아닌 이보다 3개월이나 빠 른 오늘, 독자적인 행사로 결정되 었다. 그리고 T터치폰을 대신할 아 이템은 아무래도 비디오 게임기 사 업 진출 발표가 될 것 같다.

    -신사숙녀 여러분! T터치폰 발 표를 위해 ID 그룹 유재원 회장이 수고해주시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실리콘밸리 컨벤션 센터 메인 스 테이지에 멋들어진 목소리의 안내 방송이 울렸다. 이곳에 모인 이들 은 ID 그룹의 열성 팬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기에, 스테이지가 떠 나갈 만큼 큰 환호와 박수가 터졌 다.

    곧이어 무대가 밝아졌고 언제나처럼 자신감 넘치는 유재원이 모습 을 드러냈다.

    편안한 캐주얼 차림의 유재원은 예전과는 좀 달라진 느낌이었다. 이젠 어린 티는 완전히 사라져서, 실리콘밸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청년 사업가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 다.

    물론 실리콘밸리의 청년 사업가 들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유망 주라면, 유재원은 ID 그룹의 성공 으로 더는 올라갈 곳이 없어 보이 는 성공한 사업가라는 어마어마한 갭이 있다는 놀라운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오늘 이 자리를 찾아와 주신 여 러분, 반갑습니다. 유재원입니다. 오늘 행사에서 발표될 제품은 딱 하나 T터치폰 뿐이지만, 절대 후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 상에서 제일 먼저 미래를 만져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유재원은 지지자들을 절대 실망 시키지 않았다.

    특히 미래를 만져본다는 말은 호 기심과 함께 T터치폰의 중요한 기 능인 풀 터치스크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상상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줬다.

    "오늘의 주인공 T터치폰을 소개 합니다."

    언제나처럼 곧장 본론으로 들어 가는 유재원은 이번에도 빼는 것 없이 곧장 직진했다. 곧장 무대가 암전되었고, 메인 스크린에 ID 마 크가 크게 찍혔다. 곧이어 정교하 게 만들어진 T터치폰의 소개 영상 이 재생되었다.

    검은색 공간에서 날카로운 광택 을 자랑하며 회전하고 있는 丁터치 폰은 제한된 광원 때문에 그 윤곽 만 살짝 보였다. 그렇게 서서히 회 전하다가 전면부에 이르러 전체의 모습이 보였다.

    상단 중앙의 얇은 스피커 홈, 오 른쪽에는 셀카용 카메라 렌즈가 전 부였고, 그 밑으로는 매끄러운 강 화유리로 모두 덮여 있었다. 가장 하단부에는 엄지손톱보다는 작은 크기의 네모난 하드웨어 홈 버튼이 전부였다.

    하단의 홈 버튼과 상단의 스피커 와 카메라 렌즈 사이 광활한 공간 은 그저 매끄러운 강화유리가 다 차지하고 있다. 기존 핸드폰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다이얼패드는 눈 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화면 속 T터치폰은 계속 회전했 다. 그러면서 광원이 좀 더 밝아졌고 뒷모습이 드러났다. 뒷면의 경 우엔 무광택 금속 질감으로 마감되 었다. 전면의 반들한 강화유리 질 감과는 조금 다르지만, ID 테크놀 로지의 트레이드마크인 고급스러운 알루미늄합금이라서 단단하다는 느 낌을 확실히 가져다줬다.

    뒷면에서 돋보이는 건 카메라 모 듈이었는데, 티파니폰2에 채용된 것보다 크기가 조금 더 커졌다. 화 소의 수가 2배로 늘어났고, 카메라 모듈의 렌즈도 독일 칼자이쯔의 모 바일용 렌즈를 채용했기 때문이다.

    단가는 확실히 올랐지만,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 버금가는 화질을 달성했다. 휴대폰 카메라의 중요성 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재원 이었기에 현존 최고급 센서를 눌러 담았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뒷면 도 앞면처럼 매끈했다는 점이다. 배터리가 일체형이었기 때문이다. 배터리 교체 형이 몇 가지 장점은 있었지만 디자인적으로는 단점이 더 컸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T터치폰에선 디자인적인 감성을 극대화하는 일 체형으로 선택했다. 대신 산요의 1450mAh라는 고용량 리튬이온 배 터리를 채용했다.

    컨벤션 센터 메인스테이지를 가득 채운 관객들은 넋을 놓고 영상 에 몰입했다.

    T터치폰이라는 이름은 한참 전에 알려진 상태였다. 어떤 식으로든 터치스크린이 탑재될 거라는 예상 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 다이얼패드가 깔끔하게 삭제될 줄 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것이 T터치폰입니다."

    유재원은 메인스크린의 영상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주머니 안에 서 T터치폰을 꺼내 보였다. 그러자 이 순간만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이 플래시를 연달아 터트리며 사진으 로 역사적 현장을 옮겨 담았다.

    이에 맞춰 유재원은 T터치폰의 전면부를 볼 수 있도록 앞으로 내 밀며 포즈를 취했다.

    실물 T터치폰은 스크린에서 보았 던 모습과 완벽히 일치했다. 다만 스크린 속 T터치폰은 실물이 아니 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탓 에, 뭔가 이 세상 물건 같지 않은 쨍한 느낌이 있었다.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CG와 실물을 비교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 다. 하지만 유재원의 손에 들린 T 터치폰은 CG의 느낌 그대로를 잘 살리고 있었다.

    코닝사에서 처음 만들긴 했지만, 어디다 써야 할지 몰라 창고에서 썩고 있던 고릴라글라스는 티파니 폰에 채용되어 되살아났다.

    이제는 코닝사의 히트 상품 대열 에 올랐고, 개발진이 다시 투입되 어 스펙이 강화되었다. T터치폰에 채용된 것은 고릴라글라스 3세대로 스크래치에 대한 내성과 충격 내성 이 한층 강화되었다. 게다가 지금 유재원의 손에 들린 건 이번 무대 를 위해 왁스칠까지 해서 광택을 더욱 잘나도록 작은 꼼수까지도 부 렸다.

    "100% 완벽히 작동하는 실물이고, 내일부터 전 세계 플래그쉽 스 토어에서 언락된 T터치폰을 구매하 실 수 있습니다. 또한 ID 테크놀로 지와 제휴된 통신사라면 해당 대리 점에서 저렴하게 받을 수 있습니 다."

    소비자가 T터치폰을 얻을 수 있 는 루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어 느 통신사에나 가입할 수 있는 언 락폰을 소비자 가격에 그대로 구매 하는 것이다.

    제품 종류는 크게 4종류다. 내장 메모리 용량이 512메가, 256메가인 제품이 있고, 준비된 색깔은 블랙과 실버가 있다. 이를 조합하면 4 가지 모델이 출시되는 것이다. 나 중에는 골드 버전을 내놓을 생각도 있는데, 아직 염료 기술이 유재원 이 원하는 고급스러운 금색을 만들 어내기에는 부족했던 탓에, 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이 제품을 직접 사용해, T터치폰에 담긴 혁신이 무엇이 있 는지 바로 보여드리죠."

    유재원의 맨트가 이어지자, 스크 린도 달라졌다.

    T터치폰의 정면 모습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유재원이 들고 있는 T터 치폰에도 특수한 USB케이블이 연결되 었다.

    ' 음?'

    문제가 생겼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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