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권 19화
"그런데, 중요한 보고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ID 테크놀로지의 엘런 사장과 유 재원이 ID톡으로 대화를 시작하게 된 건, 중요한 보고가 있다는 쪽지 때문이었다. 매트릭스폰 이야기 때 문에 잠깐 샛길로 센 것인데, SF 마니아인 엘런 사장인지라 이대로 라면 계속 빠질 것 같아서 바로 중 심을 바로잡는 유재원이었다.
-아, 그렇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공문 이 왔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2에 서는 우리와 함께하지 못할 것 같 다는 내용입니다.
듣기에 따라 매우 기분이 나빠지 는 보고였다. 하지만 엘런 사장의 말이 끝났음에도 유재원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소니라는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부터 모든 걸 예상한 것처럼 말이다.
소니로부터의 이상기류는 한참 전부터 감지되었다.
불안감 속에서 출시된 플레이스 테이션1이 32비트 비디오 게임기 전쟁을 촉발했다. 이후 닌텐도, 세 가, 3D0를 비롯한 전통의 업체들 이 앞다투어 32비트 게임기를 너도 나도 출시했다.
비디오 게임기 전쟁 초반에는 치 고 나가는 회사가 없어 시장이 굉 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시간 이 지나면서 우열이 갈렸다.
1등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소 니의 플레이스테이션 1이었다.
처음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 진출 한 회사였지만, 기존 업체보다 더준비가 잘되어 있었고 무엇이 중요 한지도 잘 알았다.
게임기에서 구동할 양질의 게임 소프트웨어를 경쟁사보다 더 많이 갖추는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 렇기에 어떤 회사보다 많이 게임 개발사에 대한 지원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파이널 판타지를 비롯해 둠과 울펜슈타인 같은 게임들이 플 레이스테이션1 전용으로 출시되었 고, 경쟁사보다 앞서는 단초를 마 련했다.
그리고 출시된 지 4년이 넘은 지 금에는 32비트 비디오 게임기 전쟁 은 명백히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1의 승리로 마침표가 찍혔다.
누적 판매량은 8천만 대 이상!
심지어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 으니, 조만간 9천만 대 판매를 돌 파하고 있을 거라는 시장의 예측이 었다.
정답이다. 유재원이 알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1의 정확한 판매량 은 1억 249만 대다. 어마어마하게 팔렸다. 하지만 소니는 웃지 못했 다. 비디오 게임기 전쟁에서 승리 했지만, 승리의 과실은 많이 거두 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임기 사업에서 수익은 게임기 본체 판매로는 거둘 수 없고, 게임 패키지 판매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 지한다. 그런데 플레이스테이션1은 본체 판매량에 비해 패키지 판매량 은 시원치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복사칩 때문이었 다.
CD라는 미디어는 복사가 쉬웠 다.
일단 플레이스테이션1용 게임 CD는 컴퓨터에서 문제없이 인식된 다. 덕분에 CD라이터만 있으면 게 임 CD를 복사할 수 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CD라이터 장비 가격 은 어마어마했다. 수백만 원 대의 장비라서 일반 사용자는 엄두를 내 지 못했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한 지금에는 불과 10만 원 정도의 가격이면 고 배속 CD라이터를 장만할 수 있었 다.
소니도 이에 대응해서 복사 CD 를 검사하는 장치를 추가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복사칩이 나오 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칩만 간 단히 추가로 장착하면 불법 복사된 CD도 얼마든지 구동했다.
여기에 소니를 더 실망하게 만든 건 서드파티 업체들의 PC 버전 출 시 러시였다.
PC와 플레이스테이션의 CPU와 VGA카드는 구조가 매우 다르다. 그렇지만 게임 엔진은 글라이드X 라이브러리를 공유했고, 심지어 운 영체제도 안드로이드였다.
그렇기에 플레이스테이션1의 전 용 라이브러리를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에 맞는 범용으로 바꾸는 작업 만 잘하면 플레이스테이션1의 게임 을 PC로 쉽게 이식할 수 있었다. 이식 금지 조항 같은 건 상상도 못 해봤던 탓에, 플레이스테이션에서 인기를 얻은 다음 판매량이 급감할 때쯤 되면 PC로 출시해서 부가 수 익을 거두는 회사들이 크게 늘어났불법복제로 따지면 PC를 능가할 시스템이 없지만, 정품을 사는 게 이머들도 많았다. 덕분에 플레이스 테이션1의 게임들이 기다리다 보면 PC로 나오는 경우가 상당했다.
심지어 소니에서 제일 공을 들인 게임이었던 파이널 판타지도 PC 버전으로 출시될 정도였다. -마지 막으로 회장님의 2차 일본 공략도 소니의 ID 그룹과의 절연에 큰 영 향을 주었을 거라는 정보도 있습니 다.
엘런 사장이 조심스럽게 덧붙였 다.
유재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일본에서는 자민당의 경제 정책 실 패에 대한 비난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 유명한 잃어버린 10년 타령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궁지에 몰릴수록 자민당은 반한 감정을 부 추겼다.
중요 타깃은 독도였지만, 유재원 도 빠지는 법이 거의 없었다.
경제적인 침략도 침략인데, 미국 CIA지도를 시작으로 연방정부 공 식 지도에도 독도는 독도의 이름으 로 나왔다. 심지어 동해까지 있었 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유재원이 일제강점기 강제 노동 과 성노예 피해자들의 지원에도 적 극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에서는 유재원에게 민족주의자 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열심이었다.
소니의 경영진에게 이는 사실 중 요한 일은 아니었다.
자본주의에는 국경도 민족도 없 었고, 본인들이 돈을 버는 데 있어 ID 그룹과의 협력이 도움이 된다고 하면 협력 관계를 끝까지 유지했을 터였다.
결과적으로 소니는 손해라고 봤서드파티 업체들의 PC 버전 출 시나 복제 칩의 빠른 등장의 원인 을 파악할 때, 게임기가 PC와 너무 똑같다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 것 이다.
"완벽한 오판이로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유재원의 말을 엘런이 이의 없이 받았다.
플레이스테이션1에 양질의 게임 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PC라는 가장 편리한 개발 툴이 있었기 때문이다. 3D 게임엔 진으로 ID 테크 엔진만큼 편한 건 아직 없었다. 에픽이란 회사에서 언리얼 엔진을 출시했지만, ID테크 엔진을 따라오긴 멀었다.
특히 단시간 따라오기 힘든 것은 강력한 사후지원이었다.
ID 테크 엔진을 구매하면 같이 딸려오는 게 전용 커뮤니티 사용권 이었다. 커뮤니티 안에는 개발자들 끼리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쌓인 광범위한 노하우는 물론이고, 각종 소스코드. 셰이더 코드, 3D 모델링 파일이나 텍스처까지도 있었다.
기본 제공되는 리소스도 훌륭했 지만, ID 테크 커뮤니티에서 무료로 받아 사용할 수 있는 것들도 상 당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게다가 ID 테크 엔진용 플러그인도 엄청난 규모의 생태계를 자랑했다.
이러한 데이터를 PC게임 개발은 물론, 플레이스테이션1용 게임을 만들 때 활용할 수 있었다. 안드로 이드 운영체제라는 것을 공통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소니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 지만, 플레이스테이션1이 선보인 8 천만 대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에 자신감이 넘쳤고, 과감하게 ID 그 룹과의 결별을 선택한 것이다.
유재원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플레이스테이션 차기작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떠난다고 해서 유재원이 손해될 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소니에게 정액으로 제공되었다. 플레이스테이 션1이 많이 팔렸다고 해서 유재원 에게 이익이 더 돌아오는 것도 아 니었다. 그나마 서드 파티 업체들 이 ID 테크엔진을 채용한 것으로 ID 소프트웨어의 매출이 발생한다 는 점이나 플레이스테이션1의 조이 패트에 라이브포스피드백 기술이 사용되면 약간의 로열티를 받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이대로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2 에서 안드로이드에서 이탈한다고 해도 큰 손해가 일어나진 않았다.
"흠."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유재원은 혹시 본인이 놓치고 있 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 건 아닌 지 따져봤다. 그렇지만 3분을 넘게 고민해 봐도 딱히 뭔가가 보이진 않았다.
억지로 하나를 찾는다면, PC로 컨버팅 되는 게임이 줄어들 거라는 것.
분명 소니는 서드 파티 업체에
PC용 게임을 내지 말라는 요구를 할 게 분명하다. 게다가 운영체제 도 달라지고, 개발 환경도 달라지 면 PC용으로 내는 게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소니의 조치에 대한 대응 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음, 우리도 게임기를 만들까 요?"
-게임기? 독자적인 게임기 말씀 이지요?
"네! 소니도 했는데, 우리가 못할 것도 없죠. 게다가 기반이 없는 것 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ID 일렉트로닉스 라면 대량의 게임기를 저렴하게 만 들 수 있겠습니다.
원래 역사에서도 MS는 2001년 쯤에 전용 게임기를 만들었다. 엑 스박스라는 물건이었다. 굉장히 뜬 금없는 등장이었지만 엑스박스는 플레이스테이션2, 닌텐도의 게임큐 브와 경쟁했는데, 제법 좋은 결과 를 만들어냈다.
유재원라고 해서 못할 이유가 없 다.
"그러면 기획서를 한 번 만들어 보실래요?"
-알겠습니다!
엘런 사장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 어 보였기에 바로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도 저희가 만 들어야 합니까?
"시스템 설계는 ID 테크놀로지에 서 하고, 게임 전용 운영체제는 안 드로이드 사에서 만들어드리죠. 제 조는 ID 일렉트로닉스에서 하고요. 음, 각 조직에서 전문가를 선출해 테스크포스 팀을 만드는 게 좋겠네 요."
ID 그룹이 온라인 업무 처리가 잘되어 있다고는 해도, 따로 떨어져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보다는, 한데 모아놓고 일하는 게 훨씬 편 하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면 이번 게임기 제작이 그 룹 최초의 테스크포스 팀 구성이겠 군요. 적합한 사람들을 찾아서 추 천해드리 겠습니 다.
"그렇게 거창하고 어려운 일도 아니니, 걱정 마세요."
게임기 자체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엑스박스가 했던 것들을 그대로 따라하면 되니 말이다. 게임 전용 으로 극강의 가성비를 갖춘 PC를 만들고, 여기서 약간의 개량만 하 면 된다. 엑스박스의 경우엔 CPU 는 인텔이었고 VGA는 엔비디아였 다. 여기에 하드디스크와 DVD롬, 그리고 랜카드가 탑재되어 있다. 오죽하면 게임전용 PC라는 말이 붙을 정도였다.
-괜찮을까요? 너무 PC와 흡사하 다면, 소니처럼 불법 복제에 쉽게 무력화될 수도 있고, 뉴에그 PC의 판매량이 떨어쩔 수도 있을 거 같 습니다.
엘런이 걱정을 표했다.
그 점에 대해선 유재원도 부정하 진 않았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게임기가 훨씬 좋았다.
PC를 구매한 가정에서 가장 많 이 사용하는 기능은 게임이었다. 그런데 게임만 하기에는 PC의 가 격이 상당히 비쌌다. 고가의 하이 엔드 PC를 이끌고 있는 유재원은 할 말이 없지만, 뉴에그PC를 사서 게임만 하는 건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니 50만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게임만 즐길 수 있는 게 임기는 확실히 메리트가 있는 아이 템이 었다.
문제는 게임 소프트웨어의 공급 이었다.
전생의 경우를 보자면 플레이스 테이션2에 비하면 우월한 스펙을 가지고 있던 엑스박스였지만, 전용 게임이 없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유재원은 MS와 같은 실수를 반 복할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ID 그룹에는 최고의 게임 개발사들이 모인 ID 엔터테인먼트 가 있다. PC게임 제작 전문이지만, 비디오 게임 제작도 어렵지 않게 해낼 능력이 충분하다.
더욱이 소니는 스스로 본인들의 가장 큰 장점을 포기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1으로 대성공을 거 둔 소니였다. 그런데 2에서 이를 계승하지 않고 자체 운영체제로 나 가기로 했다는 건 유재원이 보기에 대실수였다.
소니가 생각한 대안이라는 건 보 나마나 리눅스의 튜닝 버전이다. 그러면 사용할 수 있는 그래픽 라 이브러리도 오픈GL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ID 그룹이 안드로 이드 운영체제를 계승한 게임기를 내놓으면, PC용 게임 개발사는 물 론이고 플레이스테이션1으로 게임 을 내던 서드 파티도 대거 흡수할 수 있다.
'번지의 헤일로도 있지.'
여기에 비장의 무기인 헤일로가 있다.
원래 헤일로는 맥킨토시 전용이 될 게임이었다. 번지 소프트웨어가 원래부터 매킨토시용 게임을 만들 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