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05화 (505/1,007)
  • 25권 14화

    "다음은 미래 그룹 건입니다."

    사인을 마치자 대기 중이던 김대 석이 다음 서류를 올렸다.

    "미래 그룹 분할이 확정됐군요."

    "예, 회장님. 지분 정리를 통해서 완전하게 분리될 것 같습니다."

    헨리 사장의 차세대 무선통신 기 술 개발 계획서보다, 미래 그룹 분 할에 대한 서류가 조금 더 두꺼웠 다. 미래 그룹 분할 확정의 막전막 후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고, 그 에 대해 핵심만 담았음에도 분량이 상당해진 것이다.

    "음, 결국 두 개라 쪼개지는 모양이네요."

    유재원은 바로 핵심을 집었다.

    막내 전재준이 백화점을 물려받 았다지만, 그건 분할 축에도 끼지 못한다. 백화점 계열사들을 다 합 쳐봐야 5천억 원 정도인데, 전재준 의 두 형이 물려받은 건 최소 2, 30조 원에 달하는 규모였으니 말이 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구도가 만들 어지기까지 유재원의 몫이 상당했 다는 점이다.

    원래대로라면 미래 그룹 왕좌의 난은 자동차 그룹을 물려받은 전재근의 승리로 끝이 난다.

    미래 그룹의 가장 큰 기둥이었던 미래 건설이 중동의 미수금 회수에 실패하면서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 생했고, IMF까지 터지면서 부도가 나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자동차 그룹은 IMF를 거치 면서 한국에 독점적 지휘를 획득했 고, 이를 기반으로 무섭게 성장했 다.

    그런데 유재원의 등장으로 미래 그룹의 앞날도 확 달라졌다.

    미래 건설의 중동 미수금은 빠르 게 회수했고, 무모한 확장도 하지 않았다. IMF에 대해서도 완벽하진 않았지만, 대비는 했고 덕분에 충 격을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전에 는 없었던 북한이라는 앞마당이 생 겼다.

    주식회사 아산이라는 곳이 북한 개발을 전담한다지만, 아산이 맡은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곳이 바로 미래 건설이었다. 개성 공단, 금강산 관광을 위한 호텔리 조트 단지 건설, 심지어 광산 개발 까지도 미래 건설이 맡았다. 게다 가 케도를 통한 경수로 건설에도 미래 건설이 참여 중이었다.

    예전이라면 대북 사업은 신기루였다.

    말만 많았지, 실제 제대로 되는 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개성공단은 이미 터 파기가 끝났 고, 도로와 전력망, 상하수도들이 들어가는 중인 데다가 일부 부지에 는 공장이 지어지고 있었다. 금강 산 호텔리조트도 마찬가지였다. 1 천 개가 넘는 객실을 거느린 거대 한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섰고, 금 강산 관광 코스도 정비가 거의 끝 나가고 있었다.

    올해 5월 말부터 관광 프로그램이 시작되는데, 예약은 이미 2002 년까지 가득 찼다. 한국뿐만이 아 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이 드높았다.

    대북 사업은 그야말로 순조로웠 고, 덕분에 미래 건설의 주가는 하 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덕분에 세 간의 인식은 전재구가 미래 그룹의 60%를 가져갔고, 자동차와 유통 계열을 가져간 전재근이 32%를, 막내인 전재준이 8%를 가져갔다고 봤다.

    "전재구 회장으로부터 연락도 하 나 왔었습니다."

    "무슨 일로요?"

    "그룹 지분에 대해 긴히 이야기 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을 하겠답니다."

    그룹 지분이라.

    전재구가 ID 그룹 지분에 관해 이야기할 일은 없을 테고, 그러면 그가 말차}는 지분은 미래 그룹의 지분일 것이다. 실제로 유재원은 전명헌으로부터 받은 미래 그룹 지 배 지분 10%가 있다. 정확하게는 미래 유통이란 미래 그룹 전용 물 류 회사의 지분 10%인데, 미래 그 룹 역시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고, 미래 유통이 그 정점에 있었 다.

    그런데 전명헌은 미래 유통을 전 재구가 아닌 전재근에게 줬다.

    순환출자 고리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비즈니스적으로만 보았을 때 미래 유통은 건설보다는 자동차 그룹에 속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부품의 숫자는 1만 가지가 넘는다. 모두 다 미래 유통이 운송하진 않지만, 미래 유 통이 책임지는 부분은 대체가 불가 능할 정도였다.

    문제는 기업 분할을 제대로 하려 면 미래 유통을 가지고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전재근은 그렇게 순 순히 따라줄 생각이 없었다. 이에 불안해진 전재구가 고심 끝에 찾아 낸 방법이 바로 유재원이 가진 지 분 10%였다.

    "알겠어요. 그럼 전 회장님한테 전화가 오면 바로 연결해주세요."

    미래 그룹이 2로 분할되든 말든, 딱히 큰 관심은 없는 유재원이었다.

    한국 최고의 재벌인 미래 그룹이 지만, 미래 그룹이 보유한 사업체 대부분은 유재원이 가진 것과 시너 지 효과를 일으킬만한 게 없었다.

    오히려 충돌이나 안 하면 다행이 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호 펀드로 대호 중공업을 인수했고, 신일본 투자은행을 통해 일본 중공업 사업 체 몇 개를 인수한 탓에 미래 그룹 과의 사업 영영이 많이 겹치게 되 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관심이 가는 건 미래 전 자였다. 만약 미래 전자까지 ID 그 룹에 편입된다면 전 세계 메모리반 도체 시장은 유재원이 독점적인 힘 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설마, 그걸 내놓진 않겠지."

    메모리칩 가격이 폭락 중이지만, PC의 세대 교체기가 찾아오고 모 바일 디바이스가 대중화되면 폭등 할 일만 남았다. 미래 그룹 지분과 미래 전자 지분을 바꾸자고 하면 참 좋을 텐데, 경영진이나 전재구 나 이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잠시 후.

    김대석이 준비한 서류를 모두 검 토하고 보니, 유재원은 어느새 ID 테크놀로지에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린 유재원은 어제와 달 리 오늘은 대강당으로 안내되었다.

    연말정산이야 사장단과 조촐하게 임원용 회의실에서 진행했지만, 오늘의 비전 발표는 ID 테크놀로지는 물론 넷미팅 시스템을 통해 그룹 전체에 생방으로 전달되는 행사였 다.

    유재원이 들어서자 박수가 쏟아 졌다.

    "안녕하세요? 유재원입니다."

    간단한 인사말에도 직원들의 반 응이 할리우드 스타를 보는 것처럼 뜨거웠다.

    어제 자 연말 결산을 통해 그룹 의 성과에 크게 만족한 유재원이 특별 보너스를 약속해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

    인사를 마친 유재원은 평소의 모 습 그대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유재원은 대기하고 있던 직원에게 신호를 줬고, 곧이어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유비쿼터스(Ubiquitous)' 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가 떠 올랐다.

    시대에 따라 자주 언급되는 단어 들이 있었다. 유행어라고 해도 무 방하다. 유비쿼터스도 그런 유행어 중 하나였다.

    의미는 간단했다.

    신은 어디에나 널리 존재한다는 의미에 컴퓨팅이 결합된 단어로 언제 어디서든 어떤 기기를 통해서도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그렇다고 1999년에 막 만들어진 신 조어도 아니었다.

    개념 자체는 1974년에 MIT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처음 제안했으니 말이다. 이후1988년 제 록스 팔로알토 연구소에 근무 중이 던 마크 와이저가 네트워크 기반의 확장 컴퓨팅 환경으로 확장했다.

    문제는 당시에는 기술력이 받쳐 주지 않아서 구현할 수가 없었고, 사방에 컴퓨터를 깔아서 무얼 운영 하겠다는 것인지, 유비쿼터스를 위 한 응용 어플리케이션도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단지 사방에 컴퓨터가 있고, 서 로 연결되어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느냐는 정도에 불과했다.

    유재원은 그러한 유비쿼터스의 개념을 빌려 ID 그룹의 새천년을 대비한 전략을 그룹 전 직원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했다.

    "인터넷은 이제 대중화가 되었다 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미국 기 준으로 기업과 학교 그리고 웬만한 가정에는 브로드밴드 인터넷이 공 급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우리 ID 엔터테인먼트가 출시하는 게임 은 크기가 작은 게임이라고 해도 인터넷 멀티 플레이를 지원하고 있 죠."

    대강당에 가득한 직원들은 유재 원에게 눈과 귀를 집중했다.

    덕분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ID 테크놀로지 본사인지라 자리에 앉은 이들 중에 2/3는 개발자였고, 이들의 임무 역시 인터넷 기술 개 발이 대다수라서 유재원의 말에 쉽 게 공감했다.

    "하지만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합니다. 집 에서 인터넷을 하고, 익명의 인터 넷 사용자들과 2ch게시판 혹은 게 임으로 만나긴 하지만 컴퓨터라는 거추장스러운 장치가 필요하기 때 문입니다."

    직원들은 유재원의 말에 위화감 을 느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팔아 오늘날에 이르게 된 유재원이 할 말은 뭔가 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재원 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단말기라는 말이 있죠?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가장 말단에 있는 장치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기를 칭합니다. 지금 단말기라는 건 PC를 의미하고 있 죠. 우리 ID 그룹의 핵심 역량이 집중되고 있는 기기이기도 합니다."

    유재원의 말에 뉴에그 PC가 스 크린에 떠올랐다.

    일체형 PC로써 전 세계를 휩쓴 뉴에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덕분에 뉴에그에 맞춰서 게임의 권장 사양이 정해지기도 했 다. 최저가형 뉴에그라도 웬만한 조립형 PC보다는 성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뉴에그라도 유비쿼 터스를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 습니다. 작고 콤팩트하게 만들었지 만, 그래도 PC니 말입니다."

    그렇게 PC의 단점을 늘어놓던

    유재원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 다.

    그것은 손바닥만한 크기에 두께 는 1cm가량인 물건이고, 뒷면은 크 롬처럼 은색으로 반짝였다. 앞면에 는 대형의 LCD 디스플레이 모듈이 부착된 물건.

    바로 1999년 상반기 출시를 예 고한 T터치폰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유비쿼터스 단말 기는 앞으로 T터치폰과 같은 강력 한 성능을 담은 모바일 통신기기가 담당하게 될 겁니다."

    언제 어디서는 컴퓨팅을 할 수

    있다는 유비쿼터스의 개념을 유재 원은 간단히 뒤집었다. 컴퓨터와 같은 강력한 성능을 담은 휴대폰을 항상 들고 다니면, 그게 곧 유비쿼 터스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진정한 의미의 유비쿼터스 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한 게 사실 이죠. 하지만 PC의 발전만큼 모바 일 디바이스의 성능도 시간이 지날 수록 상승할 거라는 건 누구나 예 상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 이 우리 ID 그룹의 임무이기도 하 지요."

    유재원의 말에 대강당의 직원들 은 모두가 동의했다.

    티파니폰 시리즈로 단번에 세계 2위의 단말기 업체가 된 곳이 바로 ID 테크놀로지였다. 노키아라는 거 인이 있어서 1위는 무리였지만, 세 계 최고의 휴대폰을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지금 유재원의 손에 들린 T터치 폰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키아나 모토롤라 등등, 다른 휴대폰 업체들보다 최소 1세대 이 상은 앞서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 다. 티파니폰2보다 2배는 커진 LCD 화면에 감압식 터치스크린이 탑재되었다. 마음 같아선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넣고 싶었지만, 아직기술 구현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무 리였다.

    그렇지만 감압식이라도 손가락으 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개선 중이었다. 압력 감지 범위 와 정확성, 오차 보정 등등. 소프트 웨어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들이 이뤄지면서 쓸 만한 정도의 터치감 을 보여줬다.

    적어도 밀어서 잠금 해제 같은 건 문제 없이 할 수 있었다.

    "T터치폰이 대량으로 보급된 세 상을 상상해 봅시다."

    유재원의 말에 스크린의 화면이 달라졌다.

    유비쿼터스의 개념을 위에 띄워 진 화면은 초대형 서버를 상징하는 메인 프레임 아이콘이 중앙에 있었 고 주변에 PC들이 놓여서 연결된 형태였다. 이러한 그림 하단에 T터 치폰을 든 사람의 아이콘들이 나타 나면서 한 겹의 층이 더 늘어났다.

    "T터치폰의 대형 LCD 화면이라 면 집에서 나와 카페든, 야외든 어 디에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겠지요. 즉, ID톡 메신저도 어디 에서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강당에 모인 이들 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냥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는 사 람들이 대다수였던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티파니폰2로도 야 외에 나가서 인터넷을 하는 건 가 능했기 때문이다. 화면이 작아서 보기에 불편했고, 데이터 통신 속 도가 느리다는 게 단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못 써먹을 정도로 형편없 는 품질도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유재원은 직 원들이 이 정도 반응을 보여줄 거 라는 걸 예측했다는 점이다. 그렇 기에 이처럼 거추장스러운 행사를 만든 것 아니겠는가.

    "유비쿼터스가 아직도 모호하다싶은 사람들을 위해 힌트를 더 드 리죠."

    유재원은 손짓을 했고, 슬라이드 가 바뀌었다.

    그러자 메인 프레임 아이콘, PC 아이콘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점점 작아지며 소멸된 자리 엔 뭉게구름 아이콘이 대신했다. 클라우드 서버였다. 대신 T터치폰 을 든 사람이 많아졌고, 사람들은 클라우드 서버를 통해 하나로 연결 되면서 네트워크를 이뤘다.

    "사람과 사람이 한 공간에 모인 것을 우리는 사회(Social)라고 정의 하죠? 여기에 T터치폰과 같은 고성능의 휴대폰을 통해 고속 인터넷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이는 것은 뭐라 고 할까요? 저는 그것을 소셜 네트 워크 시스템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유비쿼터스라 고 할 수 있죠."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의 개념이 드디어 세상에 등장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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