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권 13화
2000년 초?
유재원은 스테판 바버 사장의 장 담을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게는 개발 지연, 출시 연기는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적 어도 전생보다는 빠르게 발매하겠 지만, 2000년 발표는 무리였다.
"ID 소프트웨어는요?"
"둠3 개발도 순조롭습니다. 다만 꽤나 고사양 게임이 될 거라고 예 고하긴 했는데, 극한의 완성도로 차세대 시스템의 보급을 이끄는 게 임을 만들겠다는 포부입니다."
퀘이크 출시 이후로 잠깐 숨을 고르고 있었던 ID 소프트웨어였지 만, 그렇다고 놀고만 있는 건 아니 었다.
둠에서부터 시작해 퀘이크까지 오면서 발전된 ID 테크엔진은 글라 이드X와 함께 3D 게임 제작의 표 준과도 같았다. 최근에는 에픽이라 는 곳에서 나온 언리얼 엔진이 무 섭게 추격중이지만 그래도 시장에 서는 ID테크엔진이 압도적인 점유 율을 자랑했다.
덕분에 재작년부터 ID 소프트웨 어는 신규작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상당한 매출액이 나왔다. 하지만 존이나 로메로나 본인들이 게임 개 발자라는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차기작으로 선정된 것 이 ID 소프트웨어를 오늘의 자리에 있게 만들어준 둠의 최신작이었다.
이번엔 단독작 개발이다.
ID 소프트웨어의 양대 축인 존과 로메로는 둠3에 ID 소프트웨어가 쌓은 모든 노하우를 집대성해 보자 며 마음을 모았다.
둘이서 힘을 모았다니 얼마나 압 도적인 게임이 나올지 유재원도 예 측 불가였고 그만큼 기대감도 커졌 다.
그러는 사이 스테판 바버 사장의 발표는 이어졌다.
영화 투자에 대한 것부터, 쌍방 울 프로야구팀 인수나 e스포츠팀 창설 등 그룹 스포츠단 창설을 준 비하는 이야기, 연예기획사인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만든 것, 밀리언 달러 챌린지에 선정된 작품의 영화 화 혹은 드라마화에 관련된 보고까 지도 있었다. 심지어 제주도에 만 들고 있는 테마파크와 리조트도 ID 엔터테인먼트가 맡고 있는 사업이 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콘텐츠 관 련이라면 모조리 ID 엔터테인먼트로 밀어 넣은 탓이다.
그나마 스테판 바버 사장은 문화 콘텐츠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기 에, 게임이나 영화를 넘어선 분야 에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ID 엔터테인먼트 이후로도 성과 발표는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ID 하이테크연구소도 있었고, ID 파운데이션도 있었다. 마지막 화룡 점정은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담당 했다.
유재원은 사장단의 보고를 들으며 여러가지 메모도 했고, 질문도 던졌다. 그러면서 머릿속 한구석에 서는 자연스럽게 계열사들의 가치 가 평가되었다. 상장된 회사들은 주가총액을 기준으로 했고, 비상장 이라면 자산과 매출액을 기반으로 기업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추산되 었다.
당연히 유재원의 머릿속에서( 계 열사들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합산 이 되었고, 이를 통해 ID 그룹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와우!"
유재원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 왔다.
어마어마한 액수가 튀어나왔던 탓이다.
안드로이드 사의 주가 총액 898 억 달러.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주가 총액 은 1,201억 달러.
ID 테크놀로지는 대략 760억 달 러로 평가.
ID 인베스트먼트와 신일본 투자 은행의 가치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았을 때 600억 달러.
ID 엔터테인먼트는 300억.
돈 먹는 하마지만 여러 가지 기술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 집단을 보유한 ID 하이테크를 유재 원은 100억 달러로 평가했다.
"마지막은 ID 파운데이션. 이건 논외로 치고."
ID 파운데이션이 보유한 부동산 이나 사학재단, 그 밖의 여러 가지 부동산도 충분히 돈으로 변환할 수 는 있다. 하지만 ID 파운데이션은 돈을 벌고자 만든 조직이 아니라 쓰려고 만든 조직이었고, 그 역할 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TG 모바일 지분, 미래 전자, 미래 그룹 지분도 더하 고…… 마지막으로 은행에 있는 현
금 계좌를 더하면
현재 유재원이 보유한 자산 총액 이었다.
"3,920억 달러인가?"
어마어마한 숫자가 튀어나왔다.
현재 환율인 1,250원으로 계산하 면 482조 원이라는 믿지 못할 금액 으로 치환된다. 한국의 국가 예산 2년치가 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작은 함정이 있었다. 바로 보유 지분이다. 타임워너 넥스트컴 은 50.1%만 유재원의 몫이었다. 안 드로이드 사도 원래는 51%의 지분 만 보유했었다. 그러다가 ID 인베스트먼트가 IT버블 대비를 위한 포 트폴리오를 정리하면서 안드로이드 사의 주식도 대거 매수하면서 지금 은 56%까지 올라온 상태다.
"어? 그러면 IT버블 붕괴 전이었 다면 500조가 넘었다는 이야기잖 아?"
안드로이드 사나 타임워너 넥스 트컴이나 주가는 IT버블 붕괴의 영 향을 크게 받았다.
유재원은 일찍 붕괴를 예감하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긴 했지만, 나 스닥에 상장된 안드로이드나 뉴욕 증권 거래소에 있는 타임워너 넥스 트컴은 그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그렇기에 지금의 주가는 엄청 나게 높은 게 아니라, 그 반대인 무릎 혹은 바닥이라는 이야기였다.
IT버블의 절정기에 MS의 주가 총액은 2천억 달러를 훌쩍 넘었다.
이때 찍었던 주가 총액을 다시 돌파하는 건 2010년대였으니 버블 붕괴의 후유증을 해소하는 데 무척 이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IT버블이 원래대로 2001년 에 최고점을 달렸다면 안드로이드 나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주가는 지 금보다 2, 3배는 더 올랐을 것이다. 그러면 유재원의 재산도 폭증했을 터인데, 아쉽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버블 붕괴의 후유증 도 피하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일 단 커리어하이를 찍어 놓으면 다시 올라가기가 더 수월하지 않겠나 하 는 마음이었다.
"흠, 거품 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둬야겠네."
아쉬움은 빠르게 접는 유재원이 다.
1998년도에 ID 그룹이 이룩한 성과는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유례 가 없는 규모였다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마스터플랜도 손봐야겠 다."
빈말이 아닌 게, 유재원의 인생 2회차 계획서였던 마스터플랜이 ID 그룹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마스터플랜의 수정도 불가피해졌 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마스터플랜 을 손보는 건 유재원도 불가능했다. 마스터플랜은 단순한 시간표가 아 니었다. 특히 2000년대 후부터는 실제 벌어지는 중요한 이벤트와 마 스터플랜이 연관되어 있었으니 말 이다.
유재원이라도 순식간에 해낼 수 없는 일이었기에, 마스터플랜을 조 절하는 건 따로 시간을 내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예상하지 못한 큰 과제를 받게 된 유재원이지만, 얼굴엔 최근에 보기 힘들었던 만족감이 가득했다.
예전에는 마스터플랜을 생각할 때마다 두근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오늘을 기 점으로 반은 넘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약속했던 다짐 도 착실히 지키면서 지금의 성화를 만들었다는 게 더더욱 큰 만족감을 줬다. 그것은 바로 본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부자로 만들어 주겠 다는 것이었다. 레밍턴이나 최강욱 과 같은 창립 멤버는 물론이고, ID 그룹 말단에서 일하는 평사원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다짐이었다.
ID 그룹의 거의 모든 계열사들의 평균 임금은 시장 평균보다 50%는 높았다.
덕분에 ID 그룹에 평사원으로 들 어와 꾸준히 근무를 했다면, 비슷 한 나이의 다른 노동자들보다 몇 배는 많은 재산을 쌓을 수 있었다. 이는 곧 주거 형태에도 영향을 주 었다.
단적으로 여주시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ID 그룹의 패키징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었다.
마찬가지로 서울 ID 글로벌헤드 쿼터빌딩에 근무하는 직원 중 5년 차 이상의 사원들 대부분은 본사 근처 아파트 단지에 본인 이름의 집과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다.
그룹 구성원들의 헌신에 대한 대 가도 제대로 치러주면서, 이와 같 은 성과를 이뤘다는 것에 대해 유 재원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졌다.
다음 날.
오늘도 유재원은 ID 테크놀로지 본사로 가는 차에 올랐다. 어제까 지 1998년도 정산을 했다면 이번에 는 1999년도 비전 발표를 위해서였 다.
사실 1년 단위 계획은 이미 만들 어진 지 오래였다.
안드로이드 사는 가칭 안드로이 드 2000을 내는 것에 총력을 기울 이는 중이었고, ID 테크놀로지는 T 터치폰과 새로운 i웍스, 뉴에그 시 리즈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넥스트컴의 경우엔 유재원이 지시했던 모 바일 전용 페이지와 모바일 서비스 강화에 포커스를 맞췄다.
다른 사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은 유재원 본인이 잘 알 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오 늘 자리에서는 단지 1999년에 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2000년대를 대비하는 비전을 발표할 작정이었 다.
다만 원고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 다.
이미 머릿속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다 정리가 되어 있었기에, 유재원은 평소처럼 가볍게 차에 올 랐다.
"회장님, 어제 부탁하신 서류들 입니다."
대신 유재원의 옆자리에 앉은 김 대석 비서실장이 어제부터 밀린 일 감을 유재원에게 안겨줬다. 평소에 는 ID톡이나 으메일, 전자 결재 등 으로 유재원이 직접 받아 처리했는 데, 연말 결산 행사로 인해서 어제 하루 동안은 김대석이 대신 받도록 했다.
김대석은 그렇게 날아온 서류 중 에 중요한 걸 추려서 이렇게 유재 원에게 내밀었다. 유재원도 군소리없이 서류를 받았다. ID 테크놀로 지 본사까지는 빨리 달리면 30분, 차가 좀 밀리면 40분 정도 걸리니 서류를 보는 게 딱이었다. 게다가 김대석이 정리해 보여주는 거라면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확했다. 계열사 사장들에게 자 율권을 크게 주는 ID 그룹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유재원의 손까 지 올라온 서류들은 상당히 큰 규 모의 비즈니스였다.
"넥스트컴의 연구 개발이라."
바로 넥스트컴의 무선 데이터 통 신 기술 개발을 위한 예산 집행 기 획안이었다.
넥스트컴의 인터넷 사업은 유선 케이블이 중심에 있다. 1천만 가입 자를 돌파한 넥스트컴의 브로드밴 드 인터넷 서비스는 시장에서도 호 평이었다.
모뎀 시절만 해도 고객 게시판은 온갖 통신 장애를 신고하는 이용자 들의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유재원이 이를 인수한 후에는 모든 게 달라졌다. 설치 요청 혹은 장애 신고가 들어오면 최대 3일 내에 해 결한다는 원칙이 생겼고, 이에 맞 춰 현장 조직이 대폭 확대되었다. 그만큼 비용도 늘었지만, 사용자들 의 불만은 빠르게 줄었다. 또한, 서 비스의 질이 나아지면서 북미에서 넥스트컴의 점유율은 더더욱 크게 올라갔다.
이 정도 성공했으면 한 박자 쉬 어갈 만도 한데, 헨리 사장은 언제 까지 유선 인터넷으로만 먹고 살수 는 없다는 것을 정확히 보았다.
헨리 사장은 새로운 먹거리로 무 선통신 기술을 지목했고, 이를 위 해 억 단위의 R&D 계획을 세워 드디어 유재원의 손앞에 올라온 것 이다.
유재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인했다.
이번 사인으로 10억 달러가 집행 되는데도, 서류를 끝까지 보지도 않았다. 그만큼 헨리 사장을 믿는 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무선통신 기술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 문이다.
통신 전문가라도 무선통신 분야 는 레드오션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특히 퀄컴의 CDMA 상용화, 모 바일용 CPU와 통신 모뎀이 결합한 원칩으로 압도적인 독점력을 자랑 했다. 여기에 전통의 인텔이나 미 디어텍, 브로드컴 등이 뒤를 따르 고 있으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 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헨리 사장이나 유재원은 생각이 달랐다.
퀄컴이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 는 건 2세대 무선통신에 불과했다. 2,000MHz대 주파수를 사용하는, 일명 IMT-2000은 아직 누구의 손 도 타지 않은 곳이었다. 헨리 사장 은 ID 그룹의 자본력과 기술력이면 차세대 이동통신을 충분히 욕심내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유재원도 이에 동의해서 사인했 다.
헨리 사장은 상상도 못 할 테지 만, 유재원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의 궁전에는 IMT-2000은 물론이 고 다음 세대, 그 다다음 세대까지 도 모두 자리히고 있었다. 무선통 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만 마련되면, 언제든 조커로 꺼낼 수 있었기에 주머니를 여는 데 망설임 은 조금도 없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