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권 11화
IMF에 개인 자격으로 100억 달 러를 내서 부도 위기의 한국을 도 왔다는 건 이미 미국에서도 유명한 일화였다. 이에 대해 말이 좀 나오 긴 했지만, 나중에는 나라를 위해 서 돈을 풀었다는 것 자체로 유재 원을 높이 사주었다.
또, 100억 달러를 동원해 백호 펀드를 만들고, 헐값에 팔려나갈 한국의 자산들을 사들였다는 것도 사장단들은 알았다.
그렇게 전체 수익금 중에 200억 달러는 한국에 썼다.
덕분에 한국의 경제 사정은 과거보다 훨씬 나았다. 1998년은 IMF 체제 원년으로서 가혹한 구조조정 이 몰아쳤지만, 유재원의 손길이 닿은 곳이라면 IMF의 영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조만간 한국에서 10억 달러의 자본으로 마이크로크래딧 사업도 정식 출범할 겁니다."
빈센트 그린힐은 조만간이라고 했지만, 마이크로크래딧 사업은 당 장은 어렵게 됐다. 그 이유는 바로 대선 때문이었다. 당선이 유력한 대선 후보의 진영에서 사업의 시작 을 조금 늦춰 달라는 간곡한 연락 이 온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통령 취임 초에 뭔가 국민에게 성과를 이뤘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데, 그중 하나로 마이크로크래딧이 눈에 딱 들어온 것이다. 서민들을 위한 소액 신용 대출이라는 것처럼 민생에 확 체감되는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취임 초 역점 사업으로 마이크로크래딧을 눈여겨본 것이다.
확실히 정권이 바뀌고 있다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 전명헌이 살아 있었다면 유재원 보고 이래라 저래 라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 데, 대통령 당선중도 나오기 전인데 벌써 이런 식이었다. 물론 민주 당서 나온 인사의 말은 매우 정중 했다. 유재원도 아니고 최강욱을 만나서 쩔쩔매다시피 했으니 말이 다. 하지만 정중한 말 속에 담긴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마음 같아선 그냥 거절하고 마이 웨이로 밀고 나가고 싶었지만, 정 권과 척을 지고 사업을 하는 건 유 재원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기에, 그 러자고 했다. 게다가 김대중 후보 의 지지율을 보면 이변이 100번 일 어나도 당선은 확정적이었으니 말 이다.
다만 앞으로도 호구 취급을 하면 유재원은 본인의 존재감을 숨김없 이 보여줘서, 생각을 고쳐먹게 할 작정이다.
이러한 전술의 일환으로 김대중 후보의 선거 대책 본부에 전명헌이 물려준 금고 하나를 탈탈 털어 보 냈다. 600억 원이 든 복돼지 금고 는 아니었고, 500억 원에 조금 모 자라게 있던 LK 뱅크라는 나름 최 신식의 금고였다.
전명헌의 경우엔 유재원이 함께 선거 운동을 뛰면서 동반자적인 지 위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선거 지원은커녕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는 중이었다. 이 래서는 당선 후에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으니, 선거 운동을 하라고 실탄이라도 지원하자는 생각에 LK 뱅크를 열었다.
이는 유재원의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명헌이 남긴 말씀을 따르 기로 하면서 행동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야당 측 후보에는 1원도 주지 않았다. 이번 대선은 야당에겐 만에 하나라는 것도 허락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일부 수익금은 일본의 신일본 투자은행에 자본을 출자해 대일 투자 비중을 늘렸습니다. 신일본 투자은행은 이 자본금을 바탕 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시작했습니 다."
그러면서 빈센트 그린힐은 ID 인 베스트먼트의 자회사인 신일본 투 자은행에 대한 자료를 띄웠다.
유재원이 신일본 투자은행에 내 린 지시는 일본의 우량 자산을 싹 쓸이하라는 것이었다. 닛케이 지수 의 대폭락, 엔화 환율의 폭등으로 일본의 경제는 IMF 직전의 한국과 똑같았다. 그나마 일본은 외환보유 고도 많고 국민들의 예금도 많아서 IMF까지 가진 않았지만, 수많은 기업들이 줄도산하는 건 똑같았다.
게다가 엔캐리트레이드가 청산되면 서 전 세계에 뿌려진 엔화가 일본 으로 돌아오면서 인플레이션이 일 어났다.
그렇게 쓰러지고, 위태로운 일본 의 기업 중에 우량하다 싶은 것들 은 모두 신일본 투자은행이 인수했 다.
유재원의 폭로로 일본의 장인정 신이 사실 품질 조작에 사기가 기 본인 사상누각이었음이 밝혀졌고, 일본이란 브랜드 전체에 타격을 주 었다. 스캔들의 단초가 된 고베 강 철은 망해버렸고, 고베 조선소는 LNG운반선 수주가 뚝 끊겼다.
그렇지만 진짜로 세계에서 통할 기초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이 일본 에 수두룩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일본의 기업들을 신일본 투자 은행에서 싹쓸이했다.
"22개의 기업이고 총인수 대금은 63억 달러입니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풀어졌다.
그만큼 이번에 인수된 22개의 기 업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그런데 리스트의 면면을 보면 특징이 있다. 리스트 최상단에 있는 신일본 제철 에서 알 수 있듯, 이번에 인수한 기업들의 분야가 중공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번 일본 의 경제 위기의 진원이 고베 강철 인 만큼, 일본의 중공업에 큰 타격 을 줬고 덕분에 인수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첨단 산업도 놓치진 않았다.
리스트 중반에 있는 가와사키 중 공업의 경우엔, 이름만 보면 쇳가 루 냄새가 풀풀 나지만, 사실은 산 업용 로봇을 만드는 회사였으니 말 이다. 게다가 리스트 최하단에 있 는 건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집영사는 어떻게 인수할 수 있 었나요?"
한자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읽으 면 집영사, 일본어로 읽으면 슈에 이샤라는 회사가 이번 신일본 투자 은행의 쇼핑 리스트 마지막에 걸려 있었다.
집영사는 만화와 오락 잡지를 전 문으로 발행하는 일본의 출판사였 다. 세계적 규모의 출판시장을 가 진 일본 내에서도 최소 다섯 손가 락 안에 드는 초대형 출판사인데, 이곳에서 나오는 주간지 중에 제일 유명한 것으로 점프가 있다.
"공격적 M&A와 함께 오너 일 가의 빈틈을 노렸습니다."
집영사는 단독으로 있는 회사가 아니라 히토쓰바시 그룹의 일원이 었다.
히토쓰바시 그룹 내에서도 소학 관과 함께 그룹의 원투 펀치를 담 당하고 있는 주력 사업체였으니 말 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히토쓰바 시 그룹은 비상장 기업이었다. 쉽 게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매물이라 는 이야기였다.
빈센트 그린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일본 경제의 대폭락에서 기업 들은 급전을 만들기 위해 보유한 자산을 팔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히토쓰바시 그룹의 지분이 있었다고 했다. 알고 봤더니 히토쓰바시 그룹의 장남이 선물과 환율 FX투 자에 발을 담갔다가 대폭락으로 어 마어마한 손실을 보았단다.
투자 손실금이 밝혀지면 호적에 서 파일 판이라 본인이 상속받은 그룹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 데, 그곳이 문제였다. 몇 년 전 신 일본 투자은행으로 넘어온 은행이 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뻔했다.
빈센트 그린힐은 최종적으로 집 영사를 넘겨받게 된 경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진 않았다. 굳이 이 자리에서 그런 지저분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유 재원도 거기까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분간은 히토쓰바시 그룹이 집 영사의 경영을 맡을 것입니다. 이 들 이상의 줄판 전문가는 또 없으 니까요."
덤으로 ID 그룹의 인수를 알려서 그렇지 않아도 나쁜 일본 국민의 여론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빈센트 그린힐의 판단이었다.
"알겠습니다."
유재원도 이 선택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미 유재원의 머릿속에는 집영 사가 보유한 콘텐츠를 다양하게 활 용할 방법이 가득했다. 단적으로 드라곤볼만 하더라도 서양에서의 인기는 대단했다. 타임플릭스에 일 본 애니메이션을 걸기만 하면 전세 계 아이들을 끌어 모으는 일은 식 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었다.
다만 그 전에 해결할 게 있다.
현재의 TV판 애니메이션은 그야 말로 조악한 퀄리티라는 점이다. 염가로 제작한 탓에 움직임이 자연 스럽지 않았고, 똑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재탕했다. 어떤 회차의 경 우엔 손오공이 에너지파 한 방 쏘는 게 전부인 것도 있었다.
만화에서는 몇 장이면 지나가는 내용인데, 그걸로 한 회를 다 우려 먹은 것이다. 유재원은 콘텐츠 생 산 체계가 잡히면 일본 애니메이션 도 할리우드 규모의 자본을 들여 새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반대로 실사판 영화 제작은 절대 로 금하고 말이다. 일본 만화를 원 작으로 한 영화가 성공하는 건 매 우 힘든 일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임팩트 넘치는 성과 발표였다.
어마어마한 수익에, 미래에 대한 투자까지. 모두 완벽했다. 덕분에 발표를 마친 빈센트 그린힐에게 유 재원과 사장단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게다가 발표 시간이 짧은 덕에 곧장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다음은 안드로이드 사의 케빈 존슨 사장입니다."
사회를 보는 김대석의 말에 유재 원의 오른편 3번째 자리에 앉아 있 던 케빈 존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빈 존슨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 했다.
한식구가 된 지도 오래되었고, 유재원도 차별 없이 대하고 있었음에도 케빈 존슨은 본인이 MS출신 이라는 꼬리표를 아직 떨쳐내지 못 한 탓이다.
그렇기에 준비된 슬라이드도 다 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한 정성이 들어갔다.
전문 프레젠테이션 업체의 도움 이라도 받은 것처럼, 디자인도 완 전히 통일되었고 각각의 슬라이드 에 담고 있는 내용도 눈에 확 들어 왔다.
-안드로이드 게이밍 에디션 2,685만 카피-안드로이드 워크스테이션 에디
션 312만 카피
-안드로이드 엔터프라이즈 에디 션 648만 카피-안드로이드 임대형 라이센스 124만 카피총 3,769만 카피를 팔아치웠다.
엄청난 기록이었다. 하지만 단상 에 선 케빈 존슨 사장의 이야기는 정반대였다.
"1998년의 PC시장은 침체기였습 니다. 가정의 PC가 고성능 PC로의 교체가 모두 마무리되었고 CPU나 VGA등의 주요 부품에 새로운 기 술이 적용되어 나오기 직전인지라교체를 미루기도 했습니다."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겸손도 적당히 해야 하는 법이다.
델이나 HP와 같은 대형 컴퓨터 제조사에서 출하하는 신규 PC의 숫자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항 상 꾸준히 팔리는 수량이 있었다. 게다가 B2B 시장의 경우엔 인터넷 의 확대와 함께 서버 시스템의 수 요 폭발로 인해서 전년도 대비 50% 이상의 매출 신장을 이뤄냈 다.
또한, 저작권 불모지였던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에서의 정품 판매 확대로 안드로이드 사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안드로이드 사에서 만드는 소프 트웨어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뿐만 이 아니라, 동영상 편집부터 포토 그래픽 에디터, 각종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원하는 개발 툴까지 다양 했다. 이러한 전문가용 프로그램도 탄탄한 판매량을 선보였다.
안드로이드 사는 상장 기업인만 큼, 이러한 성과는 곧장 주가로 이 어졌다. 케빈 존슨 사장의 손짓에 슬라이드가 넘어갔고, 상세한 주식 관련 데이터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어제 종가 기준, 안드로이드 사 의 주식 가격은 89.8달러.
안드로이드 사의 발행 주식은 10 억 주였으니, 주가 총액은 898억 달러라는 이야기다.
오오!
사장들은 이제지금 처음 본 사람 처럼 리액션을 했다.
자기 맡은 일에 바빠서 안드로이 드의 주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도 진짜 있겠지만, 미리 알고 있었지 만,있었어도 분위기를 맞춰 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나존재할 것이나, 유재원은 그걸 또 굳이 찾진 않았다.
안드로이드 사의 주가 대폭발은 유재원에게도 좋은 소식이었으니 말이다.
주당 25달러, 주가총액 250억 달 러에 나스닥에 입성했던 안드로이 드 사였다. 상장하고 나서 꾸준히 상승해 600억 달러 턱 밑까지도 올 라갔지만, IT 버블 붕괴로 인해서 300억 달러 중반 까지 밀렸다.
하지만 다른 IT기업과 달리 안드 로이드 사에는 거품이 없다는 게 확인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PC 출하량은 좀 줄어들었지만, 안드로 이드 운영체제의 판매량은 늘어났고, 서버 분야에서도 압도적인 점 유율을 자랑했다.
서버 시장에서 전통의 강호였던 IBM이니, 마이크로시스템과 같은 회사들은 클라우드 서버에 맥을 못 췄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