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01화 (501/1,007)

25권 10화

T 터치폰.

ID 테크놀로지가 1999년을 위해 준비한 회심의 한 방이다.

출시 이후부터 꾸준히 버전 업을 한 티파니폰이지만, 그래도 키패드 라는 건 늘 붙어 있었다. T터치폰 은 그런 키패드를 완전히 삭제했다. LCD 디스플레이 모듈이 키패드가 있던 자리까지도 잠식하면서 광활 한 화면을 자리했다.

당연히 사라진 키패드를 대신한 가상 키패드가 있고, 화면을 터치 해서 휴대폰의 모든 기능을 사용하 는 것이다.

아쉽게도 스마트 기능은 없다.

스마트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초소형 센서의 개발은 아직도 이뤄 지지 못한 탓에, 스마트 기능에 제 약이 컸다. 대신 최신형 모바일 애 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대량의 플 래시 메모리 스토리지, 메모리가 탑재될 것이라서 제대로 된 스마트 폰이 나오기 전에 살짝 맛을 보여 주는 건 충분했다. 당연히 라이브 팟에 있던 애플리케이션 스토어가 T터치폰에도 이식될 예정이다.

참고로 T터치폰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건, 아무래도 티파니 터치폰 이라고 하면 느낌이 이상해서였다.

타피니를 만진다니! 그건 유재원 에게만 허락된 일이었다. 여자 친 구 이름을 휴대폰 이름으로 쓴 부 작용을 뒤늦게 알아차린 유재원은 T터치폰이라는 이름으로 바꿀 수밖 에 없었다. 물론 티파니 터치폰이 라는 이름도 먼저 선점해서 다른 회사들이 티파니 브랜드를 가져다 쓰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 것도 잊 지 않았다.

"휴대폰 사업부의 1998년 매출 총액은 51억 달러이고, 순이익은 20%인 10억 2천만 달러입니다."

박수가 절로 나왔다.

과거 애플사는 마진율이 50%死를 거뜬히 넘기기도 했다지만, 그건 어마어마한 원가 절감과 아웃소싱 을 통해 이뤄진 수치였다. 특히 휴 대폰 제조를 폭스콘이라는 대만의 블랙기업에 맡기고, 중요 부품도 어마어마한 선주문을 통해 단가를 낮춰서 만든 수치였다.

반면 ID 테크놀로지는 부품 제조 부터 그룹 내에서 이뤄졌다. 조립 공정만 TG의 공장을 빌렸는데, 작 년부터는 대호 전자로 이관 중이었 고, 올해에는 일성 전자 공장까지 도 동원될 예정이었다.

덕분에 티파니폰 생산에 들어간비용이라는 것도 그룹 내에서 도는 현금 흐름이었기에 큰 문제가 아니 었다. 다만 유재원은 기록적인 판 매량을 보고도 배가 고팠다.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 초반이 되면 휴 대폰 시장은 월 1천만 대씩 팔아치 울 수 있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ID 디스플레이 부분입니 다."

엘런 사장은 박수 속에서 슬라이 드를 넘겼다.

대전을 베이스로 삼은 ID 디스플 레이는 테크놀로지의 자회사였지만, ID 그룹 내에선 그냥 한 몸 취급이 었다. 편의를 위해서 분리했을 뿐 이지, 경영이나 기술 개발은 모두 테크놀로지에서 하고 있었으니 말 이다.

"디스플레이 사업부는 휴대폰 사 업부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ID 테크놀로지의 두 번째 펀치라고 할 만큼 탄탄한 저력을 자랑합니다."

일찌감치 LCD 산업을 준비했기 에, 업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했다. 모바일용 LCD모듈에서 는 압도적인 강자였고, 모니터와 텔레비전을 대신할 대형 모듈도 디 스플레이 학회를 비롯한 전문가 평 가에서도 압도적인 우수함을 인정 받았다.

당연히 유재원이 보기엔 아직도 한참 모자랐다. 전문가들이 좋은 평을 내려줬지만, 그건 이 시대의 기준이었다.

응답 속도와 밝기, 색 재연성, 시 야각 등등. 디스플레이의 품질을 평가하는 항목들을 보자면 ID 디스 플레이의 제품이라도 유재원의 기 준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1999년이라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놓으면 ID 디스플레이를 따라갈 경 쟁사는 없었다.

"모바일 디스플레이 모듈 시장 점유율은 60%입니다."

엘런 사장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따라갈 경쟁자가 없다는 말은 압 도적 시장 점유율로 나타났다. 그 렇지만 60%라는 수치는 조금 모자 란 듯 보였다.

"제3 공장의 공정 전환이 완료되 면 물량 부족도 해소될 것입니다."

한 번 확장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문량을 생산량이 따라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티파 니폰을 통해 모바일 분야에서 대형 LCD 모듈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 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크고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LCD를 찾게 되었고 당연히 주문이 몰렸다. 더욱이 유 재원은 경쟁 업체에도 부품 성능의 차별 없이 똑같은 제품을 공급하는 걸 허락했다. 공장은 100% 돌아가 는 게 남는 장사였으니 말이다. 덕 분에 주문량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 는데, 생산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 하는 실정이었다.

제3 공장이 준비가 완료되면 공 급 부족 현상이 해소될 거라는 엘 런 사장의 보고였다.

여기서 제3 공장이란 바로 일성 전자 LCD 디스플레이 공장이었다. 일성 전자 인수를 통해 얻은 건 비단 반도체 공장뿐만이 아니었다.

최현희 회장도 역시 미래를 보는 눈이 탁월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ID 테크놀로지의 엔지니어들이 공 장을 점검했을 때,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생산 공정을 조금 바꾸면서 수율과 기술 수준을 높이기로 했다.

엘런 사장의 발표는 계속되었다.

ID 테크놀로지가 걸친 사업 분야 가 워낙 거대한 탓에 엘런 사장이 스크린 앞에 서 있는 시간은 한 시 간이 넘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지루해하는 사람들은 유재원을 포함해 단 한 명도 없었다.

엘런의 발표가 길어진 건 그만큼 ID 테크놀로지가 잘나가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뉴에그 시리즈, i웍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컴퓨터 사업부도 견실한 판매량을 찍었다. 뉴에그는 226만 대로 판매량이 좀 하락했지만, i웍 스 시리즈는 PC와 노트북 합쳐 10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보이면 서 매출 총액으로는 1997년도를 넘 어섰다.

라이브팟의 누적 판매량도 250만 대를 넘었다는 이야기, ID 오피스98의 판매량이 500만 카피를 넘었 다는 이야기, 관공서와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 템 매출로 수십억 달러를 벌었다는 이야기도 모두 즐거운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1998년도 ID 테크놀 로지의 총매출액은 128억 달러이 고, 모든 비용을 차감하고 남은 순 이익은 38억 4천만 달러입니다."

마지막 차트로 전체 매출액과 순 이익이 나왔을 때, 모두가 박수쳤 다.

휴대폰 판매로만 50억 달러가 넘 는 매출액이 나왔고, 디스플레이로 30억 달러였다. ID 오피스도 꾸준히 짭짤한 매출액을 만들어주는 효 자 상품이었다.

"그럼, 잠깐 쉬고 다음 결산을 진행하겠습니다."

엘런의 발표가 길었기에 유재원 은 30분간 휴식 시간을 선언했다.

원래 유재원이라면 휴식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을 텐데, 전명헌의 서거로 인해 심경의 변화 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과로 절대 금 지였다.

레밍턴이나 최강욱이 과로로 인 해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건 절대 상상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했다. 유재원은 임원들뿐만이 아니라 일반 직원들도 예외로 둘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유재원 본인 역시 마찬가 지였다.

어떻게 돌아온 삶인데, 과로사한 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겠는가.

철저히 휴식 시간을 챙기기 위해 회장실로 자리를 옮긴 유재원은 등 받이를 눕혀 놓고 거의 눕다시피 했다.

짧게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막상 이렇게 있으니 딴생각이 들었다.

"테크놀로지의 순이익이 38억 달 러라고 하면……. 그러면 상장했을 때 대략 760억 달러짜리 기업이라 고 치면 되려나."

조금 전에는 본인 입으로 쉬겠다 고 했으면서 머릿속에는 또 일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건 유재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이라 는 건 참 신기하게도 본인 마음대 로 제어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몸은 쉬고 있으니, 약속을 어긴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유재원의 상념은 계속되었다.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들의 PER은 20정도라고 하던가?"

IT 버블이 한창 피어오르던 시기 엔 40?50이 넘는 기업들이 수두룩 했다. 그러다가 거품이 붕괴되면서 19, 18까지 내려오기도 했지만 약 간의 반등이 된 지금에는 20이었 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PER을 바 탕으로 ID 테크놀로지의 현재 가치 를 따져보자면 최소 760억 달러짜 리 기업으라고 쳐도 무방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최소'라는 수 식어다.

PER을 통한 기업가치 추산 방법은 실제 가치와 오차가 무척이나 큰 계산 방식이었다. 특히 ID 테크 놀로지가 가지고 있는 미래 비전에 대한 평가는 전무했으니 말이다. 모바일 분야는 이제 시작하는 분야 였기에 너무도 유망했다.

더욱이 LCD 디스플레이 역시 마찬가지다. 전 세계 배불뚝이 텔 레비전과 모니터를 모두 LCD로 바 꾸는 일은 어마어마한 수익 산업이 었으니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ID 테크놀로지는 그 이름에 걸맞 게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기술 벤처 기업에 투자했다. 지금이야 무모한 투자로 보이겠지만, 21세기가 되면 잠재력이 터지면서 제2의 도약을 마련해줄 것이다.

"구골만 봐도 그렇지."

ID 테크놀로지가 별도로 운영 중 인 엔젤투자 사업에 최근 이름을 올린 벤처기업의 이름이었다. 유재 원이 나온 스탠퍼드의 재학생인 세 르게이와 래리가 뭉쳐서 만든 기업 이었다. 전생에 유재원이 눈을 감 을 때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 한 초거대기업이었다.

지금은 엘런 사장의 연말 결산 중에서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상태였다. 6백만 달러의 투자만으로 지분 49% 를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조그만 작 은 회사였다.

"회장님, 시간 되었습니다."

30분이 지나자 김대석이 칼같이 유재원을 데리러 왔다. 유재원도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회의 실로 이동했다.

회의실에서는 벌써 다음 타자인 ID 인베스트먼트의 빈센트 그린힐 이 유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빈센트 사장님, 그럼 시작해주 세요."

자리에 앉은 유재원은 빈센트 그린힐에게 시작 신호를 주었다.

기다리고 있던 빈센트 그린힐은 유재원의 신호에 고개를 꾸뻑 숙이 는 한국식 인사를 하고는 레이저 포인트와 마이크라는 이도술을 펼 치면서 결산을 시작했다.

"유재원 회장님 그리고 사장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ID 인베스 트먼트 사장을 맡고 있는 빈센트 그린힐입니다."

시작은 매우 정중하고 잔잔했다. 하지만 프로젝터 스크린에 걸린 내 용은 그야말로 핵폭탄 못지않았다.

"ID 인베스트먼트는 작년 초만 하더라도 IT섹터가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의 선경지명이 발동 되어서 IT섹터에 대한 투자를 대부 분 정리했습니다. 대신 자라, 유니 클로와 같은 SPA 회사나 시스코, 안드로이드, IBM, 인텔과 같이 수 익성이 증명된 대형 IT 회사의 비 중을 늘렸습니다."

빈센트 그린힐은 담담하게 말했 다.

그렇지만 월스트리트의 투자 회 사들 중에는 이걸 못해 망한 회사 들이 수두룩했다. 바로 1998년 경 제 지표를 충격으로 몰고 간 IT 버 블 붕괴를 피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덕분에 유재원 펀드는 평균 수 익률 43.4%라는 전설을 쓰고 있습 니다."

최강욱이 한국에서 100억 달러 규모로 운용하는 펀드는 백호 펀드 라는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ID 인 베스트먼트가 한국과 미국에서 일 반 투자자들로부터 모금한 돈으로 운용 중인 펀드 상품에는 딱히 이 름이 없었다.

그냥 ID 인베스트먼트의 펀드였 다.

ID 인베스트먼트에서 운용 중인펀드는 그것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ID 인베스트먼 트의 마케팅 부서로부터 네이밍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수뇌부의 고심 끝에 나온 건 유재 원이란 이름 석 자를 붙이는 것이 었다.

상식 파괴였다. 보통 월스트리트 의 펀드는 멋진 단어를 붙이는 게 보통이었다. 퀀텀이니 팬텀이니 타 이거니 하는 것들을 붙였는데, ID 인베스트먼트는 오너의 이름을 붙 였다. 이는 곧 유재원이 펀드의 이 익률을 보증한다는 뜻과 같았다.

물론 투자 계약서에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진 않았다. 애초에 수익 률 보장도 없는데, 무슨 보장이란 말인가. 다만 유재원의 이름을 거 는 것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오너 의 이름이 걸렸는데, 수익률이 개 판이라면 그야말로 대 망신이니 말 이다. 또한, 부수적으로 세계 최고 의 천재라 알려진 유재원이 투자 설계에도 관여한다는 안정감을 투 자자에게 주는 효과도 있었다.

당연히 ID 인베스트먼트는 투자 자들의 기대에 100% 부응했다.

IT 버블 붕괴를 완벽히 피했고,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해서 대혼란 속에서도 이익을 창출했으니 말이

"이후 ID 인베스트먼트는 동아시 아 외환위기의 종점이 일본이 될 것으로 예측했고, 이에 배팅했습니 다. 배팅 금액은 100억 달러였습니 다. 뭐, 회장님의 쌈짓돈이었죠."

빈센트 그린힐이 농담도 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베팅에 실 패해서 100억 달러를 다 잃어도 좋 다는 식으로 일본 경제 붕괴에 힘 을 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슬라 이드가 넘어가면서 투자 수익률이 공개되자 더는 좋아질 수 없는 상 태가 되었다.

"그 결과 수익률 400%라는 전대 미문의 수치를 찍었습니다."

빈센트 사장의 말과 함께 정확한 수치가 스크린에 떴다.

이걸로 발표가 끝나도 상관없었 지만 빈센트 그린힐의 이야기는 계 속되었다. 이번에는천문학적인 수익 금의 행방에 대한 설명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