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00화 (500/1,007)

25권 9화

조작의 주체가 진짜 카네기 대학 교 학생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매 크로를 통해 카네기 멜론대가 치고 나가자 이를 인정할 수 없는 이들 이 생겼다. 당연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으니 이들도 본격적으로 매 크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 98은 컴퓨터의 효율 적인 사용을 위해서 매크로를 운영 체제 차원에서 지원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전문 소프트웨어 업체 들은, 안드로이드 기본 매크로보다 강력한 기능을 자랑하는 매크로 프 로그램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매크로는 쉽게 차단할 수 있는데."

매크로를 이용해 인터넷에서 반 복 작업을 하면 바로 티가 난다. 이번과 같이 악용 방지를 위해서 일부러 흔적이 남도록 매크로를 만 들었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꽂힌 괴짜들이 그 정 도도 모를까? 간단히 회피했지."

티파니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투표에서 열거된 대학교의 컴퓨 터공학과라면 세계 최고라는 자부 심을 가질만 했다. 당연히 컴퓨터 에 대한 이해도 뛰어났다. 즉석에서 매크로 검사를 우회할 수 있는 매크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 다.

이후에는 혼돈의 도가니탕이 되 었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컴퓨터공학과를 가 리는 투표는 누가 더 뛰어난 매크 로 프로그램을 만드는지, 누가 더 많은 좀비 PC를 거느리고 있는지 대결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더구 나 이번 투표가 공신력이 있다거나,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올릴 수 있는 2ch.com의 평범한 인터넷 게시판이었지만 누구 하나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초당 수십, 수백만 건의 접속이 이어지고 서버에서 차단하지 못하 는 매크로 공격이 이어지면서 결국 2ch.com이 몇 시간 동안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유재원은 생각이 많아졌다.

빠른 인터넷의 보급이 편리한 세 상을 만들었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빠른 것 같았다. 이번 일은 단순한 인터넷의 해프닝 정도로 끝나겠지 만, 이게 여론을 바꾸려는 대규모 조작이 되거나, 다른 인터넷 업체 의 서비스를 마비시키는 용도로 사 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서는 특정 서버에 접속하는 게 사 람인지 컴퓨터인지 구분할 줄 알아 야 한다.

물론 유재원은 방법을 알고 있 다.

바로 캡차(CAPTCHA) 라는 인증 방법이었다. 사람만이 풀 수 있는 문제, 이를테면 변형된 문자나, 많 이 훼손된 문자 혹은 그림 문제를 내서 풀면 사람, 풀지 못하면 매크 로나 인공지능으로 정의하는 것이 다.

유재원은 일단 2ch.com의 관리

자에게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을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고, 정답을 찾지 못하면 개입하기로 마음을 먹 었다. 그렇다고 직접 만들 생각은 없었다. 지금쯤이면 캡차에 관해 연구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 사 람을 찾으면 쉽게 풀리는 문제였다.

"그나저나 투표는 어디가 이겼 어? 당연히 스탠퍼드겠지?"

2ch.com의 보안 체계가 뚫린 게 아니라서 한시름 놓은 유재원은 평 소의 밝은 말투로 돌아왔다.

"어디일 거 같아?"

티파니도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

"땡! 정답은 MIT."

MIT라는 소리에 유재원은 고개 를 끄덕였다.

후보로 열거된 대학들은 다들 한 가락 하는 대학교였다. 그렇지만 똘기로만 따지면 MIT 미만이었다. 스탠퍼드도 중간고사 직전이나 직 후에나 대단한 똘기를 보여주지만, MIT에는 2% 부족했으니 말이다.

티파니와 알콩달콩 이야기하는 사이에 자동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로소 집에 왔다는 게 실감 나는 유재원이었다.

다음 날.

유재원은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그것도 평소의 일상이 아닌 ID 테 크놀로지 본사로 출근이었다. 평소 라면 아침을 먹은 후, 서재에 들어 와 온라인으로 업무를 보고, 프로 그래밍도 했을 텐데, 지금은 김대 석이 준비한 차를 타고 이동 중이 었다.

물론 이동하는 중에도 낭비되는 시간이 없도록 i웍스 노트북에 티파니폰을 연결해 인터넷을 켜고 모 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대한 일보, 사주 일가 기소

-대한민국 대표 언론사 맞나? 온갖 비리의 총합!

-외환 관리법 위반, 분식회계, 마약류 관리법 위반, 성매매 특별 법위반등등-추징금 규모 2천억 원 넘을 듯 한국 넥스트컴의 뉴스 페이지에 는 어제까지 가득했던 대선 뉴스들 이 잠깐 뒤로 밀려났고, 대한 일보 관련 기사들이 가득했다.

대한 일보에 짙은 암운이 드리워진 것이다.

검찰에서 대한 일보 사주 일가를 정식으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혐의 사항을 보면 그야말로 범죄의 종합 선물세트였다.

예전이었다면 경찰이나 검찰은 눈에 뻔히 보이는 것도 못 본 척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수처가 매의 눈으로 수 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혹여 대한 일보 사주 가문과 모종의 합 으로 묻으려는 시도가 보이기만 하 면, 바로 공수처가 움직일 기세였 다.

김창완 공수처장은 전 국민의 관심 사안인 만큼 공수처도 지켜보고 있으며, 국민적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사건이 종결된다면 공수처 장 직권으로 수사에 들어가겠다고 공표했다.

공수처법에는 경찰이나 검사가 종결한 사건이라도 별도의 고발이 있을 시에는 다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물론 아무 사건이 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공수처 수사 대상인 고위 공직자가 외압이 나 청탁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판 단이 되면 가능한데, 그걸 따져 보 는 이는 공수처장이었다.

그렇기에 김창완 공수처장의 엄포에 경찰이나 검찰은 과거처럼 좋 은 게 좋은 거라면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공권력의 칼날이 대한 일보 사주 가문을 정조준했고, 결 국 기소 처리가 되었다. 조만간 재 판이 열리면 법원이라는 단두대에 걸려 목이 떨어질 것이다.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러줬던 때 는 진작 지났다. 앞으로는 세상이 바뀐 것도 모르고 나대다가 쫄딱 망한 사례로 제일 먼저 대한 일보 가 떠오를 것 같다.

"그래도 끝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지."

이렇게까지 핀치로 밀어 넣음에 도 유재원은 조금도 방심하진 않았 다. 세종로에 있는 대한 일보 본사 에서 대한 일보 간판이 떨어져 나 갈 때까지는 절대 봐줄 생각이 없 다.

곧이어 유재원은 다음 키워드를 넣었다. 최현희였다. 하지만 넥스트 컴 뉴스 페이지에는 최현희와 관련 된 기사는 대부분 예전 이야기였다.

"그나저나 최현희 회장 처리는 좀 늦네요?"

포토라인에 서서 사진 몇 방 찍 힌 거 말고는 딱히 진척된 게 없었

"아무래도 일성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김대석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많은 것이 담 긴 그 말에는 정답이 있었다. 대한 일보야 겨우 밤의 대통령 운운하는 정도였지만, 일성은 무려 일성 공 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조처를 할까요?"

"아뇨. 일단 지켜보죠."

유독 일성에게만 검사의 칼과 판 사의 법봉은 솜방망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다를 테니지켜보면 된다.

짐'시 후.

유재원의 탄 차가 ID 테크놀로지 본사 로비에 도착했다. 로비에는 일단의 사람들이 먼저 나와서 유재 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스, 복귀를 환영합니다."

"다들 오랜만이네요! 많이 늦었 죠?"

가장 먼저 유재원에게 인사한 이는 레밍턴이었다.

이런 식의 의전을 그다지 좋아하 지 않는 유재원이었지만, 정말 오 랜만에 만난 사람들이기에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빈센트 사장님도 오랜만이고요. 날이 갈수록 젊어지시는 거 같네 요! 게다가 일본에서도 한 건 크게 하셨다고요?"

"허허, 회장님과 함께 일한 덕에 제 시간도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 습니다."

여기에는 레밍턴뿐만이 아니라 ID 인베스트먼트의 빈센트 사장이나 ID 테크놀로지의 엘런 사장, 넥 스트컴의 헨리 사장, ID 하이테크 의 안드레이 소장 등등 그룹 사장 단들이 모두 다 와 있었다.

오늘 본사에서 치를 스케줄은 좀 특별했기 때문이다.

바로 전명헌의 서거로 인해 유재 원이 참석하지 못한 중요한 행사를 치르기 위해 다함께 모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1998년도 결산과 1999년 신년 계획 선포식이었다.

ID그룹은 전통적으로 12월에 연 말 결산을 했고, 1월에는 1년간의 단기 계획을 발표했다. 예전에는 30분 정도의 행사였는데, 기업의 규모가 엄청나게 거대해진 지금에 는 하루짜리 행사가 되었다.

"전혀요! 마음 같아선 보스께 좀 더 쉬어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 요."

레밍턴과 엘런 등, 창업 때부터 함께한 이들은 전명헌이 유재원에 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한 존 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상 실의 아픔도 꽤나 크다는 걸 이해 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우려의 눈 빛이 있었다.

그렇지만 회사의 일은 시기가 중 요했다.

더욱이 유재원이 보유한 미래를 보는 탁월한 시선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 다.

유재원도 본인이 실의에 계속 빠 져 있는 것보다는 활발히 움직이면 서 ID 그룹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 다고 봤고, 하늘에 계신 전명헌 할 아버지도 우울하게 있는 것보다 이 렇게 움직이는 걸 더 좋아할 것으 로 생각했다.

임원들과 함께 본사에 들어선 유 재원은 곧바로 1998년도 결산을 시 작했다.

유재원은 사장단들과 ID 테크놀 로지의 중역 회의실에 자리했다.

일자 형태의 테이블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다중 프로젝터를 이용 해 거대한 스크린을 만들었다. 고 성능 스피커도 연결되어 있어서 발 표 자료를 띄우는 것은 물론이고, ID톡 화상 미팅을 통한 원격 회의 도 진행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공간 이었다.

어제까지는 딱히 상석이랄 게 없 었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의자 를 가운데 놔서 상석이라는 표시를 했다.

유재원이 그 의자에 앉았고, 유 재원의 오른쪽엔 레밍턴이, 왼쪽엔 엘런이 앉았다. 그리고서 서열에 따라 사장단들이 자리했다.

기업 문화가 완전 미국식인 ID 그룹이었지만, 미국이라도 위아래가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유재원은 본인보다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존 대였다. 영어엔 존댓말이 없다지만, 말투나 어휘를 통해 존경의 의미는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게 임원들 사이에도 퍼진 모양 이다. 덕분에 이런 식의 자리 배치 가 만들어졌다.

"자, 그러면 ID 그룹의 모태인 테크놀로지부터 할까요?"

자리에 앉아서 1998년에 대한 소회나 총평에 대해 말하는 간단한 오프닝 행사가 끝나자 유재원은 평 소처럼 본론으로 직행했다.

"예, 회장님."

그러자 옆에 있던 엘런이 자리에 서 일어나 스크린 앞에 섰다.

레밍턴의 추천으로 ID 그룹의 일 원이 된 엘런은 기업 법무팀장으로 MS와의 소송을 진두지휘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다만 레밍 턴의 영전으로 ID 테크놀로지를 맡았을 때는 조금 의구심을 갖고 보 는 시선들이 좀 있었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기술 기업인 ID 테크놀로지를 변호사 출신인 엘 런이 잘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는 시선이었다.

"ID 테크놀로지의 1998년은 탄 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다방면에 걸 친 확장에 성공한 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엘런의 사장 인선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중 가장 빛나는 업적이라면 티파니폰 시리즈의 판매량입니다. 전 세계 1천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우리 티파니폰을 선택했습니다."

곧이어 전면의 프로젝터 스크린 에 ID 테크놀로지가 이룩한 1998 년도 업적들이 표시되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티파니폰2의 판 매량이었다. 엘런의 말대로 전 세 계 기준으로 천만 대 판매라는 금 자탑을 세웠다. 하지만 시장 점유 율로 보면 2위였다.

1위는 그 유명한 노키아였고, 1 천 2백만 대 이상을 팔았다고 평가 되어 있었다.

2위였음에도 유재원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 다. 판매 수량 기준이면 노키아가 200만 대나 앞섰지만, 내실만 따지 면 ID 테크놀로지의 월등한 우위였 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키아의 판매량 대다수는 저가형 모델이 주력이었 다. 그 가격은 티파니폰의 1/2 수 준이었으니, 세계 점유율을 액수로 만 따지면 1위는 ID 테크놀로지다.

"미국에서 500만 대, 한국과 일 본 등에서 300만 대, 유럽에서 150 만 대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나머지 50만 대 정도는 기타 등 등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러시아나 캐나다 등의 나라였다.

역시 미국은 유재원을 배신하지 않았다. 이는 작년 이동통신 서비 스에 가입한 미국인 중에 반 이상 이 티파니폰을 선택했다는 의미였 다.

특이한 점은 한국과 일본에서의 무지막지한 판매량이다. 세부적으론 한국에서 약 200만 대, 일본에서 약 100만 대를 팔았다.

최신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한국이라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 진다. 그런데 일본은 좀 특이했다.

일본 정부는 엔화 환율 급등과 닛케이 지수 급락으로 대표되는 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헤지펀 드를 꼽았고, 그 리스트에서 ID 인 베스트먼트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 유재원의 얼굴도 일본 방송에 수차 례 오르면서 인지도가 쌓일 정도였 다. 물론 나쁜 쪽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파니폰의 일본 판매량은 탄탄했다.

티파니폰 시리즈는 디자인은 일 본인들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고, 압도적인 성능과 편의성, 완벽한 일본어 지원은 타 휴대폰을 압도했 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차기 버전인 T터치폰의 양산 준 비도 순조롭게 끝냈습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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