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99화 (499/1,007)
  • 25권 8화

    만찬은 당연히 성공적이었다.

    준비된 요리부터가 5성급 호텔의 요리사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 들이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한식은 기본이었고, 이탈리아나 프랑스는 물론이고 일식까지도 있었다. 양도 넉넉하게 준비했기에 30명이 배부 르게 먹을 수 있었다.

    유재원도 작가들과 한 테이블에 서 앉아 식사를 했다.

    유재원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전생에도 다들 유명한 작가들이었 다. 심지어 퇴마록 같은 건 몇 번 이고 다시 봤던 소설이었다. 인피니티 드림 속에서 세계를 만들 때 소설의 설정들을 참고하기도 했었 다.

    작가들의 입장에서도 유재원과 같이, 서울의 야경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 저녁을 먹 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실 처음엔 살짝 어색한 분위기 이긴 했다. 하지만 좋은 날에는 필 수인 샴페인과 포도주가 돌자 서로 간의 어색함은 빠르게 녹았다. 덕 분에 유재원도 한결 편안한 모습으 로 작가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김 작가님, 혹시 집안에서 과수 원 하세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부모님 께서 사과와 감 같은 과실수를 재 배하고 계시지요."

    괴물 초장이의 김형도 작가가 유 재원의 물음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긴, 답은 간단했다. 유 재원도 김형도 작가의 팬이었다. 그런데 책이 너무도 안 나와서 탈 이었다. 오죽하면 책이 안 나오는 이유가 글쓰기보다 과수원 돌보는 것에 집중해서 그런다고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안동은 사과 유명하잖아요. 그 래서 혹시나 했어요."

    "그러시군요."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밀리 언 달러 챌린지는 중복 수상도 가 능해요. 그러니까 괴물 초장이 완 결 후에도 후속작을 많이 내셔서 도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책을 좀 많 이 써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작가님들도 마찬가지고요."

    비단 김형도 작가에게만 하는 말 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 였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건 두 번은 못할 일이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글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를테면 이번에 선정된 괴물 초장이라는 글에서는 던전 앤 드 드래곤이라는 TSR사의 설정들 을 많이 가져다 사용했다.

    누구나 넥스트컴의 아이디만 있 으면 올릴 수 있는 나도 소설가 게 시판에만 올리는 글이었다면 큰 문 제는 아니었지만, 출판을 비롯해 상업화가 이뤄지면 탈이 날 문제였 다. 이에 대한 유재원의 해법은 간 단했다.

    TSR 사와 협의해서 라이센스를 따온 것이다.

    계약 내용은 비공개였다. 대신

    밀리언 달러 챌린지에 도전하는 글 이 D&D의 설정을 가져다 써도 이 제는 합법이라는 게 중요했다. 영 화나 드라마를 만들어도 문제없다. 라이센스에 엄격한 TSR 입장에서 는 정말 파격적인 대우였다. 거침 없이 열린 유재원의 지갑이 보여준 위력이기도 했다.

    하여튼 밀리언 달러 챌린지는 작 가가 아닌 작품을 선정하는 행사였 기에, 같은 작가가 중복 수상을 하 는 것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챌 린지의 조건은 오직 하나, 재미있 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저기, 회장님."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는 데, 누군가 유재원을 불렀다. 검은 로냐프 강의 나상균 작가였다. 같 은 테이블이지만 말이 거의 없어서 수줍음이 많구나 싶었던 작가님이 었다. 검은 로냐프 강이란 소설도 그런 감성 충만한 소설이었다.

    판타지 세계관이라면 으레 등장 한 오크 같은 괴물도 거의 나타나 지 않았다. 대신 국가와 국가, 인간 과 인간의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기사와 레이디의 로맨스 를 섬세한 문장으로 아름답게 꾸며 낸 수작이었다.

    이번에 선정된 작품 중 예술성이 가장 높은 매우 높게 평가된 작품 이기도 했다. 깐깐한 비평가들은 웹툰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괴물 초장이나 퇴마록엔 높은 평가를 하 는 사람도 드물었다. 하지만 검은 로냐프 강의 경우엔 장르소설답지 않은 문학성이 있다는 평이 나왔다.

    물론 유재원에게 비평가들의 평 가는 조금의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유재원에겐 딱 두 개의 기준이 있었다.

    본인 그리고 네티즌들이 높은 평 가를 준 것, 그리고 이전에 이미 대중의 평가를 받은 것이다. 둘 중 하나만 통과해도 밀리언 달러 챌린 지에 선정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 다. 100%라고 하고 싶지만, 법적인 문제를 비롯해 현실적인 제약이 있 는 작품도 있어서 100%를 붙일 수 는 없었다.

    검은 로냐프 강의 경우엔 둘 다 였다. 딱 보고 이건 미국에서도 먹 힌다는 확신이 들었다. 심지어 소 설 속 인물들과 할리우드 배우들을 매칭시키는 가상 캐스팅도 순식간 에 이뤄졌을 정도다.

    "네, 말씀하세요!"

    그런 글을 쓴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

    유재원의 표정이 조금 신중해졌 다. 챌린지에 선정된 작가님의 부 탁이라면 뭐든 들어주겠지만, 청탁 이라면 거절해야 할 수밖에 없다.

    " 뭔가요'?"

    "먼저, 오늘 펜트하우스에서 만 찬을 열어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말 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와서 보니 제가 살던 세상과는 다른 세 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 다."

    나상균 작가의 말에 유재원은

    100%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기 펜트하우스는 좀 별 나긴 했다. 하지만 유재원의 취향 은 아니었다. 최강욱과 황재홍이 부른 전문가들의 취향이 그대로 적 용된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유재원 도 얼마나 호화롭게 만들 수 있나 보려고 디자인 시안이 올 때마다 OK를 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작 품이 만들어졌다.

    진짜 유재원의 취향은 샌프란시 스코의 저택이었다. 적당한 생활 공간에 본인이 직접 커스터마이징 한 PC와 데이터 센터까지 광케이 블로 연결된 네트워크 시스템이야말로 유재원의 취향이었으니 말이 다.

    "덕분에 좋은 영감도 얻었습니 다."

    "오! 차기작 말씀이지죠?"

    "예! 차기작의 배경이나 주인공 에 회장님을 모티브로 삼고 싶은데, 허락해주실 수 있나요?"

    부탁이라고 해서 뭔가 긴장했는 데, 나상균 작가의 부탁은 하등 문 제가 될 게 없는 이야기였다.

    "그럼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장르소설 중 에 재벌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항상인기였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스스 로의 힘으로 일어난 자수성가이지 재벌은 아니지만, 감수성 넘치는 나상균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써줄 지 기대가 컸다.

    며칠 후.

    유재원은 조용히 출국 길에 올랐 다.

    전명헌의 위급 소식에 급하게 한 국에 들어왔다가 2개월 넘는 나날 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용기 탑승을 위해 나서는 발걸음에는 살짝 촉박함이 느껴졌다.

    부모님, 그리고 친지들과도 뜻깊 은 시간도 보냈고, 전명헌이 안장 된 국립현충원에 들러 헌화도 한 후였으니 미련은 없었지만, 조금은 쫓기듯 떠나는 듯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바로 대선 때문이 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유재원은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미래 그룹 이 상속 문제로 분할이 확정되었는 데, 삼형제끼리 각자 받은 유산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마찰이 일어 났다. 미래 그룹 분할을 위해선 순환 출자 문제를 손봐야 하는데 출 자고리를 해체하는 방식에 따라 누 군가는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기 때문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연히 삼형제는 유재원의 힘을 빌리려고 했다.

    유재원이 미래 전자에 투자하면 서 받은 대가 중에 미래 그룹 지배 지분 10%가 있었기에 이를 가지고 뭔가를 도모해보려는 것이었다.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 재원과 사진을 한 장 찍어두려고 성화였다. 언론 역시 유재원이 무 슨 말이라도 하면 정치와 연관 지 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덕분에 유재원은 밀리언 달러 챌 린지 한국 수상작 발표 행사를 마 치고서 미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 었다.

    거인이 사라진 지 며칠이나 지났 다고, 벌써 그의 빈자리가 느껴졌 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빈자리는 점점 커질 거라는 점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 날지는 안 봐도 풀HD화면으로 그 려낼 수 있을 정도였다.

    "회장님?"

    주기된 전용기에 오르는 구름다 리를 걷던 유재원이 뭔가 미련이 남는 듯 뒤를 돌아봤다.

    당장은 실망감이 크지만, 그렇다 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전명헌 과 함께 대한민국의 진보를 위해 노력한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다음 번 입국하게 될 한국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유재원은 아쉬움을 담담히 가슴 에 묻고 다음을 기약하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ID 그롭로고와 안드로 이드 마스코트가 동체 전체를 덮고 있는 전용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힘 차게 날아올랐다.

    #380. 차르(Tzar)

    유재원의 전용기가 미국에 도착 했을 때,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 다.

    -2ch.com 한때 마비!

    ID 테크놀로지에서 운영하는 세 계 최대의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인 2ch.com이 무려 4시간이나 서비스 가 마비되었다는 뉴스였다.

    "2ch.com이 마비가 됐다고?"

    "응! 어제는 그랬지. 지금은 정상이야."

    소식을 알려준 건 공항에 마중을 나와 있던 티파니였다.

    가볍게 포옹을 끝낸 후, 처음 나 누는 대화였다. 격한 키스는 없었 다. 몇 달 만에 만난 연인이라면 감정이 격해져서 공공장소에서 애 정표현도 거침없이 저지르겠지만, 둘은 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티파니는 유재원이 보고 싶을 때마 다 한국에 종종 들어와 며칠을 지 내다가 돌아갔던 탓이다.

    오늘의 해우도 일주일 정도 만에 본 것이라서 포옹 한 번으로 끝이 었다. 대신 미국 소식에 빠삭한 티파니가 미국의 최신 소식을 이야기 해줬는데, 제일 먼저 나온 게 2ch.com의 서버 다운이었다.

    2ch.com의 서버 다운은 유재원 도 놀랄 소식이었다.

    ID 테크놀로지가 자랑하는 클라 우드 서버에 올려진 서비스였다. 게다가 텍스트 위주의 서비스라서 사용자가 많이 밀려도 전송량이 그 다지 많진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야?"

    유재원은 바로 티파니폰을 들고 ID톡을 열었다. 비행 중엔 당연히 통신이 두절되는데, 그 사이에 혹 시 2ch.com에서 올린 보고서가 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역 시나 2ch.com에서 올린 기술 보고 서가 있었다.

    "아, 이건 여기서 못 보겠네."

    용량이 제법 큰 IDW 파일인지 라 노트북이나 컴퓨터로 봐야 했다.

    "내가 말해줄 수 있어."

    놀랍게도 티파니는 2ch.com 의 서버 다운 사태에 대해 잘 알고 있 었다.

    준비된 차에 올라타 집으로 가는 길에 유재원은 티파니로부터 그 사건의 전모를 모두 전해들을 수 있 었다.

    "뭐? 진짜?"

    티파니로부터 첫 대목을 듣자마 자 유재원은 어이가 없어졌다.

    2ch.com의 서버 다운 이유가 상 상했던 것 이상으로 유치했던 탓이 다. 유재원이 보기엔 강력한 해커 가 서버의 보안 시스템을 뚫고 들 어가서 난리를 피운 줄 알았다. ID 그룹의 다른 인터넷 기반 서비스에 비해 2ch.com은 익명이 보장되는 커뮤니티라서 보안 체계의 수준이 조금은 떨어졌으니 말이다.

    ID 그룹을 노리는 해커라면 2ch.com을 먼저 뚫어본 다음에, 이 보다 어려운 서버에 도전하는 게 왕도 아니겠는가.

    "응! 진짜! 사건 진행을 실시간 으로 봤거든."

    그런데 티파니가 전해주는 이야 기는 황당 그 자체였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컴퓨터공 학과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라 는 이름의 온라인 투표 하나가 2ch.com을 마비시킨 장본인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2ch.com에는 스레드 형으로 수만 개의 게시판이 있고, 이는 세상의 모든 이슈에 대 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카테고리를 자랑했다.

    이중에서 컴퓨터 관련 이야기를 하는 스레드가 있었는데, 거기에 며칠 전 하나의 투표 리스트가 만 들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컴퓨터공 학과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라 는 이름의 온라인 투표였다. 후보 대학교는 모두 6개로 카네기 멜론 대, MIT, 스탠포드, 캘리포니아 버 클리, 하버드, 조지아 공대.

    시작은 다들 고만고만한 투표수를 자랑했다. 어쩌다가 그 게시물 을 본 네티즌들은 본인들이 생각하 는 최고의 대학을 선택했으니 말이 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네기 멜론대가 갑자기 수천 표 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조작이구먼."

    "응! 매크로로 돌린 거지."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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