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91화 (491/1,007)

24권 25화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환하게 타 오르는 것처럼, 전명헌은 본인 이 후의 상황에 대해 착실하게 준비했 다.

전명헌이 불굴의 의지로 12월 18일 제7공화국 선포식에서 만세 삼창을 했지만, 타격이 컸다. 신체 적 기능이 빠르게 나빠졌고, 혼수 상태에 빠지는 일도 많아졌다. 그 럴 때마다 의료진은 난리가 났고, 전명헌의 식구들이 급하게 미래아 산 병원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길 반 복했다.

유재원이야 계속 VIP 병실에 붙 어 있을 수 있었지만, 전명헌의 식구들은 미래 그룹 계열사들을 저마 다 맡고 있어서 자리를 지키고 있 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ID 그룹은 웬만한 일은 모두 전 산화되어 있어 유재원이 어디에 있 든 ID톡 혹은 노트북 하나면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반면 미래 그룹 은 명색이 한국 제2의 재벌 그룹이 지만, 그룹의 경영 시스템은 전통 적인 수준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전명헌의 의식이 살아 났고,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진 날이 있었다. 심지 어 말도 또렷하게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전명헌은 비서실장에게 현재의 상황에 대해 보고 받았고, 유재원으로부터도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 또한 뭔가를 느꼈던 모양인 지, 아직 공석이었던 공수처장 임 명부터 시작한 것이다.

"에? 김창완 변호사요?"

당연하게도 전명헌의 선택을 유 재원은 가장 먼저 들었다.

ID 파운데이션이 운영하는 여러 사회적 나눔 단체 중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직이었다. 법원 신 세를 질 일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라면, 김&정 법무법인의 존재를 몰 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그 평범한 사람들도 어마어마한 혼란 속에 빠져들게 했다.

계주가 곗돈을 들고 나르는 일은 기본이었고, 고수익을 미끼로 사돈 의 팔촌은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도 속여서 돈을 받은 후에 잠적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밖에도 사기 사건에 저도 모르 는 사이에 연루되었거나, 떼인 돈 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김&정 법 무법인의 문을 두드렸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있어도 법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없었다. 법률 지원 공단이 있긴 해도 재판장 안 까지 같이 가주는 건 아니었다. 국선 변호사 제도가 있긴 했지만, 모 든 국선 변호사들이 제 일처럼 맡 아 열심히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김&정 법무법인은 달랐다.

일단 법무법인에 속한 수백 명의 변호사들은 실력이 검증된 사람들 이었다. 게다가 사안의 심각성이나 손해 규모가 크다고 보면 보다 전 문적인 변호사들이 달라붙기도 했 고, 전관예우가 남은 변호사까지도 동원했다.

전관예우라는 게 매우 안 좋은 것이고, 없어져야 할 문화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근절 이 되지 않는 상태라면 쓰지 못할이유도 없다는 것이 유재원의 생각 이었다.

덕분에 김&정 법무법인이 사건 을 맡았다고 하면 승소 확률은 대 폭 상승했다. 인지도도 지금 하늘 을 뚫는 중이었고, 법무법인의 이 사장인 김창완 변호사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이 많이 나올 거예요."

유재원의 우려였다.

"하…… 하라고, 해."

반면 전명헌은 단호히 말했다.

김&정 법무법인의 유명세가 높 은 만큼, ID 그룹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 다. 김&정 법무법인에 법원이나 검 찰청에서 막 퇴임한 고위급 인물이 거리낌 없이 들어오는 건 모두 유 재원의 후광을 덕임을 모르는 사람 이 없다.

오죽하면 일성 공화국 대신, 유 재원 제국이 만들어진다는 말이 나 을 정도였다.

당연히 그런 소리를 하는 이들은 재벌들 위주였다. 예전까지는 온갖 스폰서 같은 걸로 법원이나 검찰청 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쥐구멍을 만 들어 놓았다. 덕분에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때만 좀 시끄러웠지, 나중에 가보면 흐지부지되고 솜방 망이 판결만 받는 것으로 끝이 났 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쥐구멍이 거 의 다 막힌 상태였다.

오죽하면 일성 그룹의 최현희가 포토라인에 서서 큰 망신을 당했을 정도다. 예전이면 어림도 없는 일 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일은 조만간 비자금 조성을 비롯해 환경 법 위반, 근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가 확정되었다. 구속 영장 신 청도 뒤따를 거라고 했다.

일성 공화국의 대통령인 최현희 가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것은 모두 유재원과 척을 진 것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재벌들 사이에 횡횡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창완 변호사가 공수처장이 되면, 유재원 제국은 더욱 탄탄해지는 것이었다. 공수처 의 가장 큰 기능은 법원과 검찰정 으로 대표되는 사법부 견제였으니 말이다.

"김…… 김창완 변호사가, 인…… 인사 청문회에서, 낙마할, 거 같으냐?"

"아뇨."

전명헌의 물음에 유재원은 단호 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김창완 변호사의 동향은 정보팀 을 통해 정기적으로 보고 받았기 때문이다. 뒷조사를 한 건 아니었 다. 업무 평가나 평소의 언행 등 가까이 있으면 알 수 있는 정보들 을 가지고 만드는 보고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창완 변호 사의 인격은 확실히 드러난다. 법 원에서 쫓겨났던 이유도 조직의 불 의에 항거했기 때문이었을 만큼 대 쪽과도 같은 신념이 있었고, 민생 법률이 꼭 필요한 낮은 곳에 자리 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법이 없었다.

고위 공직자들이 다 하는 위장전 입도 없었다. 당연히 재산을 쌓은것 역시 모두 합법적이었다. 요즘 서서히 불이 붙고 있는 아파트 투 기도 없었다. 덕분에 김창완 변호 사가 법원에 있을 때는 그다지 많 은 재산을 쌓진 못했다. 김&정 법 무법인에 들어오고 나서야 재산이 크게 불기 시작했을 정도다.

공수처장의 임명은 장관의 인선 과 달리 인사청문회가 있고, 국회 의 표결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후보자의 경력에 약간의 티끌만 있 어도 어마어마하게 큰 논란으로 만 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김창완 변호사라면 아무리 이를 갈고 있는 야당의원들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럼, 됐다."

전명헌은 유재원의 대답을 듣고, 비서실장이 가져온 공수처장 후보 자 지명 서류에 사인했다.

-전명헌 대통령, 공수처장 후보 지명-김&정 법무법인 김창완 변호사-야당 결사반대! 사법 권력을 개 인화 하는 것!

전명헌 대통령의 공수처장 후보 지명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논란이 일어났다. 야당은 극렬하게 반발했 다.

그들의 주장 그대로 사법 권력이 개인의 손, 그것도 기업인인 유재 원에게 넘어간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나마 유재원 제국 운운하는 소리 는 지면에 오르진 않았다.

야당 의원들이 자중한 것은 아니 다.

유재원 제국이니, 전명헌의 판단 력이 흐려졌다느니 하는 말이 쏟아 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실어주는 방송이나 신문사는 없 었던 것이다.

가장 극성이었던 대한일보는 특 별 세무 조사 종료가 얼마 남지 않 았기에, 자중하는 중이었고, 다른 신문들은 ID 그룹의 존재감에 눈치 를 봤다.

더욱이 김창완 변호사 지명보다 더 큰 소식이 연이어 터지면서 국 회의원들의 푸념은 완전히 묻혀버 렸다.

-김대중 총리, 사임

민주당 총재 김대중이 총리 직함 을 내려놓은 것이다. 현재의 총리는 대통령 권한 대행 직무까지 수 행했으니, 그야말로 막강한 자리였 는데도, 직을 내려놓았다.

마치 상의도 없이 공수처장에 김 창완 변호사를 지명한 것에 대한 반발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대중 전 총리는 단순히 대통령 권한 대행이 아니라, 민주당 총수 로서 여당인 통일국민당과의 연정 을 이끄는 관계였다.

즉, 김대중 총리의 사임으로 통 일국민당과 민주당의 연정은 깨졌 다는 이야기였다.

덕분에 일각에서는 전명헌 대통 령의 정신 상태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전명헌의 뇌출혈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졌다 는 것이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조금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총리가 누가 될 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전명헌 이 병상을 떨치고 일어나는 게 아 니라면,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테니 말이다.

만약 민주당에서 총리가 지명된 다면 연정은 계속된다는 이야기였 고, 그러면 김대중 총리의 사임도 시시해지니 말이다.

다행이도 정치인들 그리고 정치 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궁금증이 해소되기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바로 다음 날, 차기 총리의 정체 가 밝혀졌다.

-전명헌 대통령, 차기 총리로 통 일국민당 대표 이인제 지명.

통일국민당 대표 이인제였다.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였고, 지금 은 통일국민당 대표인 이인제는 저 번 대선을 이끌면서 존재감을 크게 알렸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본인도 출마해서 정권 교체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운명도 크게 달라졌다. 어디에 안착하지 못하는 철새처럼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 바 빴던 이인제였는데, 지금은 통일국 민당의 대표로 당을 잘 이끄는 중 이었다. 대신 야심은 넘쳐났다.

차기 대선에 꼭 출마하겠다는 소 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했다. 그 러한 야심을 실행하기에 딱 알맞은 당이 통일국민당이었다.

통일국민당이 창당했을 때의 기 반은 전무했다. 덕분에 인지도가 있었던 연예인들이나 지역에서 힘 을 좀 쓰던 유지들을 대거 등용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높은 정치 식견을 가진 인물은 매우 드물었다. 그렇 기에 이인제 같은 네임드 정치인이 면 통일국민당 안에서는 그 존재감 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이인제의 총리 지명으로 연정의 종료는 확실해졌다. 동시에 사람들 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병실에 있는 전명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 다.

덕분에 온갖 루머들이 생겨났다.

개헌이라는 큰 산을 넘으며 민주 당과의 깊은 골이 생겼다느니, 공 수처장 임명에서 아무런 상의도 없었다는 것에 김대중 전 총리의 자 존심이 상했다느니 하는 이야기였 다.

역시나 이것도 며칠 지나지 않아 전명헌이 그린 그림이 밝혀졌다.

-긴급! 전명헌 대통령, 다시 혼 수상태-전명헌 가족들 미래아산 병원으 로 속속 모여들고 있어!

1998년 12월 31일 밤에 긴급한 속보가 떴다. 그리고서 이틀이 더 지난 1999년 1월 2일, 전명헌의 서 거 소식이 전해졌다.

고 전명헌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 으로 치러지기로 했고, 장례 기간 은 7일로 정해졌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명헌의 발자 취가 닿았던 모든 나라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고, 여러 나라에서 속 속 조문사절을 파견해 입국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북한도 있었다. 북한은 김정일 다음가는 이인자인 김영남을 단장으로 하는 조문단을 보냈다.

전국에 애도 물결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슬픔과 상실감 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유재원이었 다.

임종의 순간까지도 함께했지만, 유언을 듣진 못했다.

이인제 대표를 총리 지명할 때만 해도 건재했던 전명헌이었는데, 갑 자기 며칠 사이에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급기야 혼수상태에 들 어갔다. 자력 호흡도 어려워져서 산소 호흡기를 부착해야 했을 만큼 상황이 나빠졌다.

그리고서 다신 회복하지 못하고, 영면에 드신 것이다.

그렇게 가시고 나서야 유재원은 큰 후회가 들었다. 깨어나셨을 때, 그간의 고마움이라도 전해드려야 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말을 꺼내 려고 운을 떼보긴 했다. 하지만 할 아버지는 김창완 변호사를 시작으 로 김대중 총리의 포석 문제와 같 이 본인 이후 정치 상황에 대비하 는 일로 아까운 시간을 다 보냈다.

그것이 할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기는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후회 가 되었다.

유재원은 전명헌 할아버지가 돌 아가시고 나서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 최상층에 있는 본인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오히려 마음만 허해졌 다.

서울의 밤풍경을 보고 있으면 빌 딩 개장식에서 전명헌 할아버지와 나란히 섰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던 탓이다.

가뜩이나 큰 집이라 허전함이 더 욱 커졌기에, 유재원은 다시 짐을 싸서 덕진리의 부모님 집으로 내려 왔다.

큰아버지의 계속된 심시티로 인 해 덕진리도 추억 속의 모습과는 크게 달라지긴 했지만, 푸근한 뒷 산이나 마을의 분위기는 그대로였 다. 게다가 바로 어젯밤에는 함박눈이 크게 내렸다. 온 동네와 뒷산 이 하얗게 덮이면서 비로소 마음에 조금씩 안정이 찾아왔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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