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권 24화
17일 오후, 6시.
국민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즉각 시작되었을 때, 유재원은 전명헌과 함께 개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의식을 차린 전명헌이지만, 아직도 미래아산 병원 VIP 병실을 떠날 수 없는 상태였던 탓이다.
개표가 시작된 지 대략 3시간쯤 이 지난 밤 9시쯤, 통과 확실이 떴 다. 100% 수작업이라 개표가 느리 긴 했지만, 압도적은 찬성으로 인 해서 비교적 이른 시간에 확실하다 는 문구가 뜬 것이다. 그리고서 1 시간이 더 지난 다음에는 확정이 떴다.
"할아버지! 압도적인 승리에요!"
"호…, 호들갑, 떨지 마라. 다…,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그럴 때마다 유재원은 일부러라 도 쾌활한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었 고, 푹신한 쿠션에 기대어 병상에 누워 있는 전명헌은 이 정도는 기 본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대통령 주치의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을 했음에도, 전명헌은 한 달을 버텨냈다. 게다가 몸 상 태가 나빠져서 말더듬이 생겼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지만, 예의 그 엄청난 자신감은 그대로 있었다.
사실 유재원도 여러 가지 데이터 를 받아보고 있었고, 국회 문턱을 넘은 것으로 게임이 끝났다는 걸 알고 있긴 했다. ID 그룹의 정보팀 은 그 정확성과 신속성이 세계 유 수의 첩보 기관과 동급 취급을 받 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텔레 비전에서 개표를 시작하니 살짝 떨 리는 게 사실이었고, 덕분에 호들 갑에도 살짝 진심이 섞여 있었다.
개헌안이 통과된 것으로 유재원 의 마스터플랜의 성공률은 한층 높 아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명헌의 치명상으로 인해 그 기쁨은 크지 않았다.
이번 개헌안에 전명헌이 진짜 본 인의 건강까지도 내던질 줄은 진짜 몰랐다. 게다가 청와대의 대통령 건강관리 체계에 대해서도 크게 실 망했다.
유재원에게 있어 이번 국회 회기 중에 개헌안 통과가 불발되더라도 큰 타격은 아니었다. 총선이 다시 실시된다면 이제는 여당의 압도적 인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이었으니, 몇 년을 더 기다리고 나서 보다 확 실하게 통과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전명헌은 본인이 대통령 인 시절이 꼭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너무도 강했고, 결국에 이 사달이 났다.
참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미 지나간 일을 계속 잡고 후회하 고 있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유재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내일 진짜 제7공화국 선 포식도 진짜 주관하실 거예요?"
"그, 그럼! 나, 전명헌이야."
무슨 말이냐 하면, 전명헌 할아 버지가 제7공화국 선포식에 참가하 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기념사와 같은 말은 김대중 총리 에게 양보해야겠지만, 마지막에 6공화국이 끝나고서 7공화국으로 이 행되었다는 걸 선포하는 영광은 본 인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진은 결사 반대였다.
전명헌의 몸 상태는 계속해서 나 빠지는 중이었다. 희박한 확률이긴 해도 기적적인 회복을 위해서라면 움직이지 않고 치료에 매진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전명헌은 아니 었다.
본인의 생명력이 거의 바닥났다 는 것을 의료진보다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다.
열심히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회복 가능성은 없었다.
차라리 한국 역사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 될 제7공화국 선포식에 꼭 참가해서 족적을 남기는 것이 본인에게는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전명헌의 의지는 유재원 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제7공화국 선포식이 있었다.
장소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이었
다. 국회 정면에는 거대한 태극기 가 걸렸고, 거대한 글자로 제7 공 화국 선포식이라는 타이틀도 걸렸 다. 또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 도 국회 앞 광장에 수도 없이 많았 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사람들의 열 기는 환경적인 요인을 이겨냈다.
제7공화국 선포식은 그만큼 의미 있는 행사였기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거대한 인파를 이뤘다.
행사가 야외에서 진행되었다면, 이러한 사람들의 신분도 일일이 검 사했을 터인데, 실제 행사는 국회로텐더 홀에서 진행되었기에 그렇 게 빡빡한 검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모인 사람들을 위해 본회의장 상황을 전해주는 거대한 멀티스크 린이 세워졌다.
투표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진 행하는 행사치고는 준비가 너무 잘 됐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극우 세력들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국민 투표 통과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청와대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김대중 대통령 권한 대행의 주관으로 제7 공화국 선포식을 위한 행사는 착착 준비되었다.
로텐더 홀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새로운 한국의 시작이기도 했고, 전명헌의 병세 때문이라도 분위기 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 에 대해 크게 숨기는 게 없었던 전 명헌 정부였기에, 김대중 총리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올리면서 전 명헌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보도했기 때문이다.
유재원도 당당하게 행사에 참석 했다.
로텐더 홀이 의외로 좁은 공간이 라서 귀빈들을 위한 자리가 얼마 없긴 했지만, VIP로 초청되어서 당연하게제일 앞줄에 앉을 수 있었다.
너무도 기쁜 날이다.
전생에서는 10차 개헌을 이루기 위해서 벌인 온갖 삽질이나 반대 세력의 거센 저항으로 인해 누더기 가 된 채로 통과된 개헌안에 비하 면, 이번에 통과된 개헌안은 그야 말로 역사적으로 그 효과들이 증명 된 에센스만을 모은 완벽한 형태였 다.
앞으로의 한국은 지금까지의 모 습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만큼 기쁜 날이지만, 제7공화 국을 여는 제물로 전명헌이 들어갈줄은 유재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 이었다.
기쁘다가도 전명헌을 생각하면 슬퍼졌다.
-전명헌 대통령님 그리고 김대중 총리가 입장하십니다.
유재원의 마음이 살짝 울적해지 려고 할 때, 대통령 행진곡이 나오 면서 휠체어를 탄 전명헌이 행사장 에 등장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 는데,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뜨 거운 박수로 전명헌을 맞이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는 차 근차근 진행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권한 대행이 정성 들여 준비한 기념사는 한 토시도 놓칠 말이 없는 명문이었지만, 유 재원의 귀에는 잘 들어오진 않았다. 그건 국회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 이나, 텔레비전으로 선포식을 보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시선은 단상 바로 뒤에 마련된 자리에 있는 전명헌을 향해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나 식 중에 뭔가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식이 진행되는 동 안 휠체어에 앉은 전명헌의 눈빛은 뜨거웠고, 자세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어서 전명헌 대통령의 제7공 화국 선포가 있겠습니다.
고비는 선포식이었다.
경호실장이 단상 중앙으로 전명 헌 대통령이 앉은 휠체어를 밀고 왔다.
전명헌의 옷차림은 양복에 겨울 외투를 입었고, 뇌 수술한 것을 가 리기 위해서 중절모까지도 쓴 상태 였다. 겉으로 보면 휠체어에 앉은 것 말고는 딱히 이상은 없어 보이 는 그런 모습이다.
그렇게 단상 앞에 나온 전명헌을 위해 경호실장은 마이크도 휠체어 에 높이에 맞춰 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전명헌 대통령이 손 을 저었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휠 체어 팔걸이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유재원은 그 모습을 보며 안절부 절못했다.
뇌손상으로 인해 자력으로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넘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막 들었다.
기우였다. 전명헌의 의지력은 보 통을 넘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 하는 모습이 오늘 여기 국회 로텐 더 홀에 있었다.
"1998년 12월 18일, 대한민국 제7공화국의 시작을 선포합니다."
휠체어에서 일어난 전명헌은 짧 고 굵은 한 문장으로 제7공화국의 시작을 선언했다.
"대한민국 만세!"
곧이어 만세 삼창도 이어졌다. 전명헌의 선창에 로텐더 홀, 그리 고 국회 앞 광장에 모여 있던 시민 들이 한 목소리로 만세를 외쳤다.
대한민국 제7 공화국의 시작이었 다.
#380. 거인의 빈자리
제7공화국이 시작되었지만, 시민 들의 삶이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 다.
아직도 IMF 체제 안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많았고, 한국의 경 제는 위태로웠다. 기업들의 사정이 아직 나아지지 않아 고용 지수는 바닥이었다.
덕분에 이제는 며칠 남지 않은 1999년은 세기말적 분위기가 더욱 고조될 거라는 전망이 뚜렷했다.
대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다.
가장 크게 보이는 이들은 공수처 였다. 아직도 공수처장은 공석이긴 했지만, 호텔 나이트 마약 사건에 연루된 경찰과 검찰들에 대한 조사 는 빠르게 이어졌다. 이러한 와중 에 강남 경찰서에는 폭탄이 터졌다.
공수처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은 본인들이 속한 조직의 존재 이유를 이번 사건을 통해 국민께 확실히 각인시켜드리겠다는 각오로 밤잠을 설치며 수사했고, 그 열매가 속속 맺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서장부터 말단 파출소 출장 경찰 까지, 유흥업소와 결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직위 해제와 함께 구속 영장이 청구되었고, 100% 발부되 어 철장 신세를 졌다. 21세기라면 구속영장 발부의 조건이 까다로워 져서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지금 은 영장을 청구할 때 범죄 사실나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말만 써 넣으면 쉽게 나왔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국민적 공분 을 일으켰던 일인지라 여론의 시선 도 무서웠다. 덕분에 공수처에서 영장을 내는 족족 발부되었고, 강 남 경찰서의 서장부터 일선 경찰까지 사이좋게 철장에 들어갔다.
비단 경찰만 철퇴를 맞은 건 아 니었다. 나이트클럽과 선이 닿아 있던 검사도 수사 중이었다. 검사 가 검사를 수사하게 되면 조직 보 호를 위해서 시시하게 끝나버렸을 테지만, 공수처에서는 검사들의 수 사를 검사를 거치지 않았던 판사, 혹은 변호사 출신에게 배당했다. 덕분에 봐주기 논란은 일찌감치 피 했고, 실제 수사도 엄정하게 진행 중이었다. 비리 검사들도 혐의가 입증되는 대로 영장이 쳐졌고, 쇠 고랑 신세를 피하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번 사건을 초래한 대한 일보 사주 집안이나 나이트클럽의 VIP 약쟁이들도 쇠창 살 신세를 피하진 못했다. 대한 일 보의 손자를 비롯해 인기 많았던 연예인부터 국회의원의 자녀, 심지 어 차관까지도 엮여 있었지만 가차 없었다.
대한 일보를 대상으로 한 특별 세무 조사도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 었는데, 역시나 각종 탈세 혐의, 외 환 유출 혐의가 밝혀지고 있었다.
IMF가 터졌을 때,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국가적 위기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설 때, 대한 일보는 달러를 빼돌려서 해외 부동산을 취득했다. 국세청은 자료를 정리해서 사주 일가를 고소하고, 탈세에 대한 징벌적인 추징금도 매 기기로 했다.
국세청에서 나온 소문에는 추징 금 크기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규 모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1998년도에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사건들은 법의 심판대 에 속속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큰일은 따로 있었다.
헌법 개정이라는 큰일을 치러낸 여의도는 당분간 큰일이 없어 보였 다. 겨울철 국회의 가장 큰 일은 새해 예산안 심사였지만, 이번에는 개헌과 연계되면서 매우 부드럽게 처리되었던 탓이다.
두껍게 얼어붙은 바닥이라도 물 은 흐르는 것처럼, 여의도 정치판 은 표면은 얼어붙은 것처럼 보여도 그 밑으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 어나고 있었다.
가장 큰일은 전명헌 다음을 준비 하는 일이었다.
새 헌법 공표와 함께 제7공화국 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에서 스스로 휠체어에서 일어나 만세를 외쳤던 전명헌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력 소모가 매우 컸던 탓에 전명헌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자연스럽게 대권을 꿈꾸는 이들 의 욕망이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전명헌 본인도 본인의 뒤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조치 중 하나가 이제껏 공석이었던 공수처장의 임명이었다.
전명헌이 선택한 제1대 공수처장 은 김&정 법무법인의 김창완 변호 사였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선택이 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