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88화 (488/1,007)

24권 22화

-그리고 어르신께서 회장님을 찾 으십니다. 회장님께서 세계를 경영 하시느라 매우 바쁘다는 건 잘 알 고 있지만, 최대한 빨리 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당연히 가야죠!"

유재원은 생각해볼 것도 없이 바 로 말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는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전화를 끊은 유 재원은 곧장 김대석을 부르고, 전 세기를 준비하도록 부탁했다.

또한, ID톡을 열고 레밍턴을 비 롯한 북미 지역 사장단에 급하게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 고, 뒤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연초에 수립 했던 계획들은 모두 이뤘다는 점이 었다. 연말에 접어들어 새로운 프 로젝트가 시작되는 일은 없었기에, 유재원이 급히 한국에 가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회사에 급하게 알린 다 음, 유재원은 가족들에게도 전화를 돌렸다. 티파니와 그녀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연락을 돌리다 보니, 김 대석이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유재원은 티파니폰과 i웍스 노트북만 챙겨서 급하게 집을 나섰다.

-ID 그룹, 유재원 회장 급거 귀 국.

-전명헌 대통령 위증설, 사실에 힘 실어 주는 증거.

-개헌안 표결 중대 위기!

텔레비전에서는 수직 꼬리 날개 에 ID그룹의 로고가 선명하게 그려 진 737-NG가 김포 국제공항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도되고 있었다.

유재원이 타고 한국에 들어온 전세 기의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ID 그 룹의 로고도 없었는데, 도장을 새 롭게 한 지금에는 ID 그룹 로고는 물론이고 안드로이드의 마스코트인 로봇까지도 동체에 멋들어지게 그 려져 있는 전세기였다.

딱 보면 ID 그룹의 비행기라는 걸 알 수 있었던 탓에, 유재원의 귀국을 알리지 않았음에도 바로 알 아볼 수 있었다.

이로 인해서 전명헌의 위중설이 더욱 크게 힘이 실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영수 회담 중 쓰러진 모습이 방송되고 나서 청와대에서는 아직 한 번도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대신 휴전 선 인근에 주둔 중인 병력들의 경 계 태세가 강화되었고 외출이나 외 박이 취소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 다.

아직 휴가자 강제 복귀 명령이 떨어진 건 아니지만, 휴가자들에게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라는 통 보는 나간 상태였다.

그나마 말이 나오는 건 영수 회 담에 참가했던 야당의 당 대표들이 었다.

만약 전명헌이 개헌안 통과를 위 해서 꾀병을 부린 거라면 이들이 먼저 들고 일어섰을 텐데, 야당 대 표들은 말을 아끼면서도 위중하다 는 건 마치 사실처럼 인정하는 뉘 앙스를 풍겼다. 사실 이들은 아니 라고 말하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야당이었지만, 예전 엔 줄곧 여당을 했었다. 능력은 없 을지라도 정치적인 술수에는 능했 다. 당연히 정치적 판세를 보는 눈 도 있어서 이번 일이 본인들에게 불리할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렇기에 아니라면 바로 말이 나 왔을 텐데, 이들은 부정하지 않았 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맞은편에서 전명헌 대통령이 쓰러지는 걸 보았던 탓이다. 개헌안 통과를 위 해 협조를 구하는 말을 하던 전명 헌 대통령의 말이 순간 어눌해지더 니,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생생히 보았다.

이대로 두면 큰일이겠다 싶어 부 축이라도 해야겠다 싶은 순간 일은 일어나버린 것이다. 대통령도 대통 령이지만, 민주한국당이나 한나라당 대표들도 눈앞이 깜깜해졌다.

국민들의 시선이 곧장 전명헌 대 통령에게 몰렸다.

전명헌은 한국 역사에 유례가 없 는 대중영합주의 대통령이었다. 간단하게 포퓰리스트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포퓰리스트라고 하면 대중 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서 인기만 얻고, 이를 지키지 않는 정치인을 의미했다. 국가의 역량이나 자본력 과 같은 현실적인 조건은 전혀 고 려하지 않고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말만 하다 보니, 나중에는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명헌은 그런 전형적인 포퓰리스트는 절대 아니었다.

인기를 얻기 위해 대중이 원하는 말은 했지만, 그렇게 한 말은 기어 코 지켜내는 사람이었다. 통일국민 당의 총선 공약들도 속속 지켜졌다.

반값 아파트는 아직이었지만, 무 상 교육 등의 여러 가지 복지 공약 들은 입법이 완료되었다. 다만 IMF 로 인해서 예산 집행에 차질이 생 기면서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큼 체감이 어려워졌지만, 약속은 잘 지켰다.

IMF 체제도 마찬가지였다. 유재 원의 큰 도움이 있긴 했지만, 전명 헌 정부에서도 여러 가지 개혁 조 치를 통해 IMF를 슬기롭게 극복하 고 있는 중이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기조 자체는 바뀌지 않았지만, 재벌들의 횡포로부터 약자들을 보 호할 조치가 IMF를 등에 업고 착실하게 이뤄졌다. 또한 앞으로 한 국 경제를 책임질 대기업들의 체질 개선도 이뤄지고 있었다.

외환 위기라는 족쇄가 풀리면 한 국의 경제는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잠재력을 뿜어낼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엄청 나게 이뤄졌다. 10년 전만 해도 서 로가 죽어야 산다는 무한의 경쟁 체제였다면, 지금은 개성 공단이 지어지고 있고, 북한의 석탄과 철 광석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금강산 관광도 조만간 앞두고 있었다.

북한과의 관계가 언제 또 틀어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남북한이 이렇게나 가까워진 것은 6.25이후 에 처음이었다.

이러한 변화에 전명헌의 공은 지 대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라 개헌도 있었다. 친일파 청산부터 군부 독 재 시대의 잔재를 털어내는 것까지, 개헌안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딱 맞 춘 것이었다.

보수 세력의 반발이나 대한 일보 를 같은 대형 신문사들의 공격에 살짝 흔들리기도 했지만, 나이트클 럽 마약 사건으로 인해 개헌 반대 세력은 낭떠러지로 완전히 밀려버 렸다.

반대로 전명헌에 대한 지지는 더 욱 강해졌다.

오죽하면 전명헌이 쓰러진 다음 날부터 쾌유를 기원하는 집회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국민들이 대통령 을 끌어내겠다고 모인 적은 많았지 만, 그 반대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전명헌의 지지도는 최고조 였다.

"빨리 가주세요."

"예, 회장님. 바로 미래아산병원 으로 모시겠습니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상어처 럼 달려드는 기자들을 공항에서 겨우 따돌리고 준비된 차에 오른 유 재원은 전명헌이 입원해 있는 미래 아산병원으로 이동했다.

김포에서 잠실까지 가는 길은 유 재원의 기억에 없었다. 그저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그 렇게 도착한 미래아산병원에서 유 재원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설치한 복잡한 보안 검색을 통과한 다음, 병실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전명헌 의 가족들과 간단히 인사를 한 후 에 VIP 병실에 입실했다.

그리고 거기서 온몸에 각종 계측 장비와 연결된 전선을 주렁주렁 달 고 누워 있는 전명헌을 만날 수 있었다.

'오, 재원이 왔느냐?'

언제나처럼 친근하게 이름을 불 러줄 것 같은 전명헌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로 의식이 없었다.

유재원은 이 모습을 직접 보고 있었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전 명헌의 존재감이란 유재원에겐 거 인처럼 거대했으니 말이다.

전생에 열심히 마스터플랜을 짜 고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전명헌과 의 관계가 이렇게나 깊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 전명헌에 대한 평가는 경제적으로는 높이 샀 지만, 노년에 정치 바람이 들어 헛 발질의 연속이었던 탓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귓등 으로 홀려듣고, 황소고집으로 밀고 나가서는 결국엔 잘못된 선택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마스터플랜에 선 전명헌과 관련된 내용은 딱히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관계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침대 위에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저 할아버지가 전명헌이 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참 어려운 유재원이었다.

더욱이 평소 보았던 전명헌은 거 인이었는데, 지금은 80이 넘은 보 통의 연로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라 는 것도 너무나 어색했다. 아니, 어 색함을 넘어서 측은하고 처량하게 보일 정도였다.

손을 잡아 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너무도 엄중한 상황 이었다. 그렇기에 현재 전명헌과의 접촉은 의료진만 허가된 상황이었 던 탓이다.

"대통령님께서 쓰러지신 직접적 인 이유는 뇌출혈입니다."

대통령 주치의가 유재원에게 병명을 말해줬다.

"뇌출혈이라니."

건장한 청년도 골로 보내버리는 치명적인 병이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에 설마하긴 했는데, 최악이었다.

"노환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만, 전문의의 소견으로 는 과로의 영향이 더 크지 않나 판 단하고 있습니다."

노환에 과로. 두 가지 요소가 다 작용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과로는 당연히 대통령으로서의

업무일 것이다. 전명헌의 스타일이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일 을 보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되어 서도 그 스타일은 바뀌지 않아서 아침형 인간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한때 유행이기도 했다.

요즘은 개헌으로 인한 정치적 난 제들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유재원의 조언으로 대한 일보를 비롯한 민주한국당과 같은 우익 세 력에게 크게 한 방을 먹여주긴 했 지만, 이들의 반발은 크고 거칠었 다. 숫자로 따지면 소수에 불과했 음에도 사회적 위치나 목소리가 커 서, 마치 다수가 한목소리로 말하니 무시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최근에는 저번 대선과 이번 대선 의 선거 자금 문제가 수면 위로 드 러나기도 했다.

전명헌은 나름 신경을 써서 물밑 작업으로 해치우려고 했지만, 유재 원은 어려울 것으로 보았던 일이었 는데, 결국 터져버렸다.

유재원이 가능성을 낮게 봤던 이 유는 단순했다.

이해관계가 저마다 다른 국회의 원들이었다. 대선 자금이 불거지면 치명타인 사람도 있는 반면에 공개 되면 좋은 사람도 있었다. 전명헌의 정치력은 이전과 달라졌으니 그 런 성향을 잘 분류해서 접촉했지만, 하나라도 어긋나면 이번과 같은 일 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마약 사건, 연예인 성매 매 사건, 탈세 혐의, 외환 관리법 위반 등으로 대한 일보 사주 집안 이 털털 털리면서 대한 일보가 이 를 물지 못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게다가 전명헌 할아버지가 쓰러진 사건은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집 어삼키는 중이었다.

3번째라도 한국 사람들은 진심으 로 걱정했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거뜬하게 일어나시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병 상에 누워 계신 전명헌 할아버지는 깨어날 줄을 몰랐다.

며칠이 지났다.

개헌안 표결이 이제는 딱 하루가 남은 시점이었다.

국회는 물론 한국 전체까지도 혼 돈의 도가니탕이었다. 일단 여당에 서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표결을 늦추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연히 야당에서도 반대였다. 전명헌 대통령이 쓰 러진 것은 국가 안보에 큰일이지만, 전명헌 정부의 개헌안이 이대로 폐 기되면 야당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더욱이 뒤로 미루는 것도 어려운 것이, 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회는 이를 심사하고 표결해야 한 다는 기안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 다. 야당 인사들은 전명헌이 쓰러 진 것에 대해 대놓고 웃진 못해도, 마음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쉴 수 있었다.

반면 대한 일보도 웃음기를 감추 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명헌 정부의 대한 일보 죽이기는 완전히 노골적 이었다.

개헌안에 담긴 친일파 청산 조항 이나 대한 일보 사주 가문의 수많 은 혐의 수사와 대단위 세무조사, 그리고 자원 재생법까지.

특히 자원 재생법의 경우엔 종이 신문을 발행하는 비용이 폭등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법조문처럼 재 활용이 잘 이뤄지면 대한 일보의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찍어놓고 배달도 없이 그냥 재활용 회사로 직행하는 분량은 오로지 대한 일보 의 손실이었다.

이러한 가짜 발행 부수를 줄여야 손실이 생기지 않는데, 그렇게 하 면 발행 부수 200만도 무너져버리 니 그럴 수가 없었다. 전성기 시절 에는 하루 찍어내는 신문이 300만 부도 넘었는데, 200만으로 무너진 것은 몇 년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유료 구독자는 100 만 후반 대였으니 대한 일보의 영 향력 약화는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대한 일보는 전명헌이 쓰러진 것에 대해 대놓고 좋아할 수가 없었다.

전명헌 대통령이 쓰러진 날에 쾌 유를 빌기 위해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 했다. 더욱이 다른 나라에서도 전 명헌의 쾌유를 성명들이 쏟아졌다. 한국의 최우선 동맹국인 미국에서 도 클린턴 대통령의 명의로 성명이 나왔고, 한국의 우방국들에서도 마 찬가지 였다.

심지어 북한의 김정일도 쾌유를 빌었다. 그러면서 금강산에서 난 산삼이라는 것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과응보니 하는 식으로 펜을 놀렸다가는 대한 일보 본사 건물이 불바다가 될 판이었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개헌안 표결 이 이뤄지고, 부결되어서 폐기되는게 최고였다.

물론 개헌안을 발의하는 건 다음 번 정기국회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개헌안 폐 기는 곧 개헌 동력의 상실이니 다 시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일은 쉽 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대한 일보를 비롯한 극우 세력들 은 시계만 바라보면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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