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권 19화
자원 재생법.
통일국민당에서 슬그머니 발의된 법안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비닐과 종이, 플라스틱 자원에 대한 낭비를 줄이 기 위해 만들어졌다.
핵심 내용은 환경 분담금이다. 법령으로 특정되는 재생 가능한 자 원애 대해 환경 분담금이라는 이름 의 세금을 부과한다. VAT처럼 최 종 소비자로부터 일정 금액을 부과 하는데, VAT와의 차이라면 재활용 센터에서 100% 다시 환급해준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경우에 500원, 신문은 100원, 비닐 봉투는 50원이란 환경 분담금이 책 정된다. 이걸 돌려받기 위해선 깨 끗하게 모아서 재활용 센터에 가져 가면 돌려받는다는 것이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비닐과 종이를 펑펑 쓰고, 매립지로 쓸 땅 마저도 부족하니 결국 재활용이 답 인데, 재활용률은 너무 낯은 실정 이었다. 그래서 언젠간 만들어져야 할 법안이었다. 그렇지만 이 법이 대한 일보를 겨냥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일단 3년간은 종 이류만 시범적으로 실시하자고 적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자원 재생용 기반 시설은 종이류 위주였고, 플라스틱이나 비 닐류는 인프라가 없었기에, 인프라 를 만들기 위해서 법 시행에 유예 시간을 둔 것이다. 반면 종이류 자 원은 전부터 재활용이 잘 되고 있 던 분야였다.
그렇기에 자원 재생법이 시행되 면 신문은 한 부 당 100원의 환경 분담금이 책정된다.
한 달이면 대략 3천 원 정도의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는 신문을 잘 모아놓았다가 환급을 받으면 되니 조금 번거로워진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대한 일보는 사정 이 좀 다르다. 현재 매일 300만 부 수씩 발행한다고 자랑하는 대한 일 보지만, 실제 유료 구독자가 300만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1/5 정도는 발행 부수를 부풀린 것이라 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어쩌면 부 풀려진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을 수 도 있다.
말 그대로 60만 부 정도는 일부 러 찍어내고, 그대로 자원 재생 센 터로 보내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 하다. 본인들의 영향력을 부풀리고 동시에 광고의 단가도 높이 받으려 는 목적이었다. 찍어내는 부수가 많을수록 광고 효과도 높다고 쳐주 고, 그만큼 단가도 높게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자원 재생법이 생기면 이 꼼수는 통하지 않게 된다.
자원 재생 센터로 들어오면 돈을 돌려줘야 한다. 그 돈은 유통망이 최종 소비자로부터 먼저 받은 증거 금을 되돌려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면 신문이 100% 재활용된다고 치면 대한 일보는 매월 18억 원에 달하는 돈을 부담해야 한다.
대한 일보에게 18억 원이라고 하면 푼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문 사업 자체가 사양 산업이고, 광고에 대한 비중도 계속 줄고 있 다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부담 이었다.
대한 일보뿐만이 아니라, 발행 부수를 부풀리고 있던 다른 신문사 들에게도 무거운 부담이 될 수 있 었다.
이처럼 강력한 자원 재생법이지 만 예상 외로 큰 논란 없이 국회 환경부 상임 위원회의 문턱을 넘었 다.
언론들, 주로 신문사들은 사상 초유의 대한 일보 세무 조사라는것에 충격을 받고서 총공격을 실시 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대한 일보 다음에 자신들도 세무 조사를 받는 건 아닌지,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처럼 다들 난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문사들 의 세무 조사는 군부 독재 시절에 도 없었던 이야기였다. 당연히 세 법에 저촉될 일을 신문사라는 특수 성 하나로 저지르기도 했다. 대한 일보의 경우만 봐도 신문사가 호텔 도 가지고 있고, 해외에 부동산까 지도 소유했다. 다른 신문사들 역 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허술한 감시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덕분에 자원 재생법은 큰 논란 없이 상임위 문턱을 넘었고, 정기 국회가 열리면 곧 통과될 전망이었 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11월 말이 되 었다. 이제 한 해 농사를 서서히 마무리하고, 정리해 성과를 측정할 때가 되면서 ID 그룹 전체가 분주 해졌다.
그렇지만 이러한 업무는 사실 매 년 있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다만 올해는 예전과 달리 외부와 얽힌 온갖 일로 인해서 시간이 더 빠르 게 흐르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그 일들이라는 건 미국이나 세계사적인 이슈가 아니라, 대부분 한국에서 넘어온 것들이라는 점이 특이한 점이었다. 다행이라면 일이 새롭게 터지는 게 아니라, 연초나 연중에 터진 것들이 마무리되고 있 다는 점이다.
-LSM 패소, HxT 표절 확정,
-RATM 에 징벌적 손해배상금
108억 지급하라.
-LSM 엔터테인먼트 이승만 사 장, RATM과 팬들에게 사죄.
-LSM 배상금 낼 여력 없어. 곧 파산 신고.
"LSM은 예상치를 한 치도 빗나 가지 않았네."
LSM과 RATM의 표절 시비는 유재원이 예상했던 흐름 그대로 홀 렀다. 달라진 법원에서는 표절 판 정이 제대로 내려졌고, 예상한 만 큼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이 책정되 었다. 원래대로라면 RATM은 법적 절차를 밟아 보려다가 실익이 없어서 중단해버리지만, 지금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었기에, 끝까지 진행했고 드디어 표절 판정을 받아 낸 것이다.
LSM의 행보도 유재원의 예상 그대로였다.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낼 여력이 없다고 하면서 LSM 엔터테인먼트 자체를 파산 신고하는 것이었다.
HxT 팬클럽에선 난리가 났다.
그동안 팬클럽에서 사준 앨범만 해도 수백만 장이었다. 게다가 하 루에 2, 3개는 기본이었던 행사도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을 어떻게 했냐는 물음이 당연히 이승만 사장 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파산 신고였다.
여기저기 벌린 사업에 HxT의 활 동비와 앨범 제작 등에 쓴 돈이 많 고, 연습생도 많이 뽑은 탓에 남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반쯤은 맞고, 반쯤은 거짓말이었 다.
아이돌 그룹의 활동비도 상상 이 상이고, 표절 때문에 말들이 많지 았만 앨범 제작 비용도 생각보다 많았다. 연습생을 많이 뽑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팔린 앨범 덕에 그걸 모두 치르고도 남을 돈이 있었다.
남은 돈을 짜내고, 보유한 부동 산도 처분하면 손해배상금은 만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승만 사장은 LSM 엔터테인먼트를 파산 신고를 하고서는 도망을 가버 렸다.
참고로 항소는 전혀 생각하지 않 은 건, 승산 자체가 없었던 탓이다. 표절에 대한 정의부터 표절 인정까 지 1심 법원에서 완벽하게 결론을 내려줬다. 게다가 징벌적 손해배상 금은 항소가 이어질수록 무겁게 부 과된다. 승소 가능성은 없는데, 괜 히 시간만 끌어서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 이다.
하여튼 이승만 사장은 그 이름에 걸맞게 파산 신고를 하고서는 내뺐 다.
LSM의 파산은 받아들여졌고, 법 정 관리가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몰랐던 사실들이 드러났 다.
가수들을 위한 표준 계약서가 진 작 만들어졌음에도, 이중 계약으로 별도의 노예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 다는 것이나, 1만 2천 원짜리 CD 앨범 1장을 팔았을 때, HxT 맴버 들에겐 겨우 100원도 안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도 언론에 흘러나왔 다.
스크롤을 더 내려가다 보면 드디 어 ID 그룹의 이야기도 나온다.
-긴급 속보! ID 엔터테인먼트, 연예 기획사 진출 모색하나?
-스테판 바버 사장, 관심 있는 건 사실. LSM 인수에 대해선 물음 표.
스테판 사장은 태평양 너머에 있 는 한국을 상대로 언론 플레이에도 능했다.
유재원의 의지를 통해 LSM의 인수가 확정된 상태였지만, 아직공식 발표는 없었다. 법정 관리자 가 선임되면 그때부터 구체적인 인 수 논의가 시작되니 말이다.
그러면 이 기사들은 뭔가 하면, ID 엔터테인먼트의 한국 직원들이 LSM의 남은 관계자들과 만나는 걸 들은 연예부 기자들이 추측성으로 마구 쓴 것이다.
"에휴, 이 사람들은 바뀐 게 없 네."
더욱 놀랄 일은 스테판 바버 사 장에게 물어보는 전화는 한 통도 없었는데, 제목에는 떡하니 박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ID 엔터테인먼트 본사에 문의를 하면 바로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도, 그런 팩트 체크를 하며 기사를 쓴 사람이 없었다. 아무래도 영어 로 물어봐야 한다는 게 살짝 난관 일 텐데, 그래도 너무했다.
이번의 경우는 그나마 사실과 부 합하는 추측성(?) 기사라서 큰 문 제는 없지만, 항상 사실과 부합되 는 일은 없었다.
대한 일보만 해도 그렇다.
DH 호텔 나이트클럽의 마약 사 건은 이제 대한 일보 전반에 걸친 특별 감찰로 확대되었다.
국세청은 특별 세무 조사로 100 명이 넘는 국세청 조사관을 파견해 서 대한 일보를 탈탈 털고 있는 중 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호기롭게 유재원의 아버지 유봉 만이 민정수석과 골프를 치면서 청 탁을 했다고 기사를 썼던 대한 일 보는 가짜 뉴스의 후폭풍을 제대로 당하는 중이었다. 바로 ID 그룹의 고소였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유 재원이 괜찮지 않았다.
단순한 정정 기사로는 성에 차지 않았고, 아버지의 명예를 확실히 되살려 드리기 위해서 대한일보 자 체에 손해배상 소송을 했다. 매년 조 단위 자원을 다루는 ID 파운데 이션의 이사장인 만큼 손해배상 청 구 금액도 수천억 원으로 책정했다.
무분별하게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를 방지하기 위해서 법원에선 청구 금액에 따라 인지세가 달라지 는데, 수천억 원짜리 소송이면 인 지세도 수십억 단위다. 유재원은 기꺼이 그 인지세를 부담하고서 소 송을 제기했다.
당연히 대한 일보에선 난리가 났 다.
10년 전만 해도 밤의 대통령이라 고 군림했는데, 이제는 동네 샌드 백 신세였으니 말이다. 하루 종일 펜대를 굴려서 반박하는 기사를 쏟 아내도, 이걸 들어 주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게다가 하루하루 지 날수록 국세청부터 경찰, 검찰까지 대한 일보의 사주 가문을 향해 포 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일성 회장님도 포토라인에 섰는 데, 대한 일보라고 특별할까."
ID 그룹 차원에서 고소를 했던 양반들이 몇 명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단연 일성 그룹 총수인 최현희였다.
일성 전자가 백호 펀드로 인수되 는 과정에서 대량의 횡령 사항을 발견하고서 고소한 건도 있고, 수 원의 반도체 공장의 설계 결함이나 유독성 물질을 안전 조치 없이 사 용해서 공장 노동자에게 유출해 백 혈병이나 폐암 등을 유발한 것에 대해 고소된 것도 있었다.
ID 그룹 차원에서 고소했고, 어 마어마한 법조 인력이 동원되었다. 일성에서도 그룹 법무팀은 물론 전 관 변호사들까지 대거 고용해서 호 화로운 변호 인단을 만들었지만, ID 그룹도 그 이상이었다.
덕분에 일성 그룹의 최현희 회장 도 서울중앙지검 검찰청 앞에 마련 된 포토라인에 서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포토라인에 서는 최 현희는 아픈 티를 팍팍 냈다. 얼굴 을 다 덮는 마스크도 했고, 경호원 의 부축도 받았다.
조사를 받는 것도 6시간밖에 걸 리지 않았다. 특혜라면 특혜지만, 애초에 포토라인에 선다는 것 자체 가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였 다.
이렇게 일성 그룹의 최현회도 섰는데, 대한 일보 사주 집안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쿨하게 코카인을 마셨던 마정환은 그날 바로 구속이 었고, DH 호텔의 사장으로 있는 마정환이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다. 조만간 대한 일보 사주인 마성훈까 지도 참고인 조사 가능성이 점쳐지 고 있었다.
참고인이라는 건 아직 죄가 발견 되진 않았지만, 유력한 정황이 포 착되었다거나 하면 언제라도 피의 자 전환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웃기는 점은, 대 한 일보는 형법 위반보다 유재원이 건 천문학적인 명예훼손 소송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LSM의 파산이 현실이 되 고 나서는 엄살이 더욱 심해졌다.
일선 기자들은 물론이고 정치부 장이라는 사람이 ID 그룹 본사인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에 찾아와 제 발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싹싹 빌었 다.
본인들도 LSM의 징벌적 손해배 상 금액이 100억 원이 넘을 거라는 기사를 썼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진짜로 그렇게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이번 명예훼손 소송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사로는 벌금 좀 나오고 말 일 이지만, 민사로 넘어가면 얼마나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손자가 감옥에 썩게 되는 것보다, 대한 일보의 신뢰도 가 폭락한 것보다 ID 그룹의 소송 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