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79화 (479/1,007)

24권 13화

"진짜 망하면 어쩌지?"

유재원은 어째 느낌이 싸했다.

과거에는 별 탈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LSM이 이번 사건에 휘말려 진짜 망할 것 같았다. 법원의 투명 성과 공정성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 졌고, 징벌적 손해배상법도 새롭게 추가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K-pop과 한류의 형성도 이전과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었다. 어쩌면 이전과 달리 한류라는 게 자라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으로부터는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있는 유재원이지만, 신기하게도 선명한 예감이 몰려 왔다.

"그럼 안 되지!"

아이돌 산업을 잘 몰랐던 사람들 에겐 그저 허상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산업보다 유망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지고 나서, 기술 특이점을 넘어선 인공지능과 범용 적인 안드로이드 로봇이 등장하고 부터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더욱이 한국의 국가 이미지 향상 에도 아이돌들은 어마어마한 기여 를 했다. 만약 이번 사태로 LSM이 사라지면, 유재원이 보았던 그 미 래가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이번 일 역시 개입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법 을 지키지 않은 LSM을 살려준다는 건 절대 아니다. 죄는 죄대로 받게 하면서, 인수 같은 직접적인 개입 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 다.

띵!

한국의 일에 한참 집중하고 있는 데, 알람이 울렸다.

ID 톡으로 중요한 쪽지가 왔다는 신호였다. 유재원은 ID 그룹의 회 장으로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안건 은 매일매일 쏟아진다. 두 명의 부 회장도 있고, 사장단도 있었지만 유재원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었 다.

지금 유재원에게 날아온 쪽지도 마찬가지였다.

-회장님, 레빈입니다. DJ 재단의 관리 명단 업데이트 내역입니다. 이번 달에는 겨우 3명밖에 추가하 지 못했습니다.

정보 팀장인 레빈 윌리스의 메시지였다.

레빈은 본래 직함인 정보 팀장은 물론이고 DJ 재단의 이사장도 함께 역임하고 있었다. 동아시아 전략 연구소가 미래 전략을 연구하는 싱 크탱크라면, DJ 재단은 로비 단체 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의 정치인 들 그리고 미국의 여론을 형성한 상류사회의 인사들과 두루두루 친 분을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

미국서 사업을 하다가 막히는 게 있으면, 이러한 비합법적인, 그렇다 고 불법도 아닌 루트를 타고 민원 을 올리면 해결되는 일이 많았다.

단적으로 타임워너와 넥스트컴캐스트의 합병도 이러한 로비 라인이 총가동되어서 성사된 빅딜이기도 했다. 물론 타임워너 쪽에서도 로 비 라인을 가동했을 테지만, DJ 재 단도 큰 힘을 발휘한 건 사실이었 다.

그렇기에 DJ 재단은 인맥 지도 를 만들어놓고 적극적으로 관리했 고, 새로운 인물을 포섭하기도 했 다. 저번 달에는 새롭게 추가된 사 람이 겨우 3명뿐이라는 이야기다.

"3명이요? 좀 적긴 하네요."

- 죄송합니다.

많이 늘었을 때는 수십 명 단위였는데, 3명이라니 참 작게만 느껴 졌다.

-일본이 회장님께 큰 위기감을 느낀 모양인지 몇 달 전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로비를 펼치고 있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예? 일본이요?"

레빈이 일 못 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는데, 역시 이유가 있었다.

본인들은 동아시아 외환위기로부 터 안전하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 던 일본이었다. 하지만 본인들이 좌초한 실수를 유재원을 비롯한 헷 지 펀드의 연합 공격이 절묘하게 파고들면서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 었다.

2만 포인트까지 회복했던 닛케이 지수는 최저점은 1만 2천 포인트를 붕괴한 다음에야 겨우 반등했다. 하지만 반등도 오래가지 못하고 다 시 하락 중이었다.

헷지 펀드가 물러가면 회복될 줄 알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지 못했던 탓이다. 일본이 가지고 있 던 신용도가 여러 가지 조작 사건 으로 인해 크게 훼손되면서 기존의 공급선이 끊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영업이 어려워졌다.

예전엔 좀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는 일본산 제품을 썼다면, 지금 은 살짝 모자란 품질이지만, 가격 은 저렴한 한국산이나 더욱더 저렴 한 중국산으로 옮기는 것이다.

포트폴리오가 다양하고, 세계적 인지도를 쌓은 일본의 대기업들은 조작 파동에서 별 영향은 없었다. 심지어 조작 파동의 핵심인 미쓰비 시 중공업도 원래의 주가를 거의 회복했다. 셰브롱을 비롯한 대형 거래선에 확실한 보상을 하면서 꽤 나 큰 출혈이 있긴 했지만 회사 안 에 쌓아둔 현금이 워낙 많았고, 일 본 정부에서도 특별 대출을 해주면 서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기초인 중소기업들에겐 직격 탄이었다.

일본의 저력 중 하나가 빠르게 붕괴 중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일본 당국도 감지 는 했다. 그런데 그 해법으로 나온 게 미국에 대한 로비 강화라는 게 웃기는 일이다.

-일본 입장에선 클린턴 대통령에 게 전화 한 통을 해서 위기를 극복 했다고 생각할 테니, 더 집중하는 것이겠지요.

레빈은 정보 팀장으로서 일련의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유재원이야 얻을 거 다 얻고서 나온 것인데, 일본이 보기엔 확실 히 미국이 위기에서 또 구해준 것 처럼 느낄 테니 말이다.

-사사카와 재단이 특히 극성입니 다. 아주 대놓고 돈을 뿌리고 다니 고 있습니다.

로비라는 게 별거 없었다.

목표한 상대로부터 호감을 사서, 필요한 순간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으면 된다. 호감을 사는 가장 쉬 운 방법은 역시나 돈이었다. 정치 인이든, 교수든 후원금 명목으로 큰돈을 지원해주면 그만이다.

유재원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은 일본은 훨씬 적극적으로 로비를 시 작하는 모양이다.

"뭐, 우리도 그렇게 하죠. 지출 계획서 보내주시면, 바로 집행하겠 습니다."

-후후, 역시 회장님이라면 그렇 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전통의 사사카와 재단이라지만 이제는 유재원 개인의 재산만 못하 다.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 중에 상당 수는 아직도 유재원의 개인 계좌에 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쌓여 있었다.

여기에 ID 그룹에서 동원할 수 있 는 자금이 더해지면 세계 전체를 봐도 DJ 재단만한 로비 단체는 없 을 것이다.

사사카와 재단이 들었으면 경기 를 일으킬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유재원은 곧이어 레빈 정보 팀장이 보낸 문서를 열었다.

새롭게 등록된 인물 정보들이 제 법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조슈아 쿠퍼 라모, 로버트 샤피로 그리고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 이렇게 3 명이었다. 앞의 둘은 백인이고, 버 락 후세인 오바마 2세는 흑인이었 다.

"버락, 오바마."

파일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보인 건 당연히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 였다. 2009년 1월부터 2017년 1월 까지 미국의 대통령에 역임한 사람 이었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이었다.

정계에 입문한 건 1996년이었고, 지금은 일리노이주 의회 상원의원 으로 활동 중이다. 상원의원이라 하니 정계에 데뷔하자마자 슈퍼스 타가 된 것 같지만, 연방 상원의원 이 아닌, 주의회 상원의원이고, 미 국 민주당 내에선 큰 존재감은 없 는 상태였다.

미국 역사에서 보면 상당히 큰 존재감을 자랑하는 인물이지만, 유 재원은 이 사람에 대해 큰 호감은 없었다.

피부색은 흑인이지만, 사고방식 은 백인 상류층의 인식을 그대로 공유했다. 게다가 북한이 핵 프로 그램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할 때까 지도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한 탓 에, 나중에 한국이 생고생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네요. 잘하셨 어요."

클린턴 다음으로 앨 고어의 당선 을 위해서 유재원은 뭐든 할 생각이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앨 고어 다음은 무조건 정권 교체가 이뤄질 테니, 오마마의 미래는 크게 바뀔 것이다.

한국의 10년 주기 정권 교체론처 럼, 미국에서도 특정 정당이 백악 관을 독점하는 일은 드물었다. 클 린턴에 이어 앨 고어까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는 정권교체는 기정사 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앨 고어가 당선되지 않는다면, 이다음 엔 무조건 오바마이니 이보다 든든 한 보험은 없다.

앞으로 유재원이 존재하는 한, 돈에도 밀리는 일본의 로비가 질에서도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 될 것 이다.

며칠의 시간이 더 지났다.

-RATM, 법무법인 태양 선임, 형사 고소와 민사 동시 진행!

-HxT 극성팬, RATM 홈페이지 사이버 테러!

-LSM, HxT 활동 중단 선언, 자숙하겠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인 기 아이돌 그룹의 표절 사태가 최 대 이슈였다. 예전이라면 며칠 가 고 말 이슈가 법정 싸움으로 옮겨 지면서 냄비를 달구는 불길이 꺼지 지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HxT는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몰려다니면서 사고를 치니 뉴스 거리가 계속 나왔다.

-국회, 개헌특위 설치. 전명헌 정부 개헌안 검토 시작!

-긴급 여론 조사 결과, 전명헌 정부 개헌 찬성 73% 반대 20%. 판단 유보충 7%대신 국회에서는 여당 주도로 개 헌 일정이 착착 진행되었다. 아무 리 대한 일보가 아이돌 이슈로 물 타기를 해보려고 해도, 추진 동력 자체는 탄탄했다. 게다가 최근 나 온 여론 조사에서는 국민들이 압도 적인 찬성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논란은 논란이고 개헌은 개헌이라 는 게 명확했다.

공청회, TV 토론회 일정도 빠르 게 정해졌다. 이 속도라면 적어도 10월이 다 넘어가기 전에 국민투표 에 붙여질지, 아니면 국회 문턱에 서 좌절될지 결정이 날 것 같았다. 그러자 연일 논란 기사를 잔뜩 써올리던 대한 일보도 일단 숨을 골 랐다.

이제는 곁다리를 공격하기보다는 개헌 추진 동력 자체를 공격해야 할 때라는 걸 인식하고, 전열을 가 다듬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야당 도 국회에서 승부를 볼 작정으로 의원 총회나 의원 모임 등이 끊이 지 않았다.

유재원도 마찬가지로 중대한 선 택을 앞두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ID톡 메시지에 담 겨 있었다. 발신인은 ID 엔터테인 먼트의 스테판 바버 사장이었고, 내용도 일단 간단했다.

-중국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마 화텅이라는 젊은 남자인데 우리의 게임을 중국에 보급하고 싶다고 합 니다.

21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중국 비즈니스에 대 한 선택이었다.

마화텅.

유재원의 마스터플랜은 물론 기 억의 궁전에도 상위권에 올라와 있 는 이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1세기에 가장 거대한 게임 회 사로 자라난 텐센트라는 회사의 창 업자가 바로 마화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젊은이가 패기는 있 는데, 의문인 것이 좀 많습니다. 회 장님께서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라 면 유심히 보라고 지시해주신 게 없으면 제가 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뭔데요?"

-마화텅이 중국에 차린 회사의 이름이 텐센트인데, 게임 회사가 아니라 메신저 회사랍니다.

유재원은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 는데, 다행히 예측 범위 안에 있는 이야기였다.

-OICQ라는 메신저인데 점유율 은 제법 있습니다.

OICQ?

무슨 이름이 너무 복잡하다. 알 고보니 나중에는 QQ라는 이름으로 바뀌는데, 그것이 주요했다. 지금도 인기지만, 이름을 바꾸고서는 더더 욱 승승장구해 중국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 로 해서 포털 사이트, 게임 서비스 등을 시작하면서 중국 최대의 게임 회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유재원 이 알고 있는 텐센트의 성공 방식 이었다.

-문제는 말입니다. OICQ가 회 장님이 만드신 ID톡을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제가 그걸물어보니 딱히 부정도 하지 않더랍 니다. 레퍼런스로 참고했다고 대답 했습니다.

스테반 바버 사장이 이 대목에서 살짝 분개하는 게 ID톡 메신저 상 으로 느껴졌다.

불법 복제는 소프트웨어 업체의 가장 큰 적이었다. 스테반 바버 사 장은 불법 복제만 없어지면 ID 엔 터테인먼트의 매출액이 3, 4배는 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 매우 싫어할 수밖에 없다.

반면 유재원은 딱히 분노 같은 감정적인 동요는 없었다.

애초에 중국 하면, 불법 복제는 상수로 깔고 가는 나라였으니 말이 다. 21세기가 되어도, G2에 올라도 불법 복제는 기본이어서 미국이나 유럽과 무역 마찰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 아예 무시해버리고 싶지 만, 그건 그대로 문제지."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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