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78화 (478/1,007)

24권 12화

"뭐야? 진짜였네."

유재원은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띄울 때만 해도 어뷰징의 가능성을 높이 점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 사업이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국에 서는 유재원이 우려했던 것처럼, 인터넷 여론 조작 작업은 이미 여 러 번 발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 정치권까지 번진 건 아니었다. 이는 인터넷 사업 위주 였는데, 인터넷 강의 사업에서 가 장 활발한 어뷰징이 발견되는 중이 었다.

한국 ID 테크놀로지는 일찌감치 우수한 강사진을 모집해 기가스터 디라는 인터넷 강의 사업을 시작했 다.

기가스터디는 한국에서만이 아니 라 세계적으로도 선구자적인 위치 에 있는 인터넷 강의 업체였다. 외 국어 강의가 등록되지 않았고, 앞 으로도 할 예정도 없었지만, 강의 플랫폼 자체를 수출하는 일은 많았 다, 이렇게 영업을 시작한 것도 이젠 3년은 넘었고, 후발주자도 많이 생 기면서 체계도 거의 완전히 잡힌 상태였다.

특히 후발주자의 추격은 무서웠 다. 그들은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 들이 무엇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수능 파이 널 정리에 나오는 예상 문제의 적 중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 건 바로 먼저 수강했던 이들의 평가 댓글이 라는 것을 말이다.

좋은 댓글이 많이 달린 강의와 악플이 담긴 강의의 수강 인원 차 이는 확연하게 벌어졌다. 수강 인 원의 차이는 곧 강사 그리고 업체 의 수익 차이로 이어졌다. 우습게 볼 게 아니라, 댓글의 차이로 수억, 수십억 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어뷰징을 비롯해, 여론 조작으로 수익을 내는 건 불법이라는 법은 진작 마련되었다. 하지만 큰돈이 걸린 일인데, 그 불법을 감수하고 서 일을 벌이려는 사람들은 널렸다. 덕분에 기가스터디의 법무팀은 그 인원이 창립 초기보다 몇 배는 불 어났을 만큼, 치열한 전쟁이 펼쳐 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실시간 인기 기사 게시물도 전명헌의 공세에서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여보려는 여 론의 조작으로 보았다.

그런데 조작이 아닌 사실이라니.

"이러면 안 되는데."

나라의 큰 틀을 바꾸는 것이 개 헌이었다.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 들이 보기엔 딱딱하고 막연하게 느 껴지겠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 면 그 누구나 피부로 느낄만한 변 화가 오는 역대급 개헌이었다.

그런데 겨우 아이돌 그룹의 표절 논란이 개헌 이슈를 잡아먹다니. 도대체 유재원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시간 급등 검색어 : RATM, 킬링 인 더 네임, HxT, 차렷!

띵 하는 알람 소리와 함께 유재원이 띄워 놓은 모니터링 프로그램 에서 다시 알람이 울렸다.

모니터링을 시작하면서 넥스트 컴의 뉴스페이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한국 데이터센터에 들어오 는 사용자의 입력을 모두 감지해 특이 사항을 자동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실시간 인기 기사를 보고 몰리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RATM의 킬 링 인 더 네임 곡과 HxT의 타이틀 곡 차렷을 비교해보려고 검색을 시 작하는 모양이다.

웃프게도 그렇게 검색어를 넣은 네티즌들의 최종 종착지는 넥스트뮤직이었다. RATM도 넥스트뮤직 과 음원 유통 계약을 한 아티스트 였다. 한국에서도 그 음악을 가장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넥스트 뮤직이었다.

당연히 넥스트 뮤직에는 HxT의 앨범도 올라와 있었으니 매우 쉽게 비교를 해볼 수 있었다.

"이야, 이래서 노이즈 마케팅도 하나보다."

자연스럽게 넥스트 뮤직의 트래 픽도 살펴본 유재원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로 어제 일자와 비교해 트래픽 점유율이 급등 중이었으니 말이다.

단순히 서버가 좀 밀리네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니터링 프로그램 에서 확인할 수 있는 초당 전송량 은 50% 이상 증가했다. 또한, 처음 가입자에겐 한 달의 무료 스트리밍 이용권을 주는 프로모션이 진행 중 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신규 가입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로그인하지 않고 들어볼 수 있는 분량은 30초에 불과했기에, 이 기 회에 무료 가입을 해서 원곡을 다 들어보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ID 그룹의 포트폴리오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전혀 상관없어 보이 는 이슈가 터지더라도 결국 자신의 주머니가 두툼해지는 걸로 결론이 나버리는 모양이다.

"어떻게 끝날지 가늠이 안 되네. 음, 며칠 가고 말겠지?"

표절 논란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은 표절 논란이 길어봐야 3, 4일 가고 말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의 타이틀은 바로 다이나믹 소리아다.

백호 펀드를 광고할 때 바이 코 리아가 좀 뜨긴 했지만, 아직 경제지표의 회복세가 더딘 탓에 바이 소리아 열풍은 찻잔 속 폭풍처럼 사그라졌다. 대신 아이돌 표절 논 란처럼 유재원도 예상치 못한 새로 운 이슈는 얼마든지 쏟아질 것 아 니겠는가.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유재원의 예상이 빗나갔다.

-LSM, RATM의 소속사 에픽 레코드와 접촉 중.

예전이었다면, 소속사와 접촉해합의를 보고 서로 없던 일처럼 끝 났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표절을 해서 들키지 않으면 그걸로 좋고, 만약 발각되어 원작자가 나서더라 도 합의로 무마했던 게 한국 기획 사의 패턴이었다.

LSM도 그렇게 좋게 좋게 무마 하려고 에픽 레코드와 접촉을 시도 했다. 그런데 RATM은 한 발 더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메탈록밴드 RATM, HxT 소속 사 LSM 고소.

-징벌적 손해 배상도 청구. 청구 금액만 수십억 원!

기업들의 전횡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였다. 법이 국회를 통과 하고 나서 크게 떠들썩했지만, 이 후 해당 법률이 언론에 오른 적은 없었다. 그런데 RATM이 잠자던 그 법을 다시금 꺼내든 것이었다.

석간 신문이 나올 때쯤에는 대한 일보도 이 이슈를 물었다. 제목은 참으로 얄밉게도 '의도는 좋았던 법들'이라는 기사였다.

-의도는 좋았다.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는 생산 자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익명의 대중에 광범위한 피해나 손해를 끼쳤 을 때 발동할 수 있는 소비자 보호 법안이다. 그런데 이 법의 최초 적 용 사례는 거대한 대기업이 아닌, L모 연예 기획사가 될 전망이다.

-L모 연예 기획사 소속으로 최 근 복귀한 아이돌 그룹의 표절 논 란 때문이다. 원곡자라 주장하는 외국의 아티스트가 직접 한국의 변 호사를 고용해 고소한 것이 확인되 었고, 징벌적 손해 배상도 요구하 였다. 법조계에서는 한국의 영세한 한국 연예 기획사가 승소할 가능성 은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외국의 초거대 음악 기업의 소송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본지는 해당 제도가 법제화 될 때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한국적 특성상 아직은 시기상조였 다는 이야기다. 의도는 좋았지만, 현실과는 맞지 않았다. 이번 헌법 개정도 그렇다. 전명헌 정부의 개 헌안은 온갖 좋은 의도를 담은 종 합판이었다. 하지만 몇 차례의 개 헌을 통해 궁극으로 도달해야 할 이상향을 단번에 도달하기 위해 뛴 것과 마찬가지다.

-탈이 날 수 밖에 없다. 단적으 로 친일 청산만 해도 그렇다. 벌써 50년이나 지난 일이다. 자료가 부족해 친일의 이력을 따지는 것도 불가능하고, 선조들의 친일 전력을 후손에게 묻는 것은 연좌제다.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의도 는 좋았지만, 현실과는 맞지 않았 다. 마찬가지로 전명헌 정부의 개 헌안이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 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와?."

모니터에 뜬 기사를 다 본 유재 원은 절로 감탄을 터트렸다.

기사의 시작은 징벌적 손해 배상 인데, 결론은 개헌안 공격이었다. 당연히 논리적으로 따졌을 때 이기사에서 제대로 맞는 건 하나도 없는 기사였다. 초등학교 숙제로 아전인수라는 사자성어에 맞는 예 제를 찾아보라는 게 나온다면 찾 는다면 이 기사를 가져가면 100점 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저작권은 준수해 야지!"

저작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화 가 절로 치미는 유재원이다.

중국이 최악의 저작권 미준수 국 가라면, 한국도 중국 못지않았다. ID 그룹의 소프트웨어들은 아직도 한국의 여러 와레즈 사이트에 통으 로 올라와 있었으니 말이다.

예전부터 ID 그룹은 저작권 지키 기에 열심이었다. 고소는 기본이고 페이크 파일을 대량으로 유통하거 나, 파일 서버의 트래픽에 제한을 가하는 등의 기법을 이용해 최대한 저지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소송의 나라인 미국에선 제법 성 과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나 한 국에서는 딱히 큰 성과가 없었다. 특히 PC방이나 소규모 사업체에 저작권 단속을 나가 보면 그때 뿐 이었다.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 트웨어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 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나마 기업들을 상대로 B2B 비즈 니스가 메인인 ID 그룹은 개인 사 용자들 사이에 무단 복제가 대량으 로 이뤄져도 수익을 챙길 수 있었 다. 그런데 개인 사용자를 대상으 로 하는 유로 인터넷 서비스 사업 가들은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게 너 무도 힘들다고 토로하는 중이다.

연예 기획사인 LSM도 마찬가지 다.

처음부터 RATM와 접촉해 번안 권한을 사오거나 샘플링 허락을 받 았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LSM에 선 정식 루트를 밟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무단으로 가져다쓴 것이 문제였다. 이걸 가지고 대 한 일보는 한국의 특성 따위를 운 운하면서 두둔하는데, 유재원이 보 기엔 얼척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무단으로 가져다 썼으면 표절 딱지가 붙는 것도 감수해야 할 일이고, 원작자로부터 손해 배 상 청구가 들어오는 것도 모두 각 오해야 할 일이다.

"다행히 동의하는 네티즌은 별로 없네."

유재원은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 고 안심했다.

대한 일보의 기사에는 무슨 봉창두드리는 소리냐는 식의 댓글이 잔 뜩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 중대 사안인 개헌에 무슨 아이돌 그룹의 표절과 연결하느냐 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물론 대 다수 댓글은 LSM과 HxT를 비난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수위 가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었다.

직설적인 욕은 필터링 시스템을 통해 '***'로 자동 변환되지만, 필 터링 시스템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변형들이 빠르게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한 변종들도 마음만 먹으면 잡 을 수 있다. 단어 사이에 특수기호 를 써서 필터링을 피했던 건 진작에 막았으니 말이다.

문제는 필터링으로 인해 직설적 인 육두문자가 막히자, 본래의 뜻 이 멀쩡하게 있는 단어를 이상하게 사용해서 의미를 오염시킨다는 점 에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모니터 너머에 있 는 사람에게 악의를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계속 블락을 시키다 보면 결국엔 사용할 단어 자체가 사라지기에 유재원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뉴스 사이트나 공적인 사이트에서만 욕 필터링을 하고, 2CH.com과 같은 사이트에선 최대한 풀어주는 식의 정책을 펼치 는 중이다.

대신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하면 필터링이 풀린 댓글을 볼 수 있기 에, 관리자가 직접 블록을 하거나 삭제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유재원도 네티즌들의 악 플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나라 망신이라는 건 또 뭐야?"

그러다가 유독 눈에 들어온 건 나라 망신이라는 댓글이었다.

이번 표절 논란은 그냥 LSM의 문제지, 이걸 나라 망신이라고 생 각하는 네티즌의 사고 구조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군부 정권에서 강조했던 민족주 의나 국가주의가 엄한 연예계 쪽으 로만 강하게 투영되고 있는 모양이 다.

"그런데 LSM이 망하면 진짜 큰 일이긴 한데."

네티즌들의 질타가 쏟아지는 지 금 이런 말을 하면 누구도 믿지 않 겠지만, 아이돌은 한국의 강력한 미래 먹거리라는 점이다.

아이돌이 미래다!

절대 허언도 아니고, 과장도 아 니었다.

지금이야 딴따라라고 비난 받고, 근본도 없다고 까이기 바쁜 아이돌 산업이지만, 나중엔 세계로부터 K-pop 이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를 부여받고 어마어마한 관심과 사랑 을 받게 된다. 심지어 청산되지 못 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아이돌은 문제없이 동 화되어 사랑을 받았다.

LSM은 그러한 아이돌 산업에서 당당하게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기획사였다.

HxT라는 남성 5인조 아이돌그 룹 하나를 제대로 운영도 못하고 표절까지 해버린 지금 시점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지만, 나중에는 전 세계 틴에이저들이 선망하는 그런 초대형 연예 기획사로 자리매김하 는 것이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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