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권 9화
-단독 특종!
-전명헌 정부, 정부 제안 개헌안 에서 북한 노동당 인정!
-전명헌 정부 개헌은 사회주의로 개헌! 통일은 영훤히 물 건너간다.
대한 일보의 단독 특종이 터졌 다.
놀랍게도 대한 일보는 전명헌 정 부가 극비리에 만들고 있던 정부 발의용 개헌안의 일부를 입수했다. 수십 년간 한국서 암약한 대한 일 보였으니, 아무리 대통령의 위세가 대단해도 행정부 내에 꽂혀 있는 빨대들은 제 할 일을 톡톡히 한 것이다.
이렇게 대한 일보가 사회주의 개 헌이라는 프레임을 잡아주자 숨죽 이고 있던 야당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무려 헌법에서 북한 노동당 인 정이라니, 결코 있을 수 없어!
-통일국민당과 민주당 연정의 비 밀, 드디어 풀렸다.
-김대중 총리, 지금이라도 사상 검증해야.
사회주의 개헌 프레임이 나오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야당들의 공세 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어떻게 숨죽이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일사 불란하게 초강경 발언들이 쏟아졌 다.
웃기는 일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명헌 정부 개헌안에는 북한 노동장 정권을 인 정하는 헌법 조항은 없었다. 단지 헌법 전문에 역사적 사건으로 6.25 와 그로 인한 남북 분단의 상황을 적시했을 뿐이다. 오히려 제 12장 통일 조항을 신설해서 평화적인 통 일에 대비하는 미래 지향적인 설계 가 담겨 있었다.
이렇게 되자 전명헌 정부는 인터 넷에 전명헌 대통령 개정안이라는 이름으로 추진 중인 헌법 개정안 전문을 공개했다.
그러자 대한 일보를 비롯한 보수 야당들은 더더욱 날뛰었다.
"와우! 할아버지 추진력이 어마 어마하시네."
유재원은 모니터에 뜬 문서를 보 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 람이라면 모두 보고 있는 바로 그문서, 전명헌 대통령 개정안 전문 이었다.
전명헌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인 유재원도 전명헌 정부가 진행 중인 헌법 개정안은 지금 처음 보는 것 이었다. 들끓어 오르고 있는 야당 일각에서는 유재원도 헌법 개정에 큰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는 식의 루머가 돌고 있었지만, 비선 실세 는 되지 않겠다는 그 결심은 확실 히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전명헌과는 그저 공감대 를 형성했을 뿐인데, 그렇게 해서 나온 전명헌 정부 개헌안은 기대 이상이었다.
일단 헌법 전문부터 파격적이었 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이라고 시작되는 건 똑같은데, '3.1 운동으로 건립된 임시 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하 여 건국되었다.'라며 마침표가 찍힌 다. 그리고서 6.25가 언급되고 남북 분단의 현실도 등장하는 것이다.
원래 헌법 전문은 몇 줄이나 되 는 분량이 한 문장이었는데, 마치 독일 헌법처럼 짧고 명확하게 끊어 지는 것이었다.
헌법 전문에 북한이 존재하니 대한 일보가 발악할 만했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4.19혁명부터 부마항쟁, 5.18과 6.10항쟁까지 근 현대사의 굵직한 민주화 운동에 대 해서도 모두 열거하며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한창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진행 중이었고, 과거사 위원회도 활동 중이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세력이 참 많았다. 자칭 한국 의 보수 세력은 이미 다 끝난 일인 데, 괜히 들춰내서 국론을 분열시 킨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전명헌 정부는 그들의 아픈 곳을 쿡쿡 찌르면서, 뒤틀린 역사를 바로 잡는 데 거침이 없었다.
-특이한 것으로는 수도 조항도 있습니다.
유재원의 트루 시네마 디스플레 이 모니터 중에 반쪽 차지하고 있 는 최강욱 부회장의 해설이 이어졌 다.
최강욱 부회장이 전직이 바로 변 호사였다. 전명헌 정부 개정안을 유재원에게 해석해줄 최고의 전문 가였다. 그래서 ID톡의 화상 미팅 기능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해설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전에는 없었나 보죠?"
유재원은 다 알면서 모르는 척 물었다.
-예! 저도 이제 알았는데, 이전 헌법에는 수도에 대한 규정이 없더 군요. 그런데 수도에 대한 규정은 딱히 필요치 않은 것 같은데, 왜 넣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강욱 상상력의 한계다.
하긴, 누가 지금 시점에 전생의 수도이전 논란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건 전명헌도 마찬가지 였다. 그래서 수도권 조항은 유재 원의 의견이었는데, 수용해준 모양 이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수도는 법령으로서 정한다.'라는 문장이 개 헌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는 수도 이전을 결정해도 국회에서 법 만 통과시키면, 헌법재판소에 갈 이유가 없다.
지금이야 다들 최강욱처럼 특이 하고 왜 넣었는지 모르겠단 반응이 지만, 나중에는 이 큰 그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전관예우 방지가 헌법 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실 사법 거래의 가장 큰 작동 원리가 전관 예우였는데, 이제는 확실히 방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어진 최강욱의 설명에 유재원 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관예우가 있으면 돈이 많은 사 람에겐 참 편하다. 돈으로 재판 결 과를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유죄가 무죄로 바뀌는 건 아니라고는 해도, 5년 징역형이 집행유예로 바뀌는 건 어마어마한 이득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에겐 아니다.
ID 그룹을 여기까지 키우면서 불 법을 지시하고, 자행한 적은 한 번 도 없다. 심지어 세금도 착실하게 내고 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페어 플레이어다. 반면 최현희 회장처럼 시시때때로 법을 어겨가면서 자기 이득일 챙기고도, 처벌은 안 받는 사람도 많았다.
전관예우를 없애버리는 게 유재 원에겐 훨씬 큰 이득이다.
-음, 그런데 김&정 법무법인이 좀 곤란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응? 거기가 왜요?"
-김&정 법무법인은 매년 10, 20 명의 퇴직 법조인을 고용하고 있고, 이들을 통해 어려운 사건들을 수월 하게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로 김&정의 문을 두 드리는 사람들이 더더욱 늘어났습니다. 당연히 경제적인 문제가 대 부분입니다.
김&정 법무법인은 법률 서비스 취약 계층을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대표적인 게 일본을 상대로 벌였 던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였다. 이를 시작으로 서민들의 각종 법적 인 문제에 대해 무료 변론을 해주 었는데, 보기와 달리 승소율이 상 당했다. 애초에 변호사 위임을 받 을 때, 충분히 검토해 억울하다고 할 만한 일만 맡았으니 말이다. 여 기에 전관예우 변호사까지 힘을 보 태니 웬만하면 지지 않게 된 것이 다.
-조금 일이 복잡해질 테지만, 전 관예우는 없어지는 게 사회 전체적 으로도 바람직한 일일 겁니다.
최강욱도 유재원이나 전명헌의 뜻에 동의했다. 그리고서 최강욱의 헌법 해설은 계속되었다. 그리고서 특이한 것이 나올 때마다 최강욱과 유재원은 동시에 놀랐다. 그렇지만 이미 논의가 끝난 영장 청구권이나 이중 배상 금지 조항은 간단하게 넘어갔다.
-국회의원 국민 소환제 도입도 참 대단한 혁신 같습니다. 다만 우 려가 되는 점도 큽니다.
"그래요?"
-국회의원의 권한이 지금처럼 막 강하게 된 건 군사 독재 때문이었 습니다. 회장님은 지금 상상도 못 하시겠지만, 그때는 국회의원을 남 산으로 잡아다가 린치를 가하기도 했거든요. 참, 불행한 일이었습니 다. 그래서 재발 방지를 위해 국회 의원의 권한을 키우고, 보호하도록 했던 겁니다.
" 진짜요?"
그건 몰랐다.
전생에서나 현생에서나 국회의원 을 잡아다 패는 일은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믿고 행패를 부린 것만 많 이 봤다. 하지만 최강욱은 그걸 직 접 본 사람이었기에, 우려가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4년 중 임제도 살짝 의문이긴 합니다.
전명헌 개헌안에는 당연히 통치 구조의 변화도 있었고, 거기에 대 통령의 임기에 대한 규정도 개정이 이뤄졌다. 최강욱의 말대로 4년 중 임제다. 원래는 5년 단임제였는데, 1년의 임기가 짧아지는 대신, 한 번 더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같은 정당의 정권이 이어지 더라도 5년 단임제의 한계로 단기 간 치적 쌓기로만 끝나고, 정책의 연속성이 끊겨서 많은 사회적 비용 이 발생하기 때문에, 4년 중임제로 의 변화를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강욱은 그러한 논리보 다는 독재자의 재등장을 우려한 것 이었다. 미국처럼 연임이 끝나면 홀가분하게 내려오면 좋겠지만, 2 번 대통령을 했는데, 3번은 못할 거 있느냐고 눌러앉을 우려가 있다 는 설명이었다. 군부 독재가 끝난 지 아직 10년도 지나지 않았으니, 최강욱은 그런 우려를 할만 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유재원이 단호히 말했다.
한국에서 독재자가 또 나오는 일 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무모한 상상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유재원의 능력으로 충분히 막 을 수 있다.
최강욱도 본인이 인정하는 유재 원이 그런 일을 없을 거라고 단호 하게 말하니 안심하는 눈치였다. 만약의 일이라는 건 늘 있지만, 유 재원과 같은 혜안을 가진 자가 확 신을 가지고 말해주니 불안한 마음 이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녹아 내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 는 눈치인데, 군대 관련해서도 큰 변화가 있습니다.
군대?
군대 이야기를 하니 살짝 답답해 지는 유재원이다.
이번엔 필즈 메달을 통해 면제를 받긴 했지만, 논산으로 가서 기초 훈련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2년 2개월이나 복무했던 전생의 처지와 는 완전히 달라지긴 했지만, 논산 훈련소를 가야한다는 거 자체는 너 무 싫었다.
유재원의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 지자, 최강욱의 목소리도 보다 진 중해졌다.
-바로 평시 군사법원의 철폐입니 다.
최강욱의 말에 유재원은 아 하며 탄성을 냈다.
국군과 관련해서는 막장인 게 수 도 없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군사 법원은 군부의 가장 큰 방어막이었 다. 일반인에게 군사법원의 이미지 는 사소한 군법 위반이라도 엄하게 다스리는 곳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 병력에 대해 한정된 것이었고, 장교들 그리고 장군들에겐 강력한 방어막을 제공 해줬다.
수십, 수백억의 횡령을 해도 군 사법원에서는 감봉 정도의 솜방망 이 처벌을 했다. 성추행이나 성폭 행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국군 내 의 각종 부조리로 인해 자살한 희 생자에 대한 조사나 가해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군사법원의 구성을 군인들로만 했으니 말이다. 군판사는 물론이고 군변호사, 군검사 모두 지휘관의 통제를 받는 장교들이다. 자기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자기 스스로 처벌 을 하라고 하면 누가 제대로 하겠 는가.
이러한 군사법원이 존속할 수 있 었던 것은, 한국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전 상태였기에 가능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군 사법원을 유지할 명분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일명 똥별들은 신나 게 해먹을 수 있었다.
"종전 선언으로 전쟁이 끝났으 니, 군사법원을 유지할 필요가 없 는 거죠?"
-정확하십니다, 회장님.
평시 상태가 되었으니, 전시 때 나 운영하는 군사법원 체계를 유지 할 필요가 없다.
유재원은 살짝 놓치고 있었던 것 인데, 꼼꼼한 전명헌은 이런 것까 지도 살뜰하게 챙겨놓으신 모양이 다.
"장군님들, 이제 긴장해야겠네 요."
-그렇습니다. 군대 안은 전쟁터 라지만, 사회는 불지옥이죠. 이제는 사회의 쓴맛을 톡톡히 보게 될 겁 니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KDX 사업과 FX 사업이 곧 시 작되는데, 여기에 숟가락 올릴 준 비를 하는 장군님들이 상당할 테니 말이다. 그 돈은 바로 유재원의 주 머니에서 나온 알토란 돈인데, 엄 한 장군들 지갑 안에 들어가는 건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