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권 5화
스마트폰이 스마트폰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다양한 애플리케이 션이 이를 받쳐줘야 한다. 유재원 은 라이브팟 앱스토어라는 이름의 기초적인 앱스토어를 런칭해서 앱 스토어의 인지도를 올리고, 서드 파티 개발자 환경도 미리 조성할 목적이었다.
다만 라이브팟에는 무선 통신 기 술은 없었기에, USB 케이블로 컴퓨 터와 연결을 하고, 웹브라우저로 앱스토어에 접속한 다음 앱을 다운 받아 설치하는 형식이었다.
수익 창출이 관건인데, 일단은
앱스토어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광 고를 앱 다운로드 비율에 맞춰 공 유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아무래 도 그 금액은 소액인지라 아마추어 개발자 혹은 소규모 개발자를 정도 만 관심을 보일 것 같다.
보석 퍼즐 게임부터, 스크롤이 빠르게 이뤄지는 러너형 게임까지 기본 설치된 게임들이 잘 구동되는 것까지 보여주고서야 유재원의 두 번째 날 발표는 마무리되었다.
당연히 후폭풍은 크게 밀려왔다.
한국에서 먼저 런칭되어 많이 알 려진 넥스트 뮤직보다는 라이브팟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LCD 디스 플레이와 터치 인터페이스, 그리고 오픈형 앱스토어의 조합이 어마어 마한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는 건 누구나 예측 가능했으니 말이다.
영원한 축제는 없다.
길었던 IDDC 98도 마지막 날이 왔다.
마지막 날은 진짜 개발자를 위한 날로 ID 그룹의 다양한 제품과 개발 중인 제품 중 공개해도 무방한 것들을 보여주는 날이었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두 개의 분야로 나뉘었고, 체험을 위한 부 스도 대폭 늘렸다. 그렇기에 오늘 은 유재원이 진행하는 발표회는 없 었고, 각 파트마다 팀장이나 책임 프로듀서들이 나와서 진행하는 소 규모 컨퍼런스 형식으로 이뤄졌다.
까딱 잘못하면 그야말로 중구난 방 시장통이 될 수도 있었지만, ID 그룹의 행사 진행 능력은 최상이었 다.
컨벤션 센터에 자리한 크고 작은 부스들은 '미래와 접속하라! (Connect the Future)'라는 주제로 통합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차기 버 전인 안드로이드 2000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미리 공개했다. 사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만으로도 독립 된 컨퍼런스를 열 수 있었다. 버전 업이 계속 이뤄지면서 쌓인 라이브 러리와 앞으로 추가될 기능들도 엄 청났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IDDC 99는 안드로이 드 단독 행사로 진행할 생각까지 하는 유재원이었다. 하여튼, 오늘 이 자리에서는 차기 2000 버전에서 크게 달라지는 보안 정책을 비롯해 한층 강화된 하드웨어 지원과 컴퓨 터의 성능을 100% 끌어내 프로그 램의 퍼포먼스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알렸다.
또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 구동되는 게임들의 핵심인 글라이 드X의 차기 버전에 대한 데모도 보여주는 자리였다. 컴퓨터와 게임 은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할 동반자 와 같은 요소였기에 절대 빼놓을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인기를 끄는 부스는 ID 하이테크 연구소의 드론이었다.
드론은 일부 환경에서 빠르게 보 급 중이었다. 바로 영화 제작사였 다.
드론이 있기 전까지는 항공 촬영 을 위해서 헬기를 동원해야 했다. 헬기가 뜨기 위해서는 공간적인 제 약과 날씨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헬기가 뜰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도 어마어마했다.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 면 항공샷을 제대로 찍기는 힘들었 다. 하지만 ID 하이테크 연구소의 드론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 다.
드론은 100% 수제작이고, ID 하 이테크 연구소의 독점 상품이었기 에 가격은 상당했다. 하지만 헬기 에 비하면 너무도 저렴했다. 게다 가 구동하는 것도 간편했다. 단점 은 장착할 수 있는 카메라의 크기 나 운용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롱테이크를 남발하는 예술 영화만 아니라면, 드론은 확 실히 헬기의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오늘 공개된 드론은 예전에 보였 던 것보다 더 작아졌다. 그리고 쿼 드콥터 형 드론만 나온 게 아니라, 몸통보다 긴 날개가 달린 모델도 등장했다. 쿼드콥터 형 드론이 호 버링에 특화되었다면, 날개가 달린 모델은 장거리 운용에 특화된 것이 라 할수있다.
다만 신모델을 컨벤션 센터 상공 에서 날려보고 하는 건 아니었고, 그저 전시만 해놓았다. 직접 구동 되는 모습은 아직 공개하기엔 여러 모로 부족한 게 많았다.
당연히 쿼드콥터도 새로운 모델 이 나왔다. 예전에 나왔던 드론들 보다 더 작아졌고 플라이 바이 와 이어 프로그램도 보다 정교해져서 조종도 훨씬 편해졌다. 하지만 작 아진 만큼 장비를 장착할 수 있는 능력이나 구동 시간도 줄어드는 게 문제였다.
전기 자동차도 있었다.
라이트닝 볼트사가 제주도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는 모델은 날이 갈수록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는데, 오늘 IDDC 98에 등장한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자동차 같은 모델이었다. 실제 구동도 해서 컨 벤션 센터 안에서 타볼 수도 있었 다.
동글동글한 디자인인지라 아이들 에게 인기가 참 좋았다.
마지막으로 ID 엔터테인먼트의
부스도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3일 차 행사에 서 가장 많은 인기를 받은 곳이었 다. 특히 블리자드와 오리진시스템 이 동시에 개발하는 차세대 MMORPG게임의 티저 영상이 공 개될 때에는 지켜보던 사람들이 내 지른 탄성이 컨벤선 센터를 쩌렁 울렸을 만큼 대단했다.
결과적으로 IDDC 98은 대성공 이었다.
ID 그룹 최초의 독립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관람객을 모 았고, 호응도 크게 받았다. 게다가 IDDC 98에서 발표된 서비스와 제 품들에 대한 세계적인 주목도 상당 했다. 이는 곧 ID 그룹의 주가에 반영되었다.
타임워너넥스트컴과 안드로이드 주식은 버블 붕괴의 후폭풍이 몰아 치는 나스닥과는 상관없다는 듯 그 야말로 독야청청이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IDDC 98이 성황리에 마무리되
고 나서 유재원은 딱 하루를 쉬고, ID 테크놀로지 본사에 출근했다. IDDC 98의 성과를 보고 받고 마 무리 정리를 하기 위함이다.
"다들 열심히 도와주신 덕에 최 고의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이 성 과에 대해서는 단돈 1달러도 빼먹 지 않고 다 챙겨드릴 테니 기대하 셔도 좋습니다."
유재원의 치하에 회의실에 자리 한 이들 모두가 훈훈해졌다.
"자, 그러면 타임플릭스의 접속 현황과 라이브팟 판매량, 예약 수 량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그러다가 실적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금 긴장감이 서서히 피어올랐 다.
아직 1998년은 4개월이나 남았 다. 유재원은 IDDC 98의 성공으로 느슨해지려던 분위기를 다시 팽팽 하게 당겼다.
같은 시간.
ID 테크놀로지 회의실처럼 긴장 감이 극한에 달아오른 곳이 또 있 었다. 게다가 멀지도 않았다. 산호 세 왼쪽의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사 의 본사였다.
스티브 잡스.
애플사의 창업주였고, 애플 컴퓨 터라는 IBM 호환 PC와는 완전히 다른 PC를 만들어 마이컴 붐을 일 으키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시대를 앞선 애플 III를 야심차게 준비했다가 완전히 망했고, 이후 진행한 리사 프로젝트는 쐐기가 되 어 본인이 만든 애플사에서 쫓겨나 게 됐다.
웬만한 기업들이라면 아무리 잘 못이 커도 창업자가 쫓겨나는 일은 극히 드믄데, 스티브 잡스는 좀 달 랐다. 사실 무리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스티브 잡스는 본인과 의견 대립이 심했던 외부 수혈 전문 경 영인인 스컬리를 쫓아낼 생각으로 이사회 투표를 걸었던 것이다. 그 런데 의도와는 달리 반대로 본인이 쫓겨나고 말았다.
이 대목만 봐도 사고방식이 완전 히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 는, 아니 안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드러난다.
그렇게 애플사에서 쫓겨났지만, 컴퓨터 업계에서 발을 빼진 않는다. 애플 III와 리사 프로젝트에서 이어 진 GUI인터페이스의 워크스테이션제작에 꽂혀서 넥스트라는 컴퓨터 회사를 차리기도 했고, 픽사라는 컴퓨터 그래픽 스튜디오를 만들기 도 했다.
넥스트는 ID 그룹의 에그 PC 때 문에 큰 빛을 발휘하진 못했다. 하 지만 픽사는 할리우드에서도 주목 할 만한 성적을 냈다.
바로 불후의 명작인 토이 스토리 를 풀 CG무비로 만들어낸 것이다. 기술적인 완성은 물론이고, 감동적 인 스토리까지 담아낸 토이 스토리 는 전 세계적인 홍행 몰이를 했다.
그 성과 덕에 스티브는 애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창업주가 빠진 애플사의 부진은 마치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것 처럼 계속 하락했던 탓이다. 특히 IBM 호환 PC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완성도를 가진 ID 그룹의 에그 시리즈가 애플에 지대한 타격 을 주었다.
더욱이 유재원이 IBM 호환 PC 의 상징인 도스에서 안드로이드 운 영체제로 과감하게 혁신하면서 투 박하기만 했던 IBM 호환 PC는 애 플보다 더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게 된 것이다.
완전히 파산 궁지에 몰린 애플은 구원투수로 창업주 스티브 잡스를 긴급하게 데려왔고, 이후 적지 않 은 시간이 흘렀다.
막 회사에 복귀했을 때만 해도 자신감이 철철 넘쳐흘렀던 스티브 잡스였다.
넥스트는 망했지만, 픽사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의 머릿속에는 컴퓨터를 비롯한 IT분야에서 혁신 을 이뤄낼 많은 아이디어들이 들어 있었다.
그걸 현실로 옮기기만 하면 애플 의 두 번째 도약은 거뜬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른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라이벌의 질주는 더더욱 굉장해졌 다.
"젠장. 이걸 보고서라고 가져온 건가?"
덕분에 스티브가 회의실에서 목 소리를 높이는 건 이제 만성이 되 었다.
쾅 소리가 나게 책상을 때리고,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서성거 렸다.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애플 의 엔지니어들은 그런 스티브를 향 해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될 거라 고 자신하던 스티브를 다시금 불안 과 초조로 빠뜨린 보고서는 최근 정식 발매된 라이브팟의 리버스 엔 지니어링 보고서였다.
애플뿐만이 아니라 실리콘밸리나 다른 전자회사들은 ID 테크놀로지 에서 라이브팟이 출시되자 전문 줄 서기꾼을 고용해 너도나도 입수했 고, 분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들 비슷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다들 충격에 사로 잡혔다.
"기술 격차가 최대 4년? 이게 말 이 되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선사 한 건, 스티브가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 대목이었다. 리버스 엔 지니어링의 표면적인 명분은 라이 센스 위반을 보는 것이었다. 혹시 나 자사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인지 살펴보는 게 제일 큰 목적 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고밀도 반도체 의 패키징을 뜯어서 전자현미경으 로 반도체 논리 회로까지 보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애플사 역시 라이브팟을 구성하 고 있는 부품들을 뜯어보는 명분이 라이센스 위반을 살펴본다는 것이 었다. 그러면서 라이브팟에 적용 된 부품들의 기술 수준을 가늠해보 는 것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충격적이게도 라이브팟은 현재 애플이 보유한 기술보다 4년은 앞 서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시간절 약을 위해 보고서의 앞에다 중요한 핵심을 넣으라고 지시했던 스티브 는 종이 한 장을 넘기자마자 4년 앞서 있다는 걸 보고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회의실의 빈 공간을 마구 서성이 다가 겨우 화를 잠재운 스티브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설명해보게!"
겨우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자세가 된 스티브의 재촉이었 다. 이에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담 당했던 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 다.
"라이브팟의 중요 부품은 4개입 니다. MAP라는 프로세서, 2.2인치 컬러 LCD 모듈, 플래시 메모리 스 토리지. 그리고 리튬 배터리. 이 4 개의 핵심 부품이 업계 전반의 기술력보다 4년은 앞선 것으로 파악 했습니다."
수석 엔지니어의 보고에 스티브 는 말이 없었다.
본인도 그 정도는 예측했기 때문 이다. 아이팟이라는 mp3 플레이어 를 거의 완성단계까지 만들었기에 라이브팟에 집적된 기술들이 범상 치 않다는 건 한눈에 알았다.
"현재 수준에서 그나마 경쟁이라 도 할 수 있는 건 프로세서와 스토 리지 부분입니다."
스티브는 이 대목에 와서야 고개 를 끄덕였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