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68화 (468/1,007)

24권 2화

2년 전쯤에 500만을 넘겼고, 그 뒤로도 가입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 세였다. 땅이 넓고, 도시에 마천루 도 많아서 공중파 음영 지역이 많 은 미국에서는 유선 케이블을 보는 게 일반적인 TV시청 방법이었다.

케이블을 신청하려는 사람들 중 에 가장 큰 선호도를 가진 건 유재 원이 자랑처럼 넥스트컴캐스트였다. 한국식 AS 시스템의 도입과 인터 넷을 이용한 빠른 피드백으로 인해 케이블 업체 중 가장 나은 평을 받 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타임워너와 합병한 덕에 워너 케이블과의 통합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워너 케이 블이 넥스트컴캐스트와 같은 한국 식 시스템을 도입하는 식의 합병이 었다. 셋톱박스도 워너 케이블이 보급하던 아날로그 셋톱박스가 아 닌 넥스트컴캐스트의 디지털 셋톱 박스로 교체하기로 했다.

덕분에 넥스트컴캐스트 가입자라 면 지금 유재원이 들고 있는 리모 컨과 똑같은 제품을 가지고 있었다.

너스레를 떤 유재원은 곧 소파에 앉았고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 다. 버튼 하나로 텔레비전과 셋톱 박스가 동시에 켜졌고, 곧 텔레비 전에 넥스트컴캐스트의 로고가 떴다.

"여기서 조금 불평이 좀 나왔던 이용자도 계셨을 겁니다. 아날로그 셋톱박스였다면 전원을 켜자마자 방송이 나왔을 텐데, 지금은 이렇 게 부팅 시간이 조금 있으니까요."

셋톱박스가 교체될 때 가장 불만 이었던 사안이 바로 이 부팅이었다. 다음 불만 사안은 채널을 넘길 때 생긴 버퍼링 타임이다. 후자가 더 불만인 사람도 있고, 전자가 불만 인 사람도 있었다. 두 가지 문제는 비등비등했다.

"대신 아날로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한 화질을 자랑한 덕에 많은 이용자들은 우리 타임워 너 컴캐스트를 선택해주셨습니다."

그런 단점을 단번에 사소한 문제 로 만들어버린 건 디지털 재전송이 었다.

아직 디지털 제작, 디지털 방송 을 하는 업체는 없지만, 마스터링 테이프의 화질은 아주 좋았다. 그 런데 이게 전파에 실려 전송되면 시청 환경에 따라 노이즈가 끼는 경우가 많았다. 넥스트컴캐스트는 캔자스 같은 시골 깡촌에 단독으로 있는 주택이라도 구리 케이블이 들 어오기만 하면 디지털 신호를 보내 주기에 화질이 무척이나 좋았다.

텔레비전이 다들 아날로그 브라 운관이라지만, 그 화질은 확실히 차이가 날 정도였다.

"디지털 셋톱 박스의 장점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디지털과 인터넷 의 결합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 지고 있습니다. 그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은 그 잠재력을 지구 에서 최초로 확인하시는 겁니다."

유재원은 언제 긴장했냐는 것처 럼 메인 스테이지에 가득찬 사람들 을 휘어잡았다. 다들 어떤 새로운 것이 튀어 나올지 호기심이 극대화 되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재원은 다시 리모컨을 들어 보였다.

"이 리모컨이 익숙한 사람이라도 바로 이 버튼에 대해선 의문이셨을 겁니다."

유재원이 가리킨 것은 리모컨 최 상단에 자리한 ID 로고였다. ID 로 고는 단순히 그림으로 프린트 된 것이 아니라 살짝 투명한 고무 재 질로 양각된 것이었고, 심지어 눌 러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는 ID 로고 버튼을 눌러도 어떤 동 작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 순간, 1998년 8월 1일, 저녁 7시부터는 세상이 달라졌습니 다. 타임워너와 넥스트컴캐스트의 합작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했던 월스트리트에 대해 저 유재원의 답 을 드립니다. 타임플릭스입니다."

유재원은 보란 듯 리모컨의 ID 로고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평범한 TBS방송이 나오 고 있던 세팅된 텔레비전에 ID 로 고가 가득 채워졌고, 다시금 빠르 게 지나가며 타임플릭스라는 이름 의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떴다. 곧 이어 유재원이 몇 주 전 확인했던 VOD 시스템의 메인 페이지가 텔 레비전에 나타났다.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상은 그대로 무대 뒤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에 비춰 졌다.

다만 텔레비전에 뜬 VOD 인터 페이스는 전에 유재원이 컴퓨터로 확인한 것과는 살짝 달랐다.

아무래도 아날로그 텔레비전이다 보니 텔레비전과는 다르게 해상도 가 무척 떨어지는 터라 글자도 큼 직했고, 썸네일도 컸다.

타임 플릭 스 (Timeflix).

이것이 타임워너넥스트컴의

VOD 서비스의 정식 서비스 명칭 이었다. 이름의 뜻은 간단했다. 지금 당장은 타임워너의 콘텐츠를 사 용하고 있으니 타임이란 이름이 제 일 먼저 나왔고, 플릭스라는 건 영 화라는 의미도 있다.

"때를 놓친 영화, 드라마, 쇼프 로, 그걸 다시 보는 건 참 힘들었 습니다. 비디오 가게를 찾거나, 친 구가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다 보거나, 아니면 텔레비전에서 재방송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 요. 이제는 타임플릭스가 있습니 다."

유재원은 리모컨을 조종해 타임 플릭스를 조정했다. 리모컨에는 숫 자 키패드가 있는데, 이를 통해 선택 버튼을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 있었다. 반응성은 아주 좋았다.

버튼을 누르자 텔레비전에 뜬 VOD 인터페이스가 즉각 반응했다. 이는 유재원 인터페이스를 처리하 는 마이크로프래밍을 직접 해서 셋 톱박스의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 린 덕에 가능해졌다.

사람이 답답함을 가장 잘 느끼는 것이, 버튼을 눌렀는데도 반응이 없을 때라는 것을 잘 아는 유재원 은 VOD용 서버 시스템과 함께 인 터페이스를 손보는 데 직접 참여했 다.

"음, 뭘 볼까요? 아! 오늘 낮에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기가 좋겠네요. 제가 이번 발표 회를 준비하느라 아직까지 경기 결 과를 모르고 있었거든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의 VOD 협 상은 매우 순조로웠다.

타임워너넥스트컴이 보유한

MLB중계권은 케이블 업계 중에서 제일 컸다. 서로 공생의 관계였고, VOD라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저렴한 금액에 VOD와 실시간 인 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에 합의해줬 다.

리모컨을 조절한 유재원은 바로 스포츠 항목으로 들어가 샌프란시 스코 자이언츠를 선택했다. 그러자 오늘 날짜가 최상단에 있고 내림차 순으로 수많은 리스트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가장 위에 있는 걸 선택 하니, 바로 낮에 있었던 경기가 곧 장 텔레비전에서 재생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유재원의 MLB 응원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보 다는 LA다저스였다. 박찬호를 시작 으로 한국 출신 메이저리거를 대거 배출한 덕에 LA다저스에 더 호감 이 있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LA다저스는 그야말로 피 튀기는 라이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사람들이 대부분 인 이 자리에서 LA다저스를 선택 하면 제아무리 유재원이라도 야유 가 터질 게 당연했다.

그렇게 선택 버튼을 누르자 화면 에 로딩이라는 글자가 나오더니 곧, 오늘 낮에 있었던 경기 화면이 선 명한 화질로 떴다.

SF자이언츠 팬들로 가득한 컨벤 션 센터 메인 스테이지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같은 시각.

길버트 오웬은 21인치 볼록이 모 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중이었 다.

유재원과 입학식은 물론 수업도 같이 들었던 길버트 오웬은 여름방 학이 시작된 지금도 스탠포드 대학 교의 랩실을 지키고 있다. 당연히 졸업은 일찌감치 했고, 지금은 대 학원에 다니는 중인데, 사실 공부 보다는 학교의 지원을 통해 인터넷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교수님들도 인정한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긴 했는데, 그걸 실제 로 구현하는 건 참으로 어려웠던 탓이다.

당연히 길버트 오웬의 워너비는 지금 멍하니 보고 있는 모니터 속 남자처럼 되는 것이었다.

-음, 뭘 볼까요? 아! 오늘 낮에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기가 좋겠네요. 제가 이번 발표 회를 준비하느라 아직까지 경기 결 과를 모르고 있었거든요.

지금 길버트가 보는 건 넥스트컴 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하는 실시 간 스트리밍 서비스로, 실리콘벨리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 중인 유재원의 중대 발표가 생중계 중이었다.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었고, 동시 에 채팅도 가능했기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와!"

모니터에 집중하던 길버트 오웬 이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채팅창 도 대폭발해서 글자를 읽기 힘들 만큼 글들이 빠르게 올라왔다.

거대한 규모도 규모지만 타임플 릭스라는 대규모 VOD 서비스에 대해선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것 이었다.

역시 유재원답다는 생각이 제일먼저 들었다. 동시에 어서 빨리 자 신도 지금 만들고 있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서 유재원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 ID톡 으로 연락을 하면 거의 몇 분 내에 답변이 올만큼 친한 사이였지만, 이렇게 모니터를 통해 보니 존재감 이 확실히 느껴졌다.

-후후, 놀랍죠? 하지만 이게 끝 이 아니랍니다. 더 놀라운 일을 보 여드리죠.

모니터 속 유재원은 아직 끝난 게 아님을 보여줬다.

-참, 아쉽게도 이건 샌프란시스 코 지역 한정이라는 걸 말씀드려야 겠네요. 그렇지만 최대한 빨리 준 비하고 있으니, 다른 지역에서 온 라인으로 이 발표를 보시는 분들은 아쉬움을 크게 느낄 필요는 없습니 다.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 지, 모니터 속 유재원은 평소와 달 리 아쉽다는 말을 먼저 했다.

-자! 그러면 말씀을 드리죠. 지 금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발표를 보 시는 타임워너넥스트컴 케이블 사 용자 여러분!

유재원의 말이 이어지면서 화면 에 10이라는 숫자가 크게 떠올랐 다.

-제가 10부터 1까지 거꾸로 카 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초 읽기가 끝나면 여러분들은 마법과 같은 서비스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 다.

"설마!"

길버트는 감이 좋았다. 덕분에 유재원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단번 에 이해했다. 동시에 피가 손끝으 로 몰리면서 짜릿한 감각이 몰려들 었다. 그러는 사이 유재원은 10부 터 거꾸로 세기를 시작했다.

-3, 2, 1. 샌프란시스코 시민 여 러분, 지금 ID 버튼을 눌러 타임플릭스의 세계로 빠져 보세요!

"설마! 진짜?"

모니터에서 고개를 뗀 길버트는 바로 리모컨을 찾았다.

지금 있는 랩실에도 텔레비전과 케이블 셋톱박스가 들어와 있었고, 연결된 케이블 방송도 당연히 타임 워너넥스트컴이 었다.

우당탕 자리에서 일어난 길버트 는 바로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와 전원을 켰다. 곧이어 화면이 나오 자 리모컨을 잡고 ID 버튼을 꾹 눌 렀다.

Timeflix!

놀랍게도 이제까지 몇 번을 눌러 도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았던 ID 버튼이 제대로 작동했다. 브라운관 텔레비전 화면에 방금 스트리밍 화 면으로 보았던 타임플릭스의 로고 가 대문짝만하게 떴다.

더 놀라운 건 다음이었다.

유재원의 시범에서는 보이지 않 았던 인트로 영상이 나타난 것이다. 타임워너의 방송과 영화 스포츠 라 이브러리의 스크린샷들이 쏟아지면 서 타임플릭스라는 글자를 만들어 냈다. 10초 분량의 짧은 인트로 영 상이 지나가자 조금 전 보았던 VOD 시스템이 나타났다.

길버트는 유재원이 그랬던 것처 럼 키패드를 조작해서 원하는 콘텐 츠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로딩이 라는 글자가 나타났고, 곧 영상이 떴다.

"세상에!"

신세계가 길버트를 삼켜버렸다.

지금 당장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에 열광의 실리콘벨리 컨 벤션 센터에 있는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시범 서비스는 앞으로 1개월간 진행할 것입니다. 대규모 시범 서비스에서 문제가 발 견되지 않으면, 북미 전역 그리고 전 세계에 타임플릭스 서비스를 시 작하겠습니다."

메인 스테이지에 있는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유재원은 느긋한 표정으로 발표를 계속 진행했다.

유재원의 멘트와 함께 뒤쪽 거대 한 스크린엔 세계 지도가 띄워지면 서 서비스가 시작될 예상 날짜와 국가들이 떠올랐다. 한국은 당연하 게도 타임플릭스의 해외 서비스 런칭 스케줄에서 가장 윗줄에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텔레비전으로 드라마나 쇼, 스포츠 중계는 무리 없이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조금 김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죠. 그래 서 준비했습니다."

비장의 무기는 계속 쏟아졌다.

레밍턴이 다시 등장했고, 카트 위에는 신제품이 있었다. 27인치짜 리 FHD 해상도의 LCD 모니터였 다.

"트루 시네마 디스플레이입니다. 앞으로는 완벽한 고선명 화질의 디 스플레이가 표준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ID 테크놀로지 산하 디스플레이 공 장에서 고르고 고른 최고의 수율로 뽑아낸 대형 LCD 모니터가 바로 지금 공개된 트루 시네마 디스플레 이였다. 원래 유재원은 30인치짜리 로 준비하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서 27인치로 크기를 줄 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14, 17인치가 대세였 고, 아주 희박하게 21인치 모니터 가 보급되던 때에 27인치 LCD 모 니터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유재원은 직접 시네마 디스플레 이를 i웍스에 연결했다. 그리고는 이번엔 컴퓨터로 타임플릭스 웹사 이트에 접속해서 워너 브라더스의 영화를 스트리밍했다.

브라운관 텔레비전과는 차원이 다른 화질로 말끔하게 재생되는 모 습에 다시금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발표회였다.

회귀로 압도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