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권 23화
누군가는 현실은 지옥이라 말한 다.
그렇지만 무조건 지옥이라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도 낭만적인 일들 은 분명히 있다. 금 모으기 운동도 그중 하나였다. 200, 300만 원 대 의 생활 자금 대출을 받는 사람 중 에 억지로 돈을 떼먹고 달아나겠다 고 악독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유재원의 구상은 이뿐만이 아니 다.
이번에 시작하려는 소액 대출과 연관하여 핀테크나 스마트페이 시장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도 있 고, 여러 가지 이벤트에도 활용할 수 있었다. 물론 100억 달러가 다 바닥나면 매우 안타깝고 실망도 크 겠지만, 이 돈이 없다고 해서 유재 원의 앞으로 계획에 큰 타격은 없 었다. 그러나 한 달을 살아갈 생활 비가 없어서 깨지는 가정들이 한국 에는 분명히 존재했다.
여러 우려에도 유재원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회장님의 숭고한 큰 뜻을 잘 알 겠습니다."
결국, 최강욱은 이번에도 유재원 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최강욱이 그렇게 나오자 황재흥이나 다른 임 원들도 금세 유재원의 말에 동의했 다.
"그러면 황재홍 사장님이 이번 일을 맡아보세요."
유재원은 곧장 황재홍 사장을 지 목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영업점으로 는 전국을 커버하긴 부족하고, 차 별화를 두기도 힘들 테니, 아예 별 도의 사업으로 만드세요. 아예 처 음부터 인터넷 중심의 비즈니스 모 델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네요."
난데없이 큰일을 맡게 된 황재홍 은 부담감이 와락 밀려왔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100억 달러짜리 사업이었다. 게다가 돈보 다 더 무서운 건 유재원의 숭고한 의지를 지키는 것이었다. 황재홍에 게는 부모님과 가족만큼이나 소중 한 사람이 유재원이었다. 유재원이 실망하는 모습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내빼고 싶지도 않았다.
명색이 ID 인베스트먼트 한국 사 장인데, 소액 대출 비즈니스 정도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모습 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 그리고 절대 대부업이라고 광고하지 마세요."
대부업체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 식은 매우 나빴다. 업체들이 너도 나도 재미있고 긍정적인 이미지 광 고를 할 테지만, 그런데도 대부업 체들에 대한 인식은 좋아질 일은 없었다. 게다가 유재원이 하려는 소액 대출 사업은 거의 자선활동과 도 같았으니, 대부업체라고 하면 억울하기 그지없다.
"마이크로크레딧. ID 마이크로크 레딧이라 하면 좋겠네요."
바로 회사의 이름까지 즉석에서 지어주는 유재원이다.
황재홍이나 다른 사장단의 반응 도 나쁘지 않았다. ID 그룹의 계열 사 이름들이 다들 이런 스타일인지 라 센스 있는 사람이라면 예상했을 수도 있다.
"자, 그럼 중요한 사안들은 다 논의한 거 같은데, 이제 밥 먹으러 가죠?"
유재원을 시작으로 자리에서 일 어났고, 다들 상업층에 있는 레스 토랑에 가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보통의 회사라면 15조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되는 신 규 사업에 대해서 시장조사부터 철 저하게 따져보았을 테지만, ID 그 룹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의 사 결정으로 한 자리에서 끝나버렸 다.
유재원이라는 존재 자체가 만들 어내는 특이점이었다. 게다가 유재 원도 마이크로크레딧이나 그라민 은행이란 성공 모델을 보았기에 밀 어붙일 수 있었다. 이것이 ID 그룹 의 강점이기도 했고, 나중에는 약 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건 아직 먼 미래의 일이었다.
식당으로 앞장서는 유재원은 교장선생님을 떠올렸다.
교장 선생님께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을 이렇게라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다만 이번에 뿌릴 씨앗이 자라나 큰 나무가 될지, 아니면 척박한 토 양 때문에 새싹도 피우지 못하고 죽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래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깨질 뻔한 가정이 살아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욱이 일본에서 벌어들인 자금 으로 일본산 대부업체들을 몰아낸 다면, 일본에 또 한 번 커다란 엿 을 먹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유재원이 돈 보따리를 푸는 건 마이크로크레딧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ID 그 룹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쇼핑 목 록은 물론이고, 교장 선생님의 유 지를 따르는 여러 방법들은 유재원 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구체화되는 중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임원들과 저녁 도 함께 했던 유재원은 미국으로 출국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이번에 제대로 보여줄 작정이었다.
눈여겨보고 있던 것이 있으면 다 사자!
한국서 돌아온 유재원이 천명한 ID 그룹의 단기 목표였다. 무엇을 사자는 것이냐 하면 특별한 기술 혹은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 업이다.
기업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쇠 퇴하지 않고 영속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상이 변하는 것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는 일류 기업이 되지는 못 한다는 걸 유재원은 잘 알고 있다.
트랜드를 선도할 수 있는 기업이 바로 초일류 기업이다. 그러나 너 무 앞서나가면 트랜드와 분리되어 오히려 망할 확률이 크다. 유재원이 미래의 기술을 몽땅 알고 있음 에도 단번에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건 이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천명한 '다 사자'도 너무 앞서가는 기술이 아닌 경쟁력과 트 랜드를 선도할 수 있지만, 자본이 부족해서 빛을 보지 못한 기술이 있으면 사자는 이야기였다.
-관심을 두고 계신 기술이 있으 신지요?
화상 미팅으로 연결된 ID 테크놀 로지 사장 앨런이 구체적인 지침을 구했다.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도 좋 죠. 그리고 초소형 센서를 만드는 회사들도 찾아보세요. 원칩 형태로 모바일 기기에 장착될 수 있는 센 서들요."
-GPSM- 기울기, 가속도, 온도 센 서 같은 것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앨런은 유재원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는 법조인으로서, ID 테크놀로 지의 법무 업무를 전담했다가 레밍 턴의 승진으로 사장에 오르게 되었 다. 출신이 출신인지라 처음에는 IT 기술에 대한 이해나 전문성은 조금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 만 ID 그룹의 창립 멤버로서 10년 에 가까운 세월 동안 회사의 특허 를 방어하고, 혹여 다른 회사들이 침해할 경우 공격하는 일을 전담했 다.
그러한 과정에서 배우는 게 있었 기에, 지금은 전문가 이상의 식견 을 자랑했다. 유재원의 구체적인 지시를 듣고 딱 감을 잡는 게 그 증거였다.
"오! 정확해요!"
-그거라면 진작부터 선점한 회사 들이 개발 중인 제품들 아닌가요?
이어진 앨런의 물음도 정확했다.
유재원은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 을 위해 실리콘밸리에서 센서들을 만드는 회사들에 엔젤 투자를 진행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그렇지만 성과는 미미하잖아 요."
엔젤 투자를 진행 중이었지만, 유재원의 말처럼 구체적 성과를 내 놓은 벤처기업은 얼마 없었다. 정 확성이나 속도, 모듈의 전력 소모 량 등등,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당 장 상용화하기가 힘든 상태였다.
유재원은 일본서 챙긴 막강한 자본력으로 기술력이 검증된 업체도 인수해서 개발 속도를 보다 가속화 하려는 의도였다. 몇 년이라도 더 일찍 스마트폰을 만들어내겠다 하 는 의지가 확실히 돋보이는 대목이 다.
-알겠습니다!
앨런도 유재원의 의지를 읽고 바 로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총알이 넉넉하거든 요. 센서 기술에만 한정 짓지 말고 IT 기술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훑어보세요. 이를테면 자동차 하이 브리드 기술도 있죠. 우리가 자동 차는 안 만들어도 전기 자동차는 시도 하고 있잖아요. 이처럼 가능 성이 확인되면 인수나 지분을 확보 할 생각이니까요."
-예, 회장님.
유재원의 계획을 정확히 알아들 은 앨런은 다부진 표정으로 대답했 다.
이번에 앨런에게 준 일거리는 상 당히 큰 것이었다.
미국 한정이라고 해도 IT 기술을 선도하는 나라가 미국인만큼, 범위 도 넓고 깊이도 깊었다. 그걸 다 들여다보고 쓸 만한 기업들이나 기 술을 골라내는 일은 제법 부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 업계의 기술 발전 사항이나 위협적인 업체를 미리 포착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걸로 ID 그룹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앨런과 화상 미팅을 종료한 유재 원은 다음으로 레밍턴에게 연락을 했다.
-보스, 한국에 잘 다녀오셨습니 까?
"네, 레밍턴의 염려 덕에 무사히 다녀왔네요."
-그렇게 갑작스러운 이별도 생겨 날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하더군 요. 상실감이 크시겠지만, 힘차게 일어나 왕성한 활동으로 세계를 깜 짝 놀라게 만드는 것이 돌아가신 은사님이 바라는 모습일 수도 있습 니다.
레밍턴의 위로는 적절했다.
우울감에 의기소침하고 있는 모 습보다는 전과 똑같이 왕성한 활동 을 보이면서 존재감을 보일수록 하 늘에 계신 교장 선생님도 좋아하실 것이다.
"네, 그래서 말인데, 이벤트를 몇 가지 준비 중이에요."
유재원은 한국의 ID 마이크로크 레딧과 조금 전 앨런에게 지시한 유망 기업 싹쓸이 작전에 대해 설 명했다.
-휘유? 가용 자금만 300이라 니? 너무 대단한 거 아닙니까?
"돈만 잔뜩 가지고 있으면 뭐가 되나요? 저는 기술이든, 사람이든, 공장이든 손에 잡히는 걸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돈이 필요할 때도 있다.
현금 흐름이 훌륭한 ID 그룹이라도 순간적으로 현금 유동성이 부족 해질 때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불황이 닥치면 공장이나 인력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 때는 아니다.
지금과 같이 한창 팽창할 때, 몸 집을 크게 불려 놓는 것이 유재원 은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봤다.
"업무 파악은 좀 하셨어요?"
IT 기업과 미디어 기업의 업무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유재원에 의해 발탁되어 ID 테크 놀로지를 이끌었던 레밍턴도 타임 워너넥스트컴의 총회장이 된 이후로 새롭게 알게 된 분야가 상당했 다. 특히 미디어나 영화는 그들만 의 조직 문화가 완전히 정착된 상 태라서 레밍턴이 배워야 할 게 많 았다.
-애 좀 먹었습니다. 미디어 쪽 사람들이 진보적일 줄 알았는데, 영 아니더군요.
"그래요?"
하긴 이미 인정을 받은 영화감독 이나 PD들은 자기만의 세계관이 다 완성된 사람들이었다. 일하는 방식에도 틀이 잡혀서 일률적인 시 스템 안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겐 업무 방식에 대해 선 자율권을 주고, 만들어진 작품 으로만 평가하는 게 바람직했다.
-보스가 원하는 신작 영화는 아 무래도 신인 감독에게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유재원이 원하는 신작 영화.
당연히 그건 예술영화나, 감성이 풍부한 영화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상업영화, 돈이 잘 되는 블록버스 터 영화였다. 그것도 마블과 DC의 히어로 만화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었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충분하 죠?"
-예! ID 엔터테인먼트의 CG 팀 은 이미 그룹 내에서 인정을 받았 습니다.
여기에는 전보다 훨씬 빠르게, 보다 고 퀄리티로 발전한 CG기 술 이 있었다. 일찌감치 시네마틱 CG 를 만들어서 활용한 업체가 바로 ID 엔터테인먼트였다. 블리자드의 시네마틱 영상은 워크래프트 때부 터 호평을 받았고, 스타크래프트에 와서는 완전히 만개했다.
작년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의 시네마틱 CG는 전생에 나왔던 것 과 차원을 달리했다. 수만 대의 클 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으로 영화관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으로 만들어서, 꽉꽉 눌러 담았다.
게이머들은 그런 CG를 보고 싶 어서 스테이지 클리어에 더욱 몰입 했다. 덕분에 스타크래프트를 구입 한 게이머들의 싱글 플레이 완수율 은 40%를 넘겼다.
게임을 구매해놓고 싱글 플레이 를 끝까지 플레이한 사람이 40%라 고 하면, 매우 적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게임들은 20%도 되지 못한 다. 어느 정도까지 플레이를 하다 가 그만두는 사람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이렇게 CG 기술력을 인정을 받
고 나서 ID 엔터테인먼트는 CG 팀을 별도의 독립 팀으로 꾸렸다. 작은 개발사라도 지원을 받아 고품 질의 CG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 하는 팀이었다. 물론 공짜 지원은 아니지만, 상당히 저렴한 가격과 퀄리티를 자랑하기에 ID 엔터테이 먼트 소속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 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