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63화 (463/1,007)

23권 22화

"일성 전자는 해체 후 인수의 방 식으로 ID 테크놀로지 한국 지사에 인수하는 방식을 확정했습니다. 부 실한 자산은 해체와 함께 완전히 소멸하고, 우량 자산만 남기는 방 식입니다. 인수 가격은 100원입니 다."

21세기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 집단인 일성 전자의 우량 자산은 단돈 100원이란 가격으로 ID 테크 놀로지에 팔렸다.

"대신 은행들의 채권을 승계하는 방식이기에 실제 가격은 대략 2조 5천억 원입니다."

일성 전자의 우량 자산을 100원 에 인수하는 대신 채권단에 갚아야 할 돈이 2조 5천억 원이 생긴 것이 다. 원래 일성 전자가 은행권으로 부터 빌린 돈은 이보다 훨씬 많았 지만, 부실 대출에 대한 책임도 있 고 ID 그룹의 강력한 협상력에 의 해 2조 5천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헐값이네요. 바로 상환해서 부 채 없이 새출발하죠."

유재원은 가볍게 말했다.

일본에서 워낙 큰돈을 벌어 와서 그런지 몰라도 이 정도 대금은 한 방에 상환해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예, 은행들도 분명 좋아할 겁니 다. 그리고 기존 일성 전자의 주요 임원들과 사장, 회장을 모두 고소 했습니다."

이어진 최강욱의 조치에도 유재 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표 시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 인수한 자산 중에 수원 공 장 있죠? 거기 정밀 환경 진단 시 작하세요. 그리고 거기에서 일했던 직원들 모두 건강검진 받도록 조치 하고요. 한 분도 빠짐 없이요."

일성의 수원 공장이 아주 악명이 자자한 공장이었다. 좀 오래 근무 했다 하면 백혈병이나 암이 발병한 것으로 말이다. 근무 환경 설계가 잘못되어서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유독 가스와 자주 접촉한 탓에 일 어난 일이었다.

아직 보고는 없었지만, 초기 증 상이 일어난 사람들도 있을 테니, 병이 커지기 전에 알아내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이 런 사실들을 알고도 묵인한 일성 전자 임원들의 혐의도 추가할 수 있다.

최강욱의 발표를 시작으로 다른 사장단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대부분 무리가 없는 발표였다. 백호 펀 드 말고는 큰일을 벌이진 않고 있 으니, 사장들의 발표 내용도 특별 할 게 없었다. 다만 황재홍은 좀 달랐다.

ID 인베스트먼트 한국 사장이란 직함을 가진 황재홍의 보고 내용에 유재원의 귀를 끄는 내용이 있었다.

"요즘 한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기 는 게 대부업체들입니다. 대출 금 리가 50% 이상인데도 이용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대부업체?

말을 듣자마자 끔찍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유재원이 었다.

"요즘 대부업체들의 행태가 가관 입니다."

황재홍이 목소리를 높였다. 유재 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업체들 의 횡포는 유재원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의 유재원은 대부업체들과는 조금도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ID 그룹의 현황을 보면 R&D 비용을 크게 책정해서 돈을 펑펑 쓰라고 만든 연구소 같은 일 부 특별한 계열사나 타임워너넥스 트컴과 같은 막 합병된 계열사들을 제외하면 알아서들 돈을 잘 벌고 있었다.

대부업체들과의 인연은 당연하게 도 전생의 일이었다.

기업하던 사람들이 망하는 루트 에서 사채는 빠질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제1금융권인 시중 은행에 서 더 이상 대출이 되지 않으면, 새마을금고 같은 제2금융권에 가게 되고, 거기서도 안 되면 사채나 대 부업체 말고는 답이 없었다.

유재원도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 렸고, 거기서부터 헤어 나올 수 없 는 수렁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불법추심이 어떻게 사람을 말려죽이는 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유재원뿐이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자기들 스스로 제3금융권이라고 말하면서 거리에 전단을 뿌리고 있 습니다."

현황 보고를 하는 황재홍의 목소 리가 높아졌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말은 못 하고 있었지만, 멍청한 삐끼들이 전단이 나 카드를 ID 인베스트먼트 영업장 앞에다가 몽땅 뿌리기도 했기 때문 이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영업장을 찾는 사람들은 그나마 여윳돈이 있 어서 재테크를 하려고 찾아오는 것인데, 그냥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 는 걸 보고 막 뿌리고 가버리는 것 이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효과는 그때 뿐이었다. 삐끼들이 대부업체에 직 접 고용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홍보 대행업체를 끼고 하는 거라서 법적인 책임을 묻고자 해도 대부업체를 정확하게 타격하는 게 힘든 상황이었다.

"제3금융권이라. 이름은 그럴 듯 하네요. 대부업체들의 이자율이 얼 마나 되죠?"

"보통은 50-56% 선입니다."

50% 이상이라니!

어마어마한 이율이었다. 100만 원을 빌리면 딱 1년 뒤에 156만 원을 갚아야 한다는 의미다. 유재 원을 완벽한 파산으로 몰아넣었던 대부업체의 이자율은 25%였는데, 지금은 그 두 배라니 할 말을 잃었 다.

"이게 합법적인 이자란 말이죠?"

"예, 회장님. IMF의 조치로 이자 상한제가 폐지되어서 불법 추심만 안 하면 그 이상을 받아도 합법적 인 대부업체의 영업 활동이라고 합 니다."

IMF가 드리운 그림자는 아직도 강렬했다.

유재원이 IMF에 개인 출자로 힘 을 한 번 땠고, 백호 펀드 운영으 로 또 한 번 뺐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IMF가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적인 정책들은 한국에 서서히 뿌리 를 내리고 있음을 대부업체만 봐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대부업체들의 자금은 어디서 오 는 거죠?"

이어진 유재원의 물음이다.

"99% 일본 자금입니다. 불법적 인 것도 있고, 합법적으로 들어온자금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한국 에서는 약탈적인 영업 활동을 손쉽 게 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안이지만, 굳이 이렇게 물어보는 건 함께 자 리한 사장들과 임원들에게 이를 상 기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일본 공 략 성공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좋아 했던 본인도 반성하는 차원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유재원이 큰돈을 벌어 들일 때, 일본에서도 한국에 큰 빨 대를 꼽고 골수를 빼먹고 있던 것 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재원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사장단과 임원들 모두 가 집중했다. 이렇게 공적인 자리 에서 잠깐 침묵 중이던 유재원은 언제나 깜짝 놀랄 결단을 보여줬다 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대부업체 설립에 제약이 있나 요? 이율 하한제나, 자본금 규모 등등 해서요."

"없습니다. 덕분에 우후죽순 생 기고 있는 것이고요."

황재홍이 바로 대답했다. 제3금 융권이라고 칭하면서 영업하는 걸 보고 이상하다 싶어서 조사를 해본 것이고, 그게 정식 명칭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약을 파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진출하죠."

유재원은 간단히 말했다. 그러자 반응이 매우 즉각적이었다.

"저기, 회장님. 대부업체에 대한 이미지는 지극히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사업에 진출한다면 비난 의 화살이 다 몰릴 겁니다."

대비하고 있던 황재홍이 바로 반 대 의사를 표명했다. 최강욱을 비 롯한 임원들도 이와 같은 마음인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홈, 그래요? 설마 제가 대부업 체와 똑같은 조건으로 진출하겠다 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럼 실망 인데……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대부업 은 어떤 형태입니까?"

최강욱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 다.

유재원은 다른 생각이 있다지만, 대부업 진출은 리스크가 큰 사업이 었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게 선 하게 보일 정도였다.

"제가 일본에서 돈 좀 벌었다는 건 다들 아시죠?"

최강욱은 유재원의 말에 얼굴이 좀 더 굳어졌다.

일본에서 ID 인베스트먼트를 비 롯한 헤지펀드들이 한바탕 놀고 떠 났다는 건 한국에서도 크게 다뤄진 뉴스였다. 한국이 IMF 구제 금융 을 신청할 때 일본이 깨소금 맛이 라고 비웃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 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일본이 당하는 꼴을 보니 국민들의 마음에 뭔가 꼬여 있던 게 조금씩 풀렸다다. 덕분에 언론 의 보도 비중도 절로 커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유재원이 일본에서 얼마를 벌었는지는 언론들이 모두 궁금해 하는 사안이었다.

더욱이 일본 대장성 증권 감독국 이 ID 인베스트먼트의 일본 지부인 신일본 투자은행과 사장인 빈센트 그린힐을 조사했다는 뉴스도 나오 면서 뭔가가 있구나 하고 감을 잡 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다들 도대체 얼마를 벌었나에 대한 관심 이 최고조에 올랐다.

반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소수 였다. 최강욱과 레밍턴 그리고 빈 센트 그린힐 유재원이 얼마를 벌어 들였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강욱은 유재원이 큰 돈을 버는 기쁨에 중독되어서 이제는 대부업체까지 하려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에 얼굴이 굳어진 것이다.

"400억 달러 좀 넘어요. 그런데 일본의 자금이 한국에 들어와서 고 리대금업을 하니 마음이 매우 나쁘 네요. 그래서 차라리 제가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최강욱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하지만 아 직은 일렀다.

"출자금으로 100억 달러 정도는 무리 없이 낼 수 있죠. 이 돈을 가 지고 월 최대 200, 300만 원 정도 의 소액 대출만 하는 업체를 차릴 까 하는데요. 금리도 5% 이하로만 받고요."

유재원은 일본 공략을 시작할 때 100억 달러를 다 잃어도 된다는 결 심을 하고 들어갔었다. 그 마음이 연장되어 소액대출 전문 업체를 차 리는 것으로 다시금 구체화된 것이 다.

"5%입니까? 아! 월 5%라는 말 씀이시지요?"

황재홍이 순진한 표정으로 되물 었다. 이에 유재원은 단호히 답했 다.

"에이, 저 유재원이에요."

그것도 본인의 이름 석 자를 대면서 말이다.

여의도의 정치인이라면 그 이름 석 자는 너무도 가벼웠을 테지만, 유재원은 달라도 확실히 다른 사람 이었다.

"당연히 연 5%란 말이지, 설마 월 5%겠어요."

100억 달러는 현재 환율로 계산 했을 때, 무려 15조 원이 가뿐히 넘는 거대한 자금이었다. 300만 원 씩, 5백만 명에게 해줄 수 있는 엄 청난 자금이었다. 그걸 연 5%이자 로만 대출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시점이라면 연 5%의

금리도 상당히 큰 이율이었다. 하 지만 지금은 IMF 구제금융 시기였 다는 게 중요하다.

"연 5%라면 제1금융권보다도 저 렴한 금리입니다!"

황재홍이 유재원의 구상을 듣자 마자 깜짝 놀랐다. 시중 은행들의 일반적인 신용대출 금리는 10% 후 반대였다. 그런데 5%면 반값보다 더 저렴한 금리였다.

"일본처럼 제로 금리로 하고 싶 은 마음이지만, 그러면 필요도 없 는 사람들이 다 받을 테니 5%로 잡은 거예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대부업체의 이율이 높은 건, 그만 큼 상환율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50%가 넘는 이율이 용납될 수는 없죠. 제가 말하는 건 수천만 원 대의 대출이 아니라, 당 장 생활 자금이 없어서 가족이 뿔 뿔이 흩어지고, 가정이 파괴되는 사람들을 위한 긴급 생활 자금 대 출이에요. 그래서 월 상한액도 300 만원 정도로 잡았고요. 대신 대출 은 월마다 신청할 수 있는 거죠. 경제적 어려움이 한 달만에 끝나긴 어려울 테니까요."

유재원의 자세한 설명에 최강욱을 비롯한 사장단들은 무슨 구상인 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소액 저금리 대출이라 는 건 이제껏 상상도 못한 일이었 던 탓이다. 유재원도 이 자리에서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린 건 아니다.

방글라데시의 무함마드 유누스라 는 사람이 그라민 은행이라는 걸 만들었다. 빈곤층에게 대출을 해줘 서 자력갱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이걸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 지금 유재원이 발표한 생활 자금 대출이다.

"서민 구제는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입니다. 1금융권 은행도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는 것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데, 소액 대출에 금리도 저렴하면 더욱 기승을 부릴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 지면 회장님께서 출연하는 자금이 아무리 커도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최강욱의 경우엔 거부감을 보였 다.

순식간에 유재원의 이번 구상이 망할 거라는 견적이 떨어진 모양이 다.

"부회장님 말씀처럼 100억 달러 의 출자금이 있더라도 돈을 떼먹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금고의 고갈도 빨라지겠죠."

유재원도 순순히 수긍했다.

"다만 저는 100억 달러 이상으로 는 더 출자할 생각은 없어요. 그리 고 우리 한국 국민들의 선의도 믿 어요. 금 모으기 운동도 자발적으 로 벌인 분들이에요. 우리의 서비 스로 불을 끈 안도감을 느낀 분이 라면,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다음 사람을 위해서 꼭 상환해주실 거예 요."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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