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58화 (458/1,007)
  • 23권 17화

    일단 셰브롱 측은 고베 강철, 고 베 조선소 고소하기로 했다.

    고베 조선소에서 제작 중이던 배 는 물론, 현역인 LNG 운반선에도 조작된 품질의 강철과 합금이 광범 위하게 사용되었음을 확인했다. 일 부는 정상 제품과 품질이 크게 다 르진 않았지만, 대부분은 품질의 수준이 매우 떨어졌다.

    이은 곧 선박의 내구성, 안정성 에 큰 영향을 끼치는 심각한 문제 였다. 셰브롱 측은 미국이 먼저 조 치하기 전에 고베 강철 제품이 쓰 인 배들의 점검을 시작했다. 심각 한 문제가 나올 경우 폐선하는 것까지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셰브롱이 이렇게 나오자 다른 메 이저 석유 업체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고베 강철이 쓰인 배에 대 한 추적이 시작하면서 셰브롱과 같 은 수순에 들어갔다.

    이러한 조치는 모두 심각한 손실 을 발생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손실은 문제의 원 인인 고베 강철, 그리고 고베 조선 소를 거느린 미쓰비시 중공업에 배 상을 청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만약 고베 조선소가 감당하지 못하 면 모기업인 미쓰비시 그룹에 직접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했다.

    발표는 무려 프레더릭 테일러 2 세가 직접 했다. 덕분에 파급력은 대단했다. 오늘 하루만 미쓰비시 계열사들의 주식들은 기본 -5%였 고, 미쓰비시 중공업은 -15%를 넘었다.

    덕분에 고베 강철에 이어 미쓰비 시 중공업의 사장과 임원들이 도게 자를 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왔 다.

    안타깝게도 정식 도게자는 아니 었다. 손을 바닥에 붙이고 무릎까 지 꿇는 건 아니었고, 그 꼿꼿한 허리가 90도 정도로 굽혀지는 정도 였다. 한국의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는 오만불손한 태도였던 미쓰비 시 임원들이었는데, 이번엔 너무도 공손했다.

    대신 여타의 다른 사과 기자회견 과 마찬가지로, 피해 구제에 대한 방안은 지극히 미비했다. 어마어마 하게 큰돈이 걸린 판이었으니, 곧 장 배상하겠다고 하는 건 무리였을 것이다.

    더욱이 이 모습도 아베에 비하면 좀 나은 것이었다.

    관방장관이었던 아베는 끝까지 부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본인이 고베 강철에서 근무하던 시절 만든 문서가 증거로 나오자, 바로 퇴출되었다.

    외조부의 힘도, 집안의 강력한 자본력도 추락하는 지지율 앞에서 는 아무런 방패막이도 되어 주지 못했다.

    다만 이번 일로 자리에서 물러나 는 건 아베뿐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참 신기하네."

    유재원은 혀를 찼다. 60년부터 80년대 말까지 과격한 시위를 했던 나라가 일본이었다. 전학공투 회의 라는 걸 전국적으로 조직해서 사회 운동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방법이 과격해도, 행동하는 사람들은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어디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인터넷은 물론 신문과 방송으로 일본의 공적 연금이 투자 실패로 천문학적 손실을 냈고, 심지어 손 실금을 메꾸기 위해 수급자에게 지 급할 돈을 멋대로 줄여 지급한 게 밝혀졌지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소수의 시민 단체가 나와서 시위 를 한 게 전부였다.

    "일본은 인터넷의 영향력이 아직 크지 않은 건가?"

    한국이나 미국을 보면 그것도 아 니었다. 일본도 인터넷 보급이 제 법 빠르게 진행 중이었고, 전자상 거래도 활발했다. 덕분에 넥스트컴 의 여러 자회사 중에 일본은 미국 과 유럽 다음으로 중요한 거점이 되었을 정도였다.

    최대한 좋게 봐준다면, 전공투 세대의 몰락 이후 일본 국민들은 불의에도 어떻게 분노해야 할 지 까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정치 세 력, 관료 집단 그리고 재계는 마음 놓고 유착했다. 스캔들이 터진 지 금도 마찬가지로 흔들림 없이 작동 했다.

    고베 강철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 진했고, 공적 연금 파문에도 책임 지고 옷을 벗는 사람들은 없었다. 지금까지 사퇴는 명명백백한 증거 가 나온 아베 한 사람만이 유일했 다.

    사실 이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유재원이다.

    "사퇴가 아니라, 체포되어야 하 는 거 아냐?"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국민의 시 선이나 국제적 평판을 위해서 경찰 조사같은 쇼라도 해야 한다. 하지 만 일본은 그런 것도 없었다.

    이렇게 보면 마치 유재원의 일본 공략은 다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일본 공략 은 기대 이상으로 순항 중이었다.

    다이너마이트는 제대로 터졌다.

    이러한 일본의 후진적 모습을 전 세계가 똑똑히 지켜보았기 때문이 다. 유재원은 일본 국민들의 미적 지근한 반응에 질렸다. 대신 새롭 게 눈을 돌린 곳은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 일본의 치부를 퍼트리는 것이었다.

    경제 대국이고 선진국이라 생각 했던 일본은 거대한 스캔들이 터져도 권력과 가깝다면 쉽게 무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왜곡에 실망하는 선진국의 학자들이 많았다.

    유재원이야 새로울 게 없었다. 일본은 역사마저도 국가 단위에서 왜곡하는데, 공적 연금 조작이야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대신 이렇 게 되자 새롭게 조명 받는 뉴스도 있었다. 소수의 경제학자가 제기했 던 일본의 경제 통계가 이상하다는 주장이었고, 일부 데이터는 사실로 드러나기까지 했다.

    특이한 건 일본 국민들의 반응이 다. 국내 뉴스로 조작 스캔들이 보 도 되었을 때보다 국제 뉴스로 대 대적으로 보도되자 훨씬 격한 반응 이 나왔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런 폭로 기사를 쓴 기자들을 향한 극 우단체의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기형적인 반응이었다. 동시에 시간이 지날 수록 신뢰의 일본이라는 타이틀에 치명적인 손 상이 갔다.

    이는 곧 신용의 추락이었다. 신 용의 추락은 현대 경제에서 필수인 예측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더욱이 현재 일본에는 전 세계 각국에서 들어온 핫머니들이 외환 시 장, 주식 시장에 극심한 혼란을 주 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 여론에 동의하지 않 더라도 일본 경제가 너무도 혼란스 러워 발을 빼려는 이들이 크게 늘 어났다.

    이들의 이탈은 곧장 닛케이 지수 를 직격했다.

    고베 강철 스캔들 이후에는 17,000대로 주저앉은 후에 횡보 중 이었던 닛케이 지수는 다시금 폭락 하기 시작했다.

    추락의 속도는 너무도 가파랐다.

    가파르게 떨어져 내리는 닛케이 지수의 모습은 마치 후지산이 무너 지는 것 같았을 정도다.

    #378 세기말

    -후지산이 무너졌다!

    월스트리트의 대표적 경제 미디 어 그룹인 블룸버그의 7월 1일자 인터넷 판의 타이틀 기사 제목이었 다. 단순히 글로만 있는 게 아니라, 후지산이 와르르 무너진 것 같은 조잡한 그림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중요한 점은 이 기사를 올린 미 디어가 월스트리트의 대표 경제 미 디어라는 점이다. 후지산이 무너졌 다는 단순 명쾌한 그림이 설명하는건, 일본의 경제가 그림 그대로, 와 르르 무너졌다는 뜻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지."

    유재원의 우쭐거리는 말을 티파 니가 받았다.

    "둘? 그러면 하나는 외환 시장, 다른 하나는 주식 시장?"

    "오! 정확해."

    정답이었다.

    일본은 외환 시장, 주식 시장이 라는 국가 경제의 중요한 두 축이 동시에 무너졌다. 한국이 외화 부 족으로 무너졌다면, 일본은 오랫동 안 관행이란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불법적인 범죄가 일시에 드러나며 자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안타까운 점은 파괴력의 강도는 한국만큼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국가 신용도가 크게 훼손되었고, 그로 인한 외국 자본들의 이탈이 시작되었다. 엄청난 이탈은 아니었 다. 대신 조지 소로스처럼 작정하 고 먼저 들어와 있던 투기 자본들 이 그러한 이탈을 거대한 것처럼 증폭해서 시장을 교란했다.

    덕분에 유재원은 오랜만에 샌프 란시스코 집을 찾아온 티파니와 여 유로운 금요일 밤을 보낼 수 있었 다.

    유재원이 일본에 올인하고 있던 동안 티파니도 바빴다.

    23번 유정에 대한 처리, 지질 데 이터 분석을 위한 새로운 연구소 설립 준비 등등. 텍사스 지질 데이 터 분석 성공에 따라온 보따리를 처리하느라 한 달은 눈코 뜰 사이 가 없었다.

    "그래서 무너진 두 개의 광산으 로부터 얼마나 캐냈어?"

    티파니는 활화산인 후지산을 광 산에 비유했다.

    광산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 유재원이지만, 찰떡같이 귀에 붙었다. 일본은 아주 거대한 돈이 묻혀 있던 광산이라고 말해도 무방했다. 다만 거기에 묻혀 있는 돈을 캐내 기 위해선 광산 위에 있는 겉으론 그럴싸하게 굴러가고 있던 나라를 뒤집어 놓아야 가능하다는 게 문제 였을 뿐이다.

    유재원은 기어코 일본을 뒤집어 놨고, 일본이 세계에 자랑했던 경 제대국이란 이름에 커다란 상처를 냈다.

    "음, 글쎄? 얼마지?"

    그런데도 유재원은 티파니의 물 음에 궁한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티파니에게 민감한 내용을 숨기려고 그런 건 아니다. 이미 약 혼 계약서는 물론 혼인 계약서까지 써놓은 사이였으니, 이 정도 일은 비밀로 할 필요도 없었다.

    "설마!"

    유재원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티 파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설마, 아직 정산도 안 해본 거 야? 아니 왜에?"

    역시 티파니다.

    유재원의 스타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응, 아직이야."

    티파니는 유재원의 대답에 알겠 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얼굴은 아니었다. 하긴, 웬만한 사람들은 대박이 터 졌으면 연신 계산기를 두드리며 얼 마를 벌었나 따지고 있었을 것이다.

    티파니가 텍사스에 최근까지 반 쯤 살았던 것도 23번 유정의 정산 을 확실하게 매듭짓기 위함이었다.

    프레더릭 테일러 2세가 채산성 있는 매장량이 1,200만 베럴이라고 말했던 수치도 사실 제대로 조사가 끝난 것도 아니고 대략적으로 알아 본 것에 불과했다. 더욱이 티파니 는 유재원이 말했던 가로로 뚫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허투루 넘기 지 않았다. 채굴 기술에 대해서도 따로 알아보느라 텍사스에서 한동 안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유재원도 일본 공략이 잘 끝났으니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얼 마나 벌었는지 따져 보는 게 정상 이지만, 어제 이후로 컴퓨터를 켜 보지도 않았다.

    "클린턴 이 양반 때문에 김이 빠 져서 말이야."

    "클린턴? 우리 대통령 말이야?"

    유재원은 티파니의 물음에 고개 를 끄덕였다.

    며칠 전.

    -엔화 환율 1달러에 92엔

    -닛케이 지수, 13,000선 붕괴

    유재원이 시작한 일본 공략이 최 고치에 달했던 때의 성적이었다.

    엔화의 가치는 치솟는데, 닛케이 지수는 이전 최저점이 무너졌다. 그리고 수치화되지 않는 요소지만, 일본 제품에 대한 신뢰성도 바닥을 쳤다.

    품질 조작 사태는 비단 철강 제 품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음식부 터 가전제품까지 다는 게 이어진 때문이다. 심지어 왜곡하고 있다는 재조명되었으니 유재원의 일본 공 략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광범위한 사태였 폭로로 밝혀졌기 일본이 역사까지 것도 이번 일로 유재원은 일본은 완전히 쓰러뜨 리기 위해서 최후의 한 방을 준비 하는 중이었다. 엔화를 더 사고, 주 식 시장에는 손해를 감수하고서 주 식을 싸게 파는 것이다. 공매도 같 은 수단도 당연하게 이용할 생각이 었다.

    그렇게 유재원이 킬 타이밍을 잡 을 때, 전화 한 통이 왔다.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여보세요?"

    -헤이, 젊은 친구! 이 정도면 충 분하지 않나?

    유재원의 티파니폰으로 직접 전 화를 한 클린턴은 다짜고짜 그만했 으면 한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 했다.

    그만해 달라는 건 당연히 일본 공략이 었다.

    명분은 간단했다. 일본 경제의

    침몰은 미국의 국익, 동아시아의 평화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만하자고 하 는 것이다.

    그걸 듣고 유재원은 딱 감을 잡 았다. 짜증도 확 을라왔다.

    명분은 동아시아 평화, 미국의 국익 등등을 말하지만, 정황상 일 본으로부터 뭔가 로비를 받고 유재 원에게 그만하자고 말하는 것이 분 명했기 때문이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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