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45화 (445/1,007)

-23 권 4화

"중국이요. 중국이 개혁 개방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중국식 자본주 의를 키우고 있잖아요. 거기에서 소외된 게 북한이거든요."

유재원은 노트북을 전명헌에게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종전 선언을 하게 되면 중국이 문제로 남아요. 중국은 미국과의 중간지대로 북한이 있는 게 좋거든 요."

"그러면 재원이 네 말은 우리에 겐 종전 선언을 할 것처럼 하면서, 중국을 자극해 보려는 속셈이었다 는 거냐?"

"아직은 속단하긴 이르죠. 하지 만 이번 정상회담이 끝날 때까지 종전 선언 언급이 없다면 100%죠. 안타까워요. 그런다고 중국이 북한 에 예전처럼 경제 지원을 해주는 것도 아니거든요."

유재원의 입은 민감한 중국 운운 하며 거침이 없었다.

당연히 이러한 강경 발언에는 의 도가 듬뿍 담겨 있었다. 심지어 전 명헌 들으라고 하는 소리도 아니었 다.

놀랍게도 효과는 확실했다.

다음 날, 직접 전명헌의 숙소까 지 찾아온 김정일은 대접이 소홀한 것 같다며 하루 더 머물고 가시라 고 권했다.

배포가 큰 전명헌은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합시다'라며 곧장 화답 했다.

예정에도 없이 정상회담이 하루 연장되자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톱니바퀴처럼 착착 짜였던 일정에 서, 아무것도 확정이 되지 않은 일 정들이 생겨난 탓이다. 경호부터 수행단 스케줄까지 완전히 새로 조 정해야 했던 탓이다.

그렇게 생긴 혼란 속에서 역사적 인 일이 일어났다. 비공식 일정의 마지막 날 밤. 전명헌과 김정일의 비공식 정상회담이 이어진 것이다. 배석자도 최소화한 그야말로 극비 속에서 이뤄진 회담이었다.

그렇게 둘이서 만난 다음 날, 출 국 직전 두 정상의 공동선언문이 발표되었고, 맨 마지막 줄에는 종 전 선언을 추진할 것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한 줄의 문장이었지만, 담겨진 의미는 거대했다.

분단이라는 역사적 비극 이후, 남북 간의 끝없이 이어지던 경쟁체 제를 벗어던지고, 평화라는 새로운 미래로의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을 전 세계에 선언한 것이다.

한반도발 특급 속보에 전 세계가 뒤은들렸다?

#377 미션 임파서블

공식 일정으로 출국 하루 전, 유 재원이 전명헌에게 호출되었다. 전 명헌은 북한의 미적지근함에 너무 도 답답함을 느끼며 이를 토로하러 유재원을 부른 것이었고, 그 자리 에서 유재원은 중국을 운운하면서 강경한 말을 쏟아냈다.

전명헌도 그에 동의하며 목소리 를 키웠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 림이었는데, 다음 날 김정일이 갑 자기 하루 더 묵고 가라는 소리를 했고, 연장된 그 시간에 새 역사가 쓰였다.

두 가지 사건은 동떨어져 있는 듯했지만, 사실 하나였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면, 유재원 이 중국에 대한 자료를 띄워준다면 서 켠 i웍스 노트북 화면에는 자료 가 아닌, 딱 하나의 문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도청 당하고 있으니, 제가 하는 말에 맞장구만 쳐주세요.

백화원 초대소는 북한이 국빈을 모시려고 만든 건물이었다. 그리고 모든 방에는 도청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유재원을 일찌감치 상기하고 있었다. 북한 공부를 하면서 자연 스럽게 알게 된 일이었다.

물론 전명헌 대통령 경호팀이 놀 고만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미 국에서 도입한 도청 탐지기로 모든 곳을 이 잡듯 뒤졌고, 의심스러운 장치도 몇 발견했다. 그런 의심스 러운 장비들은 북에 항의하며 모조 리 철거했고 안전하다는 판정이 나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재원은 도 청 중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 은 이와 똑같은 케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베였다.

그는 일본 총리를 두 번이나 했 던 존재였다. 한 번은 짧게 맛만 보다 끝났고, 다음 한 번은 제법 길었다. 두 번의 총리 생활을 하면 서 이뤄낸 공통점이라면 그때마다 본인과 나라를 대차게 말아 먹은 최악의 총리였다는 점이었다.

그런 아베가 총리를 두 번이나 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으로부터 납북 일본인의 존재를 인정받고 송 환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유재 원이 구사했던 것과 같았다.

아니, 유재원이 구사한 방법이 아베의 방식이었다. 숙소가 도청된 다는 걸 알고서, 고이즈미 총리에 게 북한과의 외교 정상화를 할 필 요가 없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그 걸 다 듣고 있던 북측은 이를 진심 으로 오해했다.

당장 일본의 돈이 필요한 북한은 일본이 대화의 장을 깰까봐 납북일 본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까 지 하는 실책을 보인 것이다.

물론 납북일본인을 만든 건 북한 의 크나큰 잘못이었다. 이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김정일이 사과까지 하는건 실책이었다.

그 일로 인해 일본에 보수당인 자민당의 지지가 폭발했고, 일본의 우경화가 빠르게 가속화되었으니 말이다. 반면 북한은 당장 일본으 로부터 돈을 받긴 했지만, 납치 국 가, 불량 국가라는 낙인이 찍혔다. 전에도 그런 이미지가 없던 건 아 니었지만, 김정일의 사과로 국제사 회에서 공식화되었다.

역사적 분기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큰 사건인지라 유재원은 확 실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래서 강 경 발언을 쏟아냈던 것이다. 확률 은 반반으로 보았다.

"아무래도, 이 양반은 아웃사이 더에 쫄보가 맞는 것 같아."

아베와 마찬가지로 유재원의 도 박이 성공했다. 역시나 김정일은 생각보다 쫄보였다.

진짜로 중국 때문인지, 아니면 내부적인 다른 사정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정에 없었던 하루가 더 연장되고서는 미적거리던 것들 이 싹 사라졌다.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의 최상 층 펜트하우스에서 북한에서의 일 을 복기하던 유재원은 그렇게 김정 일이라는 사람에 대한 결론을 내렸

"그게 아니라면 답이 없는 거 지."

결정적인 순간 머뭇거렸던 건 김 정일의 개인적 특징이라면, 이제까 지 북한이 보였던 행태들이 일목요 연해진다. 이번 98 정상회담은 물 론이고, 회귀 전에 보여줬던 모습 들까지 모두 관통할 수 있다.

유재원은 이러한 핵심을 담은 김 정일에 대한 분석 자료를 만들었고, 전명헌 할아버지에게 직접 전송했 다.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말까지 담은 극비 자료이니 청와대 수석들 이라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작성을 마친 문서를 다시금 정독 하며 내용을 검토한 유재원은 2% 모자람을 느꼈다. 귀에 딱 들어오 는 요약이 빠진 것이다. 이에 대해 유재원은 '겉으로 보기와 달리 아 웃사이더 성향과 겁쟁이 성향이 있 음. 어떤 상황에 대해 본인이 그리 는 그림과 다르게 전개될 경우 예 측하지 못하는 돌발행동을 할 수 있으므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건 위험함'이라는 문장을 추가했다.

ID 워드프로세서에 추가된 맞춤 법 검사기로 문서 전체를 스캔해 오타를 바로잡은 다음, 암호화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면서 기지개를 켰비로소 긴 터널을 뚫고 나온 느 낌이 었다.

그러나 아직 결승선을 넘지는 못 했다. 미국의 OK사인을 받아 완전 히 끝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 다."

미국의 대북 기조는 6.25 이후부 터 쌓인 대결의 역사가 만든 산물 이었다. 21세기 개막과 거의 동시 에 터진 911 이후로 그 기조는 더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돌연변이 같은 대통령이 아니면 그 기조를 쉽게 깰 수가 없었다.

그나마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 는 클린턴이라면 가능성이 높았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자극하고 북 한의 역할 변화가 가져다 줄 이점 에 대해서 어필하면 될 것 같았다. 사실 이런 일도 전명헌 정부와 청 와대, 외교부도 하고 있을 일일 테 지만, 유재원처럼 적재적소에 빠르 게 뿌리고, 클린턴과도 직통 전화 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유재원은 앞으로의 스케줄을 살폈다.

"이제 굵직한 스케줄은 다 치렀네."

그나마 남아 있는 건 제주도 현 장 방문이었다.

"그러면, 제주도를 보고 난 다음 에 일본인가?"

제주도 개발도 ID 그룹의 큰 과 제였다. 하지만 차기 PC 운영체제 발표나 타임워너와의 합병 등, 워 낙 거대한 비즈니스가 연속적으로 있다보니 존재감이 미미했다. 하지 만 몇 년 전부터 꾸준하게 개발이 이뤄지고 있었고, 어느덧 가시적으 로 보이는 단계까지 올라왔다.

한국에 들어온 김에 들려서 푹

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한국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니 가 족이나 친지들까지 모두 함께 가서 추억을 쌓자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이번에 출국을 하면 당분간은 들어 오지 못할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며칠 후.

유재원과 부모님 그리고 친척 식 구들이 제주도에 입성했다.

"환상의 섬 제주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출국장을 벗어나자마자 일단의 환영 인파들이 유재원과 가족들을 맞이했다. 바로 현 제주도지사였다. 이름은 신구범이고 소속 정당은 없 는 양반이었다. 관선으로 93년부터 제주도지사를 역임했고, 제1회 지 방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나가 당 선된 사람이다.

제주도의 특성 중 하나가 정당의 색 대신 괸당이라는 특유의 문화가 더 강하다는 점이었다. 정치적인 소신보다는 본인과 가까운 사람에 투표한다는 이야기다.

이걸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주도가 그동안 겪은 모 진 풍파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선 택이었다. 요즘 재평가가 한창인 43사건만 봐도 육지에서 넘어온 사 람들이 문제를 만들고, 비극을 벌 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재원의 명 성은 그 괸당을 능가할 정도였다.

덕분에 신구범은 물론이고 민주 당 소속의 우근민까지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제주도에 들어온 유재원 을 환영하러 나왔을 정도다.

"이야, 우리 재원이가 제주도에 서도 인정을 받네."

"당연하지. 한국에서 유일하게 IMF가 빗겨간 땅이 제주도라잖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대화는 환영 행사 중인 유재원의 귀에도 다 들렸다. 덕분에 살짝 민망해지 는 유재원이다. 하지만 틀린 소리 도 아니다.

유재원이 제주도에 투자한 돈은 10억 달러가 넘었고, 앞으로도 투 자는 계속될 예정이었다.

보통 기업의 투자는 시설과 공장 에 집중되는 터라, 직접 고용된 사 람들이 아니면 그 변화를 느끼기 힘들었다. 하지만 유재원의 개발은 제주도 전체를 골고루 개발하는 터 라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올레길 개발이었다.

걸어서 제주도를 둘러본다는 발 상은 21세기엔 대중화된 개념이었 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생소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예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했다. 걷기 편한 길 을 만들고, 길마다 가로등을 놓고, 안전 확보를 위해 CCTV도 설치했 다.

여기서 사용된 CCTV는 폐쇄회 로 TV가 아닌 인터넷과 결합된 CCTV로, 중앙에서 관제하는 시설까지 있는 시스템이었다.

당연히 이전에는 없는 물건이라 서 직접 ID 그룹에서 만들었다. 인 터넷으로 연결되는 CCTV는 ID 하 이테크 연구소가, 중앙 관제 센터 는 ID 테크놀로지의 서버 기술로 완성시켰다. 여기에 제주도 구석구 석에서 휴대폰이 펑펑 터지도록 TG 텔레콤과의 협업으로 중계소를 치밀하게 설치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유재원은 앞으로 무선 인터넷이 대중화되면 올레길 전체를 무료 와이파이 존으 로 만들어버릴 작정이었다.

제주도민들은 처음엔 유재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올레길 이 하나둘 완성되고 개통이 되면서 도민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제주도 에 오래 살았던 도민들도 그렇게 길을 걸어보니 제주도의 풍경과 바 다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 었다.

더욱이 올레길과 연계되어 개발 된 해안가나 옛거리, 돌담길 사이 사이에는 기존의 가옥을 최대한 살 려 리모델링된 카페와 식당이 들어 섰고, 거기에 고용된 이들도 다 도 민들이었다. 올레길을 찾아온 관광 객들이 늘어났고, 그들이 그 카페 와 식당을 찾으면서 도민들의 소득원도 다양해졌다.

인터넷에 맛집으로 소문이라도 나면 줄까지 세워지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서부터 방문 객이 좀 줄긴 했지만, 그래도 해외 관광 자유화 이후 폭락해버린 것보 다는 훨씬 상황이 좋았다.

더욱이 유재원이 진행 중인 개발 은 더 있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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