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43화 (443/1,007)

23권 2화

신한국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개로 갈라졌다. 다수였던 김영 삼 대통령의 세력은 한나라당이 되 었고, 노태우 대통령이 심어둔 옛 군부 세력은 민주한국당이라는 이 름으로 새 정당을 등록했다. 100석 이 넘었던 거대 정당이었는데, 그 렇게 둘로 쪼개지면서 한나라당은 68석이 되었고 민주한국당은 33석 이 되었다.

33석이니 국회 교섭단체를 별도 로 구성할 수 있고, 이를 통회 국 회의 상임위를 최소 하나, 많으면 두 개 정도를 챙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본회의에서 법을 통과시키려면 다른 정당들의 협 조가 필수였다.

"역시 재원이 너는 결정적인 순 간에 마음이 약해지는구나. 그 독 한 사람들한테 딜 정도로 되겠냐? 오히려 거래를 하자고 하면 기고만 장해질 거다. 차라리 우리 보고 살 려달라고 애걸복달하게 해야지."

전명헌의 말에 유재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니까 전명헌의 말은 노태우 전 대통령도 형장의 이슬로 만들어 버릴 분위기를 잡겠다는 이야기였 다. 노태우 전 대통령을 살리고 싶 거든 전명헌의 개혁 입법을 찬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김영삼은 더 간단하지."

"그래요?"

"선거자금에 복국집 사건이 있지 않느냐?"

복국집!

유재원은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이 곧장 떠올랐다. 이전 대선에 부산 에서 초원 복국이라는 복어 요리집 에 시장이며 부산 지방경찰청장이 며, 검사장 등등이 모여서 불법 선 거를 모의했던 일이 있었다.

공권력을 선거에 사용한 것은 물 론이고, 지역감정까지도 자극하자는 매우 불온한 결의를 하는 자리였다.

그 사건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던 유재원에게 딱 걸려서 증인까지도 확보했었는데, 국정원에서 가로채는 바람에 폭로는 불발로 끝났다. 전 재준이 제주도에 몇 년 귀향살이를 했던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전재준은 유재원의 연락 덕에 국 정원이 가로채기 전 증인의 안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본인 욕 심에 그걸 놓쳤고, 그로 인해서 전 명헌의 대통령 꿈도 5년이나 뒤로 미뤄졌던 것이다.

"와!"

사실 유재원은 그때, 초원 복국 집 사건을 터트렸다고 해도 전명헌 이 대통령이 된다고 장담할 순 없 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위기 상황에서 지지자들은 분산보다는 결집한다는 걸 수차례 선거를 통해 확인했다. 대통령 확률은 전보다 높아지겠지만, 100%는 아니었다.

전직 대통령들의 호감도 평가에 서 김영삼 대통령은 최악이었다. 전두환, 노태우보다 더 낮았다. 이 런 상황에서 초원 복국집 사건이 폭로된다면 김영삼 대통령의 정통 성 자체가 무너지는 일대의 사건이 될 것이다.

그나마 김영삼 대통령은 민선으 로 뽑힌 최초의 민주화운동 출신이 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IMF로 인 해 공든 탑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그 자부심은 있었는데 초원 복국집 사건은 마지막 남은 정통성까지도 무너뜨리는 사건이었다.

더욱이 전명헌의 위치는 당시와 는 차원이 달랐다.

단순한 후보 시절에는 파급력이 미미했을 테지만, 지금은 대통령으 로서 파급력을 어마어마하게 키울 수 있었다.

"이제 다 끝난 양반인데, 명예살 인까지 할 생각은 없다. 대신 새 역사 창조에 기여는 해줘야겠지."

전명헌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원 복국집 사건을 터트리는 것 보다 이런 쪽으로 활용하는 게 훨 씬 낫다는 판단에 유재원도 동의했 다.

다만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한나라당의 총재로 선출된 이회창이란 사람이 예전의 선거들과는 거리감이 있었던 탓이 다. 초원 복국집이나 선거자금에서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최고 의원들, 그리고 네임드라는 다선 의원들은 죄다 이 사건과 연 류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공수처가 없더라도 사건이 터지 면 모두 수사 대상이 되는 사람들 이었다. 공수처 저지를 위해 검찰 이 눈에 불을 켜고 여의도를 주시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처럼 초대형 떡밥이 떨어지면, 게다가 대통령의 하명 수사 방식이라면 그 들은 죽어 나가는 거다.

"좀 구식이지?"

입이 떡 벌어지는 유재원에게 전 명헌이 살짝 계면쩍은 얼굴로 물었다.

"아뇨, 정치는 현실이죠. 이상으 로만 먹고살 수는 없어요."

유재원은 딱 잘라 말했다.

유재원에겐 아주 오래전의 기억 으로 남은 정치인 중에 밑도 끝도 없는 이상주의자가 몇 있었다. 물 론 지금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근 미래의 일이었다.

본인만 깨끗하면 다 되는 줄 아 는 사람들.

그들은 까마귀들이 노는 정치판 에서 홀로 백로처럼 고고했다. 이 처럼 대비된 덕분에 존재감이나 인기도 매우 크게 얻었다. 하지만 그 로 인한 실책이 컸다. 적시에 적절 한 조치를 과감하게 해야 하는 상 황에서 손을 놔버린 것이다.

"재원이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느냐?"

"그럼요."

반면 전명헌은 불리한 상황을 뒤 집기 위해 이처럼 과감한 수를 던 질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던진 돌이 생각지도 못한 후폭풍을 부를 수도 있었지만, 올바른 목표 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거침이 없 었다.

어느 쪽이 좋냐고 물어본다면, 유재원은 당연히 전명헌이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현실에 반 영되지 않으면, 그건 공허한 메아 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수단이 좀 비상식적이고, 구태의연하지만 그 길밖에 없다면 기꺼이 가겠다는 자 세는 칭찬해줄 수밖에 없다.

"그리 말해주니 안심이 되는구 나. 그러면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 자. 북에 가기 전에 공수처는 끝내 는 거다"

"그렇게 빨리요?"

"빨리도 아니지, 대선 공약이었는데 말이다."

이번에도 전명헌 할아버지의 말 이 맞았다.

공수처 이야기가 처음 나온 건 전명헌의 공약에서부터였다. 이후로 꾸준히 논의가 되었고, 법안도 만 들어진지 오래되었다. 단지 야당에 서 계속 논란을 키우면서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었다. 전명헌은 노태 우와 김영삼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 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지 시간이 좀 된 모양인데, 유재원의 생각을 몰라 지금까지 보류했던 모양이다.

유재원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니 이제는 거칠 것 없이 밀고나갈 결심을 세운 모양이다.

"북에 다녀온 다음부터는 개헌 정국의 시작이니, 공수처는 가기 전에 끝내 놓는 게 좋을 것 같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저도 열심히 도울 테니까요."

"흐흐. 이 구정물에 네가 들어올 필요는 없다. 그냥 경제만 확실히 살려다오. 경제가 곧 내 지지율이 니 말이다."

그런 거라면 문제없었다.

유재원이 제일 잘하는 것이 바로 경제였으니 말이다.

며칠 후.

-민주한국당, 공수처에 대한 기 류 변화?

-공수처 입법화 급물살!

-새벽녘에 공수처법 깜짝 통과!

-한나라당 날치기 통과 인정할 수 없다.

-전명헌 대통령, 노태우 씨, 518 특별 사면 고려한다.

" 어마어마하네."

유재원은 모니터에 뜬 머리기사 를 보며 감탄했다. 청와대에 다녀 온 직후 쏟아진 주요 신문사들의 1 면 머리기사였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그 사 이 전명헌 할아버지는 유재원에게 했던 말을 지켰다. 지방선거를 돕 기 위해 대구와 경북으로 총출동했 던 민주한국당 의원들과 빠르게 접 촉했다. 그리곤 모종의 합의를 끌 어냈는지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통일국민당, 민주당 국회의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서 공전중이던 국회가 바로 정상화가 되었 다.

뒤통수를 맞은 건 한나라당이었 다.

사실 지방선거 기간에도 국회는 열린 상태였다. 하지만 다들 지역 구를 챙기느라 지방으로 나가 있어 국회가 닫힌 것처럼 보였던 것뿐이 다. 상경 소식을 들은 서울 지역의 야당 국회의원이 먼저 국회에 도착 해서 본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뒤이어 도착한 여당 국회의원들의 숫자에 밀려 뚫리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날치기였다.

재미있는 점은 한나라당 의원들 과 싸운 최일선의 국회의원들은 통 일국민당이나 민주당 의원들이 아 니라, 민주한국당 의원들이라는 점 이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같 은 당 소속이었는데, 순식간에 서 로를 증오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공수처법이 통과되자 전 명헌 대통령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을 발 표했다.

그러자 뒤늦게 여의도에서는 전 명헌 대통령과 민주한국당 사이에 있었던 딜에 대해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야합이니 사법 거래니 하면서 반발했고, 일부는 광주로 가서 지역 감정을 자극해보 기도 했다.

모두 효과가 없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동한 518 진상 조사 위원회가 활동하면서 그 간 왜곡되었던 명예가 바로잡혀지 는 중이었다. 게다가 김영삼 전 대 통령의 과감한 결단으로 전두환이 처형되면서 가슴에 맺힌 한이 많이 확실히 풀어졌다.

전명헌 대통령의 발표도 노태우 의 사면을 결정한 게 아니라 고려 한다고 했고, 전제 조건이 국민의 동의였다. 게다가 특별사면의 이름 도 518 특별사면이니 명분도 이보 다 확실할 수가 없다.

그렇게 몇 달이나 국회에서 논란 이었던 공수처 신설법이 통과되고 나서, 며칠 후가 지났다.

봄기운이 완연하게 오른 5월 3 일.

전명헌 대통령과 유재원을 비롯 해 국내 대기업 오너들로 구성된 수행단은 북한을 향해 출발했다.

북한에 들어갈 때는 자동차를 타 고 판문점을 넘어 육로로 가고, 귀 국은 비행기를 타고 서해 항로로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흐음?"

창밖을 보는 유재원은 이상하게 도 친근한 느낌이었다.

판문점은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 성 때문에 종종 텔레비전에 보도되 었던 장소였다. 심지어 북측 판문 각 너머로 도로를 타고 평양으로 가는 길도 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 장소를 실제로 보니 기시감이 강렬 했다.

심지어 도로의 사정도 비슷해서, 좋은 자동차임에도 승차감이 별로 라 느껴질 정도였다.

분명히 이 길은 중요한 전술 도 로일 텐데도 관리가 이 정도이니, 북한의 사정은 그야말로 뻔했다.

평양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이런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유재 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와아아아!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일시에 내지르는 함성에 유재원은 귀가 멍 한 느낌이었다. 군중이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함성을 내지르는 이들은 바 로 전명헌 대통령과 수행단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는 사람들이었다.

뉴스에서 많이 봤던 분홍색 꽃을 들고, 한복을 입고 나온 평양 시민 들이었는데, 딱 맞춘 함성과 손짓 이 기계적이라는 느낌까지 들게 했 다.

동시에 뉴스에서 봤던 모양새랑 너무 똑같아서 유재원은 기시감은 물론이고 친숙함까지 느껴질 정도 였다.

이후의 일정은 사전에 약속한 그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갔 다.

미리 다 정해진 것이었지만, 김 정일이 마치 깜짝 방문한 것처럼 평양 시내로 영접을 나왔다. 소떼 방북을 시작으로 북한에도 종종 다 녀온 전명헌이었고, 그럴 때마다 김정일과도 진짜 만났던 모양인지 두 손을 마주 잡는 둘의 모습에 어 색함은 없었다.

곧이어 북한군의 의장대 사열도 시작되었다.

공산권 국가들의 특징이 군대 제 식에서의 칼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북한의 군대는 최고였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전명헌 대통령을 위한 의 장대 사열을 보면서 멋있다는 느낌보다는 연습하느라 힘이 들었겠다 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 몸은 미필이지만, 전생에서 는 군대에 다녀와 개고생을 했던 터라, 제식 연습이 얼마나 힘든 일 인지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그렇게 의장대 사열을 끝낸 전명 헌 대통령과 유재원을 포함한 수행 원들은 곧 백화원 초대소라는 북한 최고 수준의 영빈관으로 안내되었 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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