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권 21화
P&A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것 도 아니었다.
동화 은행의 경우 퇴출을 받아들 이지 못한 채로 분기탱천한 은행 서버 관리자가 서버를 다운시키고 도망을 가버려서 전산망이 마비되 기도 했다. 동화 은행은 실향민들 이 자산을 모아 설립한 독특한 은 행이었고,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들, 실무진도 실향민 출신이 많았다.
이번에 사고를 친 그 사람도 실 향민이었고, 고향을 잃고 내려와 살다 보니 좀 거칠고 다혈질적인 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이에 대해 화가 폭발한 전명헌은 사고를 친 사람을 콕 찍 어 엄벌에 처하라고 지시했다. 전 명헌도 실향민이라서, 남한 사람들 이 실향민을 차별한다는 소리 같은 건 애초에 나오지도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노사정대혁신 위원회에서의 전명헌이 보여준 활 동력도 대단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절반의 개정 을 했고, 전명헌의 임기 초에 나머 지 개정을 하면서 완성된 노동법 개정안은 사실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노 동법 개정을 통해 기업이 그렇게나바라던 비정규직이라는 직종이 새 로 생겼지만, 그 숫자가 생각보다 는 적었던 건, 비정규직 고용이 그 렇게 기업에 이득은 아니었던 탓이 니 말이다.
그렇기에 전명헌은 노동자 측에 게도 고통 분담을 해야 할 것 아니 냐면서, 큰 폭의 양보를 받아냈다.
그것은 하루 8시간 노동이었다.
평범한 국민들은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하루에 8시간 일하는 게 왜 노동자들의 고통 분담이냐는 물음표가 켜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동계와 기업 측에게 상당한 양보를 받아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양보를 받아냈다'는 건 전 명헌의 입장에서 그랬던 것이고, 유재원이 보기에는 반 강제였다.
IMF 상황에서도 대기업 소속 노 동자들이나 공기업 직원들, 공무원 등은 그 자리가 탄탄했다. 그렇기 에 오버타임 근무도 열심히 하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노력하 고 있었다.
하지만 전명헌은 그렇게 오버타 임 근무를 하면서 몸을 축내기 보 다는 8시간만 딱 잘라 근무를 하자 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에게는 부 족한 노동력을 사회에 넘쳐나는 실업자들을 고용해서 충당하라는 것 이다.
두 사람의 몫의 일감을 한 사람 에게 밀어주고 임금은 쥐꼬리만큼 올려주는 식으로 노동 계약을 하는 게 21세기의 기본적인 흐름이었다 면, 전명헌의 방식은 시대에 역행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노동자 측은 대놓고 반대 하진 못하더라도 거부감을 강하게 표시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수익도 줄어드니 말이다. 기 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를 더 고용하는 건 부담이었으니 말이 다. 하지만 전명헌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노사 정대혁신 위원회를 통과해 사회적 합의가 되었다.
당장은 교대 근무가 수월한 생산 직부터 적용을 하고, 최대한 빨리 사무직에도 일괄 적용하기로 했다. 공무원들이나 공기업 역시 마찬가 지다. 더욱이 전면헌은 단순히 말 로만 끝내는 게 아니라, 내년도 예 산에 신규 고용 예산을 만들기로 했다.
이러한 노사정대혁신 위원회의 성과는 유재원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특히 8시간 근무를 우격다짐으로 이뤄낸 것은 대단하다고 말해도 부 족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국에서 일자리가 그렇게나 부족한 건, 대학생부터 노인들까지, 남녀노 소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버타임도 마다 하지 않으니, 일자리가 늘 부족했 다.
이번 8시간 타협이 한국에 정착 되면 한국인들의 일상에도 대대적 인 변화가 있게 될 것이다. 다만 줄어드는 근로 시간만큼 임금도 줄 어드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이렇 게 생겨난 일자리를 외국인 불법 취업자에게 넘어가는 것도 막아야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김 총리의 활동량이 많아도, 전명헌의 존재감 은 사라지지 않았다.
-북한에서 나를 국빈으로 모시고 싶다는구나.
더욱이 김 총리가 북한에서 가져 온 보따리도 결국 전명헌의 몫이었 다.
김 총리가 북한에서 김정일을 만 나고 왔다지만, 그건 하루짜리 뉴 스에 불과했다. 대신 김 총리가 가 져온 김정일의 친서와 거기에 담긴 정상회담 제안은 몇 날을 가고도 남을 뉴스였다.
"의제는 뭐래요? 평양냉면이나 같이 먹자는 건 아니겠죠?"
-당연히 아니지. 개성공단 개관 이나 금광산 관광 시작도 기념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김정일이가 추가로 무슨 말을 했냐 하면…….
"앗, 그건 직접 가서 들을게요."
유재원은 전명헌이 뭐라 말하기 전에 얼른 대답하면서 말을 끊었다. 전명헌과 이어진 통화선이 보안 라 인이긴 해도, 국가 정상 간에 주고 받은 친서의 내용을 전화로 듣는 건 무리수였다.
-알겠다. 그러면 참가한다는 거 지?
"네. 할아버지가 가시면 저도 가 야죠."
유재원은 북한행에 대해 고민할 것도 없었다.
전명헌과 같이 북한에 가는 거라 면, 본인의 안위에 대해 걱정할 필 요가 없었다. 그러면 안심하고 김 정일을 만나 보는 것은 나쁘지 않 다를 넘어서, 제법 괜찮은 일이었 다.
김정일에 대해 유재원은 제법 많 은 걸 알고 있었다. 한반도 정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이니 만큼, 마스터플랜을 짤 때 김정일 의 행보에 대해서도 당연히 연구해 야 했다. 하지만 당시 유재원이 참 고할 수 있는 자료는 서적과 영상, 인터넷 자료 정보가 전부였다.
상황에 따른 단편적인 정보였고, 그것도 작성자의 주관이 듬뿍 들어 간 자료였다. 그나마 정보공개법이 있는 미국의 경우 시간이 지난 기 밀문서가 해제되면 공개를 하는데, 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직 접 가서 대면하는 것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전명헌의 제안에 기꺼이 동의했다.
이틀 후.
"할아버지, 재원이가 다다음 주 에 어디 가는지 아세요?"
"응? 어디를 가다니? 무슨 일인 데?"
티파니는 외할아버지인 프레더릭 테일러 2세와 만나자마자 인사도 생략하고 퀴즈부터 냈다.
주말인 오늘 프레더릭과 만나는건 한참 전에 정해진 일정이었다. 오늘은 프레더릭이 준비한 요트를 타고 채널 아일랜드 국립공원 근처 바다를 돌면서 바다를 즐길 예정이 었다.
프레더릭의 스케일답게 준비된 요트는 배수량이 수천 톤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물건이었다. 4층 구 조에, 승조원도 30명이 넘었?고, 요트 안에 작은 낚시 배는 물론, 헬기도 한 대가 있는 초호화 요트 였다.
덕분에 유재원 일행이 요트에 오 를 때도 선착장에서 올라간 게 아 니라, 프레더릭의 집에서 헬기를 타고 출발해 바로 요트에 안착했다.
부케팔로스라는 이름도 붙어 있 었는데, 프레더릭의 한결같은 말 사랑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하여 튼, 프데러릭이 보유한 호화로운 부동산이나 물건들을 많이 봐온 유 재원이지만, 요트는 이번이 처음인 지라 입이 떡 벌어지던 중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요트를 사겠다는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는 유재원이 다. 부케팔로스 한 척을 살 돈이면 737 같은 비행기를 사고도 남을 정 도로 비싼 몸값을 자랑하니 말이다.
티파니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타 봤던 배라 그런지, 놀라는 것도 없이 곧장 프레더릭에게 직행이었다.
"북한이요. 재원이가 북한에 초 청을 받아서 갈 거래요. 좀 말려주 세요."
"북한?"
그러다가 티파니가 북한 이야기 를 하니, 프레더릭도 바로 반응을 보였다.
요트의 키를 직접 잡고서 파도를 가르면서 노익장을 과시하던 프레 더릭이었는데 북한이란 소리에 표 정도 좀 나빠졌다.
역시 선입견은 무섭다는 말이 절 로 떠올랐다.
미국과 북한은 객관적으로 국력 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북한이 총력전을 해도, 미국의 7함 대 하나 파견하면 끝이었으니 말이 다. 북한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비대칭 무기인 핵 말고는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체제 안정을 위해 미국을 악의 축으로 설정했고, 같잖은 도 발을 수시로 했다.
핵 개발이야 말할 것도 없고, 판 문점 도끼 만행 사건과 같은 끔찍 한 일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미국 달러화의 위조지폐를 국가 차원에 서 만드는 나라가 북한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럴 때마다 미국에서 북한 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나빠졌다.
티파니도 스탠포드를 나왔고, 지 금은 셰브롱의 지질 데이터 분석 팀장을 맡고 있음에도, 북한이란 나라는 들어가서는 안 되는 불량 국가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유재원으로부터 북한에 갈 거라는 소식을 전하자 펄쩍 뛰면서 만류했고,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지 는 중이다.
프레더릭은 티파니의 말에 잡고 있던 요트의 키를 선장에게 양보했 다. 북한이라고 하니 약간의 흥미 가 생기신 모양이다.
"진짜 북한에 가는 건가?"
"네, 조만간 공식적인 발표가 있 을 거예요."
유재원은 덤덤하게 말했다.
김정일이 본인에 대해 호기심이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전명헌이 총리 시절 소떼 방북을 하면서 북한에 갔을 때, 유재원에 게 컴퓨터를 부탁했었다. 김일성에 게 선물로 줄 물건이라 특별히 만 들어달라고 해서, 급하게 맞춰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특별한 하드웨어를 준비하는 것 은 물론이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글자들을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 어에 맞춰서 바꿔줬으니 말이다. 매우 비밀스럽게 장착한 루트킷도 덤이었다. 이를 통해 컴퓨터 사용 자가 누구인지, 인터넷 아이피나 인터넷 검색엔진에 무슨 키워드를 넣는지 알 수 있었다.
김정일이 인터넷에 유재원 본인 의 이름 석 자를 넣는 걸 보고 깜 짝 놀라기도 했고, 이후 유재원은 경호의 수준을 강화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후로 별일은 없었고, 언 제부턴가 루트킷의 작동도 멈췄다.
북한에서 루트킷의 존재를 알아 냈다기보다는, 시간이 지나 컴퓨터가 구식이 되었고, 새로운 컴퓨터 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봤다.
"그런가? 한데, 우리 손녀사위는 북한에 무슨 일로 가려고 하는가? 그 가난하기만 하고 자존심만 남은 나라에 자네가 딱히 할 일은 없는 거 같은데?"
프레더릭은 북한을 좀 아는 모양 이었다. 그래도 미국인의 관념 이 상을 벗어나진 못했다.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땅이 라서 어르신은 그렇게 보실 수도 있죠."
미국이 그나마 북한의 도발에도 중동에서처럼 과격한 반응을 보여 주지 않은 건 석유가 나오지 않는 땅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중동에서 처럼 북한 땅에서 석유가 나왔다면 한국의 상황은 지금과는 꽤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100% 확신했다.
"하지만 저에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기회들이 좀 보이거든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직접 가서 확 인해보려고요."
"기회가 있다고? 그게 자네가 그 위험한 땅에 꼭 가봐야 할만큼 큰 일인가?"
"안전이라면 걱정 마세요. 전명헌 대통령이랑 함께 가는데, 별 탈 이 나겠어요? 북한도 국빈으로 초 청한 사람들이 사고가 나면 체면이 말이 아니죠. 프레더릭 말씀처럼 자존심만 센 나라인데 손님 대접을 못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죠."
유재원의 말에 프레더릭은 고개 를 끄덕였다.
"우리 재원이가 그렇다는데?"
그리곤 티파니를 보며 어깨를 으 쓱이며 말했다. 티파니도 유재원의 북한행을 완전히 반대하는 것이 아 니라, 걱정이 많다는 정도였기에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티파니가 찾은 지역 에선 뭐가 좀 나오나요?"
이번에는 유재원 차례였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