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35화 (435/1,007)

22권 19화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가 무 력하게 부시에게 패배한 건 아니었 다. 득표수를 따지면 부시보다 50 만 표 정도는 더 받았지만, 선거 인단 숫자에서 밀려 패배했다. 매 우 근소한 차이였는데, 유재원은 본인이 움직이면 이 정도는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앨 고어가 차기 대통령이 되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지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 다.

전명헌이 대통령이 된 것으로, 유재원이 기억의 궁전 속에 보유했 던 아카하이브 중에 한국의 정치분야는 이제 완전 무용지물이 되었 다.

김대중이 총리가 되어 대통령을 대신해서 주변 4개국 순방 중이라 는 그림은 예전에는 상상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김대중 총리는 주변 4개국 순방을 마치면, 북한에도 다녀올 예정이었다.

전명헌 대통령 취임식에는 앨 고 어뿐만이 아니라, 북한에서도 축하 사절이 왔었다. IMF와 앨 고어 때 문에 존재감이 약해지긴 했는데,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었 다. 이에 대한 답례 겸 남북 대화 국면의 연장선으로 김대중 총리는 북한에 국빈으로 방문하는 것이다.

원래 내각제 시스템에서는 내치 는 총리가 외치는 대통령이 하는 그림이었는데, 어째 한국은 좀 반 대였다.

대신 대단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사실이라서, 힘이 났 다. 하지만 미국도 한국처럼 될 것 이라는 기대를 하는 건 힘들었다.

더욱이 이번 나스닥 폭락은 앨 고어에게는 좀 나쁜 영향을 줄 수 도 있었다.

앨 고어의 지지 기반에는 IT 분 야가 지대했다. 그런데 IT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나스닥이 빠르 게 떨어지고 있으니, 오히려 이게 감점으로 작동할 여지가 높았다.

앨 고어를 밀어줬다가 본래 역사 의 흐름대로 부시가 되면, 유재원 에겐 뼈아픈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정치 보복이라는 건 후진국에나 있 는 일이니 직접적인 타격은 없겠지 만, 미국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정 치권에 밉보이면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애로사항이 꽃필 건 확실했 다.

"역시 못 먹어도 가 보는 거지!"

잠깐 이것저것 따져본 유재원은 의외로 쉽게 답이 나왔다.

앨 고어가 되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반대로 부시가 되면 원 래의 역사적 흐름이니 기억의 저장 소에 저장된 아카하이브의 수명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정권이 좀 밉보이겠지만, 유재원에게는 약 간의 페널티에 불과했다.

그렇게 유재원은 앉은 자리에서 미래에 중요한 기점이 될 선택을 했다.

타이밍 좋게도 고민을 끝냈을 때, 알람 하나가 울렸다. 한국에서 또 무슨 일이 있나 봤더니 ID 테크놀로지의 엘런 스미스 사장이었다.

"응?"

쪽지의 내용은 이메일이라 할 만 큼 분량이 많았고, 내용도 심각했 다. 덕분에 한 줄 한 줄 내용을 읽 을 때마다 유재원의 얼굴도 딱딱해 졌다.

리눅스 2.0 출시.

엘런 스미스 사장의 쪽지에 담긴 내용이었다.

안드로이드 사 등장 이후, PC 운 영체제는 유닉스 기반으로 바뀌었 다. 하지만 형태가 같다 뿐이었지 유닉스 시스템의 소스 코드는 단 한 줄도 따오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는 대히트를 쳤다. 특히 유닉스 기반 이면서 컴맹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리본 인터페이스 덕에 그 저 변이 매우 빠르게 확장되었다.

다만 모두를 만족하진 못했다.

스스로 엘리트라 자부하는 해커 수준의 사용자들은 안드로이드 운 영체제를 혹평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대충 쓰긴 좋은데, 세세한 설 정이 힘들고, 어떤 기능은 아예 일 반 사용자가 접근조차 할 수 없었 던 탓이다.

이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기 본 이념이 사용자를 전적으로 신뢰 하지 않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재원은 일상적인 수준에서 컴퓨 터를 사용하는 이들이 괜히 시스템 깊은 곳까지 접근해서 이것저것 설 정들을 만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 다.

민감한 설정들은 접근을 어렵게 했고, 시스템 안정성과 밀접한 파 일은 변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대형 완제품 PC 업체 들은 AS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도스 시절만 봐도 실수 로 시스템부트섹터가 날아가서 컴 퓨터가 안 켜지는 일로 AS를 신청 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안드로 이드 시스템에선 그런 요청은 뚝 끊겼다. 부트섹터가 날아가더라도 CD만 넣으면 알아서 복구될 만큼 예외처리가 좋았다.

반면 엘리트 사용자들은 자기 멋 대로 시스템을 바꾸고 싶은데, 원 천적으로 차단되어 있기에 불만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그런 불만을 터트린 사람이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의 리 처드 스톨먼이었다. 그런 리처드에 게 유재원은 리눅스라는 게 있다고 알려줬다.

헬싱키 공대생이었던 리누스 토 르발스가 1991년에 안드로이드가 했던 것처럼 유닉스 체계를 채용해 만들었고, 아예 소스코드까지 공개 한 운영체제가 바로 리눅스였다. 이후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리눅 스에 본격적으로 참여했고, 여러 엘리트 프로그래머들과 해커들이 모여서 힘을 보탰다.

이후 몇 년을 잠잠하다가 95년쯤 에 1.0버전이 드디어 발표되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그다지 얻 지 못했다. 안드로이드가 워낙 저 렴했고, 완성도도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PC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덕에 게임부터 사무용, 전문용 응 용프로그램도 죄다 안드로이드 판 인지라 리눅스의 점유율은 이전보 다 더 적었다.

그럼에도 리눅스에 대한 개발은 계속 이어졌고, 최근 2.0 버전이 발 표된 것이다.

리눅스 2.0의 주요 기능은 바로 웹서버,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 데 이터베이스 등, 최신 인터넷 기술 을 지원하는 것에 있었다. 개인용운영체제를 위한 기능 개발은 일단 뒤로 미루고, 전문영역에 힘을 준 것이다.

리눅스 2.0 하나로 인터넷을 위 한 다양한 서비스를 펼칠 수 있을 정도였다.

"누구 전략인지 몰라도, 괜찮은 선택이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인터넷 서버를 만들기 위해선 워크스테이 션, 혹은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선 택해야 한다. 대규모 서버 구성에 는 무조건 엔터프라이즈 버전이다. 당연히 비싸다. 그런데 리눅스 2.0 이면 공짜로 설치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문적 기능 구현 에 안드로이드 엔터프라이즈 버전 을 레퍼런스처럼 참고했다는 정황 이 명백했다는 점이다.

엘런 사장이 급하게 보낸 메시지 는 이런 리눅스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으니, 당장 고소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유재원은 일단 엘런 사장에게 기 다려 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리고서 리눅스 배포판 중에 가장 유명한 빨간 모자, 일명 레드햇 홈 페이지에 들어가서 이번에 출시된 2.0 버전을 받기 시작했다.

"음, 여기가 정식 사이트 맞나?"

홈페이지의 구성은 간단하다 못 해 허술했다. 오죽하면 유재원이 개인 사이트인지, 돈을 벌자고 만 든 사이트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였 다.

참고로 리눅스는 무료인데, 무슨 수익이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프리라는 말에서 오는 오해였 다.

리눅스 커널 시스템 자체는 무료 였다.

이걸 가지고 사람들이 쓰기 간편 하게 만들고, 각종 패키지 구성을 해놓은 걸 배포판이라고 하는데, 배포판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그 중에서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게 레드햇이 었다.

이런 배포판 자체도 일단은 무료 배포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설치 후에 지원을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안드로이드 엔터프라이즈 버 전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고, 저렴한 만큼 사후 지원의 수준도 얄팍했다.

그렇기에 컴퓨터를 웬만큼 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매력적인 방식이 었다.

"느리네."

레드햇 홈페이지는 아무래도 독 립적인 서버였던 모양이다. 하긴 이번에 배포된 리눅스 2.0 자체가 ID 그룹 클라우드 시스템을 대항하 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리눅스를 가지고 자체적인 서버를 만들어 놓 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지금 많이 몰리 는 터라, 다운로드 속도가 현저하 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서버가 다 운되지 않는 걸 보면, 안정성은 확 실히 있는 모양이다. 다만 인터넷 전용선 용량이 작은 모양인지 전송 속도가 초당 200KB 수준이다.

"이야, 그러고 보니 인터넷 통신속도가 엄청 빨라졌네."

유재원은 그 숫자를 보고 순간 추억에 빠졌다.

미국에 키보드워리어를 보급해 보려고 바둥거리던 때의 기억이다. 모뎀으로 접속했고 PC통신이 유료 시범 서비스였던 인터넷 서비스에 접속해 FTP로 겨우 전송했었다. 그 때 전송 속도가 초당 1?2KB 였는 데, 지금은 IMB/s씩 나오는 고속 서비스가 기본인 세상이 되었다.

물론 앞으로는 이보다 100배, 혹 은 1만 배는 더 빠른 서비스도 나 올 테지만, 심적인 체감으로는 지 금 느끼는 것만큼은 아닐 것이다.

초당 1MB 씩 받다가 100KB 씩 받으니 너무 느렸다.

"게임이나 하자."

유재원은 다운로드가 완료되길 멍하니 기다리기보다는, 간만에 게 임을 실행했다. 게임의 이름은 반 감기. 영문으로 하면 하프 라이프 다.

게임을 실행하자 ID 엔터테인먼 트 로고가 떡하니 튀어 나왔다.

원래는 밸브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에서 만들어진 게임이었는데, 게이브 뉴웰과 마크 해링턴이 창립 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어째서 ID 엔터테인먼트 의 로고가 붙어 있게 된 건지, 그 이유도 참 재미있다.

유재원이 미래 지식을 사용해서 밸브 코퍼레이션을 ID 엔터테인먼 트로 편입시킨 것이면 재미가 없을 거다. 게다가 바쁘기도 한 유재원 은 거기까지 챙길 겨를도 없었다.

정답은 그냥 알아서 생겨났다.

놀랍게도 게이브 뉴웰과 마크 해 링턴은 마이크로소프트 소속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유재원에게 인수 되고 나서 살짝 위태롭기도 했는데 고용 보장 정책 덕에 무난하게 안드로이드 소속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유재원이 사내 벤처기 업 정책을 시작했을 때, 게임을 만 들어보겠다고 제안서를 넣었고 그 게 통과된 것이다.

일찍 세상에 나온 P마켓과는 달 리, 하프라이프의 개발 기간은 제 법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재원은 기다려주었다.

사실, 기다렸다기보다는 잊고 있 었다는 게 정확하다.

하프라이프 개발에 투입된 예산 은 ID 그룹 전체로 봤을 때 미미했 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크기는 곧 관심의 크기였다. 돈을 대량으 로 투입하는 사업에는 관심이 쏠리 고, 적게 투입된 곳에는 시선이 잘 가지 않는 건 유재원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얼마 전부터 블리자드에서는 오리진 시스템즈와 함께 초거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 었는데, 투입된 자금도 어마어마했 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프로젝 트라는 게 바로 워크래프트의 세계 관을 바탕으로 하는 MMORPG였 기 때문이다.

오리진 시스템즈에게는 울티마

온라인이라는 최초의 그래픽 온라 인 게임을 완성한 노하우가 있었다. 하지만 울티마 온라인의 수명이 이 제 다 되었다. 메인 시나리오가 끝 났고, 이제 남은 건 유저들끼리 만 드는 이야기뿐이었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3D 온라인 게임으로 집중 되었기에 사용자들이 점차 줄어드 는 추세였다.

한국이었다면 강화도 넣고, 랜덤 박스도 넣고, 경험치 부스터도 넣 고, 억압이나 통제도 가능하도록 할 터였다. 하지만 유재원이나 리 처드 개리엇이나 그럴 마음은 없었 다. 오히려 매크로를 가지고 작업장을 돌리는 사람들을 열심히 잡았 을 뿐이다.

이렇게 잔잔하게 서버를 운영하 다가 접속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지면 종료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대신 오리진 시스템즈는 울티마 온라인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새로운 MMORPG를 만 들기로 했다. 블리자드 역시 마찬 가지였다. 스타크래프트를 성공적으 로 띄운 블리자드에는 곧 스타크래 프트의 확장판을 출시할 예정이었 다.

출시일을 오리지널 출시 1주년 기념해서 잡았을 만큼 완성도는 높았다. 그렇기에 블리자드는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차기 워크래프트 게 임이 었다.

문제는 예전처럼 3D RTS로 만 들지, 아니면 아예 다른 게임으로 만들지에 있었다. 그러다가 오리진 시스템즈의 사정을 알았고, 워크래 프트의 세계관으로 3D MMORPG 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몇 차례의 회의와 미팅 끝에 오 리진 시스템즈는 네트워크 시스템 을 맡기로 했고, 블리자드는 클라 이언트 프로그램을 맡기로 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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