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34화 (434/1,007)

22권 18화

"아! 종묘 회사구나!"

결국, 컴퓨터 속에 저장해 놓았 던 마스터플랜을 보고서야 놓치고 있던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예전 농업은 굶지 않기 위해 쌀 을 기르는 게 전부였다. 먹거리가 다양해진 지금에는 가장 중요한 포 인트는 돈이 되는 작물을 기르는 것이었다. 농민들에게 품질 좋은 씨앗이나 모종을 제공하는 회사가 바로 종묘 회사였다.

이맘때쯤에 외국으로 팔려갔는 데, 소리 소문도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농민들이 비싼 로열티를 주고 씨앗과 모종을 사야 한다는 소 식이 알려지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종묘 회사는 지금 보면 볼품없는 회사였기에, 소문도 없이 매각되었 다. 하지만 잠재력만큼은 반도체 회사들만큼 컸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사람이 먹는 일을 끊는 법은 없다. 더욱이 21세기 초중반이 되면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농산물 생산 능력이 중 요해진다. 또한, 종묘 회사를 통해 유전자 조작을 기술도 개발할 수 있으니 유재원이 가진 미래 지식을 활용하기에도 딱 좋다.

유재원은 곧장 새로운 문서를 만 들었다.

안에 담긴 내용은 종묘 회사들도 모두 사들이라는 지시였다.

며칠 후.

-백호 펀드, 대호, 동하 건설 매 입 추진! 중공업 회사들과도 접촉 중!

-대호 전자도 백호 펀드를 우선 협상자로 선정!

-풍농, 대풍, 홍농 등 종묘 회사 도 백호 펀드가 인수.

백호 펀드가 기지개를 켜며 활동 을 시작하자, 그 소식이 한국의 모 든 매체를 장식했다. 대호 그룹에 서 제일 덩치가 큰 대호 건설을 한 입에 삼키는 것으로 한국인들의 기 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최강욱 부회장, 회장님은 자동 차에 관심 없으시다.

-대호 자동차, 좌불안석!

심지어 유재원의 취향이 엄한 사 람들을 벌벌 떨게 했다. 컴퓨터 키 즈인 유재원이 자동차엔 별 관심이 없는 것과 대호 자동차 인수가 무 슨 관계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런 잡다한 소식까지 대문짝만하게 기 사가 날 정도였다.

백호펀드의 자본금이 거대하긴 해도, 실무진의 규모는 작아서 뒤 로 밀렸을 뿐인데도 엄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약간의 해프닝이지만, 이것이 의 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재벌 해체 전문이자 블랙 기업을 반짝반짝 빛이 나는 화이트 기업으 로 깨끗하게 세탁해줄 백호 펀드가 큰 걸음을 시작했다.

#377 레짐체인지

-사회 질서 회복과 신용 사회 건 설을 위한 형법 개정안, 진통 끝에 통과 -야권, 위헌적인 공수처만큼은 총력 저지하겠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한국의 소식부터 확인하는 유재원이었다. DAP라는 아이팟을 능가할 신제품 발매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유재원도 예전과 같은 여유는 거의 사라졌지만, 한국의 상황은 엄중했기에 항상 모니터링 중이었다.

더욱이 백호 펀드로 수십 조의 자금이 투자된 상태였으니, 한국은 미국과 동급의 사업장과 마찬가지 인지라 회사 업무 중에서의 비중도 그만큼 확대되었다.

지금 유재원이 보는 건 어제 통 과된 형법 개정안과 관련된 것이었 다.

형법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는 90 년대 들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리고 여타의 강력 범죄가 아닌, 이 전까지는 가볍게만 보고 있던 경제 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에 포커스를 맞춘 법안이기도 했다.

사기 범죄에 일상으로 노출되어 있던 일반 국민들은 이 법안에 환 호작약했다. 반대로 알음알음 특혜 를 받았던 소수의 이들은 표정 관 리를 해야 했다.

단적으로 대기업들의 배임이나 횡령은 큰 규모의 경제 범죄였다.

이제까지는 애매한 법적 조항과 전관예우로 수백, 수천억 원을 해 먹고도 집행유예 정도만 받으면 땡 이었다. 그런데 경제사범 처벌에 대한 법안이 매우 강력해지면서 이 제는 불가능해졌다. 피해 금액이 수천억 원이면, 죽을 때까지 감옥 에서 나오지 못한다.

전관예우를 통한 사법거래도 유 죄를 무죄로 바꿔주는 도깨비방망 이는 아니었다. 법의 구멍을 파고 들고, 형량을 좀 낮춰 주는 데 의 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초범 이건 재범이건 상관없이 피해 금액 에 따라 최소 형량이 정해지면 빠 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신문 기사를 보면 판사들이 마치 제멋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보 이지만, 그것도 사실 법률에 기반 한 판결이었다. 물론 곡해라는 변 수가 하나 있었지만, 이번 형법 개 정안처럼 곡해할 여지 자체를 삭제 해버리면 자판기식 판결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뭐, 변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 지."

엄청난 변화를 이끌 형법 개정안 이지만, 이게 제대로 작동하려면 철저한 수사가 보장이 되어야 한다 실제 피해 금액은 1천억 원대인데, 검찰에서 미지근하게 수사해 피해 액을 500억 정도로 축소해 기소하 면 형량도 그만큼 줄어드니 말이다.

상식적으로 검사 마음대로 어떻 게 500억이나 줄이냐는 반문이 나 오겠지만, 그게 가능한 게 지금의 검사 시스템이었다.

심지어 이렇게라도 수사를 해주 면 다행이다. 거물이 연관되었다고 하면 아예 수사를 안 하고 미적지 근하게 있으면 처벌 자체가 불가능 하고, 실제로도 유용하게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그래서 공수처가 필수인데."

유재원이 설계한 새로운 한국에 는 그래서 공수처의 존재감이 절대 적이었다.

시대의 정신이 바뀌어도 언제나 기득권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어줬 던 곳은 사법부였다. 수사부터 판 결까지. 사법연수원 입학 순서에 따라 기수가 만들어지고, 졸업 성 적에 따라 줄 세우기가 되는 이들 로 구성되는 사법부는 피라미드식 의 탄탄한 구조를 자랑했다.

이들이 작당하고 특정 세력을 비 호를 해주면, 대통령이라도 손을 봐주기가 힘들어졌다. 그나마 이들 을 제어하는 게 인사권인데, 이를 행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검찰이나 판사들이 법을 사유화하는 게 어려 워진다. 검찰이 검찰을 수사하고, 판사가 판사를 판결해서 서로 비호 해줄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사라질 테니 말이다.

전명헌의 공수처 방안에 따르면, 검사의 비리 의혹이 제기될 경우 검사 경력이 없는 변호사를특임 검 사로 임명하여 수사하게 했고, 판 사를 재판하게 될 경우엔 판사 경 력이 없는 변호사로 특별 재판부를 꾸리게 했다.

문제는 두 가지 방식 모두가 위 헌 소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수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영 장 청구의 권한이 검사에게만 있다 고 헌법에 박혀 있었다. 판사의 경 우에도 차별 없이 3심제가 보장되 어야 하는데, 임시로 만들어지는 특별 재판부에서 3심을 모두 치르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덕분에 모래알처럼 흩어진 야당 이지만 공수처 신설 법안은 한마음 으로 뭉쳐 저지 중이었다.

"할아버지의 추진력이면 잘 해내 시겠지."

전명헌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해 예전엔 의문이 있었던 유재원이지 만, 이제는 의심하지 않았다. 말 많 았던 노동법 개정안도 유재원이 제 시한 방안에 따라 통과되었다.

유재원식 노동법 개정안의 핵심 인 비정규직에 대한 보수도 정규직 보다 최소 5% 이상 많이 주도록하는 조항이라든가, 비정규직이란 개념을 설정할 때 고용 상태에 대 한 비정규가 아닌, 일자리에 대한 비정규로 규정하는 것도 그대로 적 시되었다.

무슨 말이고 하니, 똑같은 일자 리가 1년 이상 지속되는 일자리에 는 정규직을 쓰고, 연속성 없이 상 황에 따라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비 정규 일자리에 비정규직을 쓰라는 것이다.

사실 노동법 개정안에서는 임금 에 대한 이슈보다 비정규라는 단어 를 정의하는 게 더 핵심이었는데,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 우대라는 미끼가 워낙에 맛깔스러운 것이라 비 정규직에 대한 단어 정의 문제는 뒤로 확 밀렸다. 통과되고 나서야 기업인들 측에서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미 기차는 지나갔다.

덕분에 대량의 구조조정이 이뤄 지는 지금에도 비정규직이라는 자 리는 그렇게 많이 양산되진 않고 있었다.

형법 개정안도 원안 그대로 통과 되었다.

언론에서는 진통 끝에 통과라는 말을 썼지만, 글자 하나 바뀌는 것 없이 통과되었으면 그걸로 끝이었 다.

21세기의 엉망진창 국회에 비하 면, 그야말로 쾌조의 속도였다. 전 명헌은 공수처도 신설 법안도 미국 방문 전에 통과시키겠다고 장담하 셨다.

사실 지금도 미국 방문은 좀 늦 은 것이었다. 원래 한국의 대통령 들은 당선되면 곧장 미국부터 찾는 게 기본 패턴이었다. 그런데 전명 헌은 거의 5개월을 한국에만 있었 다. 외환위기와 IMF 시대라는 위 기에 대응한다는 명분이 있긴 했지 만, 많이 늦은 것이었다.

"음, 클린턴의 스캔들에 묻히지 만 않으면 좋겠는데."

난봉꾼 빌 클린턴은 이미 사고를 쳤다.

지금은 특검 검사인 케네스 스타 가 한창 수사 중이었는데, 수사의 상황은 이미 상당히 진척된 상태였 다. 조만간 부적절한 관계니 하는 말도 나올 거고, 8월 중순 쯤에는 대국민 사과도 하게 될 모양새다.

그러니 빌 클린턴이 지금보다 더 모양이 빠지기 전에 전명헌이 와서 한미 관계를 돈독히 다져 놓았으면 좋겠다는 게 유재원의 생각이다.

"그나저나 차기는 누굴 밀어줘야 하나?"

한국의 상황은 그나마 풀려가고 있었다.

백호 펀드는 한국 국민들에게 심 리적 안정선을 만들어주었다. 회사 가 부도가 나면 다시 한번 동아줄 을 잡아 볼 수는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대호 자동차처럼 백호 펀드의 외면을 받으면 더욱 큰 절망을 할 수도 있지만, 전명헌은 사회적 안 전망을 만드는 계획도 있었다.

경쟁에 밀렸다고 해서, 사회에 자기만의 자리를 찾는 게 실패했다 고 해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도 알뜰하게 챙겨서 다 시 도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사회전체에 발전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법이다.

미국의 경우엔 체력이 워낙 좋아 서, 어제 나스닥이 역대 최고의 폭 락을 했음에도 유재원은 큰 문제가 없다고 봤다.

나스닥 지수만 보면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몇 배가 올랐다. 그 말은 개별 종목으로 보면 10배, 혹은 수 십 배가 오른 종목도 있었다는 이 야기다. 어제 좀 폭락을 했다지만, 그동안 오른 것에 비하면 내린 것 도 아니었다.

다만 유재원의 고심은 미국의 차 기 대통령에 대한 것이었다.

유재원과 친분이 가장 깊은 앨 고어를 밀어줄지, 아니면 원래 역 사에 따라 부시에게 선을 댈지 선 택이 멀지 않았다.

앨 고어와 유재원의 친분이야 말 하면 입이 아플 만큼 유명했다.

유재원이 미국에서 막 사업을 시 작하던 때에, 직접 유재원을 찾아 와서 정보 고속도로에 대한 비전을 들었던 앨 고어였다.

덕분에 클린턴 행정부에서 앨 고 어는 IT 분야 정책을 거의 전담하 다시피 했고, 덕분에 현재 실리콘 밸리를 비롯해 IT 산업을 크게 일군 도시에서 지지율이 굉장히 높았 다.

반대로 디트로이트 같은 러스트 벨트 지역이나 보수세가 강한 미국 남부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반대로 부시는 러스트 벨트와 남 부에서 전략적으로 밀어주는 후보 였다. 딱히 능력이 증명되진 않았 지만, 부시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 는 명성이 대단했다. 부시 가문은 미국의 정계에서 케네디 가문과 거 의 비슷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텍사스의 유전과 거대한 농장에 서 나오는 부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대통령까지 배출했으니 말이다.

부시를 생각하니 머리가 절로 아 파 오는 유재원이다.

"멍청하기만 하면 다행인데, 너 무 폭력적이지."

클린턴 정부는 IT 혁명을 기반으 로 미국의 경제를 살려놓았다. 부 시는 아버지 부시와 마찬가지로 그 렇게 살린 경제력을 엉뚱한 전쟁에 다 써버렸다.

전쟁과는 별 연관이 없는 사업 영역을 가진 유재원이었지만, 비중 은 미국이 제일 컸다. 물론 미국 말고도 유럽의 선진국에도 활발히 진출했고, 많은 나라에서 포털사이 트와 이메일 서비스 분야에서 1등 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돈이 제일 잘 나오는 곳은 역시 미국인지라, 미국의 성 장 잠재력을 엉뚱한 데 낭비하는 부시는 호감이 없었다.

"모험을 해봐야 할까?"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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