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33화 (433/1,007)

22권 17화

대호 그룹 계열사들이야 이제 부 도가 난 상황이니 그렇다고 쳐도, 일성 전자나 미래 전자 등은 아직 탄탄한 회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강욱의 위 시리스트에 이 회사들이 들어 있는 이유는, 최강욱의 능력이 일류 경 영인이었기 때문이다.

삼류 경영인은 남들이 다 하니 뒤늦게 따라 하는 사람들이다. 제 일 늦은 만큼 먹을 것도 없고 독박 만 쓸 확률이 매우 높다. 이류 경 영인들은 상황이 급변했을 때 즉각 적인 대응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 이 사람들은 시류에 영합할 줄아는 눈이 있어서 뭐가 잘 되는지, 어떤 위기가 찾아왔는지 알고 즉각 반응한다.

일류는 대비를 할 줄 아는 사람 들이다.

아무리 감각이 좋아도 사건이 터 지고 나서 움직이는 건 한계가 있 다. 그렇기에 외환위기처럼 국가 단위의 위기에서는 제대로 된 대응 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비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이런 위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위기를 예측하 고 대응하느냐는 것인데, 그것이 일류와 이류를 가르는 결정적인 능력이 었다.

그런 면에서 최강욱은 일류였다.

"음, 일성 전자, 미래 전자, 대호 전자를 묶어 월드 와이드급 전자 회사를 차리고, 나머지는 전자회사 들은 모두 정리. 대호 건설과 동하 건설, 그리고 중공업 회사까지 묶 어서 플랜트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 방에 하는 토탈 패키지도 만들고. 음, 좋은데"

단순히 이런저런 회사들이 매물 로 나왔는데, 평가해보니 괜찮더라. 구매해도 손해는 안 볼 거다. 하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회사들을 묶어 아예 새로운 유형의 회사로 만들어내자는 계획안까지 담겨 있었다.

유재원이야 모든 걸 보고 왔으 니, 그러한 능력은 패시브 상태였 다. 하지만 최강욱은 유재원을 만 나고 나서 경영인이 된 것인데, 벌 써 일류에 다다랐다.

"우리 최강욱 부회장님이 제대로 능력자네."

ID 그룹에서 최강욱은 이제 없으 면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당 연히 최강욱의 대우도 그룹 내에서 는 최고였다. 동시에 최강욱을 소 개해준 박상권 사장님에 대한 고마 움도 생겨났다.

"볼 때마다 잘해드려야지."

아직도 신혼의 깨가 쏟아지는 박 상권 사장님이었는데, 조만간 2세 소식이 들려올 것 같다고 하니 챙 겨드리면 될 것 같다.

하여튼 최강욱이 일성 전자와 미 래 전자까지도 리스트에 넣은 건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대호도 무너지는데, 일성이라고 용가리 통뼈처럼 버틸 수가 없지."

일성도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중 임을 그룹 정보팀이 포착했고, 그 에 따라 일성에서 가져올 수 있는 계열사들을 살펴보고 일성 전자를 최우선 순위에 넣은 것이다.

"감이 많이 떨어졌지. 일성 자동 차 만든다고 무리수였지, 그걸 또 지주 회사로 만든다고 무리했지."

최현희 회장의 색다른 취미가 스 피드를 즐기는 것이었다. 스피드를 즐기려면 당연히 좋은 차가 있어야 했고, 최현희 회장의 차고에는 100 대가 넘는 전 세계 스포츠카가 있 다고 한다. 프리미엄이 한없이 붙 은 한정판부터 빈티지 모델까지 다 양하다고 한다.

취미로만 끝냈어야 했는데, 결국 일성 자동차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유재원을 비롯해 3대 세습 등의 이유로 일성 자동차는 일성 그룹의 지주회사로 재편성되었다. 일성 그 룹을 지배하려면 이제는 일성 자동 차만 얻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성 자동차는 절대 망 해서는 안 되는 회사였다. 그러면 일성 자동차가 만드는 자동차가 잘 팔리느냐?

그것도 아니다.

처음엔 일성 자동차가 자리 잡은 부산 지역에선 잘 팔렸다. 예약 물 량도 잔뜩 쌓일 정도로 순항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서 혹 한이 찾아왔다. 회사들은 불어난 몸집을 줄이느라 열심이었고, 정리해고 소식이 없는 날이 없었다.

사람들도 언제 회사에서 잘릴지 모르는 판에 자동차 같은 비싼 물 건을 살 겨를이 없었다. 판매량이 뚝 끊기는 건 당연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최현희 회장 은 매일 머리가 빠진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뭐, 자업자득이지."

그런 최현희 회장이 하나도 불쌍 하지 않은 유재원이다.

"부도나기 싫으면 자기 돈으로 채워 넣으면 될 거 아니야."

회삿돈을 잘도 가져다 쓰면서 자기 돈은 절대 회사를 위해 쓰지 않 는 사람들이 재벌이다. 단적으로 이번에 부도난 대호 그룹만 해도 김오중 회장은 수조 원 단위의 재 산이 있었다. 계열사들에 속속 돌 아오는 어음은 충분히 막을 수 있 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공적 자금이 나오길 기 다렸다가, 전명헌 대통령이 절대 불허한다고 하니 그냥 부도가 나는 걸 선택했다.

일성 그룹도 마찬가지다.

최현희 일가가 가진 재산은 모두 일성 그룹으로부터 조성된 천문학 적인 개인 재산이 있다. 그걸 내놓으면 되는데도 저리 엄살이었다.

비단 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었 다. 한국에서는 회사의 소유자들이 개인 재산을 내는 건 마치 대단한 사건처럼 인식이 되고 있었다.

이제는 망해버렸고, 지금 유재원 이 보는 쇼핑 리스트에도 이름이 올라온 고려 증권과 같은 경우에는 두 회사와는 반대로 망하기 직전 사장이 개인 재산을 털어서 직원들 의 밀린 월급을 준 것으로 유명했 다.

유재원이 보기에 내로남불의 화 신들이었다.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공헌에 대해 책임을 물을 땐 보유 지분이 적다고 핑계를 대다가, 기 업이 창출한 이익을 분배할 때는 순환출자로 만들어진 막강한 경영 권을 행사해서 독점했다. 이 정도 만 해도 다행이었다. 이건 합법의 영역이니 말이다. 불법적으로 회사 의 권력과 재산을 사유화한 경우는 한국에선 흔했다. 그러니 회사가 어려워지면 개인 재산을 푸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러 면 겉으로는 칭찬하지만 속으로는 호구 소리나 듣는다.

반면 유재원은 다르다.

단적으로 ID 그룹만 봐도 모든 계열사는 유재원 본인의 돈으로 차 린 회사들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큰돈이 필요할 때 주머니를 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돈을 내고 그걸로 자본금을 불려 지분을 늘리 기도 했고, 신규 사업도 시작했으 니 말이다.

"하여간, 돈의 화신들이야."

어떻게 봐도 좋게 봐줄 수 없는 양반들이었다. 그건 전명헌도 마찬 가지였다. 정치인 전명헌은 긍정적 인 면이 크지만, 기업인 전명헌은 다른 재벌들과 차별성이 하나도 없 었다. 그리고 그런 전명헌에게서 경영을 배운 미래 그룹의 2세 오너 들도 다른 재벌들과 똑같았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다른 대기 업도 있다는 걸 보여주면 되지."

유재원이 뼈대를 만들고, 최강욱 이 살을 붙인 백호 펀드 운용 계획 이 제대로 실현되면 한국에는 새로 운 대기업이 2, 3개 정도 생겨난다.

대호 전자부터, 일성 전자까지의 전자 회사들을 통합한 회사, 중공 업과 건설 회사들이 통합된 회사, 그리고 거대한 유통 회사도 신설될 예정이다.

여기에 기름집 회사들, 그러니까정유나 화학 회사들에 대해 욕심이 좀 나긴 했지만, 여긴 외환위기보 다 더 심각한 위기가 와도 탄탄한 회사들이라 매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망해도 공장과 발전소, 자 동차를 돌리려면 기름은 필수였으 니 말이다.

"살짝 아깝네."

장인할아버지, 아니 외할아버지 이니 처외조부인 프레더릭 테일러 2세의 셰브롱과 합작하면 상당히 괜찮은 그림이 나올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없어도 딱히 큰 문제 는 아니었다.

이밖에도 회생 가능성이 있는 회사들을 잔뜩 사들이고, 쓰러지는 은행들도 사정권에 넣어 놨다. 그 래도 가장 큰 뼈대는 바로 3개의 신생 대기업이다.

"신생 대기업이라니."

단어 하나하나를 뜯어놓고 보면 이렇게나 이상한 말이 없었다. 그 런데 지금 매물로 쏟아진 회사들을 모으면 대기업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대기업이 나쁜 것도 아 니고."

어딘가 좀 뒤틀려진 사상을 가진 한국의 진보 세력에게 대기업은 악이었다. 아무래도 군부독재 체제에 서 대기업들에 온갖 특혜를 줘가면 서 국가 전략적으로 키웠던 게 큰 영향을 준 게 확실했다.

군부독재의 정책이니 무조건 배 척해야 한다는 게, 진보 세력의 기 본적인 사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재원은 대기업을 전혀 나쁘게 보고 있지 않았다. 정부에 서 특혜를 주었고, 보통의 국민들 까지도 십시일반으로 힘을 합쳐 육 성한 대기업이라면 그냥 공기업 취 급을 해주면 그만이었다.

더욱이 중공업의 전략적인 육성 덕에 한국은 선진국으로 가는 마지막 차를 탈 수 있었다. 경공업 위 주의 산업을 일궈봤자, 선진국의 글로벌 기업의 하청이나 하지 제대 로 된 돈줄을 만들진 못하니 말이 다.

독일만 봐도 그렇다.

진보 세력은 독일을 마치 중소기 업의 천국인 것처럼 말하는데, 사 실 독일처럼 대기업 위주의 나라는 또 없다. 폭스바겐, 다임러, BMW 같은 자동차는 물론 알리안츠라는 보험사나, 지멘스 같은 중공업 회 사도 있고, 보쉬와 같은 세계 최고 의 자동차 부품 회사도 있다. BASF라는 중화학 회사나 바이엘이 란 의약 회사도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러한 대기업들 자국의 중소기 업을 이끌면서 거대한 산업군을 형 성했고, 이를 통해 창출된 막대한 부로 통일은 물론이고, 유럽 통합 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유재원의 계획도 독일의 모델을 따르는 것이었다.

"대신 재벌이 또 생겨나는 건 절 대 막아야지."

대기업과 재벌은 한국에서는 거 의 같은 의미였다.

유재원의 ID 그룹을 두고 재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러면 유재원은 억울해진 다. 둘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재벌 체제의 핵심은 족벌 경영에 있다.

그 많은 계열사를 일명 로열패밀 리라는 한 핏줄을 가진 집안사람들 끼리 다 해먹는 것이었다.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부패가 일어 나도 쉽게 막을 수가 없다. 또한, 매우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 하기 위해서 순환출자도 필수였다.

반면 유재원의 ID 그룹은 유재원 이 전 계열사에 대해 안정적인 지분으로 직접 운영했다. 순환출자도 아니었고, 계열사의 사장들도 모두 전문 경영인이었다. 장학 사업과 사회적 공헌을 책임지는 ID 파운데 이션의 이사장만 아버지가 맡고 있 을 뿐이었다. 최근에는 ID 그룹이 란 지주회사를 만들었지만, 계열사 들의 보유 지분이 확실한 덕에 지 주회사로의 전환은 식은 죽 먹기였 다.

"자국민 호구 취급은 절대 못 하 게 해야지."

국가 전략 차원에서 국민들의 희 생으로 탄생한 재벌들은 당연히 그 성장의 과실을 국민들에게 나눠줘야 했다. 단순한 적선 따위를 하라 는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라는 것 이다.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조하던 박정희 시절 성장 후 분배는 공약 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재벌들이 그 말을 지킬 의도가 없었다는 건 유재원이 체험 을 통해 확인했다.

일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미래 그룹의 미래 자동차만 해도 미국에 는 어마어마한 할인과 품질 좋은 자동차를 팔면서, 한국에는 확연히 떨어지는 자동차를 팔았다. 항의하 는 소비자에게 차는 그렇게 타는 거라며 막말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짓을 못하게 강제적 으로 실행할 때였다.

"그러면 1차로 집행되는 자금이 총 얼마야?"

대호 건설, 대호 전자를 비롯한 대호 그룹의 A급 매물과, ID 인베 스트먼트의 한국 영업망 확대를 위 해 매수할 증권사 등등. 최강욱이 승인을 요청한 자금의 규모는 대략 4조 원에 조금 모자란 규모였다.

최강욱은 거대한 자산을 가진 대 호 건설의 몸값을 대략 3조 원 정 도로 평가했고, 대호 전자를 비롯 한 자잘한(?) 회사들을 1조 원 정도로 평가했다.

"저렴하네."

마우스를 잡은 유재원은 본인 스 스로도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면 서 전자문서에 사인을 했다. 이 손 짓 하나로 4조 원에 가까운 자금이 집행되었다.

"음? 근데 뭘 좀 빼먹은 거 같은 데'?"

사인을 마치고 ERP를 닫으려던 유재원은 멈칫했다.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이었던 탓이 다. 이럴 때 보통은 허전한 감각을 무시하고 닫아버리는데, 나중에 생각이 떠올라 땅을 치는 경우가 많 았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열심히 기억을 더듬으며 놓치고 있던 무언 가를 찾기 위해 힘썼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회귀로 압도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