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30화 (430/1,007)

22권 14화

며칠 후.

-청와대. 대호 그룹 문제 순리대 로 풀 것.

-대호그룹 채권단, 워크아웃 절 차돌입-혈세 낭비 없는 공적자금 운용 방식 연구 중.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호 그룹 분 식회계 사태에 대한 청와대의 발표 가 있었다. 역시나 유재원과의 통 화에서 전명헌이 보여준 각오처럼 단호했다.

말이야 순리대로 할 것이라고 했 지, 거기에 담긴 의미는 바로 대호그룹의 해체였으니 말이다. 채권단 이라 쓰고 대호 그룹에 막대한 돈 을 빌려줬던 은행들은, 정부의 방 침에 변화가 없다는 걸 인식하자마 자, 곧장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했 다.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위한 처절 한 생존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은 행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미 지방 은행들의 통폐합은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이제 대형 은행 들의 통폐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대호 그룹의 분식회계와 부 실 대출이 드러났고, 앞으로 드러 날 부실 대출은 더 많이 대기 중이었다.

좋았던 시절은 이제 끝이다.

기업들로부터 극진한 접대와 용 돈을 받으며 사금고 역할을 해줬을 때는 참 좋았다. 거품으로 가득한 경제였기에, 그렇게 부실 대출을 해주고도 만기를 놓치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은행의 주요 수 익 모델이 대출이었으니, 그게 또 은행장들의 성과로 연결되었다. 그 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었다.

그렇게 좋은 시절은 끝났고, 그 런 식으로 남발된 대출은 이제 대 부분 부실 채권이 되었다. 돈을 받아내지 못하면 은행이 사라질 판국 이니 사력을 다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대호 그룹에 대 한 대출 심사를 맡았던 실무진과 윗선들 그리고 대호 그룹의 김오중 회장을 비롯한 그룹 핵심 관계자들 모두에게 금감원의 고소가 진행되 었고, 검찰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검찰도 독이 바싹 오른 상태였 다.

전명헌 대통령은 어제까지도 불 도저처럼 공수처 신설을 밀어붙이 고 있었다. 덕분에 국회에서도 통 일국민당과 민주당의 주도로 공수처 신설에 대해 빠른 속도로 논의 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검 찰은 독이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공수처의 핵심은 검찰의 기소독점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명 높 으신 사람들을 수사할 때마다 검찰 은 여러 가지 이득을 볼 수 있었는 데, 공수처가 생기면 그런 예전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며 관행처 럼 남발했던 사법거래도 끝장난다. 마지막으로 검찰 권력의 정점이었 던 대검 중수부도 허울뿐인 기관으 로 전락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검찰은 지금 본인들의 존재 의의를 증명하며, 국 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 다. 그러던 차에 대호 그룹 분식회 계가 터졌으니 기다렸다는 듯 기민 하게 움직였다.

-지금은 과감한 결정해야 할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수도.

-현장르포. 인천 공단을 가다.

-대호 그룹 계열사와 협력사가 밀집했던 인천 공단 을스톱.

-외평채 발행 실패! 40억 목표였 지만, 계약된 것은 불과 20억 남짓.

-무디스 등 신용기관, 신용 등급 유지. 대호 그룹 처리에 대해 지켜 볼 것.

언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부의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대 량의 실업자를 양산하는 방법이었 다. 당연히 민생에 직접 타격을 입 는 사람들도 그 숫자가 무척이나 많았다. 이러한 점을 부각하며 반 격을 시작했다.

관행적인 허니문 기간은 아직 남 았지만, 청탁금지법이 통과된 마당 에 더는 눈치 볼 것도 없이 전면전 을 시작했다.

이러한 언론들의 기사 폭풍에 여 론이 술렁거렸고, 이에 힘을 받은 야당 정치인들도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IMF를 초래한 죄가 있 으니 숨죽이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대마를 살려야 한다면서 훈수를 두 기 시작했다.

하늘을 뚫을 듯 치솟던 전명헌의 지지율에도 영향이 갔고, 그로 인 해 개혁 드라이브의 속도가 떨어지 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던 4월 말.

유재원이 오랜만에 기자들 앞에 섰다.

장소는 뉴욕 맨해튼의 ID 인베스 트먼트 빌딩이었다. 거기엔 미국의 경제 전문 기자들 그리고 한국의 특파원로 이미 가득했다. 유재원이 움직일 때마다 항상 엄청난 일이 터졌으니, 이번에도 특종이 터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최근 ID 그룹으로 투자자님이나 기자님들로부터 많은 문의가 밀려 왔습니다. 대호 그룹 사태에도 한 국에 대한 투자 계획을 그대로 유 지할 거냐는 식의 문의였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을 드리려고 이 자 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유재원은 기자들의 바 람을 충족시켜 주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그렇습니다'입니다. 그리고 투자 시점을 말씀드리자면, 바로 지금입니다. 최 근 저는 나스닥에 대한 투자를 완 전히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 금으로 전에 타임지를 통해 말씀드 렸던 230억 달러 규모의 화이트타 이거 펀드를 창설했습니다. 이를 운영할 실무진이 매각 의사를 표시 한 회사들과 접촉을 시작할 겁니 다."

원래는 200억 달러였는데, 30억 달러가 더 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화이트타이거 펀드의 구상을 타임지에 처음 발표 하고 나서도, 나스닥의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유 재원이 보유했던 대량의 지분을 매 각하기 시작했음에도 주가가 더 올 라서 예상 30억 달러 정도의 추가 수익이 난 것이다.

예상 밖의 수익이었다. 유재원은 추가로 발생한 30억도 백호 펀드에 넣기로 했다. 이로 인해 백호 펀드 의 자본금은 종 230억 달러로 확정 되었다.

수백만 달러짜리 외채를 가지고 전전긍긍하는 한국의 기업들은 엄 청난 규모에 순간 현실감이 사라질 만큼 큰 충격을 맛보았다.

"어르신, 나라 안이 심상치 않습니다. 귀국 일정을 변경하셔야겠습 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본인의 호텔 방으로 들어 온 선임 비서의 말을 김오중 회장 은 이해하지 못했다. IMF로 어려 운 상황에서 그나마 대호의 돈줄이 되어 주는 동유럽 자동차 대리점들 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한 스케줄이 었다.

동유럽의 상황도 기대 이상은 아 니었다.

동구권에서 제일 큰 경제권인 러 시아의 나라 사정도 말이 아니었던 탓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채 청산을 위해 IMF와 접촉하고 있다 는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돌 정도였 다. 러시아로부터 분리된 작은 나 라들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대호의 싱크탱크에서는 동구권 진출에는 부정적인 기류가 많았다. 하지만 김오중 회장은 독 립국들에서 한국의 7, 80년대 같은 역동성이라는 가능성을 봤고 선점 하기 위해 진출을 결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가능성만 봤을 뿐, 본격적인 수익이 나올 상 황은 아니었다. 그나마 몇 년 전부 터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대호'라는 이름을 알렸기에 인지도는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나았다.

김오중 회장이 이제 그 인지도를 바탕으로 어떻게 수익을 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호텔 방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비서가 들어왔다. 그리곤 다짜고짜 귀국 일정을 변경해야겠다고 말하고 있 는 상황이었다.

"나라 안이라니? 한국은 늘 시끄 러웠지 않은가?"

김오중 회장의 귀국 일정은 바로 내일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는 김오중 회장에겐 늘 일이 있었 다. 이번 출장길에서도 동구권 영 업망을 더 촘촘히 짜야 한다는 답 을 얻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 한 자본력으로 영업점을 빠르게 확 장해야 한다는 결과에 이르렀다.

한국에 들어가 은행의 대출을 받 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 이었다. 비록 한국이 IMF 상황이 었지만, 대호의 신용도는 최상이었 고, 은행장들과의 관계도 좋았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 만한 생각이었다.

"이번엔 이상합니다. 금감원에서 은행들의 대출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는데, 우리 대호에 대한 대출을 현미경처럼 보고 있다고 합니다!"

선임 비서는 거의 사색이 된 얼 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서는 김오중의 그림자가 되어 활동한 게 벌써 수 십 년째였다. 대호 그룹 안에서 김 오중을 회장님이란 직함 대신 어르 신으로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이제껏 해왔던 관행들을 법으로 따지고 들 면 안 걸릴 게 없다는 것도 잘 알 았다.

비서의 설명을 들은 김오중도 뭔 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도대체 전명헌의 의도를 알 수 가 없군그래. 관행이었다는 걸 모 르나? 어디 우리만 그렇게 했냐 고."

본인의 의자에 풀썩 앉으면서 푸 념이 절로 나왔다.

말 그대로 관행에 따라 했던 일 이었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는 늘 있었다. 해외에서 외화를 벌어오겠 다고 하고, 공장을 짓겠다고 하면 대출이 따박따박 나왔다. 대기업이 일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은 정부가 먼저 나서서 치워주었다. 그것이 7,80년대 한국의 대기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비밀이었고, 대호만 그런 게 아니라 일성이나, 금성 심지어 미래 역시도 마찬가지 의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걸 들춘다 니! 재벌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한 시범 케이스로 대호가 딱 걸 린 모양이다.

덕분에 빨리 한국에 들어가서 이 번 사태(?)를 직접 컨트롤해야 한 다는 마음이 확 일어났다. 그러나 평범한 샐러리맨 김오중을 대호의 회장 자리까지 올려 준 날카로운 직감은 맹렬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잠깐 고심에 빠졌던 김오중은 결 국 후자를 선택했다.

"그래, 자네 말대로 지금 바로 한국에 들어가는 건 위험한 것 같 네."

지금 들어가면 다신 햇빛을 못 볼 것 같다는 강렬한 위기감이었다.

"예, 어르신. 준비하겠습니다."

김오중의 비서는 일정 변경을 위 해 바로 밖으로 나섰다. 혼자가 된 김오중의 뇌리에 오만가지 생각들 이 휘몰아쳤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혼란했던 김오중의 머릿속이 맑 아졌다. 그의 뇌리에 남은 단 한 가지의 생각은 '이대로 죽을 수 없 다'였다. 생각이 정리되자 곧장 양 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찾아 손에 쥐었다. 대호 전자가 독자적으로 만든 2세대 휴대폰 탱키였다.

티파니폰의 외형이나 기능을 무 던히도 따라하려고 애썼지만, 기술 부족으로 인해 뭔가 조금씩 모자란 그런 휴대폰이었다. 그래도 김오중 이 90년대 중반부터 밀어 붙이던 탱크주의가 집약된 물건이라서 가 장 기본적인 통화 기능은 괜찮게 작동했다.

곧 전화가 연결되었고, 김오중의 다급한 지시가 쏟아졌다. 신문사에 우호적인 기사를 부탁하라느니, 회 장실의 금고에서 어떤 서류를 소각 하라느니, 누군가와 만나 부탁을 해보라느니 하는 지시들이었다.

"어르신! 이동하실 준비가 끝났 습니다."

지시를 정신없이 쏟아내던 참에, 다시 선임비서가 김오중을 찾아와 이동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아 쉬움 가득한 얼굴로 통화를 마친 김오중은 한평생 가지고 다녔던 서 류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자 김오중의 삶이 시작되었 다.

-대호 김오중 회장, 귀국 거부. 불법 아닌 관행적인 대출이었을 뿐.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실수 범하 지 않아야.

-대호 그룹 부도 시, 실업자 100 만 폭증!

-증권 시장, 대호 그룹 쇼크 직 격탄, 코스피 -10.2%하락 마감.

-대호 그룹 협력사들, 연쇄 부도 우려 심각!

대호 그룹의 반격도 시작되었다.

관행이라는 만능의 단어도 등장 했고, 대호 그룹이 쓰러지면 수백 개의 협력사도 같이 죽을 거라면서 인질극도 벌였다.

-전명헌, 혼외자식 더 있다!

심지어 전명헌의 치부를 건드리 기까지 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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