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29화 (429/1,007)

22권 13화

영식이의 물음에 유재원은 당연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PC는 누구에겐 열린 시스템이었 고, 프로그래머들은 본인들이 구상 하는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문서 편집기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비 슷한 프로그램이 있다. 그렇지만 시장에서 성공하는 건 특출한 단 하나의 프로그램이다.

엘리트 프로그래머는 독보적인 능력으로 특출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개발자였다.

유재원의 말에 미국 땅을 밟아

상기되었던 영식이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좌절의 이유 중 제일 큰 지분은 삼각관계였지만, 유재원 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도 큰 지분을 차지했다.

덕분에 무거운 부담이 확 밀려왔 다.

"괜찮아. 다 방법이 있어."

반면 유재원은 아무래도 괜찮다 는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 트 프로그래머는 타고나는 것이 아 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능력 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이야기지만, 영식이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ID 그룹엔 본받을 만한 엘 리트 프로그래머들이 많았고, 유재 원 본인 자체가 세계 최고의 선생 님이었으니 말이다.

"보스,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이야기를 하는 동 안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그렉이 알 렸다.

예전 유재원이 막 스탠포드 대학 교에 입학했을 때, 부모님이 마련 해주셨던 그 집이었다. 추억이 많 이 쌓여 팔진 않았는데, 이제 그집이 영식이의 자취집이 되었다.

물론 주는 건 아니고, 월세 계약 도 확실히 했다. 주변 시세보다는 저렴하긴 해도 파격적으로 깎아주 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영 식이에게 무슨 돈이 있어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는 녀석들도 있었 다. 그렇지만 영식이는 스탠포드 신입생임과 동시에 ID 테크놀로지 의 인턴이기도 했다.

학업과 회사 생활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인턴이라서 정직원 월급을 그대로 받는 건 아니었지만, 대학 생이 할 수 있는 어지간한 아르바이트보다는 훨씬 좋았다. 월세 정 도는 부담 없이 낼 수 있는 수준이 었다.

영식이와 함께 저녁까지 거나하 게 먹은 유재원은 내일 ID 테크놀 로지 본사를 영식이와 함께 둘러보 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그 약속을 지 키지 못했다.

전명헌 정부 들어서 조금은 잠잠 해졌나 싶은 한국에서 특급 악재가 터져버렸다. 한국 재계 순위 3위를 차지하고 있던 대호 그룹의 분식회 계와 사기 대출이 드디어 폭로되었 다.

-금감원, 대호 그룹 분식회계 정 황 포착-현재 파악된 규모만 10조 원 넘어.

-대호 그룹 회사채 할인율 폭등-외평채 발행 준비 중이던 정부 에도 찬물, 비관 전망 커져.

-감사원 김오중 회장 출국 금지 요청공수처 신설을 두고 청와대와 여 당 대 야당을 비롯한 기득권이 극 한의 대립 중이었던 한국은 대호 그룹의 분식회계로 나라 전체가 충 격에 휩싸였다. 분식회계의 규모도 규모였지만, 시기 또한 문제였다.

만약 지금이 IMF 체제가 아니었 다면 분식회계 정도는 묻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집행유예나 벌금 좀 받고, 사과한답시고 고개 몇 번 까 닥거리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렇지 만 지금은 IMF 체제였다.

IMF의 방침에 따라 정부에서 혹 독한 구조조정을 실시 중이었고, 금융권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각종 조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대호 그 룹의 위상을 잘 아는 한국 사람들 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한국에서는 대호 그룹에 관련된 속보들이 빠르게 쏟아 졌다.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전명헌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느끼는 것도 잠시, 거 대 재벌이었던 대호의 부도가 현실 화되니 체감이 다른 것이다. 게다 가 분식회계의 규모가 10조 원이 넘는다고 다들 경악하며 쓰러지는 중이었다.

"원래 역사보다 2년 정도 빠른 건가?"

하지만 오직 한 사람, 유재원만 이 태평하게 속보를 보는 중이었다.

유재원도 대호 그룹의 역사에 대 해서 잘 알고 있었다. 언제 부도가 날지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원래 대호 그룹이 휘청이기 시작 하는 건 내년부터였고, 부실이 본 격적으로 밝혀지면서 쓰러지는 건 2년 후의 일이었다. 그런데 원래보 다 일찍 대호 사태가 일어나게 됐 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유재원 본 인이 일으킨 변화가 절대적인 몫을 했다.

존재 자체가 역사적 변수인 유재 원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전명헌 대 통령 역시나 이전에는 없었던 존재 였다.

전명헌 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감 독원이 생겨났고, 금융감독원은 IMF 시대에서 금융 시장 정상화라 는 시대적 사명이 주어졌다. 그러 니 첫 번째로 부임할 원장에게 쏠 리는 부담감도 상당했고, 요구되는 능력도 컸다.

"그나저나 금감원 원장님이 제법 일 좀 하는 양반인가 보네."

한국 관료들의 능력에 대해 의구 심이 많았던 유재원에게서 칭찬의 말이 나왔다.

전명헌 정부의 출범과 함께 탄생 한 금융감독위원회 원장으로는 유재원도 모르는 사람이 임명되었다. 임명권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었 기에, 유재원은 아무런 관여도 하 지 않았다.

대신 IMF 청산을 위한 큰 그림 이나 대통령으로서의 전명헌이 성 공할 수 있는 확실한 조언과 자신 만의 큰 그림을 그려주었다. 이에 확 넘어간 전명헌이었으니, 새롭게 임명되는 사람들도 이러한 기조에 맞춰 임명될 거라는 기대는 있었다.

기댓값의 크기가 그만큼 작았기 에 이번 대호의 분식회계를 2년이 나 일찍 발견한 건 대단한 성과였 다.

물론 유재원 본인의 영향력도 없 지는 않을 것이다.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호나 일성의 부실을 확실하게 저격했던 유재원이었으니 말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기업인인 유 재원이 무려 타임지에서 장담한 말 이었다. 대호가 아무리 부인해도 일단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는 건 당연했다.

금감원은 그러한 의구심을 해소 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은행들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안고 있는 부실을 명확히 파악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그렇게 은행들이 자산을 실사하 는 과정에서 대호 그룹에 빌려준 막대한 대출금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은행들이 대출을 해주면 서 설정한 담보들에 의문을 발견했 다.

심지어 대호 그룹은 담보 하나를 가지고 여러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게다가 담보의 가치가 과대평가된 상태로 대출이 이뤄지면서, 담보의 가치보 다 대출금의 규모가 더 컸다.

그야말로 대기업이 작정하고 대출 사기꾼과 같은 수법을 썼다. 그 렇게 대호 그룹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고, 전명헌 대통령도 이에 힘을 실어주 었다. 덕분에 2년이나 일찍 대호 그룹의 분식회계를 밝혀낼 수 있었 다.

"그런데, 조사 좀 모자란 모양이 야. 겨우 10조 원이라니."

유재원이 알기로 대호 그룹의 분 식회계는 40조 원 규모였으니 말이 다. 전보다 2년 빠른 시기에 밝혀 냈으니 부실의 규모가 좀 줄었을 테지만, 그래도 10조 원보다는 훨 씬 크다는 건 분명했다.

따르릉.

유재원이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 나 ID 그룹 정보팀의 게시판을 보 면서 여론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때, 티파니폰이 울렸다.

발신인으로 찍힌 이름은 전명헌 이었다.

"썩은 살을 도려내는 게 당장은 고통스럽고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나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전명헌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좀 무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고용한 직 원들은 수십만 명이고, 협력사까지 다 합치면 수백만 명에 이르는 거 대한 기업 집단인 대호의 처리를 두고 고심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유재원의 제안은 보는 바와 같이 당연히 특별 대우 없이 법적인 절 차를 따르는 것, 즉 대호 그룹의 파산이다.

전명헌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유재원의 말을 듣고 드디어 결심을 굳힌 모양이었다. 태 생이 기업인인 전명헌이었으니, 대 호 그룹을 공중분해 한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심이 엄청났을 것이 다. 그래도 가망 없는 기업을 살리 겠다고 무작정 세금을 낭비하는 것 보다는 지금 아프더라도 잘라내는 게 정답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공중분해를 하 자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대호 그 룹 전체가 썩은 것처럼 보이지만, 건실한 계열사도 있거든요."

-그렇지.

"그러니 해체할 계열사와 회생시 킬 계열사를 분리해서 해체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회생을 결정하더라도 공적 자금 투 입은 최대한 신중히 해야 하고요."

유재원의 말은 그야말로 정론이 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은 이걸 못 해서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

올해에도 대호 그룹의 기조는 세 계 경영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 을 달고 살았던 김오중 대호 그룹 회장은 본인의 말을 철석같이 지켰 다.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동구권 부터 미국까지 웬만한 나라에 지사를 세웠고, 한국에서도 기아자동차 입찰에 빠지지 않았다.

양적인 팽창과 함께 재무 부실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분명 대호의 체력으로는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무 리하게 진행했다. 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적 자금!

기업인에게 대기업은 절대 무너 지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대호 그룹의 김오중 회장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재벌 가문의 오너들도 다 같은 생각이었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공적 자금을 한 번 휘 두르면 아무리 큰 위기도 문제없이 넘길 거라는 믿음이 뼛속 깊이 새 겨져 있었다.

-공적 자금이 자기들 쌈짓돈도 아니면서 말이지. 이런 부실을 잘 도 숨겨놓고 나라에 돈을 빌려 달 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냐.

전명헌은 화를 숨기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래 그룹 은 유재원의 조언에 따라 IMF 이 전부터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덕분에 외환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대부분의 계열사들은 큰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다만, 겨우 버티고 있다는 소리 지 아무런 탈 없이 정상 영업을 한 다는 건 아니었다. 미래전자만 봐 도 매일매일 가격이 내려가는 D램 가격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수익성 이 엄청났다. 사상 최대의 실적이 터졌고 전 직원들에게 수백 퍼센트 의 보너스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D램 가격이 급감했다. PC의 세대교체가 끝나면서 수요가 크게 감소했다.

그렇다고 공장을 쉴 수는 없으 니, 박리다매 전략으로 많이 만들어 싸게 파는 전략을 취하는 중이 었다. 다른 계열사들도 달러를 얻 기 위해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수출을 해야 했다.

더욱이 다른 회사들은 구조조정 이다 뭐다 하면서 IMF를 핑계로 구조조정에도 열심이었지만, 미래 그룹은 전명헌의 눈치를 봐야 했기 에 감원도 쉽게 할 수 없는 지경이 었다. 전명헌이 대통령에 있는 상 황에서 대규모 감축을 하면 정치권 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비판의 목소 리가 터져 나올 게 분명했으니 말 이다.

이처럼 허리띠를 바싹 조이는데, 팔자 좋게 방만한 경영을 하다가 돈 떨어졌다고 공적 자금을 신청하 는 대호 그룹이 예쁘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더욱이 공적 자금의 정의는 은행 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동원되는 자금이었다. 자금의 조달 방식은 예금보험공사와 자산 관리공사가 채권을 발행해 조성된 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국회 동의 를 받아서 채권의 원리금 상황에 지급 보증을 하니, 발행 방식만 좀 다를 뿐 국채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업으로서는 마치 정부가 보증 을 서주고 대출을 해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공적 자금을 빌리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없었다. 정부 의 경제 관료들도 대기업이 무너지 면 나라가 망한다는 신념이 있어서 공적 자금을 남발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마.

전명헌의 각오는 다이아몬드처럼 굳건했다.

동시에 유재원도 화이트타이거 펀드를 공개할 때가 슬슬 다가왔음 을느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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