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27화 (427/1,007)
  • 22권 11화

    "가수들의 호응은 어떤가요?"

    -음, 디지털 음원 유통에 적극적 인 사람은 드물더군요. 대다수는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7 : 3 정산 비율에 끌 려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 었습니 다만, 극소수였습니 다.

    세계 최초의 음원 공유 프로그램 이었던 냅스터는 아직 나오지 않았 다. 그런데도 가수들의 디지털 음 원에 대한 인식은 최악이었다. 유 재원은 와레즈를 적극적으로 차단 했고, FBI에서도 열심히 수사해서 저작권 침해로 돈을 벌던 운영자들 을 법원의 심판대 위에 올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차단하고 처벌하는 숫자보다 새로운 불법 공 유 사이트가 생겨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러한 저작권 침해는 실제 앨범 판매량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CD를 리핑해서 음원을 만드는 것 에 거부감을 느끼는 음악계 사람들 이 훨씬 많았다. 아예 소니 뮤직에 서는 음악 CD를 복제할 수 없는 기술을 만든다고 난리였고, 다른 음반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인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유재원도 공감했 다.

    하지만 딱 공감까지였다. 앞으로 는 물리적인 앨범을 사는 것보다 디지털 음원의 비중이 대세가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그 러니 대세에 밀려나기보다는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게 유재원의 마스터플랜이 었다.

    "네, 처음에만 이렇지, 몇 년 지 나면 확 달라질 거니까요. 계약이 갱신된 아티스트 리스트는 바로 한 국에 보내주세요."

    -물론입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전송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리스트를 보내라고 하는 이유는 CD나 릴테이프 상태로 있 던 음원의 디지털 변환 작업이 한 국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ID 그룹 한국 지사가 직접 변환 작업을 하는 건 아니고, 테헤란로 에 즐비한 IT기업들에게 외주를 주 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었다.

    테헤란로에 있던 IT 기업에게는 이런 사소한 외주라도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코스닥이 작살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 작업이긴 해도 확실한 수익의 창출이었으니 말이 다.

    "다른 음반 회사들과도 접촉해보 세요. 신작은 무리겠지만, 나온 지몇 년 된 앨범은 디지털 유통을 하 는 게 훨씬 이익이잖아요."

    -그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해보겠 습니다.

    음반사의 매출은 신작 앨범에 절 대적으로 의존한다. 발매된 지 오 래된 음악은 일부 마니아가 아니면 사는 사람이 없는 탓이다. 게다가 그러한 수요도 매장마다 재고가 제 각각이라서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게 쉽지 않았다.

    디지털 음원으로 바꿔 판매하면 접근성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진다. 게다가 각종 이벤트나 할인을 통해 새로운 구매력을 창출할 수도 있다.

    넥스트 뮤직이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디지털이라는 세계는 10대와 20 대에겐 문화로 자리잡았다. 한국에 서도 이 점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 로써 넥스트 뮤직은 올해 처음으로 수익을 기대하고 있었다.

    바로 아이돌과 팬덤 문화였다.

    한국에서는 1세대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그룹들이 꽤나 많이 나왔 다. 그리고 이들을 열성적으로 지 지하는 팬들이 생겼는데, 구태의연 한 언론에서는 빠순이라면서 혹평 을 주저하지 않는 열성적인 그룹이었다.

    아이돌의 팬덤에게 최대 과제는 지지하는 아이돌을 음악 차트 순위 권에 올리는 일이었다. 한국의 경 우엔 매주 한 번씩 있는 음악 방송 에서의 순위가 중요했는데, 순위 산출 방식에 넥스트 뮤직 차트가 포함됨으로써 10대와 20대를 공략 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넥스트 뮤직이 끝나 면 필름 라이브러리로 VOD 사업 도 할 생각이니까, 워너브라더스나 방송국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술 도 좀 닦아 놓고, 디지털 컨버팅 작업도 준비하라고 해주세요."

    -VOD 라니 요?

    "Video On Demand, 사용자가 방송을 요청만 하면 동영상을 마음 대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해요. 다시 보고 싶은 영화나 TV쇼, 드 라마 등을 비디오 대여점을 찾지 않고 집안에 앉아 즉각적으로 볼 수 있죠."

    넥스트컴캐스트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했던 ADSL이라는 기술이 바 로 VOD를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었다. 여러 인프라의 한계로 실현 하진 못했지만, IT기술이 성숙한 지금에는 가능하다. 특히 구 넥스 트컴캐스트의 가입자들의 경우 셋톱박스가 디지털로 전면 교체되었 는데, 펌웨어의 업그레이드만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최신의 셋톱박스였다.

    유재원은 이 셋톱박스를 이용해 타임워너가 가진 영화와 방송 프로 그램을 원하는 대로 주문해서 볼 수 있는 서비스도 시작할 계획이었 다.

    인터넷 대역폭도 이제는 고화질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도 남을 정도였고, 인터넷 서버기술도 발달했다. 유재원은 조만간 캐시 서버라는 걸 북미와 한국에 먼저 보급할 생각인데, 그 작업이 완료되면 수백만 명이 하나의 콘텐츠에 몰리더라도 버벅거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후로도 유재원은 레밍턴과 30 분 정도 더 통화하면서 앞으로의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전략에 대해 논의했고, 통화를 종료했다.

    "레밍턴 아저씨한테는 좀 미안하 네."

    요즘은 보스 소리가 좀 줄어든 레밍턴이었지만, 그래도 유재원을 전적으로 따르는 사람이었기에 대 화는 매우 매끄러웠다. 마지막에 와서 사적인 이야기를 좀 하긴 했 는데, 통화 분량 대부분은 일 이야기뿐이었던 탓이다.

    게다가 레밍턴이 상대해야 할 사 람이 문제다.

    21세기에 디지털 음원 서비스나 VOD는 그야말로 대중적인 서비스 였고, 확실한 캐시카우였다. 일단 선점해 놓으면 그 지위는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사업이기도 했다.

    이보다 확실할 수가 없는 사업인 데도, 지금 이걸 추진하려면 수많 은 이해관계를 정리해야만 했다. 그나마 유재원은 예상보다 훨씬 이 른 시점에 타임워너라는 거대 미디 어 회사를 품에 안은 덕에 그 사업 을 시작할 여건을 만들었다.

    이전보다 이른 시기라는 건 분명 하지만, 본인이 촉발한 기술 가속 덕에 북미나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 수준은 2000년대 초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니었다.

    지금은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달려야 할 때였다.

    4월이 되었다.

    어떤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이 라고도 했다는데, 한국에서는 시적인 표현이 아닌, 사실 그대로 4월 은 잔인한 달이었다.

    희망을 가득 안은 전명헌 정부가 출범했지만, 그 희망은 아직 씨앗 상태였던 탓이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IMF 체제가 시작되면서 한국은 아직도 추운 겨 울 같았다. 기업의 구조조정도 가 속화되었다.

    연초까지만 해도 대기업들은 희 망퇴직자를 받는 수준이었다면, 4 월에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시작 하면서 칼바람을 일으키는 중이었 다.

    전명헌 정부는 기업들의 구조조 정이 단순한 대량 감원을 통한 고 용 비용 절감에서 끝나는 것이 아 니라, 경제 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중이었 다. 하지만 언론과의 전쟁 때문에 그러한 면은 쉽게 주목받진 못했다.

    이른바 청탁금지법의 국회 통과 이후, 매일 쏟아지는 신문에서는 전명헌 정부에 관한 호의적인 기사 를 찾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자들은 이제 어디 가서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다. 현 금, 현물 혹은 식사나 술 등등 1만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유?무형적인 이득을 받으면 벌금형이었다. 벌금도 몇 만 원 정도가 아니라 몇 십만 원부터 시작했다. 만약 청탁 을 받은 액수가 1,000만 원 이상이 면 최소 징역형으로 시작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청탁금지법이 통과되면서 오보나 가짜뉴스에 대한 대책도 함께 통과 되었는데, 이 조항들이 생각보다 강력했다.

    오보나 가짜뉴스를 보도한 게 밝 혀지면, 해당 기사의 분량과 동일 한 정정 기사를 동일한 자리에 다 시 실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는 게 뒤늦게 밝혀지면서 더 논란을 키웠다.

    청탁금지법이 워낙 큰 문제라 거 기에만 집중했다가 뒤통수를 거하 게 맞은 것이다.

    예전엔 잘못된 기사가 있더라도, 코딱지만 한 크기의 구석진 지면에 바로잡는다고 흐}는 식으로 때우고 넘어갔다. 대문짝만하게 오보를 내 고도 그렇게 넘어가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법으로 그 걸 막았다.

    같은 크기, 같은 위치에 정정 기 사를 내야 했기에 본인들의 치부를 확실히 드러내게 생겼다.

    4개월 동안의 계도 기간이 있으 니 당장 시행되는 건 아니었지만, 신문사들은 당장 폐간이라도 할 것 처럼 난리였다.

    기자들과의 긴밀한 커넥션을 유 지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써먹었던 관료들도 뒤늦게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지지율은 굳 건했다. 게다가 신문들의 농간에 속은 기억이 생생했던 탓에, 그 분 노는 아직 식지 않았다. 오히려 본 인들은 개혁적인 전명헌의 조치에 반발하며 거부하는데, 국민들에겐 고통만 강요하는 언론사의 행태는 완벽한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탁금지법보다 더한 법 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공수 처였다. 이건 단지 기자들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기득권들을 정조 준한 법률이었기에, 여당에서도 말 이 나오는 사안이었다.

    전명헌 대통령은 주변국 방문 일 정을 미루면서까지 타협은 없다면 서 무조건 밀고 나갈 기세였고, 이 번 4월 정기국회에서 대충돌을 예 고한 상태였다.

    한국이 이렇게나 급박하게 돌아 가는 와중이었지만, 유재원은 오랜만에 한가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 다. 안드로이드 98도 잘 발표했고, 새로운 신제품과 서비스 개발도 순 조로웠다. 그렇지만 늘 집에만 있 는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외출 준비를 마친 유재 원은 가장 믿을 수 있는 경호원인 그렉만을 대동하고서 집을 나섰다.

    "어디로 모실까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이요."

    공항이라고 해서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할 사람을 마중 나가기 위함이었다.

    유재원을 만나러 오는 주인공은 한참 전에 찜해놓았던 컴퓨터 영재 이자 몇 안 되는 죽마고우이기도 한 영식이였다.

    최영식은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기대했던 것과 는 좀 다르다는 표정도 숨길 수 없 었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10시간이 넘는 비행기 여행은 처음이었고, 그에 대한 환상도 좀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 신발을 벗고 타 야 한다는 친구 녀석들의 조언이 엉터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약 간의 기대는 분명히 있었다. 그런 데 10시간이 넘게 한 자리에 앉아있는 건 온몸이 쑤시는 일이었다.

    티파니폰을 가지고 음악을 듣거 나, 게임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 다. 차라리 잠을 자는 게 좋았을 텐데, 옆자리가 문제였다. 코골이가 심한 아저씨가 먼저 잠에 들었기 때문이다. 영식이가 잠에 들만 하 면 드르렁 소리가 천둥처럼 터져서 깜짝 놀라 깨길 반복했다.

    혹시나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 스는 다를까 하는 후회가 살짝 들 었다.

    여기서 후회라고 하는 건 재원이 의 호의를 거절한 것이었다.

    재원이는 이번 영식이의 미국행 에 변함없는 우정을 자랑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스탠포드 대학교 입학에 관한 처리부터, 학교생활을 하면서 지낼 집도 마련해주었다. 영식이는 기숙사 생활을 하려고 했 는데, 대학생의 로망이란 모름지기 자취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행기 티켓까지 신세를 지는 건 너무 미안했다. 그 렇기에 영식이는 이런저런 아르바 이트를 하며 모은 돈을 써서 비행 기 티켓은 본인이 직접 샀다.

    "아구구, 이제 살 것 같다."

    비행기에서 나와 기지개를 켠 영 식이는 본인의 짐을 찾았다. 앞으 로 미국에서 지내야 하건만 챙긴 짐은 캐리어 한 개 분량이 전부였 다. 옷 몇 벌과 칫솔, 수건 등등의 생필품 그리고 보물 1호인 i웍스 노트북이 전부였다.

    기지개를 켠 후에 컨디션을 조금 회복한 영식이는 수화물대로 걸음 을 옮겼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 서 공항 사용법도 열심히 숙지했고, 친구들에게도 물어본 덕에 이론만 큼은 완벽했다. 거기서도 본인의 캐리어를 쉽게 찾았다.

    영식이의 캐리어는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 이다. 친구들이 스탠포드 입학을 축하한다고 돈을 모아서 선물로 사 준 캐리어였는데, 친구들이 기념이 라며 온갖 스티커들을 덕지덕지 붙 여줬다.

    다음은 입국 심사였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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