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24화 (424/1,007)

22권 8화

#376. 재벌 해체 전문가

"회장님, 축하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유재원을 기다 리고 있는 건 타임지라는 당대 최 고의 주간지와의 인터뷰였다. 유재 원의 스케줄은 최소 일주일 전에 잡혀 있지만, 타임지와의 인터뷰는 3일 전 갑작스럽게 잡힌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역대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면 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소감이 어떠신지요? 그것도 상속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신 기록이 신데요."

타임지와의 인터뷰 이유는 간단 했다.

유재원이 공식적으로 세계 최고 의 부자로 등극했기 때문이었다.

비공식적으로 치면 유재원보다 재산이 많은 사람을 찾는 건 어려 운 일이 아니었다. 유럽의 왕가라 든지, 중동의 석유 부자들, 1900년 대 미국에서 독점 산업으로 어마어 마한 부를 쌓은 후에 수면 아래로 사라진 가문들 등등.

이런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건 상장을 하지 않 고, 대리인 등을 고용해서 본인들 의 모습을 숨겼기 때문이다. 불과 몇 백 명 수준의 소수가 세계 자본 의 반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공식 부자 순위 따위가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 이 부의 규모가 공개되는 사람들을 가지고 줄을 세운 것이다.

유재원도 그간은 비상장 상태인 지라 줄 세우기에서 빠질 수 있었 는데, 이제는 틀렸다. 안드로이드 사에 이어 넥스트컴캐스트의 상장 그리고 타임워너와의 합병으로 인 해 드러난 부의 규모만 해도 이제 까지의 공식 부자 순위를 단박에 뛰어넘었다.

이 말인즉, 유재원이 한국에 있 는 동안 넥스트컴캐스트와 타임워 너의 합병이 성공리에 완료 되었다 는 이야기다. 이를 기념하여 타임 지에서는 다다음 주에 나오는 제호 의 표지 모델로 유재원을 선정했고, 특별 기사도 편성했는데, 거기에 들어갈 인터뷰를 ID 테크놀로지의 본사 사무실서 진행 중인 것이다.

"오늘 유 회장님께 물어볼 게 참 많습니다."

"뭔가요? 할 수 있는 답변이라면 해드려야죠."

"새로운 합병 회사인 타임워너 넥스트컴에 대한 비전부터 회장님 의 고향인 한국의 외환위기나 이에 대한 회장님의 적극적인 태도에 대 해서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타임지의 기자는 매우 정중했다.

기자의 말처럼 합병 회사의 이름 은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간단 하다. 합병의 주체는 넥스트컴이라 는 이야기다. 합병 계약서를 작성 할 때, 합병 기업의 경영권을 가져 가는 쪽이 합병 기업의 네이밍은 양보를 하기로 했다.

타임워너 측에서는 본인들이 경 영권을 가져갈 줄 알고 양보(?)를 해준 것인데, 실상은 완전 거꾸로 타임워너 넥스트컴이라는 회사가 되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합병으로 합병 직전의 종가 기준으로 넥스트컴 720억 달러, 타임워너 690억 달러 로, 합병 기업의 주가 총액은 1,41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중 유재원이 보유한 지분은 41%였으니 단순 계산으로 564억 달러가 본인의 몫이었다.

이렇게 보면 41%의 지분으로는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합병 기업의 회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우호 지분 덕이었 다. 바로 테드 터너 부회장이었는 데, 9.2%의 지분을 모조리 유재원 에게 밀어주었다. 덕분에 아슬아슬 하게 50%를 넘기면서 유재원이 합병 기업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 게 되었다. 소액주주들의 위임장도 유재원쪽이 훨씬 많이 모아서 최종 적으로는 50%대 후반의 지분을 확 보했다.

덕분에 타임지에서 나온 인터뷰 어의 태도도 정중함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타임워너 넥스트 컴으로 새롭게 태어난 합병 기업 안에는 타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오너도 교체가 되었는데, 오너로 등극한 사람 역시 유재원이 었으니 말이다.

각자의 계열사에 대해서는 기존의 경영진을 존중한다는 조항이도 합병 계약서 안에 있긴 했다. 그러 니 고용 정책이나 운영 정책이 바 뀌진 않았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게 강제 조항 은 아니었으니 유재원이 억지를 부 리면 또 막을 수가 없다는 점에 있 었다.

물론 유재원은 비전문 영역인 미 디어 부분에 있어서 경영권을 적극 적으로 행사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타임워너의 기존 경영진도 기본 은 하는 양반들이었으니 말이다. 대신 인터넷과 기존의 미디어를 결 합하고, 타임워너가 보유한 시네마라이브러리, 뮤직 라이브러리, 방송 자료 등을 이용해 새로운 차원의 미디어 서비스를 만들 계획이었다.

"후후, 비밀이라고 하면 독자 님 들이 많이들 실망하시겠죠?"

비밀 소리에 화들짝 놀랐던 타임 지 기자였지만, 유재원의 얼굴에 웃음기가 있는 걸 보고는 안도했다.

"일단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유통 하는 음악을 가지고 새로운 서비스 를 만들어 볼 작정입니다."

"아, 한국에서 서비스 중이신 넥 스트 뮤직 말씀이시군요?"

기자의 대답에 유재원은 오? 하 는 표정을 지었다. 타임지의 기자 라고 하면 뭔가 구시대적인 느낌이 었다. 실제로 지금 유재원 앞에 앉 아 있는 기자도 40대 중반은 넘어 보였다. 그러면 신문물에 대해 거 부감이 생길 나이였는데, 미국도 아니고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넥스 트 뮤직을 바로 떠올린 건 대단한 일이었다.

어쩌면 이번 인터뷰를 한다고 벼 락치기 공부를 한 것일 수도 있지 만, 인터뷰를 녹음한다고 테이블 위에 올린 것은 기자용 녹음기가 아니라, 티파니폰이었고 핸드폰의 녹음 어플을 사용한 걸 보니 진짜 IT에 흥미가 있는 사람인 것은 확 실했다.

그걸 확인한 유재원은 당연히 호 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네, 맞아요. 한국은 최첨단 기술 을 테스트하기에 좋은 나라입니다. 신기술에 대해 거부감 대신 호기심 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빠르게 적 응합니다. 나라의 지형 덕에 인터 넷 인프라도 훌륭하고, 컴퓨터의 보급률도 매우 높지요. 그래서 우 리 ID 그룹도 한국에서 새로운 서 비스를 시범적으로 펼쳐보고, 더욱 완성도를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광을 파는 유재원이다.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국민 PC 보급 사업은 대성공이었고, 이제는 집집마다 브로드밴드 인터넷이 깔 려 있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의 보도를 보면 외환위기 중인 나 라이니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 난리였지만, 당연히 과장이었다.

비관적인 뉴스가 계속 쏟아지는 건 사실이고, 역동성이 좀 많이 사 라지긴 했어도 폭동이 일어난 일은 없었다.

오히려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서 다시 한번 해보자 하는 의지가 충 만했다.

금 모으기 운동도 예전 그대로 벌어지는 중이었다.

명분은 참 좋은데, 실질적으로는 금을 내놓지 않고, 오히려 사들인 일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갔던 그 운동이었다. 그렇게 약삭빠른 누군가만 돈을 벌지 않도록 ID 인 베스트먼트에서는 금 모으기 운동 에 감동해서, 국제 시세 보다 10% 이상 비싼 값에 매입하겠다고 발표 했다.

금도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포 트폴리오에 있는 상품이기에, 금을 모으는 한국민에게도 좋고 ID 인베 스트먼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하여튼, 한국에서 IT 신기술은 빠르게 보급 중이었고, 넥스트 뮤 직도 이제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 는 중이었다.

특히 티파니폰에 AAC와 mp3 재생 기능을 넣은 게 주효했다. 사 람들이 이제 워크맨과 같은 카세트 플레이어 대신 티파니폰과 같이 음 원 재생 기능이 있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게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티파니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 지 자그마한 벤처기업들에서 제법 완성도 있는 mp3플레이어를 선보 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최초의 mp3를 만든 새한이라는 회사는 유 재원의 쇼핑리스트에 포함되어 있 었다.

새한에서도 ID 그룹의 인수 제한 을 두 팔 벌려 환영했고, ID 테크 놀로지에 편입된 상태였다.

"물론 미국에서의 서비스는 한국 과는 좀 다를 겁니다. 한국에서 먼저 운영해본 경험을 십분 활용해 보다 발전된 서비스를 보여줄 작정 이니 말입니다."

유재원이 생각하는 미국의 음원 사업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강화된 상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ID 테크놀로지에서는 비장의 무기도 만드는 중이었다.

비장의 무기는 이미 프로토 타입 을 넘어, 리테일 버전의 완성을 앞 둔 상태였고, 양산도 준비 중이었 다. 이 때문에 중국에 공장을 지어 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던 것인데, 유재원은 한국 생산을 고 집 했다.

지금이야 중국의 임금이 세계 최 하위였지만, 중국의 인건비도 21세 기가 되면 팍팍 오른다. 그냥 한국 의 실력이 증명된 전자 업체에 아 웃소싱을 주는 게 제일 속 편한 일 이었다.

그렇게 유재원과 함께 폭넓은 식 견을 자랑하며 IT기술 그리고 구세 대 미디어와의 결합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자는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이번에는 좀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인데요. 한국 외환위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회장님께서 나스닥에 대한 투자 를 접고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준 비한다는 루머에 대해서도 밝혀주 시길 바랍니다."

역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 알 았다.

"네, 사실입니다."

덕분에 유재원은 당황하지도 않 고 간단히 대답했다. 대신 유재원 에게 귀를 기울이던 기자가 답답해 졌다. 인터뷰에서 가장 곤란한 사 람이 바로 질문에 단답형으로 말하 는 사람이었다. IT 관련해서는 상 세한 답변이 나와서 즐거웠는데, 갑자기 단답형이라니.

"다른 잡지에서의 인터뷰였다면, 이렇게만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타임지도 이제 저와 한 식구가 되 었으니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 는 이야기를 해드리죠."

유재원의 밀당 실력은 최고였다.

잠깐 끊어졌다가 이어진 유재원 의 말에 기자의 표정이 180도 달라 졌다.

"음, 한국의 위기가 아니더라도, 저는 이 시점에서 슬슬 IT섹터에 대한 투자를 정리했을 겁니다."

"그 말씀은?"

"현재 나스닥 지수만 봐도 알 수 있듯, 오버슈팅 상태라는 거죠. IT 분야의 펀더멘털을 의심하는 건 아 닙니다만, 다만 능력이 증명되지 않은 기업까지 덩달아 오르는 걸 보니, 이제 실적을 보고서 확인해 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봅니 다. 저는 이보다 더 보수적으로 접 근했지요."

"회장님은 세계 최대의 IT그룹 오너신데, 보수적이라는 말은 잘 안 어울립니다만."

"동의합니다. 다만 저 스스로 IT 기술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과 실 리콘밸리의 기업에 투자하는 일은 성격이 아주 다르죠."

"아, 그렇죠."

"그렇게 투자를 정리하는 와중에 한국에 외환위기라는 불행한 일이 터졌던 겁니다. 어쩔 수 없이 IMF 에 긴급 자금 지원을 받았고, 그동 안 경제 분야의 여러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문제점을 고치느라 전 국민이 고생 중이죠. 그걸 외면하 기는 힘들었습니다."

레밍턴 부회장 그리고 IMF의 캉 드쉬 총재에게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말을 되풀이하는 유재원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마냥 똑같은 건 아 니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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