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423화 (423/1,007)

22권 7화

"음, 아시겠지만, 조만간 IMF에 서 협상 팀 교체를 선언하고 조만 간 새롭게 인선이 이뤄질 거예요."

"예,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

유재원은 IMF와의 협상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극비는 아니 었지만, 그렇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낼 일도 아니었기에, 최강욱에게도 만나러 간다고만 했지 어떻게 협상 할 거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IMF의 협상 팀의 면면 을 보면 아마 깜짝 놀라 거예요. ID 인베스트먼트 출신의 전문가들 이 즐비할 거라서요."

"예? 우리 쪽 사람들이라고요?"

유재원은 최강욱의 깜짝 놀란 모 습을 보고 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 리곤 책상 서랍에서 IMF의 캉드쉬 총재와 맺었던 계약서를 꺼내 최강 욱에게 전해줬다.

한글은 단 한 자도 들어가 있지 않은 100% 영문 계약서였지만, 최 강욱이 이를 빠르게 살펴보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처음엔 김대석과 함께 영어 전문학원에 다녔어야 할 만큼 영어에 어려워했지만, 시간이 많이 지금은 전문 비즈니스에서도 프리토킹이 가능할 만큼 실력이 월 등해졌다.

어려운 문장이 가득한 계약서를 읽어보는 것은 이제 큰일도 아니었 다.

"100억 달러?"

"네, IMF에 출자한 대신 얻어온 전리품이에요. 그리고 그 100억 달 러도 전부 한국을 위해 쓰기로 약 속했고요."

"세상에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닙 니까? 16조 원이나 되는 돈을!"

"아아, 그냥 준 게 아니라, 나중 에 다 돌려받게 되어 있어요. 빌려 준 돈이니까요. 게다가 1년 전 환 율로 따지면 9조 원 정도죠."

지금 1달러에 1,612원 하는 환율 로 계산하니 16조 원이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1년 전만 하더라도 9조 원 정도으로 확 줄어든다.

"중요한 포인트는 IMF의 협상 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최강욱 부회장님 이라는 거죠."

유재원은 16조 원에 꽂힌 최강욱 에게 진짜 중요한 핵심을 다시 짚 었다.

"예? 저라고요?"

최강욱이 깜짝 놀라는 건 당연했 다.

현재 한국에서 IMF 협상 팀의 존재감이란 상상을 초월했다. IMF 협상 팀이 말하는 방안들은 마치 꼭 이뤄내야 할 지상 과제였고, 이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 경제 재건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사실 그것들은 모두 언론이 만들 어낸 허상이었다. IMF도 경우에 따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본인들이 만들어낸 과오를 숨기기 위해서 IMF의 존재감을 한껏 키워 올려준 것이다. 유재원으로서는 나 쁘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을 이용해서 그동안은 불가능했던 개혁 조치를 현실화 하는 데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그 리고 그 임무를 최강욱에게 전해준 것이다.

"네, 저는 조만간 미국으로 돌아 갈 거라서요."

유재원은 이번 한국행의 목적이 었던 취임식 참석도 끝났으니, 이 제 미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재원이 계속 한 국에 있으면서 외환위기 극복을 위 해 일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전명헌 대통령 탄생에 지대한 역할을 했으니, 유재원도 다른 킹메이커들처럼 한국서 활동하면서 이득을 챙길 거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완벽한 오판이었다.

유재원에게는 좁은 한국보다 미 국에서 활동하는 게 몇 배는 더 큰 이익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겠다는 건 아니었다.

IMF의 협상 팀을 본인의 영향력 아래에 넣은 것 말고도 직접 개입 할 방법을 생각해 두었다.

"외환위기에 대한 대책은 두 가 지 더 있어요."

그러면서 유재원은 책상에 놓인 리모컨의 특정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남산을 비추고 있던 통짜 유 리 위로 하얀색 프로젝터 스크린이 내려왔다. 곧이어 프로젝터에 전원 이 켜졌다. 유재원은 본인의 i웍스 노트북과 프로젝터를 연결했고, 곧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바탕화면이 커다랗게 나타났다.

곧이어 노트북을 조작한 유재원 은 ID 프레젠테이션을 실행했고, 보안영역에 저장된 비밀스러운 파 일 하나를 열었다.

"화이트타이거 펀드?"

최강욱이 화면에 나타난 타이틀 을 읽었다.

고풍스러운 폰트로 화이트타이거 라고 크게 달린 글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바로 아래에 펀드 라는 글자는 조그맣게 달려 있었다. 비단 글자뿐만이 아니라, 파란 배 경에 하얀 윤곽선으로 백호의 얼굴 이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는 타이틀 화면이었다.

"제가 만들 회생전문 펀드죠. 규 모는 200억 달러고요."

ID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나스닥 IT 대형주에 했던 투자를 모두 청 산하면서 나오는 자금이 400억 달 러 였다.

그중에 100억 달러는 IMF에 갔 고, 나머지 300억 달러 중 200억 달러를 가지고 백호 펀드를 만들 거라는 이야기였다.

최강욱은 일단 놀라기에 앞서 유 재원의 설명에 집중했다.

"외국의 경제 전문가들은 물론이 고 한국의 언론들은 당장 내일이라 도 한국이 망할 것처럼 말하지만, 제가 보는 모습은 그렇지 않아요. 이번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한국이 경제 시스템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점이 단번에 해소될 거예 요. 그러면 그동안에 성장하지 못 한 것까지 합쳐서 폭발적으로 성장할 거라고 봐요. 잠재력도 충분하 죠. 서해 너머에 있는 중국은 매년 10% 이상의 성장을 보여줄 것이 고, 세계 경제도 활황일 테니까요."

유재원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로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최강 욱은 한 대목에서 의구심을 느끼고 질문을 했다.

"저기, 회장님. 전에 ID 테크놀 로지의 생산 시설 확충에 대해 논 의했을 때, 회장님께서는 중국 공 장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말했죠."

저렴한 임금으로 세계의 시장을 자처하고 있는 중국이고, 수많은 기업이 중국에 생산기지를 짓겠다 고 난리인 건 사실이었다. 오죽하 면 ID 그룹에서도 새로운 공장 신 설은 중국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티파니폰의 폭발적인 수요 때문 에 TG 컴퓨터의 생산량이 따라가 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여기에 뉴 에그 시리즈, i웍스 시리즈까지 있 어서 새로운 하청 공장을 찾든가, 아니면 공장을 만들어야 했다. 마 찬가지로 소프트웨어 패키지 생산도 덕진리 공장에서는 한계였다.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서 여러 지역을 후보를 선정했고, 회사의 임원들은 인건비가 가장 저렴한 중 국을 추천했다. 그런데 유재원의 강력한 거부로 인해서 중국에 공장 을 짓자는 의견은 백지화되었다.

"회장님의 말씀대로라면 중국에 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 신데, 과연 10% 성장할 수 있을까 요'?"

중국의 최대 리스크는 바로 공산 당 독재였다.

공산당의 상황에 따라 온갖 정책이 오락가락하기 일쑤였고, 국제법 도 무시했다. 국가 차원에서 저작 권을 무시했고, 기술을 강탈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러니 최첨단 기술이 장점인 ID 테크놀로지가 중 국에 공장을 세우면 독자적인 기술 들은 탈탈 털릴 확률이 99.99%다.

"물론이죠."

반면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중국 의 저렴한 인건비 덕에 당분간은 이익이 크게 날 것이다. 게다가 중 국 자체적으로 도시와 산업이 발달 하면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요소도 있으니 10% 성장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우 리나라의 기업들이 외국에서 보는 것처럼 죄다 부실 덩어리는 아니라 는 거고요. 그래서 백호 펀드로 그 러한 회사들을 사들일 거예요. 부 도나 났더라도 회생 가능성이 크다 싶으면 바로 지르세요."

"예? 지른다고요? 제가 말입니 까'?"

빠르게 되물어보는 최강욱의 얼 굴에 당혹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네, 저는 미국에서 할 일이 있 잖아요. 게다가 제가 한국에 있으 면 전명헌 할아버지와의 관계로 인해 의심의 시선만 더 받을 걸요. 200억 달러로 원 없이 질러 보세 요."

"예? 200억 달러 전부를요? 황 재홍 사장의 보고서를 저도 보긴 봤는데, 그 리스트에 있는 회사들 을 모두 합쳐도 200억 달러에는 턱 없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이에 대해 유재원은 간단히 말했 다.

"지금이야 그렇죠. 그런데 5대 재벌 중 하나가 부도가 나면 어떨 까요?"

"헉! 회장님은 우리나라 5대 재벌도 위험하다고 보십니까?"

"네, 대호 아니면 일성이 좀 위 험하죠. 그리고 시중의 대형 은행 들도 좀 위험하죠."

유재원은 대호 그룹 하나를 콕 찍어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딱 들 어맞으면 그것도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기에 일성도 끼워 넣었다. 그 렇지만 최강욱에겐 상관없는 일이 었다. 한국에서 어마어마한 문어발 확장을 했던 재벌 기업이 도산할 거라는 상상은 아직 어려웠던 시점 이었던 탓이다. 게다가 제1 금융권 의 은행도 무너진다면 그것도 최악 이다.

자그마한 종합금융사가 도산하거 나 퇴출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하여튼, 매물로 나온 회사나 은 행 중에 괜찮은 것들을 백호펀드가 인수해서, 정상화한 다음, 매각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생각이에요."

"아예 보유할 생각은 안 하십니 까?"

마지막으로 최강욱은 혹시나 하 고 물어봤다.

진짜 유재원의 말대로 대호나 일 성이 박살이 나서 백호펀드라는 이 름으로 사들이게 된다면, 이 회사들을 묶어 한국에서도 거대한 그룹 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최강욱의 물음에 잠깐 고민에 잠겼다. 그렇지만 답은 금 방 나왔다.

"IT와 관련된 게 아니면 저에겐 매력이 없네요. 굴뚝기업은 굴뚝기 업 전문가에게 돌려주는 게 제일 좋겠죠."

ID 그룹의 본질은 IT 전문기업 이었고, 유재원은 이 점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최강욱도 과연 회장 님답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 다. 문뜩 나머지 100억 달러의 쓰 임에 대해서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어련히 다 생각이 있을 거라고 여 기며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백호 펀드에 IMF 협상 팀을 책임져야 하니 다른 걸 챙길 여력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 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강욱을 배웅한 유재원 은 이제 슬슬 미국으로의 출국 준 비를 시작했다.

-국민 여러분, 네티즌 여러분,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대통령 전명헌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과의 약 속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전명헌의 3번째 국민과의 대화가 넥스트컴에서 재개되었다.

이전 두 번의 방송을 통해 유명 세를 톡톡히 치른 덕에 방송을 시 작한다는 공지가 뜨자마자 접속자 들이 들이닥쳤고, 벌써 20만 명을 돌파했다.

-이번 시간에는 저번 방송에서 제대로 끝내지 못했던 언론 개혁에 대해서 마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다 만 언론들이 가짜 뉴스로 국민 여 러분을 현혹했던 사례는 충분히 말 씀을 드린 것 같고, 이번엔 이를 막을 대책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 니다.

곧 화면이 언론 종사자에 대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 에 관한 법률이라는 딱딱하기 그지 없는 문구로 된 법률 문서가 화면 에 큼지막하게 떠올랐다.

-이게 무엇이냐? 제가 후보 시 절부터 구상했었던 청탁금지법이라 는 겁니다. 검찰의 가장 큰 무기가 기소권이라 말씀드렸지요? 기소권 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기에 기소하 지 않으면 재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단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언론인 들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사건을 보고도 기사화하지 않는 것에 있습 니다. 그리고 그 일은 보통 금품이 오가는 청탁 속에서 이뤄지지요. 불법적인 청탁 자체를 강력한 형법 으로써 금지하는 것이 바로 이 청 탁금지법이라는 말씀입니다 .

이전의 21세기에는 김영란법으로 불렸던 법안이, 훨씬 강력하게 재 설계되어 이전보다 훨씬 더 이른 98년 초봄에 강림한 것이다.

"아, 시원하다."

유재원은 열정으로 가득 찬 전명 헌 대통령의 모습을 다시 한번 눈 에 담은 후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 참 아쉽게도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었던 사다리를 걷 어차는 데 이렇게나 열심인 전명헌 대통령의 모습에 유재원의 발걸음 은 너무도 가벼웠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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