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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418화 (418/1,007)

22권 2화

그런데 최현희 회장도 보통은 아 니었다.

"네, 나라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매우 굴욕적이라 할 수 있는 상 황이었지만,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 는지 얼굴에 띠었던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대답 했다.

"고맙습니다. 나라 사정 때문에 여러분께 부담이 되는 이야기는 했 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 면 좋은 시절은 분명히 올 겁니다."

그런 최현희 회장의 답변을 들으 며 끝까지 노력 타령을 하는 전명 헌이다.

"자, 어려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요. 오랜만에 모였으니 제가 한턱 크게 내겠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직접 주문도 했 다. 실제로 호텔에서 제일 좋은 코 스요리를 시켰다.

사실 준비는 미리 다된 상태라 서, 주문이 끝나자마자 몇 분이 걸 리지도 않아 바로 첫 번째 음식이 나왔다. 5성 호텔의 레스토랑답게 맛이 제법 훌륭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재벌 총수들은 그 음식들 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들어 가는지 맛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오늘 먹은 밥값의 수십만 배는 도로 뱉어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전명헌도 재 벌 출신이니 이번에 기업들의 편의 를 잘 봐주지 않을까 했던 기대감 도 박살이 난 탓에 아무리 좋은 음 식이 나와도 맛이 없었다.

특히 최현희 회장은 모래를 씹는 듯한 기분이었다. 당연히 이 수모 는 기필코 갚아주겠다는 생각도 뼈 에 사무칠 정도였다.

이러한 전명헌의 파격 행보는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다음 날에는 노동계 인사들을 만 났다. 장소는 재벌들과 만났을 때 와 달리 매우 정치적인 통일국민당 당사 회의실이었다.

기본 분위기는 냉랭했고, 본격적 인 대화가 시작되자 날이 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강성 노조 에 당한 게 많은 전명헌은 노조에 관한 호의가 전혀 없었다. 표정부 터가 좋지 못했다. 전명헌이 유재 원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떨떠 름한 그 표정이 기본이었고, 양대 노총의 위원장들이 강성 발언을 하 면 인상을 쓰기도 했다.

다행이라면 그러한 노총 위원장 들의 주장에 전명헌이 얼굴을 찌푸 리긴 했어도, 강하게 받아치진 않 았다는 점이다.

유재원에게 말했던 그대로 듣고 만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가서 는 국난 극복을 위해 노동자와 기 업 그리고 정부가 참여하는 노사정 대혁신 위원회를 만들 것이니 꼭 참여해 달라는 말까지 했다.

노사정 대혁신 위원회라는 것은, 앞으로 경제 분야에 일어날 개혁의 방향을 정하는 대타협 기구였다. 본래는 노사정위원회였는데, 유재원 은 개혁의 강도와 범위를 대폭 확장시킬 작정이라서 '대혁신'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기사도 좋게 나왔다.

전명헌이 처음으로 밝힌 노사정 대혁신 위원회라는 것도 매우 좋게 써주었다. 평소의 언론이었다면 전 명헌이 노동계 인사들과 대화를 할 때 찌푸렸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타이틀로 뽑아서 자극적인 기사를 쓰고도 남았다.

하지만 당선 직후부터 취임식까 지는 일명 허니문 기간이라고 해서 언론들은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 었다.

그렇게 파격적으로 시작한 전명 헌의 마지막 행보는 ID글로벌헤드 쿼터 빌딩의 방문이었다.

정확하게는 본사 빌딩에 입주한 넥스트컴 본사를 찾아오셨다. 당연 히 유재원과도 이야기가 된 일이었 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근무 중이 던 사람들은 대통령 당선자가 찾아 오자 어쩔 줄을 몰랐다.

전명헌이 1분 1초가 바쁜 이때 의미 없이 넥스트컴 본사를 찾은 건 아니었다. 한국의 새로운 먹거 리인 IT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전명 헌은 대국민 소통 강화를 위해 청와대의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청와대 홈페 이지는 좀 딱딱한 느낌인지라 국민 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게 넥스트 컴 사이트에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페이지를 개설할 예정이었고, 이를 발표하기 위해 넥스트컴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대통령과 국민들 사 이에 언론이라는 중간 유통업자가 있었다. 덕분에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들의 성향에 따라 채색되어 유 통되었고, 때로는 심한 왜곡이 일 어나기도 했다.

유재원은 그러한 부작용을 다 알 고 있었기에, 직접 소통하길 권했 고 그 방법이 인터넷 페이지였다. 단순히 대통령의 말이나 청와대 정 책을 전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청원 기능도 추가해서 민감한 사회적 이 슈를 청와대가 빠르게 받아 대응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다.

"가장 먼저 IT혁명을 시작한 곳 이 한국입니다. 이 점을 십분 살려 우리 전명헌 정부는 청와대 홈페이 지는 물론, 넥스트컴의 대통령과의 대화 페이지를 통해 국민 여러분과 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챙기겠습니 다."

전명헌은 카메라 앞에 서서 짧은 영상도 찍었다.

대통령 임기 시작과 함께 서비스 될 홈페이지에 올려놓을 인사말이 었다.

짧은 영상임에도 NG가 여러 번 나서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전명 헌은 끝까지 웃는 얼굴로 촬영을 완수했다.

총리 시절 안전점검단 홈페이지 를 운영하면서 여러모로 인지도도 끌어올렸고, 지지율까지 알뜰히 챙 긴 기억이 있었기에, 전명헌도 청 와대는 물론 대통령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에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언론들은 당연히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청와대에 상주 기자가 수십 명이 있는데, 대통령이 그들을 패스하고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것은 언론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보로 보는 사 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걸 노골 적으로 표현할 용기도 없었기에, 에둘러 표현하거나 우려하는 수준 에 그쳤다.

그러나 먹이를 노리는 날카로운 눈으로 하나의 오점만 발견되기라 도 하면 매섭게 공격할 채비를 갖 추었다.

여론을 이끌고 프레임을 짜는 것 은 오로지 언론사만이 가질 수 있 는 특권이라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매우 부정적인 자세였다.

다만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었 다.

IMF 시대는 아직 시작도 안 했 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부도 소식 만 쏟아지다 보니 만성화가 된 모 양이지만, 큰 것들은 이제 시작이 었다. 게다가 이러한 IMF 외환위 기를 촉발한 원인 중에는 언론의 책임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 다는 사실이었다.

비슷한 시각.

유재원은 워싱턴 DC행 비행기 안에 있었다.

요즘은 장시간의 비행도 심심하 지 않았다. 노트북의 성능이 매우 좋아진 까닭에 사무는 물론이고 웬 만한 게임도 옵션을 타협하면 잘 굴러갔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라면 비행기 안에서 인터넷은 아직 도 불통이라는 점이었다.

유재원이 요즘 열심히 즐기는 게 임은 당연히 발매를 코앞에 두고 있는 스타크래프트였다. 예전에는 데이터만 있는 버전을 받아서 즐겼 다면, 이제는 양산을 앞에 둔 골드 버전을 가지고 즐기는 중이다.

완성된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유 재원은 매우 만족했다.

이전 생에 나왔던 버전과 다르게 여러 방면에서 강화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래픽 적으로 퀄 리티가 매우 좋아졌다.

예전의 버전은 VGA가 기본 해 상도여서 픽셀이 매우 거칠었다면, 이번에 완성된 게임은 XGA가 기 본이었고, HD해상도도 지원했다. HD해상도를 선택하면 가로로 길어 지면서 한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의 양이 살짝 많아진다. 유닛들의 묘 사도 훨씬 세밀해졌고, 모션도 부 드러워졌다.

그렇지만 스타크래프트 특유의 타격감은 그대로 살렸다. 이를 위 해서 게임을 완벽한 3D게임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유닛을 2D로 묘 사했다. 반면 맵은 3D로 만들어서 고저차 표현이 매우 좋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살릴 수 있도록 했다.

사운드도 기본 CD 음질이었고,

유닛들의 음성도 종족마다 개성을 살려 표현했다. 배경음악 역시나 실력 좋은 밴드와 오케스트라를 초 빙해서 녹음했다. 게다가 음악 관 련한 신기술도 적극 사용했는데, 상황에 따라 음악의 선율이 다이나 믹하게 바뀌는 뮤직 피드백 기술이 다.

이를 테면 생산 중에는 평온한 음악이었다가, 전투에 돌입하면 급 박한 음악으로 바뀌는 식이었다. 매우 자연스럽게 바뀌어서 게임의 몰입감을 한층 강화해준다.

마지막으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 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시네마틱 영상도 대폭 늘렸다. ID 테크놀 로지가 가진 데이터 센터의 연산력 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만든 CG영 상은 스티브 잡스의 픽사에서 내놓 은 토이스토리라는 영화보다 더 퀄 리티가 높았다.

데모 버전을 내놓으면서 오프닝 CG의 맛만 살짝 보여줬는데도, 게 이머들의 반응이 어마어마했다. 2CH닷컴의 전략게임 스레드에 접 속해보면 온통 스타크래프트 이야 기밖에 없을 만큼 게이머들의 반응 이 화끈했다.

이렇게 열심히 만든 CG 동영상 을 손실 없이 보여주기 위해 고화질로 인코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용량이 커져서 스타크래프트의 전 체 용량은 CD 두 장이 되었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멀티플레이 도 빠질 수가 없다.

멀티플레이는 싱글 미션과는 완 전히 다른 게임이라고 볼 수 있었 다. e스포츠 지원 기능도 훌륭해서 관전은 물론이고, 경기 중에 저장 도 가능했다. 다만 리플레이 기능 을 넣을까 하다가 말았다.

리플레이 기능은 양날의 검과 같 기 때문이다. 전략과 컨트롤 실력 이 그대로 노출이 되면 나중에 가 서는 피지컬 싸움으로 치닫게 되는 탓이다. 모든 게임이 피지컬에 영 향을 많이 받는 건 사실이지만, 유 재원은 스타크래프트에서는 그 시 간을 좀 늦추고 싶었다.

출시일도 정해졌다.

1998년 새해, 1월 17일이다.

현재는 한창 예약을 받고 있는 데, 기본 패키지는 물론이고 수집 가용 에디션이나 한정판 에디션 등, 모든 패키지들이 기대 이상으로 주 문이 들어왔다. 몇 년 전만 해도 블리자드라는 이름은 듣도 보도 못 했던 회사였는데, 이제는 믿고 구 매할 수 있는 메이저 업체가 되었 다. 여기에 잘 빠진 데모 게임도 한몫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여튼, 이렇게 공을 들여 만든 게임인지라, 유재원은 어디들 가서 도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판 더 할래요?"

김대석과 다이렉트 연결을 통해 1 : 1 대전을 끝냈던 유재원이 리게 임을 외쳤다.

"아이고, 회장님, 저는 이제 무리 인 거 같습니다. 게다가 곧 워싱턴 DC 도착이라 준비해야 할 일도 있 습니다."

김대석은 두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비행 시 작 후 내리 4게임을 했고, 4게임 모두 다 졌다. 김대석은 본인의 종 족인 저그를 선택했지만, 유재원은 3개의 종족을 바꿔가며 선택했고, 조금 전 끝난 게임에서는 랜덤을 고르기도 했다.

그런데도 김대석은 한 번도 이기 질 못했다. 심지어 게임 중에 여러 번 치렀던 한타에서 단 한 번의 승 기도 잡아보지 못했다.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유재원은 쿨하게 김대석을 풀어 줬다. 워싱턴 DC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김대석의 말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i웍스 노트북을 접진 않았다.

온라인 게임은 불가능하지만, 혼 자 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 니었다. 커스텀 게임을 만들고 무 한맵을 선택해서 7대1 컴퓨터 러시 막기도 있고, 맵에디터를 이용해 만들어진 다양한 모드 게임도 있었 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스타크래프트엔 통용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그 렇기에 스타크래프트 역시 ID 엔터 테인먼트의 히트작 계보에 오를 것임은 전혀 의심치 않는 유재원이었 다.

IMF 총재인 캉드쉬와의 회담 역 시나 마찬가지였다.

워싱턴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3시.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IMF 본부로 가서 캉드쉬 총재와의 회담이 시작된다. 그런데도 유재원 에겐 걱정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자신만만한 얼굴이었 고, 게임에 몰두해 마우스와 키보 드를 조작하는 모습도 경쾌하기 그 지없었다. 게임 속 수없이 많이 생 산된 유닛들은 유재원의 컨트롤에 의해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손끝으로 전 세 계를 지배하는 황제와도 같았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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