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8화
-음, 확실히 저희와는 예상 밖이군요. 동아시아의 외환위기 규모는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의 개발 도상 국가들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이고, 한국도 위태로울 겁니다. 하지만 일본이라면 다를 거라고 봅니다. 외환 보유고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나라입니다.
“그렇긴 하죠.”
유재원은 당연히 마스터플랜을 짜면서 한국 외환위기 사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만들었다. 하루아침에 뚝딱 만든 게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만들었고, 그걸 죽을 때까지 다듬었다. 주먹구구 식으로 찾은 건 아니었으니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동시에 유재원은 외환위기를 촉발한 이들에 대한 응징 방안도 당연히 갖춰 놓았다. 그 리스트에는 한국의 높으신 양반들도 있었지만, 일본도 빠지지 않았다.
사실 한국의 외환위기는 초기에 진압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치명타를 가해 완전히 골로 가게 만든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엔캐리트레이드로 한국과 동아시아 시장에 풀었던 자금을 필요 이상으로 급하게 회수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빠르고 단호하게 회수했다.
가뜩이나 외화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본의 자금 회수는 치명타였다.
덕분에 많은 학자들은 일본이 문민정부의 반일 정책에 이를 갈고 있던 차에, 뒤통수를 칠 기회가 오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려쳤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이번에는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한국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고, 일본에까지 확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일본의 체력도 아주 허약할 겁니다.”
조지 소로스에겐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조지 소로스는 뭔가 더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사실 유재원도 확신은 부족했다.
일본도 위험 요소가 있고, 본인이 이것들을 자극해서 일본까지 외환위기가 미치도록 지렛대를 움직여 볼 작정이었다. 그렇지만 본인 혼자 움직여서 일본도 외환위기에 휩쓸릴 거라고는 확신할 순 없었다.
대신 매운 맛이라도 확실히 보여줘서 탈아입구(脫亞入歐)처럼 일본인들의 기저에 딸려 있는 의식을 깨고, 일본도 동아시아에 속한 나라라는 걸 확실히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되로 받고 말로 돌려준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흥미롭군요.
조지 소로스는 일본은 정말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그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일본이 종점이라는 것에 동의하신다면 함께할 수 있을 겁니다만, 아니라면 건투만 빌어드릴 게요.”
유재원의 말에 조지 소로스는 복잡해지는 얼굴이었다. 본인이 보기에는 동아시아의 위기가 일본까지 쓰러뜨릴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유재원이 워낙 자신만만하니 뭔가 더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흠,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의견의 일치를 본다고 해도 우리끼리 협정서를 맺을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유재원의 마스터플랜에는 조지 소로스는 없었다. 오히려 그가 원래의 흐름 그대로 움직여주는 게 유재원에겐 변수를 줄여주는 일이었다. 다만 일본을 공략할 때 조지 소로스도 힘을 보태준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긴 했다.
-그 말도 정답이군요.
유재원의 냉정한 말에 소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헤지펀드가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먹기 좋은 먹잇감이 드러났을 때였다. 영국의 파운드화 공매도 때처럼 국가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손실이 일어나면 그 취약점을 각자 물고 늘어지는 것뿐인데, 제3자가 보면 마치 수많은 헤지펀드가 하나의 단일 자본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지 소로스처럼 발 빠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겠지만, 결국은 영국의 경우처럼 모든 헤지펀드들이 다 달라붙으면서 비슷한 양상으로 흐를 게 분명하다.
-혹시나 하고 찾은 건데 진심으로 대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저도 소로스 씨와의 대화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연락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대신 제 ID톡 아이디를 알려드릴게요. 캠과 마이크가 달린 컴퓨터나 티파니폰의 ID톡 앱을 사용하면 지금처럼 대화할 수 있을 겁니다. 번거롭게 우리 본사까지 찾아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 타피니 폰에서도 ID톡이 되는 겁니까?
조지 소로스가 깜짝 놀라며 본인의 티파니폰 2를 들어 보았다.
“그럼요! 지금처럼 고화질은 아니어도 화상 미팅도 가능해요. 여기 전면에 달린 카메라 모듈이 단지 셀카만 찍는 용도는 아니거든요. 다만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아니면 요금 폭탄이 터질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유재원의 입김이 많이 부족했다.
유재원은 티파니폰을 미국의 통신사에 공급했지만, 갑의 위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덕분에 티파니폰의 매끄러운 앞면과 뒷면에는 ID로고와 함께 미국 통신사의 로고가 찍혀 있었다. 게다가 데이터 요금에 대해서도 결정 권한이 없어서 답답한 속만 끓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TG모바일에 지분이 있었고, 이를 통해 데이터 통신 요금을 매우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었다.
초기엔 약간 말이 나왔던 가입비도 지금은 2만 원으로 크게 낮아졌다. 조금은 비싼 무한제 요금을 쓰지 않더라도, 기본으로 되는 데이터의 양도 제법 있었고, 설사 그게 다 소진된 후에 데이터를 사용하더라도 요금이 수백만 원씩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마치 한국에 2G가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패킷 당 요금이 책정되었다. 매겨진 가격도 상당히 비쌌다. 기본 데이터가 바닥난 상태에서 1메가바이트짜리 게임을 모르고 받았다면, 데이터 요금으로만 20달러는 더 나온다.
만에 하나 기본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지금처럼 몇 십분 동안 화상 미팅 기능을 쓰면 전화비가 몇 백 달러가 나올 수도 있다.
데이터 통화료 문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나오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라서 유재원은 마음의 칼만 갈고 있었다.
금과 같은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미국이야 평탄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ID 그룹도 순탄하게 영업 중이었고, 인터넷이나 소프트웨어 판매 등 다양한 부문에서 호조를 보였다. 타임워너와 넥스트컴캐스트와의 합병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에서 거의 살다시피하는 레밍턴 부회장은 제럴드 레빈 타임워너 회장에게도 밀리지 않으면서 유재원이 지시했던 방침을 확실히 지켰다.
이에 따라 넥스트컴캐스트는 재상장 심사가 끝나는 대로 곧장 재상장을 추진하고, 이후 6개월 동안의 주가를 평균한 가격으로 합병의 기준을 삼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타임워너의 가치도 넥스트컴캐스트가 상장한 다음부터 6개월 동안의 평균값으로 계산해서 합병 기업의 지분 비율을 따지기로 했다.
반년이나 주가를 살피는 이유는 타임워너 측에서 주장한 것인데, ID 그룹에는 ID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 회사가 있어 상장된 기업의 주식을 단기간 급등시켜 놓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인지라 유재원은 흔쾌히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ID 그룹은 유럽 쪽에서도 견실한 성장을 보였다.
미국을 확실하게 잡은 넥스트컴은 몇 년 전부터 유럽 국가들에 대한 서비스도 강화했는데, 대다수 나라에서 확고한 일등으로 치고 올라왔다.
그렇다고 마냥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넥스트컴에서 독립한 야후가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면서 뒤쫓아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후는 본래 넥스트컴의 기본 검색엔진으로 시작했는데, 독립을 결정하고 나서 자체적인 포털 사이트의 면모를 갖추었고, 넥스트컴과 협력할 때 쌓은 노하우로 단숨에 2위 그룹을 뚫고 올라왔다.
유재원도 야후의 성장이 반가웠다.
유재원 본인이야 지옥에서 되돌아온 만큼 현재에 안주한다는 마음은 눈꼽 만큼도 없었지만, 늘 1등이었던 넥스트컴의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타임워너와의 합병으로 뒤숭숭한 상태였는데, 치고 올라오는 후발 주자 덕에 조직 내에 긴장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ID 그룹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반면에 한국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나빠졌다.
말만 많았던 한보 사태 청문회는 몸통인 김영철의 출석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삼미그룹이 부도가 났고, 한 달의 텀을 두고 진로그룹도 부도가 났다.
외자 유치를 위해 외국인 주식 투자 한도를 20%에서 23%로 높이는 조치를 취했지만, 이런 일들이 무색하게 며칠 후에는 한국의 최대 제빵 업체인 삼립식품이 부도를 맞았다.
당연히 한보철강 부도로 인한 파급이었다.
정치권은 한보철강처럼 부실한 대출이 있는지 실태 파악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고, 그에 따라 시중 은행들의 부실 대출에 대한 조사가 들어갔다. 자체 조사뿐만이 아니라 은행 감독원에서 긴급 조사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신규 대출이 막히고, 부실하게 보이는 채권의 회수를 시작했다. 그러자 빌린 돈으로 방만한 경영을 일삼던 회사부터 연쇄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데, 해외의 투자자들이 한국의 증권 시장에 들어올 일이 없었다. 그러니 정부의 조치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황금과 같은 시간을 낭비하며 문민정부의 아마추어 같은 모습만 드러나는 사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1997년 7월 2일.
태국의 바트화가 대폭락했다.
따르릉.
한창 모니터를 보며 모종의 작업에 열중하던 유재원이 휴대폰 벨 소리를 들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유재원은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빈센트 사장님?”
-회장님, 바트화가 대폭락했습니다.
“아.”
빈센트 사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유재원은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달력을 띄웠다. 역시나 달력은 7월 2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유재원의 기억에 있던 바트화 폭락 시점과 일치했다.
“변동률은 어떻게 되나요?”
-어제오늘 20% 이상 끌어내려졌습니다. 작년 평균 1달러당 25바트였던 것이 지금은 29바트까지 폭락했습니다.
25에서 29의 변동이라고 하면 그다지 큰 것 같진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1달러를 사는데 이전에는 25바트면 되었던 것이, 지금은 29바트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태국에 들어왔던 외국 자본들은 앉은 자리에서 20% 이상의 손실을 본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당연히 외국에서 들어온 자본들은 태국에서 발을 빼려고 할 것이다. 태국 당국은 당연히 환율을 방어하겠다고 선언한다.
고정환율제를 가동해 억지로 환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외국 자본이 계속 빠져나가자 버티지 못하고 변동환율제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말을 바꾸는 것으로 신뢰도는 급락했고, 외국 자본 유출의 결정타가 되었다.
결국 태국도 IMF 구제 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IMF 이후에 바트화 폭락이 극대화되는데, 최고치를 찍는 내년에는 1달러에 55바트라는 엄청난 바닥을 찍는다.
-수익률을 보고할까요?
“괜찮아요. 그건 이 외환위기가 마무리된 다음에 통합적으로 받는 걸로 하죠.”
-예,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