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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401화 (401/1,007)

제 523화

오히려 넥스트컴에 기사 공급을 줄이니, 네티즌들의 클릭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자사 뉴스 사이트로의 유입까지 줄어드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터넷에서의 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넥스트컴캐스트이다 보니, 구식의 기업인 타임워너와의 합병을 꺼리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특히 컴캐스트의 과거 지분을 꿋꿋하게 쥐고 있던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심했다.

넥스트컴캐스트는 컴캐스트의 오너 일가와 대주주의 지분 65%를 모두 인수함으로써 생겨난 회사였다.

남은 35%의 주식은 투자회사나 매도를 거부한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상태였다.

이후에도 넥스트컴캐스트는 배당을 축소하는 대신 자사주 매입을 꾸준히 해온 덕에 이 수치는 20% 이하로 떨어진 상태이긴 했는데, 아직도 팔지 않은 이들이 상당했다.

안드로이드 사처럼 나중에 재상장 될 경우 가치가 폭등할 것을 노리는 모양새였다.

이들이 타임워너와 합병한다면 넥스트컴캐스트만 상장할 때보다 폭발력이 적어진다고 판단했기에 반대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의결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태였고, 유재원은 압도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가진 상태였기에 큰 문제는 되지 못한다.

또한 유재원은 타임워너와의 합병을 통해서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기에, 이번 일을 추진한 것이다.

관건은 새로운 합병회사의 경영권을 가져오는 일이었다.

기껏 합병해놓고 타임워너 측에 휘둘리기만 하면, AOL타임워너 때처럼 파국적인 결말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유재원과 레밍턴 그리고 수행단이 함께 뉴욕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타임워너 본사에서 합병 방식에 대해 결정하는 자리였으니 그 중요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레밍턴 부회장이나 실무진은 얼굴에서 긴장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최소 1천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비즈니스였다. 레밍턴도 ID 그룹의 일원이 되고 나서 큰돈을 많이 만져보긴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유재원은 여전히 여유 만만이었다.

유재원이야 오너의 입장에서 수틀리면 언제든 그만 둬도 상관이 없다는 마음가짐이었기에, 뉴욕에서 있을 담판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한보철강 부도 사태는 급물살을 탔다.

-한보그룹, 한보철강 부도 대책수립은커녕 자금 빼돌리기 중?

-한보철강에 대출 특혜 있었나? 은행에서는 대출승인 반대, 청와대수석 직접 종용한 정황.

-청와대 수석, 강력 부인. 한보그룹 정태수와 일면식도 없어.

-진짜 실세는 소통령 김영철!

-김영철 한보철강 불법 대출에 개입!

한국의 일간지 중에 별 존재감은 없었던 문화신문에서 김영철이 언급되면서 한보철강 부도는 정치 스캔들로 확대되었다.

동시에 정치인들은 김 대통령과 전명헌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걸 모두 인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김영철을 언급한 문화신문은 미래그룹의 사보와 같은 언론사였던 탓이다.

말 그대로 문화신문의 주요 주주들은 미래그룹 계열사들이었고, 이 지분을 다 합치면 50%가 넘었다.

그런 문화신문에서 김영철을 저격하는 기사가 터졌으니, 김 대통령과 전명헌, 민자당과 통일국민당의 연정도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구나 기사는 아무런 증거 없시 김영철을 저격한 것도 아니었다. 김영철이 불법 대출을 알선하고 일부를 수수한 정황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 있었다.

-전명헌, 성역 없는 조사 필요. 국회 국정 조사가 제일 바람직.

당연히 전명헌의 한마디도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총리직에도 사의를 표시했다. 후임을 따로 지명하지도 않았다.

이를 통해 민자당과 통일국민당의 연정도 완전히 끝이 났다는 것을 전 국민이 인식시킨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유재원은 타임워너의 경영진과 담판을 짓고 있던 중인지라, 나중에야 보고를 받았다.

보고를 받고서 유재원은 대통령에 대한 전명헌의 불타는 의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발언을 통해 연정에 대한 미련 자체를 뚝 끊어버렸다.

통일국민당 의원들 중에 미련이 좀 남은 사람이 있겠지만, 전명헌이 이렇게 나왔으니 이를 거스르고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민주당도 국정 조사 한 목소리.

대세를 읽은 민주당도 가세했다.

한보철강 부도 사태는 수면에 떨어진 돌덩이가 일으킨 파문처럼 한국 전체로 확대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파문은 정치권 한정이었다.

김 대통령에게 실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코스닥에서는 여전히 IT주식에 대한 묻지마 투자는 계속 이뤄지고 있었다.

심지어 일성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승계라는 비밀을 앉고 있는 유재원과의 일성그룹 지분 블록딜 거래에 대해 잠깐의 재검토가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논란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미 계약서에 서로 사인을 했고, 정해진 날짜에 주식과 현금 그리고 채권을 거래키로 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최현희 회장의 입장에서도 확신할 수 없는 위험 신호보다는 승계라는 게 훨씬 중대 사안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계약서에 명시한 날이 되자 일성자동차의 이름으로 ID 인베스트먼트의 계좌에 48억 달러가 한 방에 꽂혔다.

온라인으로 제법 큰돈을 많이 다뤄본 유재원이지만, 48억 달러라는 뭉칫돈이 단 한 방에 입금되는 건 처음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성전자 이름으로 발행된 채권도 확실히 배달되었다. 액면가 1억 달러, 1년 만기에 이율은 13%로 적시된 회사 채권이 무려 18장이었다.

이에 따라 유재원은 ID 인베스트먼트가 보유했던 일성그룹 계열사의 모든 지분을 일성 자동차에 넘기는 것으로 거래를 마무리했고, 공시도 확실히 올렸다.

20억 달러를 투자한 것이 채권까지 합쳐 66억 달러로 돌아왔으니, 성공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ID 인베스트먼트나 유재원은 이번 일로 그다지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다. 유재원은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으니 신경을 쓸 여력이 아예 없었다.

그 일이란 바로 제럴드 레빈 회장, 테더 터너 부회장 등의 타임워너 수뇌부와의 합병 방식에 대한 담판이 불꽃을 튀며 진행 중이었던 탓이다.

협상의 방식 중에, 원하는 것 이상으로 크게 부른 다음 타협을 해주는 것처럼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 있다.

타임워너의 제럴드 레빈 회장이 선택한 방법도 이것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양반은 정도를 몰랐다.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타임워너 센터가 오늘 유재원이 일전을 치를 장소였다.

맨해튼에는 ID 플래스쉽 센터나 ID 인베스트먼트 본사가 위치해 있는데, 타임워너 센터와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동안 여러 번 방문하면서도 타임워너 센터를 인식한 적은 없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달랐다.

앞으로 한 가족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타임워너 센터로 가는 동안은 살짝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전해지는 느낌이 예상과 좀 달랐다.

타임워너 센터의 전체적인 모습은 복합 쇼핑몰 공간인 하단 위로 비슷한 형태의 이란성 쌍둥이 빌딩이 솟은 모습이다.

그걸 보자 왠지 기분이 살짝 나빠진 것이다. 쇼핑몰 공간이야 평범했는데, 그 위로 솟은 두 개의 빌딩의 모습이 좀 그랬다. 그 불쾌한 느낌의 끝을 잡고 더욱 파고 들어가니 어째 일성그룹의 본사 빌딩과 흡사한 느낌인 것 같았다.

물론 현재의 일성그룹 본사 빌딩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신사옥을 말하는 것인데 완전히 똑같은 모양은 아니지만 느낌이 비슷했다.

일성이라면 이를 가는 유재원인지라, 일성의 악감정이 타임워너에게도 살짝 전해져 버린 모양이다.

‘뭐지?’

처음 방문하는 곳이 이런 식으로 기분이 나쁜 건 유례가 없었던 일이긴 했다. 하지만 큰일을 앞에 두고 본인도 모르는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유재원은 가볍게 넘겼다.

당연하게도 타임워너 측이 준비한 의전이 입구부터 기다리고 있었기에, 유재원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회장실로 안내되었다.

거기서 제럴드 레빈 회장과의 테드 터너 부회장 등등 유재원을 기다리고 있던 타임워너 측 경영진들과의 미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제럴드 레빈은 고지식한 얼굴에 고집이 셀 것 같은 눈매를 지닌 노년의 남자였다. 갈색인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새치들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었고, 콧수염 역시 검은색보다는 하얀색이 더 많이 보였다.

“반갑습니다. 타임워너 CEO인 제럴드 레빈입니다.”

유재원을 맞이하는 태도도 정중했지만, 딱딱했다. 악수도 맞잡은 손을 2번 정도 흔들더니 끝났다.

“하하!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이지?”

반면 바로 옆자리에 있던 테드 터너는 아예 포옹까지 했다. 마치 유재원과의 친분을 타임워너 경영진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처럼 호들갑이었다. 물론 테드 터너는 남의 눈치를 안 보는 사람이니 그냥 유재원이 반가웠던 것뿐이다.

“안녕하세요. 유재원입니다. 이분은 ID 그룹 부회장인 레밍턴 스팅입니다. 이번 합병이 본궤도에 오르면 우리 ID 그룹 측의 실무는 레밍턴 부회장이 담당하게 될 겁니다.”

“ID 그룹 부회장 레밍턴 스팅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유재원이 먼저 정중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이에 대한 타임워너 측 사람들의 감상은 제법 강렬했다. 다들 유재원보다 나이가 최소 2배 이상은 많았고, 미국의 미디어 업계에 강력한 존재감을 행사하는 타임워너의 수뇌부들이라서 유재원과 비슷한 나이대의 직원들을 만나면 당연히 뭔가 굽실거리는 자세가 나왔던 탓이다.

반면 유재원은 비굴한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 점이 타임워너 측에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레밍턴 부회장이라는 사람도 유재원에게 깍듯한 모습이었으니 이들에겐 상당히 낯선 그림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봤던 ID 그룹의 자산 규모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보고서가 떠올랐다. 타임워너 측에서도 합병에 대한 작업을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컨설팅이나 리포트를 받아 보는 중이었는데, 매우 충격적이 숫자가 담겨 있었다.

ID 그룹의 전체 자산을 다 합치면 타임워너의 현재 주가총액에 5, 6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튀어 나왔으니 말이다. 넥스트컴캐스트만 해도 계산 방법에 따라 타임워너보다 시가총액이 많다는 보고서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눈 두 회사의 수뇌부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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