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83화 (383/1,007)

제 505화

“그래요? 그러면 말씀해보실래요?”

“이렇게나 천연의 자연환경이 생생히 살아 있는 섬에 매연 뿜는 자동차들이 달리는 건 너무 어색한 그림입니다. 게다가 회장님이 그리시는 개발 계획이 이뤄지면 관광 수요도 폭증할 텐데, 그러면 환경 파괴가 더욱 가속화되겠지요.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전기 자동차입니다!”

유재원은 박수로 화답했다.

정답이다.

제주도를 생각할 때, 참 안타까웠던 것이 전기 자동차가 늦게 보급되었다는 것이다. 섬이라는 폐쇄된 환경 덕에 의사결정권자의 강한 의지만 있었다면 훨씬 빠르게 보급했을 것이고, 그만큼 환경오염도 빠르게 줄었을 것이다.

이번엔 제대로 바꾸고 싶었다.

물론 전기자동차도 전기를 어디서 끌어오는지에 따라 환경오염의 정도가 천차만별이긴 하다. 전기자동차를 굴린다고 화력발전소를 지으면 그야말로 미련한 짓 아니겠는가.

유재원이 생각하는 최선의 대안은 원자력발전이었고, 이후 핵융합발전으로 전환하는 것이 제일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물론 이 시점에서 핵융합을 말한다는 건 SF적 상상의 영역일 테지만, 유재원에겐 답이 있는 문제였다.

“그러면 이제 전기 자전거는 그만 만듭니까?”

“아니요. 전기 자전거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드셔야죠. 자동차가 완성되면 바로 여기 제주도에서 시험을 하시면 됩니다.”

ID 그룹의 투자라면 뭐든 쌍수를 들어 환영하겠다던 제주도 지사님이었다. 전기자동차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유재원은 당연히 생각했다.

아직은 특별자치도가 아니라서 중앙행정부와도 상의를 해야겠지만, 첨단 산업인 전기자동차가 제주도에 들어오는 걸 막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멋진 전기 자동차 기대해도 되겠죠?”

“그럼요! 자신 있습니다!”

전기 자전거와 전기 자동차 사이의 기술 난이도는 제법 크다. 그럼에도 볼트 사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본래 볼트 사장의 꿈도 전기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자전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직원 한 명 쓰는 것도 부담이었을 만큼 빠듯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유재원을 만나 제대로 된 전기 자전거 제작을 시작할 수 있었고, 올해 들어 모델2라는 베스트셀러가 나왔다.

이쯤에서 살짝 숨을 고를 만도 한데 이제는 더 큰 도전과제를 안겨 준 것이다. 볼트 사장은 그런 유재원이 좋았다.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본인이 만든 전기자동차들이 돌아다니는 걸 상상하니 온 몸에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그나저나 제주도 개발계획은 언제 발표하는 게 제일 좋을까요?”

알 만한 사람들은 유재원이 제주도에 땅을 사고 있다는 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땅 위에 무얼 할지는 모른다. 그래서 연초에 들어왔다가 땅값이 좀 오르자 재미를 봤다 생각하고 털고 나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지금이야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겠지만, 테마파크를 비롯해 전기자동차 사업과 같이 ID 그룹의 대규모 투자가 발표되면 다시 들어오려고 난리도 아닐 것이다.

“지방선거 운동이 막 시작할 때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이현우 전략기획실장의 말이다.

민선으로 처음 뽑는 지방권력이었다.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성과가 필요했고, ID 그룹과 같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 순조로운 개발을 위해서 지방정부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 때를 이용하면 한결 간단하게 유치할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네, 그때가 좋겠네요.”

유재원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것으로 제주도 투어를 끝낸 유재원은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미국으로 돌아가 94년도의 마지막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만 남았다.

퀘이크 그리고 안드로이드 95 시리즈의 발표다.

“흐음.”

어둠으로 잠긴 본가 서재 안, 본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일성그룹 최현희 회장은 하나의 고민에 빠져 있었다. 고풍스러운 무늬가 그대로 보이는 원목 책상에 놓인 두 개의 물건 때문이었다.

하나는 일성전자가 만든 최신형 휴대폰인 에버콜(Evercall) IH-100 이었고, 그와 함께 나란히 놓인 것은 ID 테크놀로지의 티파니 폰이었다.

시범서비스 중에 별다른 문제가 나오지 않은 2세대 이동통신이었고, 덕분에 내년 2월 1일부터 전면적인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를 위해서 일성그룹의 전자회사도 휴대폰 생산을 본격적으로 준비했고, 1월 1일에 런칭 할 예정이었다.

문제는 경쟁사인 티파니 폰과 비교했을 때 포장부터 차이가 확 났다.

같은 종이 상자인데도, 에버콜 IH-100은 면도기 상자에 인쇄만 다르게 한 느낌이었고, 티파니폰은 보석함과 같이 고급스러웠다. 스카이민트 색상에 부드러운 촉감의 무광택 종이 상자는 확실히 달랐다.

또한, 전면이나 후면에 기능을 잔뜩 설명해 놓은 에버콜과 달리 타피니폰은 상자 하단면에 ID 로고만 달랑 붙여져 있었다. 은박을 입혀서 확 눈에 띄지만 너무도 단순했다. 그나마 바닥면에는 기기의 스펙이 몇 줄 간단히 적혀 있지만, 대량의 정보를 보여주는 에버콜 박스와는 차이가 컸다.

상자를 열어 보면 실제 제품을 보면 차이가 확 드러난다.

에버콜도 티파니폰 처럼 일자로 쭉 펼쳐진 바 형태였다. 대신 티파니 폰에 비해 폭은 좁고 두께는 2배가 넘게 에버콜은 주머니 안에 넣으면 볼록해진다.

특히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은 휴대폰의 상태를 보여주는 LCD화면이었다. 에버콜은 단색 액정이었고, 해상도도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다.

티파니 폰은 컬러 LCD화면에 해상도도 높았다. 게다가 앞뒷면을 모두 강화유리로 덧대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장난이 아니었다.

보통의 유리는 충격에 약하고 흠도 잘 생기지만, 티파니폰에 사용된 유리는 코닝의 고릴라 글라스라는 특수 제품이라 동전이나 자동차 키 등등 긁히기 쉬운 것들과 함께 주머니에 넣어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기능적인 측면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확 벌어진다.

CDMA 모뎀이야 같은 퀄컴의 제품이라서 데이터 통신 속도는 비슷하다. 그런데 에버콜은 안테나를 끝까지 뽑아야 수신율이 높게 뜨는 반면, 티파니폰은 안테나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티파니 폰은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었고, 음원칩도 있어서 고음질의 AAC파일 MP3파일을 재생할 수도 있었다.

휴대폰 운영체제의 편의성을 따지면 비교가 불가능해진다. 문자나 겨우 보내는 에버콜에 비해, 티파니 폰은 깨알같이 작아지는 글씨만 주의한다면 인터넷 이메일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대중의 선호도 차이는 극명했다.

시장 조사 결과 소비자의 대다수는 이동통신에 가입할 때 티파니 폰을 선택할 거라고 응답했다. 점유율을 따지면 60%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수치를 자랑했다. 심지어 해외에서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타파니 폰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50%를 넘었다.

모토롤라, 노키아 같은 일성전자가 언젠간 넘어서야 할 전통의 강자들을 순식간에 넘어버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최현희 회장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한국산 제품들의 숙명이란 본래 ‘싸지만, 적당한 기능으로 쓸 만한 제품’이었다. 이른바 가성비 제품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일제나 유럽, 미국산 제품을 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등장한 유재원은 모두가 불가능하다 생각하는 그 일을 이뤄냈다.

시장조사를 보면 ID 그룹의 제품은 소비자들 사이에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컴퓨터 업계에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에그 시리즈부터 그랬다.

그러한 경향이 티파니 폰에 와서는 제대로 터져버렸다.

“운은 아니야.”

이걸 단순히 운이라고 치부하면 최현희는 그간 일성그룹의 일류화를 위해 전력을 다한 자신의 노력까지도 부정되는 것이었다.

몇 년 전 프랑크프루트에서 신경영을 선포했고, 그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매진했다. 디자인에 공을 들였고, 인재 확보에 열을 올렸다. 불량률을 잡기 위해 일성전자의 하자품은 물론 막 출고가 끝난 제품을 모아다 불태우는 퍼포먼스도 몸소 선보였다.

일류와 이류의 차이를 기술 수준과 품질 관리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피나는 노력 끝에 나온 게 바로 에버콜인데, 상대는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ID 그룹은 휴대폰용 컬러 LCD는 아예 자체적으로 만들었고, 플래시메모리칩은 미래전자와 손을 잡고 조달했으며, 퀄컴에는 지분을 투자했다.

그 시점을 헤아려 보니 본인이 신경영을 선포했을 때와 비슷했다. 그때부터 유재원은 티파니 폰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왜 우리에게 부정적이지?”

더욱 불안한 요소는 그렇게 미래를 볼 줄 아는 상대가 일성그룹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연유에 대해 거슬러 올라가면, 본인의 잘못이 좀 있긴 했다. 본인이 직접 만나러 가도 모자랄 판에, 아랫것들보고 데려오라고 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대가도 톡톡히 치르고 있다. ID 그룹의 국내로 들어온 투자금 대부분을 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 주식을 샀고, 그 비중은 대부분 10%를 넘겨버렸다. 덕분에 회계 감사는 물론이고 이사회 진행에도 딴죽을 받고 있었다.

비리가 발각되면 바로 검찰 고소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최현희의 수족 몇이 지금도 감옥에 있고, 회사 운영을 예전처럼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3대 승계 작업도 멈춰야 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일성자동차가 순항 중이라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ID 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일성그룹의 지분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오죽하면 최현희 회장은 프리미엄을 쳐 줄 테니 일성그룹 지분을 다시 팔라고 제안하는 걸 심각하게 고려중이었다.

그러자면 수 조원에 달하는 돈을 만들어야 하지만, 국내의 종합금융사나 물 건너 일본의 초저금리 은행을 이용하면 쉽게 끝난다. 하지만 거래라는 건 상대가 응했을 때 이뤄지는 것인데, 아무리 떠봐도 꿈적도 않는 게 문제다.

“이제야 나오는 군.”

티파니폰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최현희 회장의 상념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재 한편에 켜놓았던 위성 텔레비전에서 기다리던 내용이 드디어 나왔기 때문이다.

이미 연구소에서 티파니폰의 리버스엔지니어링을 진행하고 있었음에도, 밤늦은 시간 서재에 나와 궁상맞게 나와 있던 이유도 이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CNN 뉴스, 티모시 팔러입니다. 예고해 드린 대로, 지금부터 안드로이드 95의 발표회를 독점 생중계 합니다. 채널 고정하세요!

연결에 문제가 생긴 모양인지, 앵커는 멘트를 쓸데없이 길게 늘어놓았다. 심지어 중간에 광고도 한 편 보고서야 드디어 현장의 화면이 나타났다.

브라운관 안에 유재원이 있었다. 성공한 젊은이들 특유의 자신감을 뿜어내며 무대 위로 성큼 올라오는 중이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366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2)

역사적인 안드로이드 95 시리즈, 오피스 95 시리즈의 발표는 실리콘밸리의 대형 컨벤션 센터에서 이뤄졌다. 유재원의 회사가 막 생겨났던 때만 해도 컴덱스 같은 대형 이벤트에 꼽사리를 껴서 발표했지만, 이제는 단독으로 거대한 컨벤션 센터를 가득 메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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