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4화
IT섹터에 집중 투자했던 ID 인베스트먼트는 그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다. 여름에 확인했을 땐 150억 달러 정도였던 수익금이 지금은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몇 달 사이에 50억 달러가 불어난 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200억 달러 중에 유재원의 몫이 40%는 넘었다. 안드로이드 사 상장 후에 컴캐스트부터 글로벌해드쿼터 빌딩까지 온갖 곳에 돈을 쓰고 남은 돈을 다시 ID 인베스트에 넣어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몇 년 뒤면 이보다 몇 배는 불어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바로 환급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ID 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은 올리는 수익금도 상당했다. 그렇지만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하면 ID 인베스트먼트에 묻어둔 돈도 기꺼이 찾아서 쓸 작정이다.
“두 분이서 머리를 맞대고 좋은 계획을 만들어 보세요.”
더욱이 유능한 인재들이 있기에, 유재원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이렇게 미뤄놓을 수 있었다. 비록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살짝 헛다리를 집긴 했다. 그래도 이번 일을 통해 서로의 한계를 확인했고, 유재원의 뜻도 확인했으니, 다음에는 보다 좋은 방법을 내놓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줬는데도, 계속 답이 없으면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다.
폭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의 순서는 이제껏 조용히 있었던 최강욱 비서실장이었다.
“한국 넥스트컴이 올해 말, 혹은 내년 초로 런칭을 준비하는 서비스는 바로, 넥스트뮤직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ID 그룹의 포털 사이트인 넥스트컴에서 온라인으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유재원이 이성희 의원을 만난 다음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던 프로젝트다. 이것 역시 유재원은 큰 그림만 잡아주었고, 실무는 최강욱 주도하에 한국 넥스트컴에 TF팀을 꾸리고 일을 진행했고, 이제는 어느 정도 틀이 갖춰져 있었다.
넥스트뮤직의 서비스는 크게 3가지로, 음원 판매와 스트리밍 그리고 인터넷 라디오였다.
음악 스트리밍이야 간단한 팟캐스트라는 개념은 없으니, AM이나 FM을 인터넷 선을 통해서 재전송해주는 방식이고, 해당 라디오 방송국과 청취자가 만날 수 있는 게시판과 실시간 채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사람을 모아 놓은 다음에 개인에게도 인터넷 라디오를 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줘서 원시적인 팟캐스트 생태계를 만들어 볼 작정이다.
물론 팟캐스트의 대중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바일 기기의 발전인지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지만,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지금은 TF팀의 지휘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음원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방학 맞을 대학생들에게 고소득 아르바이트 자리가 쏟아졌다. 하는 일은 컴퓨터에 음악CD를 넣고 리핑이 끝나면, 교체해주는 것이나, 추출이 완료된 음원파일에 가수와 제목, 제작 연도와 같은 메타테그를 기록하는 조금은 단순한 일자리지만, 서빙과 같은 단순 아르바이트보다는 훨씬 많은 임금을 책정했다.
“그리고 넥스트뮤직의 흥행 방안으로 공중파 음악방송의 순위를 매길 때 우리의 온라인 차트와 음원 판매량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개편할 예정입니다. 현재 시스템 구축 작업 속도를 보면 내년 2월 말에는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의 공중파 방송국과 ID 그룹의 사이는 끈끈했다.
ID 그룹이 한국에서 지출하는 광고비 중에 제일 비중이 큰 게 텔레비전 광고였으니 말이다. 넥스트뮤직이 런칭되면 음악 관련 프로 앞뒤로, 넥스트뮤직의 광고를 몇 달간 내기로 한 대신 음악 프로그램 순위 산정 방식을 개편하는 걸 얻어왔다.
음원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가 대중화되면 자연스럽게 변화할 테지만, 방송이 먼저 이끌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다.
“한국에서 넥스트뮤직이 성공하면 미국에서도 바로 런칭할 테니까 잘 봐두세요.”
한국 넥스트컴과 미국 넥스트컴의 운영은 거의 독자적이었기에 살짝 딴생각들을 하고 있던 헨리 사장이나 줄리안 부사장이었다. 그러다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다시금 움찔 하면서 바로 반응했다.
음원 서비스도 당연히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크다. 대신 시장이 큰만큼 한국보다 훨씬 복잡한 이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북미에서는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저작권자, 음반사, 유통사와의 조율을 모두 끝내야 제대로 된 음원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그만큼 여기에 들어갈 인력과 자본도 상당하다는 의미였다. 덕분에 헨리 사장과 줄리안 부사장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사람 모두 시작도 해보기 전에 기가 죽는 사람은 아니었다.
유재원은 이 자리를 통해 내년에는 넥스트컴캐스트에 집중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두 사람은 그런 선택에 부응하겠다는 의지를 스크린에 뜬 넥스트뮤직 사업계획서를 뚫어져라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365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1)
앉은 자리에서 내년 1995년의 중대한 사업 결정을 내린 유재원이지만, 아직 할 일이 다 끝난 건 아니었다. 대신 한결 가벼운 일만 남았기에, 홀가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바로 황재홍 사장이 올 한해 내내 제주도에 살다시피 하면서 매입한 땅들을 둘러보는 일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부지 매입은 처음 목표의 90%이상을 달성했으니, 이제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 그만이다. 제주도청에서도 허가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1세기에는 난개발로 몸살을 앓는 제주도였지만, 지금은 개발에 목이 마른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ID 그룹의 제주도 투자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특히 내년에는 제주도 도지사 선거가 있으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재원도 제주도가 가진 매력을 잘 알고 있으니, 바로 시작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개발 개획을 발표하기 전에 본인의 땅이 얼마나 되는 지 직접 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현장 방문 일정이 꾸려진 것이다.
덕분에 사장들과 임원들을 주렁주렁 거느리고 가고픈 마음은 없었다. 넥스트컴캐스트 쪽 사람들은 잠깐 쉬다가 출국하라고 했고, 유재원은 김대석과 이현우, 그리고 황재홍 라이트닝볼트 사의 볼트 사장과 직원들, 마지막으로 ID 엔터테인먼트의 스테판 사장 이렇게 단촐한 팀을 꾸렸다.
물론 제주도라고 경호는 소홀히 할 수는 없으니 평소처럼 4명의 경호원이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따라 붙었다.
“좋네요.”
확실히 직접 가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회귀 전에도 몇 번 관광을 왔었던 제주도였기에, 그 때의 기억과 대조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카페들이 난립했던 월정리나 김녕 해변 같은 경우엔 과거에는 느낄 수 없었던 현지의 분위기와 자연스러움이 생생했다. 서쪽으로는 협재와 곽지를 잇는 해안가를 매입했는데, 거기도 같은 느낌이었다.
차에서 내린 후, 해변가를 따라 걸으며 살짝 지쳤던 마음에 신선한 바닷바람과 풍경을 담아 재충전을 시작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디지털 카메라에 열심히 주변의 모습을 담았다. 당연히 본인의 파워블로그에 올리기 위해서다.
“제주도 개발에 대한 방침이 있으신지요?”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차로 돌아가는 중에 나란히 걷던 이현우 전략기획실장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하긴 부지 매입만 지시하고 구체적인 개발 방안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았을 테니, 많이 궁금했을 것이다.
“해안가는 딱히 개발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이대로 자연을 보존하면서 도로 주변에 소수의 카페와 음식점 정도를 현지인들에게 임대해주는 선이지요. 대신 이러한 해안가 걷기 코스를 죽 이어서 제주도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둘레길을 만들고 싶네요.”
“둘레길 말씀이십니까? 그…….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아요?”
역시 전략기획실장은 박학다식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적인 걷기 코스다. 그렇지만 한국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상품이었는데, 놀랍게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잘 알고 있을 것 같던 볼트 사장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리조트나 관광호텔을 올리겠다고 하신 거 같은데요?”
“그건 섬 안쪽에 지을 테마파크와 연동해서 지을 거예요.”
“테마파크 말씀이십니까? 디즈니랜드 같은?”
“예! 바로 그거에요.”
이현우나 김대석 그리고 볼트 사장은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테마파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디즈니랜드였다. 그리고 헐리우드에 있는 영화사 테마파크들이 있다.
하나 같이 초대형이고, 테마파크를 구성하고 있는 놀이기구나 각종 가게들은 디즈니나 영화사들이 보유한 캐릭터와 문화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화요소가 빠진 테마파크는 그야말로 앙금 없는 찐빵과 같아서 절대 일류에 설 수 없다.
“회장님께서 구매하신 땅 크기를 보니 어마어마하던데, 거길 단순한 놀이기구로만 채우기엔 부족할 텐데요.”
“그건 여기 계신 스테판 사장님이 해결해주실 거예요.”
유재원의 말에 협재 해안의 고즈넉한 경치를 구경하고 있던 스테판 사장이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스테판 사장은 게임 성공에 대한 포상으로 제주도에 온 줄 알고 완전히 긴장을 풀고 있었는데, 테마파크 개발이 자기 책임이라고 하니 말이다.
“아, 그렇게 놀라실 것까지야 없어요. 제 말은 ID 엔터테인먼트가 보유한 고유의 게임 IP가 있잖아요. 그걸 이용해서 테마파크를 꾸미면 된다는 거예요.”
테마파크 사업에서 디즈니나 헐리우드 영화사들이 앞장 설 수 있는 건, 그들이 보유한 영화와 애니메이션 덕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인지도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의 숫자만큼이나 해당 캐릭터의 인지도가 늘어나면서 테마파크의 인지도도 자동으로 올라간다.
“게임도 마찬가지죠.”
작년까지만 해도 싱글플레이가 기반이었던 게임이 대세였던지라 간단히 즐기고 새로운 게임을 찾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게임을 진득하게 즐기는 문화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었다.
여기에 대규모 MMORPG같은 게 제대로 유행을 타면 10년은 기본이고 반백년 까지도 이어나갈 수 있다. 그게 바로 워크래프트였다. 꾸준히 유입되는 멀티 플레이 덕에 배틀넷 점유율에서 워크래프트는 단 한 번도 하락세를 타지 않았다.
이렇게 게임을 즐긴 사람이 수백만, 수천만이 되면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싹트고 이를 바탕으로 테마파크를 꾸리면 디즈니랜드에 비견될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어마어마한 계획입니다.”
유재원과 함께 땅을 보러 나온 이들은 엄청난 스케일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렇지만 현실성 없는 망상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워크래프트를 위시한 ID 엔터테인먼트의 게임들이 놀라운 성과를 내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이밖에도 PC 운영체제부터 휴대폰까지 맨땅에서 놀라운 물건들을 쏟아내기도 했으니, 허허벌판에 화려한 테마파크를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다들 들었다.
“마지막으로 볼트 사장님도 임무가 있어요.”
“예! 무슨 말씀을 주실지 짐작이 됩니다.”
유재원의 지목에 라이트닝볼트 사의 볼트 사장이 바로 대답했다. 손재주만큼이나 눈치도 제대로였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