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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377화 (377/1,007)

제 499화

미국에서 인터넷 광고법이 통과되고 나서, 광고는 무조건 광고라고 명시해야 했다.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해놔도 무방하긴 한데, 그렇게 광고라는 테그가 달리면 광고차단 어플을 통해 다 걸러낼 수 있게 된 탓이다.

덕분에 예전에는 무분별한 팝업이나 저질 이미지 광고가 많아졌다면, 이제는 유저의 호기심을 자극한다거나, 이득이 되는 쪽으로 많이 선회 중이다. 광고에 할인 쿠폰을 단다거나, 유명인을 사용한 광고들이 많아졌다.

긍정적인 변화였다.

이처럼 안드로이드 사 매출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은 광고슬롯 경매였기에 유재원도 이제 슬슬 방식을 지금보다 발전시킬 방법을 고심하는 중이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이 사용자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커스텀마이징하는 방식이었다.

지금까지는 무조건 똑같은 광고가 적용되는데, 사용자에 따라 성별이나 나이, 취미, 직업에 따른 광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광고슬롯도 대폭 확장할 수 있고, 취향을 저격할 수 있으니 광고의 효과도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아직은 데이터베이스가 크게 쌓이지 않았으니 당장 실행하는 건 무리지만, 95버전 다음이나 그 다음에는 분명 가능한 이야기였다.

기분 좋은 소식은 또 있었다.

다음 날, 비서실장 최강욱이 오랜만에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들고 유재원을 찾아온 것이다.

#361 선택과 집중(3)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유재원의 어머니인 김말숙이 다과상을 들고 유재원과 최강욱이 있는 서재로 들어왔다. 집에 방문하는 손님이 있으면 어머니가 항상 대접을 하는데, 모두 똑같은 다과상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항상 특별 대접을 하는 분들이 몇 분 계시는데, 그분들이 올 때는 무조건 최상급 녹차에 각종 수입과일과 수제 과자가 나온다.

최강욱도 그런 특별 대접을 받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머니의 생각은 유재원의 성공엔 최강욱과 같은 좋은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극진히 대접해서 약간이라도 보답을 하겠다 하는 것이었다. 측근들을 머슴 취급하는 재벌집 로열패밀리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아이고, 사모님! 감사합니다.”

그걸 잘 아는 최강욱은 진심으로 고맙게 상을 받았다.

최강욱의 자리가 자리인지라 다른 재벌 측근들과 접촉할 때가 많았는데, 본인이 ID 그룹에서 받는 대우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일 때가 참 많았다. 그럴 때마다 유재원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매번 들 정도였다.

덕분에 최강욱은 ID 그룹의 2인자가 되었고, 소득의 수준이나 주변에서의 대우가 천지개벽수준으로 달라졌음에도 초심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다.

단적으로 현재 최강욱의 한 달 월급은 서울에서 잘 나가는 전문직의 연봉보다 많았다. 물론 최강욱은 엄연히 따지면 연봉제 계약직이긴 한데, ID 그룹의 월급날인 매달 20일이 일제히 입금되니 월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연봉에 걸린 옵션 때문에 ID 그룹의 성과가 나타날수록 연동해서 입금액이 상승 중이라 1년 전보다 비교해도 훨씬 많아졌다.

그렇게 소득이 높아지니 최강욱의 주변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예전엔 평범한 아파트에 살았다면, 작년에는 한남동 빌라였다. 지금은 서울에서 최고의 거주지인 성북동에 단독 주택을 마련했을 정도다.

최강욱의 아내나 자식들의 삶의 질 역시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졌다. 그렇지만 정작 최강욱 본인은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이었다.

그나마 지금은 달라진 게 하나 있는데, 최강욱의 왼쪽 손목에 걸린 시계였다. 유재원이 스위스 여행을 다녀오면서 자비로 구입한 시계 리스트 중에 제일 위쪽에 있던 것이 지금 최강욱의 손목에 걸려 있는 것이다.

파텍이라는 시계업계 부동의 1위 업체의 고급형 모델인데, 세관 신고로 매겨진 사치세만으로 다른 고급 시계를 살만한 가격이 나오는 흉악스러운 물건이었다.

유재원이 선물한 시계 말고는 최강욱의 모습은 유재원의 기억과 늘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바뀌지 않는 겉모습과 같이 최강욱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ID 그룹과 유재원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고, 오늘 드디어 그 결실을 유재원에게 보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회장님이 바라시는 개혁 법안들이 11월 초에 통과 될 것입니다.”

어머니가 차려준 다과를 먹으면서 한숨 돌린 최강욱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다행히 해를 넘기진 않게 됐네요.”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비서실장님이 미안하실 게 뭐 있어요. 정쟁만 하느라 민생법안은 뒷전으로 미뤄버린 국회의원님들이 문제지요.”

인터넷에 대한 부작용이 발견되자마자 속전속결로 끝내버렸던 미국 국회와는 너무도 차이가 나는 한국 국회였다. 그래도 통과에 대한 합의가 모두 끝났다고 하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유재원이다.

이에 대한 최강욱은 보따리를 풀면서 설명이 이어졌다.

보따리 안에 든 것은 메모지와 손떼, 심지어 밑줄이 죽죽 그어져 있는 문서들인데, 바로 유재원이 제시했던 법안이 담긴 것들이었다.

내년도에 OECD가입은 이제 기정사실화 되었고, 이에 대한 대비를 명분으로 단체소송법, 징벌적손해배상법과 같은 법들이 통과될 거라고 한다. 그런데 유재원이 주장했던 원안보다는 상당히 후퇴한 점들이 많았다.

이를 테면 징벌적손해배상법 같으면 최대 배상액수는 겨우 3배에 불과했던 것이다. 미국처럼 10배 정도는 때려줘야 징벌이라 할 수 있는데, 3배는 애매했다. 불법을 저질러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금의 크기가 상당하다면, 위험을 감수할 기업들이 상당할 것 같다.

“다른 기업들의 로비력도 상당해서, 조금씩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뭐, 시작이 반이니까요. 일단 만들어 놓고 개정을 통해 강화시키면 되요.”

사실 유재원의 욕심이 좀 과한 것이지, 만들어지기만 하면 전대 미문의 업적을 세우는 것이다. 전생에서도 징벌적손해배상법은 기업들의 저지로 인해서 입법 자체가 불가능 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IMF이후 국가의 권력은 청와대에서 기업으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게다가 일성그룹이 모바일과 반도체 부분에서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그 상태가 완전히 고착화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나마 정치권력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때라서 그런지, 여의도가 움직이니 그래도 법은 만들어졌다.

“인터넷 시대에 맞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나 속칭 어뷰징 방지법안도 통과될 겁니다. 다행히 이건 원안 그대로입니다.”

최강욱의 말대로 이건 다행이다.

개인정보 보호에 포커스를 맞춘 법률로 핵심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방식을 규정한 게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을 확실하게 했다.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고 액티브X를 강제 했던 일은 이제 흑역사로 남게 된 것이다.

업체는 각자의 방식으로 정보를 보호하면 그만이다. 대신 유출에 대한 책임은 확실하게 져야 한다. 최소 배상 금액을 5만 원 이상으로 확정해 놨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예전처럼 수백만 단위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해당 기업은 끝장나는 것이다.

단체 소송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함께 걸리면 어마어마한 배상금이 도출될 테니 말이다. 덕분에 일각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는 인터넷 사업에 너무 큰 규제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유재원은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잘못 취급해 폭파되는 본보기도 있어야 보다 긍정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렇게 보안에 신경을 써야 하게 만들었으니 보안업체 시장이 발전할게 아니겠는가.

“다만 노동법 관련해서는 아직 합의 중인 부분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요?”

매우 걱정스럽게 말하는 최강욱에 비해 유재원의 반응은 조금 시큰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동법 관련해서는 더 신경 쓰고싶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이 법이 통과된다고 유재원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건 아니었다.

물론 ID 그룹이 지출하는 전체 비용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았다. 이게 IT기업의 특성이었다. 거대한 생산시설이 없이도, 능력 좋은 사람과 컴퓨터만 있으면 고부가가치의 상품인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노동계나 진보쪽 사람들은 속칭 노동법 개악을 통해 이렇게 낭비되는 인건비를 확 줄이려고 유재원이 작정했다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

유재원의 목적과는 전혀 관련도 없는 악의적인 소문이었다.

노동법 개정의 목적이 그들을 위해서라는 건 상상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모든 경제 수치가 최고조를 달리는 지금 IMF이후의 상황을 상상하는 건 그 누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유재원이 선의로 움직이는 걸 악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유재원이 예전부터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선 세계적 인재가 필요하고, 이런 인재들을 모으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풀어야 한다고 했던 말은 까맣게 잊고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유재원은 단지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실제 철저히 지키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눈에 뻔히 보이는 걸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뭐, 괜찮아요. 싫다는 거 억지로 시키는 것도 내 스타일은 아니니까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 유재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의욕이 많이 사라졌다.

차라리 IMF가 터진 다음에 개입해서 노동법을 개정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덕분에 지금은 그저 이전에 날치기로 통과되었던 최악의 법안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최강욱은 그러면서 문서 꾸러미 하나를 보여줬다. 이번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노동법 개정안이라는 설명을 곁들여서 말이다.

이것 역시나 수많은 수정이 가해진 상태였는데, 제일 크게 보이는 건 비정규직 임금에 대한 정의였다. 유재원은 임시직인 만큼, 정규직보다는 많은 임금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금액도 확실히 명시했는데 상황에 따라 정규직보다 10~20% 정도를 더 책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최강욱이 꺼낸 문서에는 5~10%선으로 확 줄어들어 있었다. 민주당이나 노동계와는 이야기 자체가 되지 않았고, 여당인 민자당은 그냥 정규직과 같은 금액을 줘도 감지덕지다 하는 의견이었다.

통일국민당만 유일하게 유재원이 제시한 수치를 인용했는데, 두 수치 사이에 간극이 크다 보니 중간지점이 5~10%가 된 것이다. 민주당이나 노동계가 통일국민당에 힘을 실어줬으면 보다 나은 대우를 받았을 터인데 참 아쉬웠다.

이밖에도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는 분야도 논의를 시작할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정규직이라도 직접 고용하도록 했고, 파견업체 같은 건 금지되었다는 점이다.

논의 과정 중에 얻은 건 없고, 잃은 것만 많았지만 친기업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이 정도 한 것도 대단한 성과이긴 했다.

“그런데 이건 뭐예요?”

그렇게 보따리를 풀었던 최강욱인데, 유재원에게 다 보여주지 않은 문서도 많았다. 그게 뭔지 궁금해진 유재원은 바로 물었고, 최강욱은 웃으며 답했다.

“여의도에서 활동하면서 얻은 여러 가지 정보들입니다. 그리고 로비 활동을 하면서 쓴 비용에 대한 영수증도 있고, 약속 받은 것들도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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