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75화 (375/1,007)

제 497화

“대신 대중성이 없으니, 전체적인 조회수는 좀 내려갈 수도 있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재원은 댓글이나 많이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댓글 숫자로 신기록을 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건 첫 번째 스위스 여행기에 달린 댓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퍼가요’라는 3글자 댓글이었다. 자기가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신문 기사부터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글을 그대로 퍼가서 올리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는 중이었다.

이로 인해서 인터넷 뉴스사이트나, 컨텐츠 창작자들은 불만이 좀 많았다. 네티즌들이 본인의 사이트에 직접 방문해서 봐야 트래픽이 늘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광고 단가를 높일 수 있는데, 저렇게 다 퍼가면 죽 쒀서 남 주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유재원의 파워블로그의 경우엔 고화질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어서 퍼가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파일만 받아가는 건 HTML 2.0으로 만든 다이나믹한 효과들이 사라져서 김빠진 콜라처럼 밍밍했다.

당연히 유재원도 무단으로 콘텐츠를 퍼가는 건 달가워하지 않는 사안이었다.

“이번엔 아예 퍼가기 버튼을 만들어주자.”

그래서 지금 만들고 있는 게 퍼가기 버튼이었다.

퍼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기능으로, 버튼을 누르면 클립보드에 몇 줄의 요약문과 함께 해당 페이지의 링크 그리고 짧게 요약해 보여주는 이미지 한 장이 자동으로 담기는 기능이다.

콘텐츠 전체가 아닌 요약과 링크만 복사되는 것이니, 퍼간 요약본을 본 네티즌들 중 관심이 있는 이들을 오리지널 사이트로 유도할 수 있다.

“됐다.”

해당 기능까지 앉은 자리에서 뚝딱 만든 유재원은 곧바로 비공개 버튼을 풀고 공개로 전환했다.

그러자 조회수가 실시간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게 직접 보였다. 댓글도 빠르게 달렸다. 1등, 2등하는 등수놀이부터 게시물을 올린지 몇 초 되지도 않았는데 잘 보고 간다는 댓글, 심지어 퍼간다는 댓글까지 그야말로 수많은 댓글의 유형이 쏟아졌다.

유재원은 어떤 유형이든 다 좋았다.

아무리 사소한 댓글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백배, 천배 나았으니 말이다.

-성수대교 하부 프레임 부실 심각.

-프레임 사이를 강하게 결속해야 할 볼트가 힘없이 빠져!

-부식도 매우 심해서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녹가루가 쏟아짐.

-전명헌 총리, 통행 완전 차단 후, 정밀 진단 명령.

-최악의 경우 해체 후 재건설 할 수도.

-동아건설과 서울시, 시공과 관리 책임 놓고 책임 미루는 중!

긴급 안전진단의 결과는 유재원의 예상과 같았다. 이어진 흐름도 100% 예상과 부합했다. 동시에 전명헌에 대한 인기도는 다시 한 번 폭증했다. 민감한 문제에 대해 본인이 직접 나서서 화끈하게 처리하는 게 모두가 기다리던 능력자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아건설이나 서울시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난리였다. 그러던 와중에 21일 아침이 되자 긴급 속보가 모든 공중파를 장악했다.

-긴급속보, 수성대교 북단 5번과 6번 교각 사이의 상판 붕괴!

-50m길이의 상판 수직낙하!

평소의 아침 시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던 텔레비전이 모조리 하나의 뉴스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몇 분 후에는 영상까지 나왔다. 국민 안전 이슈로 정치권에서도 한창 뜨겁게 다뤄지던 이슈였고, 안전 점검단의 활동도 뉴스거리였기에, 촬영을 위해 나가 있던 취재기자도 제법 있었다.

덕분에 갑자기 다리 상판이 뚝 부러지면서 한강에 쏟아지는 장면을 잡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상판 점검 중이던 안전점검단 대원 3명 휩쓸려!

안타깝게도 사고에 휘말린 사람이 3명이나 되었다. 다리 위를 점검하고 있다가 같이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현장에는 다른 대원들이나 취재진이 있었기에 즉각 신고가 되었고, 수색 작업이 벌어졌다.

다행히 안전점검단 대원들은 모두 구명조끼도 착용한 상태였기에 금방 물에 떠올라서 병원으로 후송했다고 한다.

“어휴, 정말 다행이다.”

최고의 결말이었다.

특히나 다리 상판이 떨어지는 장면이 취재진 카메라에 잡혀서 동아건설이나 서울시가 오리발을 내밀 수 없다는 게 최고였다.

홀가분해진 유재원은 오랜만에 컴퓨터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마스터플랜 파일을 열어서, 수성대교 항목에 임무 완수를 의미하는 취소선을 두껍게 그었다.

그렇게 처리된 항목이 벌써 수십 개나 되었지만, 아직 밑에 남은 항목들은 그보다 몇 배는 더 남아 있긴 했다. 그래도 어제보다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유재원은 기쁜 마음으로 본인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회장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유재원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이는 헨리 사무엘 넥스트컴캐스트 사장이다. 약간 자글거리는 잡음이 섞인 목소리에서 알 수 있듯,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헨리 사무엘 사장과는 ID톡 화상미팅 기능으로 연결된 상태였다.

넥스트컴의 본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지만, 헨리 사무엘 사장은 최근엔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건 컴캐스트의 본사에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집이 있던 헨리 사장이 펜실베이니아까지 간 것은 당연히 유재원 때문이다. 몇 주 전 유재원은 헨리 사장에게 정보고속도로 진척 상황과 광대역 인터넷 보급률에 대해 정확히 보고해달라고 지시했던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유재원이야 앉은 자리에서 보고서만 받으면 땡이었지만, 그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수행해야 할 실무는 상당히 방대한 작업이었다.

특히 매우 꼼꼼한 성격의 헨리 사무엘 사장은 미국의 대표 시골지역인 켄터키 주의 자그마한 카운티까지도 신경을 써서 데이터를 모으고 있었기에,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걸렸다.

“괜찮아요. 저야 안드로이드95 출시 전까지 시간은 넉넉하니까요. 특히 헨리 사장님이라면 얼마든 기다리게 하셔도 됩니다.”

유재원도 처음엔 대략적인 현황만 알아봐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북미 전역의 자세한 현황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그마한 도시까지 인터넷 보급률 데이터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다행히 추가 시간은 더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벌써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예, 회장님 말씀이 정답입니다. 생각보다 우리 영업망의 조직 밀집도가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헨리 사장의 말에 유재원은 물음표가 켜졌다.

조직 밀집도다 취약하다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넥스트컴캐스트에서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의 영역은 케이블TV의 영역과도 상당히 비슷했다. 애초에 컴캐스트를 인수한 이유도 바로 이 캐이블 영업망을 인터넷망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컴캐스트가 1등 업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2위권인 업체였는데 조직망이 작다니.

-제가 구구절절 설명드리기 보다 그림으로 보여드리는 게 빠를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헨리 사장이 이미지 파일을 유재원에게 전송했다. 이미지 파일 치고는 용량이 꽤 컸다. JPEG타입으로 9메가바이트나 되는 용량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뭐죠?”

유재원은 곧장 이미지를 받아서 뷰어로 열었다.

그러자 모니터를 가득 채운 건 북미 지역의 전체 지도였다. 상당히 고해상도 지도라서 확대키를 몇 번이나 눌러도 이미지가 흐릿해지지 않는 그림이었다.

이처럼 거대한 북미 대륙 지도에 크고 작은 크기의 원들이 박혀 있었다. 원 안에는 단순한 백단위 숫자도 있었고, 1K니 5K 하는 숫자도 있었다.

-숫자가 의미하는 건 해당 지역에서 우리 넥스트컴케스트의 ADSL이나 케이블을 사용하는 고객 숫자입니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알겠네요.”

헨리 사무엘 사장의 말에 유재원은 북미 대륙 지도 위에 점들이 알알히 박혀 있는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360 선택과 집중(2)

둥그런 점들은 균일하게 북미 전역을 뒤덮고 있지 않았다.

서부 해안, 동부 해안 그리고 미국 중부 중앙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이걸 다 연결해보면 납짝 눌린 H자 형태였다.

북미의 동부 해안, 서부 해안 그리고 대륙 중앙을 지나도록 설계했던 정보고속도로 1단계 사업의 영역과 매우 겹쳐진 형태였다.

-정보 고속도로 1단계 사업과 매우 흡사하다 생각하실 텐데. 그게 정답입니다.

헨레 사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넥스트컴케스트가 광대역 인터넷을 서비스 할 수 있는 영역은 현재 정보고속도로가 지나는 영역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보고속도로 케이블이 직접 지나지 않는 곳도 얼마든지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정보고속도로를 인체로 비유하자면 대동맥과 같은 것이니, 여기서 분화한 곁가지나 모세혈관과 같은 지역 네트워크를 설치하기만 하면 촌구석 카운티까지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넥스트컴캐스트의 조직력으로는 현재의 성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광대역 인터넷을 신청하는 고객님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직접 설치를 하러 발로 뛸 직원들 일명 케이블가이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네? 그렇게 인력부족이 심각해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특히 대도시와는 조금 떨어진 위성 도시가 심각합니다. LA라면 신청 후 4일 정도면 설치가 끝납니다. 그런데 LA의 위성도시인 펌데일이나 빅터빌은 일주일은 기본이고 길게는 10일이 넘길 때도 종종 있습니다.

유재원은 상황이 이렇게나 심각할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넥스트컴캐스트의 직원 숫자만 2만 명을 넘는 상황이었다. 이중에 넥스트컴 직원은 몇 백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다 구 컴캐스트에서 고용이 승계된 직원들이다.

이렇게나 인력이 많은 덕에 유재원은 ID 그룹의 규모를 직원수로 파악할 때, 컴캐스트 쪽은 따로 빼놓는 경우가 많았다. 포함을 시키면 ID 그룹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 착오를 줄 수도 있었던 탓이다.

하여튼, 유재원의 인식은 컴캐스트쪽에 직원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적은 숫자였던 것이다. 북미 대륙 전체를 대상으로 조그만 소도시까지 모두 커버하는 영업망을 조직하려면 현재의 직원보다 몇 배는 많은 숫자가 있어야 했다.

-회장님께서 기가막힌 타이밍이 최고의 지시를 내려주셨습니다. 우리 넥스트컴캐스트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걸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헨리 사무엘 사장의 말은 간단했다.

전송된 이미지 한켠에는 넥스트컴캐스트로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합산되어 있는데, 그 숫자는 대략 427만 5,350명으로 십의 단위 까지 정확하게 나와 있었다. 추세로는 매달 20만 명씩, 1년에 100만 명 정도 신규 가입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케이블 가입자의 경우에는 몇 달 전 600만 명을 돌파했는데, 매달 신규 가입자는 대략 26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준수한 성적이긴 한데, 이게 한계였다. 실제 수요는 이보다 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경쟁사인 워너 케이블도 인터넷 시대 대비가 온전치 못해 다행이지, 대비가 끝났다면 이 수요를 다 빼앗길 상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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