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6화
“어? 저건?”
그렇게 PC방을 둘러보던 유재원의 눈길을 완벽하게 사로잡은 건 약간의 여유 공간이 만들어진 장소였다. 대략 60인치 정도 되는 하얀색 스크린과 프로젝터였다.
“명색이 대회이니, 경기 관람을 쉽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임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중계였다. 많은 사람들이 선수의 플레이어를 봐야 분위기가 산다. 이용하는 기기가 PC이었기에 프로젝터와 궁합이 아주 좋았다. 준비된 프로젝터는 한 대였지만, 입력단자 선택기까지 준비해서 4대의 PC 화면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바로 보여줄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중계의 박진감을 더해줄 캐스터와 해설자까지 있었으면 최고였겠지만, 초창기 PC방 대회가 이 정도로 준비된 것만 해도 고마운 것이었다. 유재원은 김대석에게 엄지를 척 세워보였다.
“회장님, 이 분이 까치PC방의 정찬호 사장님입니다.”
곧이어 김대석의 소개로 유재원은 까치PC방 사장님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유재원 회장님! 설마 했는데, 진짜로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워크래프트 대회는 정찬호 사장에게는 살짝 모험이었던 이벤트였다.
PC방에서 돌리는 게임 중에 제일 호응이 좋았던 게 워크래프트였다는 걸 캐치한 정찬호 사장은 100만 원이라는 제법 큰 지출을 각오하고, 이슈를 만들어 보기 위해서 판을 벌였다. 대회 참가 조건이 PC방 회원가입이었다. 상금을 보고 가입한 사람들이 다수겠지만, 꾸준히 PC방을 찾아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요즘 하나둘 나오는 클랜들의 아지트로 선택이 되면 고정적인 매출은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대물이 낚여버린 것이다. 처음에 김대석이 찾아왔을 땐 사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자비로 대회를 열만큼 우리 게임을 뜨겁게 사랑해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사의의 표현과 함께 인사도 꾸뻑 올리는 유재원이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까치PC방에 가입도 했다. 대회 참가 조건이 회원가입이라는 건 유재원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김대석의 조치였는지, 아니면 그룹 홍보실이 움직인 건지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나와서 그 모습을 사진에 찍기도 했고, 유재원과 정찬호 까치PC방 사장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상황이 잠시 이어졌다.
조그만 PC방 대회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이니 진행이 처음부터 매끄러울 수는 없었다.
특히 유재원 얼굴 좀 구경해보자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까딱하면 사고가 날 번하기도 했다. 유재원의 경호원들이 나서고, 정찬호 사장도 열심히 진행한 덕에 겨우 질서가 잡혔다.
그렇게 행사를 시작한지 30분 정도 후에 32강 대진표가 나왔고,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었다.
-오늘, ID 그룹 유재원 회장이 서울의 한 PC방을 방문했습니다. 해당 PC방에서 게임대회를 열었기 때문인데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워크래프트 대회라고 합니다. 덕분에 작은 PC방에서 개최했음에도 수십 명의 참가자가 등록할 만큼 성황이었습니다.
저녁 공중파 뉴스에 유재원이 당당히 등장했다.
기존 기자들이 보기에 오늘 유재원이 보여준 모습은 기행이라고 봐도 무방했기에, 당연히 빠질 수가 없었다.
-유재원 회장은 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다고 합니다. 우승 소감도 특별했습니다.. 본인이 개발에 참여한 만큼 당분간은 어떤 상대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특유의 자신감을 가감없이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상천외한 전략이 나오는 게임이니 앞으로는 우승을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유재원 회장은 이번 PC방 대회에 큰 감명을 받았고, 이러한 경험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해 보길 원한다면서 PC방 대회 지원책을 발표했습니다.
PC방 대회를 한 번 하고 말기에는 아쉬웠던 유재원이었다. 그래서 발표한 것이 PC방 워크래프트 대회 지원 정책이었다.
PC방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정품 워크래프트를 구매한 PC방이라면 대회를 신청할 수 있고, 확인을 받으면 상금이나 여러 프로모션 정책을 지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각 지방 PC방마다 우승자가 나오면 이들을 가지고 전국 대회까지 치르는 워크래프트 챔피언쉽 리그를 발표했다.
PC방 대회 상금도 몇 백만 원 수준이었고, 우승자들이 다 모이는 워크래프트 챔피원쉽 리그의 우숭 상금은 무려 3천만 원이라고 발표되었다.
당연히 그 호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난리였고, 세계의 네티즌들도 반응이 왔을 정도다. 심지어 출시 후 점차 하락 중이었던 워크래프트의 판매량이 다시금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 기세라면 몇 주 후 퀘이크가 출시된다더라도, 워크래프트의 열기를 넘어서지 못할 것 같다.
그야말로 워크래프트와 아이들이었다.
#359 선택과 집중(1)
다음날.
-긴급속보입니다. 전명헌 총리가 총리실 산하 안전 점검단에 긴급 점검을 지시했습니다. 점검 대상은 서울의 수성대교인데, 부실공사와 관리 소홀에 대한 확실한 제보를 받고 긴급 점검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전명헌 총리의 발표를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서울 시민 여러분, 총리 전명헌입니다. 저는 오늘 서울 시민,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수성대교의 내구성에 한계가 왔다는 확실한 제보를 받고, 이를 점검하기위해 긴급진단권을 사용하였습니다…….’
-긴급 점검을 위해 다리의 일부가 통제될 수 있고, 그 때문에 심한 교통체증이 생겨날 수 있으니 서울 시민들의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할 것입니다.
-수성대교의 건설사인 동아 건설과 대교 점검을 담당한 서울시는 안전 점검단의 긴급 점검 소식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안전 점검단 조사에 성실히 대응할 것이고, 직접 참관해 소명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야, 진짜 빠르시네.”
어제 저녁 뉴스까지 장식했던 유재원의 PC방 대회 이야기는 아침에 폭탄처럼 터진 전명헌의 수성대교 긴급 점검 명령에 싹 사라졌다.
그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본 유재원은 역시 한다면 하는 분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전명헌 총리는 그냥 말로 명령만 하고 끝이 아니었다. 안전 점검단을 이끌고 직접 수성대교를 방문해 점검을 지휘할 것임을 확실히 했다.
동아건설이나 서울시에서 반발이 크게 할 것이고, 안전 점검단 활동을 방해하고 외압을 넣을 수도 있으니, 본인이 나가서 그런 의도를 차단해버리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명헌은 정치인 이전에 사업가였고, 그 시작은 건설업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전명헌보다 건설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는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런 전명헌이 현장에 나가서 무게를 잡으면 동아건설의 항이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다만 서울시장이라면 월권이라고 항의 할 수 있다. 서울의 한강 다리들에 대한 관리 권한이 일단은 시장에게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법적으로 명확히 따져 보면 안전 점검단은 총리 직속 조직이니 장관급인 서울시장의 권한보다 우위에 있었다. 지금처럼 전명헌이 힘을 딱 실어 주기만 하면 그야말로 안전 쪽으로는 막강한 조직이었다..
“이걸로 붕괴사고 예방은 한 것이겠지?”
유재원은 혼잣말을 하면서도 고개는 갸웃거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수성대교에 통행금지가 내려지더라도, 이전 역사처럼 21일날 다리가 뚝 부러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붕괴사고에 휘말리는 사람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전명헌이 저렇게 강하게 나가는 걸 보면, 긴급 안전 점검 이후 곧바로 통행금지와 함께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할 것이 확실했다. 이후 다리 상태를 보고 보강을 할지, 아예 부셔버리고 새로 지으라고 할지 결정할 텐데, 유재원은 후자였다.
가만 둬도 뚝 부러지는 다리인데, 정밀 진단을 해보면 내구성은 바닥이 난 것으로 나올테니 말이다. 게다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통일국민당이 써먹을 아이템이 되려면 수성대교부터 시작된 안전 점검단 이야기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어야 한다.
아예 허물어버리고 새로 짓는 게 훨씬 남는 장사였다.
그렇게 아침 뉴스를 좀 더 지켜보던 유재원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하던 작업을 이어갔다.
바로 본인의 파워블로그를 업데이트하는 일이었다.
스위스 여행기, 고급 시계 개봉기 이후로 새 글은 없는 유재원의 블로그였지만, 이미 누적 방문자 숫자는 300만을 훌쩍 넘었다.
세계적 셀럽이나 다름이 없는 유재원의 근황이 궁금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블로그에 적용된 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방문하는 웹에디터들도 많았다. 심지어 트렌드에 빠른 대학교는 아예 수업 교제로 쓰기도 했을 정도다.
HTML 2.0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사이트였고, 소스코드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용된 기법도 매우 높아서 교제로 쓰기에 딱 좋았다.
덕분에 유재원의 파워블로그를 모방하는 사이트들이 막 늘어나는 중이었다. 다만 원본 이상의 퀄리티를 내는 사이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대신 HTML 2.0은 순식간에 대세로 떠올랐고 매우 빠르게 보급 중이었다.
“됐다.”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파워블로그에 유재원이 이번에 올린 것은 바로 어제 까치PC방에서 치른 워크래프트 대회의 영상이었다.
각 진영마다 유닛수가 100이 넘는 커다란 규모의 한타 싸움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편집해서 멋진 영상 클립으로 만들었다.
특히 결승전 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화질의 영상으로 담아 올렸다.
5판3선승제였고, 유재원이 내리 3판을 다 이겼지만, 토너먼트를 뚫고 올라온 상대의 실력도 제법인지라, 마지막 3번째 경기는 무려 30분이나 했다.
화질이나 음질은 최대한 살리면서도 용량은 확 줄여 트래픽 부담을 최대한 덜게 만들고서 업로드했는데, 파일 하나가 대략 100메가바이트는 훌쩍 넘었다.
30분이나 이어졌던 마지막 경기는 사방에서 난전이 펼쳐지고, 마법도 요란스럽게 사용되면서 화면이 복잡해졌고 덕분에 용량이 한층 늘어난지라 200메가 가까이 되는 용량을 자랑했다.
옛날엔 이렇게 큰 파일을 올리는데 한세월이었을 텐데, 지금은 인터넷전용선이 있고, 한국에도 ID 데이터센터가 만들어지면서 순식간에 끝났다.
“이건 조회수가 얼마나 나오려나?”
해외의 경우엔 RTCW를 즐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지만, 워크래프트에 빠진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끼리 전략을 겨루는 것에 흥미를 느낀 이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재원이 올린 본인의 경기는 앞으로 지양해야 할 궁극의 목표점을 제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소문이 나면 찾아볼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