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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371화 (371/1,007)

제 493화

재미있는 건 그렇게 보인 자동차 중에 제일 급이 낮은 것이 유재원의 자동차라는 점이다.

부모님이나 큰아버지, 수경이네 모두 독일이 자랑하는 벤츠사의 대형 세단이었는데, 유재원만 미래 자동차의 그랜저였다.

“이거, 우리가 너무 사치스럽게 산 거 아닌가 모르겠다.”

동네 공터에 모여있는 차들을 보고 결국 큰아버지가 한소리 하셨다.

“그러게요, 여기서 제일 부자가 제일 겸손한 차를 타고 있네요.”

그걸 또 수경이네 아버지가 받았다.

“아니에요. 저야 전명헌 할아버지랑 친하니 미래자동차를 타는 거지, 할아버지 아니었으면 다른 차타고 있을 거예요.”

유재원은 얼른 손을 저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써야 경제가 잘 굴러가는 법이다.

더구나 유재원은 차에 대한 욕심은 그다지 없었다. 안전하고 승차감만 좋으면 그만이다. 더욱이 하는 일도 차 탈 일보다 비행기 탈 일이 많은 특수한 경우였다. 게다가 미국에 있을 땐 좋은 차를 타고, 그랜저는 한국에서만 타는 거라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자자, 그럼 이제 출발들 하지.”

마을 이장이신 큰아버지라서 통솔력이 대단했다. 번쩍거리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시더니 출발을 외쳤다.

유재원과 가족들, 덕진리 사람들이 청접장에 적힌 호텔에 행사장에 도착하니 과연 결혼식 분위기가 물씬 났다.

호텔에 딸린 연회실을 모두 탐스러운 꽃으로 장식했는데, 그 솜씨가 제법이었다. 오로지 박상권과 김영미의 결혼식을 위해 꾸민 장식들이었다. 그것 말고도 특이하다 할 수 있는 건 철저한 신원 확인이었다.

이것 역시 다른 식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얼굴이 신분증인 유재원이야 OK였지만, 부모님이나 친척 분들은 청첩장을 일일이 검사했다.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만 초대한 결혼식이라서 기자들 혹은 박상권과 대립 중인 박상용쪽 사람들 같은 불청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확인이 끝나자 유재원과 가족들, 덕진리 사람들은 비로소 예식장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박상권을 만날 수 있었다.

“사장님!”

“와! 재원아!”

유재원이나 박상권이나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반갑게 마주 하고 두 손을 맡잡았다. ID 그룹의 초석을 다지는 데 지대한 도움을 준 사람이 박상권 이었으니, 유재원에겐 각별할 수 밖에 없었다.

“결혼 축하합니다.”

결혼 축하도 이어졌다. 이를 시작으로 부모님과 친척들도 함께 축하의 말을 건냈다. 그러면서 준비한 선물도 전해줬다.

“몸에 좋다는 여러 가지 좀 담아 봤습니다.”

유재원의 부모님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박상권이지만, 부모님은 아직도 박상권 사장에 대해선 어려워했다. 덕진리에 살면서 사장님이라고 부른 지 근 10년이 가까우니 당연했다. 그렇지만 유재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친분을 깊게 쌓았기에 어색하진 않았다.

“뭘 이런 걸 다 가져오셨어요?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박상권도 부모님의 선물꾸러미를 소중히 받았다.

안에는 송이부터 산삼까지 산에서 나는 남자에게 좋은 것들이 가득했다. 고르고 고른 특A급이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만큼 박상권에 대한 부모님의 존경심이 상당했다는 걸 의미했다.

“어어, 축의금은 받는 곳이 없는 거 같다야.”

부모님이 박상권 사장과 이야기 하는 동안 축의금 수납 창구를 찾았던 큰아버지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박상권 사장의 결혼식 특징이라면 축의금 수납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큰아버님. 성의는 참 고맙습니다. 축의금은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하긴 다른 재벌들 결혼식을 봐도 축의금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돈을 두고 아쉬움이 없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재벌 집안은 아무리 작더라도 연관된 어마어마한 인맥이 있으니 축의금을 받기 시작하면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부산그룹만 해도 계열사가 수두룩했고, 이들과 함께 파트너쉽을 맺은 협력사는 이보다 몇 배는 많았다. 이들이 다 올라와서 축의금을 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청첩장을 보면 축의금은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큰아버지는 그 문장은 대충 넘겨버리신 모양이다.

작은 해프닝이었다. 큰아버지가 준비했던 축의금은 좋은 곳에 쓰기로 하고, 예식장 안의 테이블로 유재원과 가족들을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친척들이 착석하고 나서 유재원은 따로 움직였다. 박상권 사장님의 친족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다. 재벌이라는 의미가 족벌 경영을 한다는 것이고, 부산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상권이 그룹 지배권을 가지고 있긴 한데, 안정된 지분을 가진 건 아니다. 상속으로 받게 된 지분, ID 인베스트먼트가 투자를 통해 얻은 지분 그리고 원래 오너에 대해 비토 중이었던 박씨 가문의 친족들이 힘을 합쳤고, 페놀 유출 사고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비리가 걸려들어 기존 경영진, 그러니까 박상권의 이복형제인 박상용, 박상오가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되면서 얻어진 자리였다.

박상권에게 우호적인 친족들이지만 이번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살짝 꺼렸다. 뒤로 물러난 이복형제들이 칼을 가는 상황이었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살짝 한 발짝 뒤에서 이득만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이 박상용이 낙마하자 박상권의 편을 든 것도, 박상권이 제시한 이득이 더 커서 그랬던 것이지, 박상오가 통큰 제안을 했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단적으로 오늘 결혼식에 한국의 다른 재벌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재의 부산그룹 사장 박상권보다 일선에서 물러난 박상용과의 친분이 훨씬 높았던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일부의 생각이 달라졌다.

유재원과 안면을 트고 친분을 나눌 수 있다면, 약간의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말이다. ID 그룹은 한국인의 상상 이상을 뛰어넘었다.

ID 그룹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한 안드로이드 사의 주가 총액이 수십 조에 달하는 것을 확인한 한국의 기업인들이 받은 충격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만약 ID 그룹의 모든 계열사들이 상장된다면 한국의 재벌 몇 개를 합친 것 이상이 될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평소의 유재원이면 그냥 무시했을 테지만, 박상권 사장님을 위해서이니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과 인사도 나누고 친분도 과시했다.

이후 예식이 시작되었고, 행복함이 가득 담긴 신랑 신부가 입장해 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유재원과 가족들은 박상권 사장이 준비한 피로연까지 잘 즐긴 후, 둘이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을 배웅하고서 집으로 복귀를 시작했다.

돌아가는 차안.

방금 문자 메시지를 받은 김대석이 곧장 보고했다.

“회장님, 정보팀에서 어제 알아보라고 하셨던 까치PC방 대회에 대한 보고서를 이메일로 보고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도 무료하던 참에 잘 됐다 싶은 유재원은 노트북에 티파니폰을 연결하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이동 중 인터넷이라니.

예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지만, 2G 이동통신이 시작되면서 이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물론 속도 자체는 턱없이 느리다. 2G의 초기단계라서 풀 스피드가 나오는 지역이 극소수였고, 이동 중일 땐 속도가 더 떨어졌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문서 하나 정도 받아 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개인 사업자가 주관하는 하루짜리 작은 대회입니다만, 회장님께서 관심을 두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쉘북으로 다운 받은 문서를 보고 있던 유재원에게 김대석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유재원을 가장 가깝게 보좌하고 있던 김대석이지만, 이번 취향은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죠.”

“가능성이요?”

e스포츠라는 단어가 목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진 않았다. 아직은 시기상조였으니 말이다. 대신 유재원은 다른 의미로 김대석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 대회, 한 번 참석해 볼까요?”

#357 워크래프트와 아이들(7)

김대석은 두 눈을 깜박였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탓이다. 회장님이 대회에 참가한다니? 김대석은 PC방이라는 신생 자영업자가 자랑스러운 ID 로고가 크게 달린 게임을 가지고 대회를 하니 지원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런데 직접 참가라니, 그건 김대석이 예상했던 범주를 한참이나 뛰어 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회장님이 여기 PC방 대회에 선수로 참가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대회에 약간의 지원을 해주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오, 그것도 좋네요.”

김대석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덕분에 김대석은 매우 곤란한 표정이었다. PC방이라는 곳이 유재원이 갈만한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까치PC방이라는 곳을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예전에 한 번 PC방을 가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실만한 크기의 장소에 테이블을 놓고 컴퓨터를 다닥다닥 설치해놓은 게 전부였다. 사방에서 들리는 게임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피우는 자욱한 담배 연기에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제고해주심이 어떠신지요?”

김대석은 이러한 본인의 PC방 경험을 말하면서 참가는 좀 미뤄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괜찮아요.”

유재원은 김대석의 우려에도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이미 PC방 초기의 모습에 대해선 유재원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석이 말했던 그 상황도 직접 겪어 보았다. 심지어 칸막이 구분이 없이 놓인 PC방 구조 때문에 배정 받은 본인 컴퓨터의 전원버튼을 누른다는 것이, 잘 돌아가던 옆 사람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는 불상사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렇게 열악한 PC방 환경인지라 더 가보고 싶은 생각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PC방의 역사인데, PC방 대화는 상상 이상으로 일찍 생겨난 것이다. 분명 의미 있는 현상이었다. 그러니 PC방 대회에 흥행 성공을 위해서 지원도 해주고, 본인도 직접 참전해 이슈로 만들 생각인 것이다.

개인들의 게임 패키지 구매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한국에서, 그나마 정품 사용을 기대해 볼만 한 곳은 PC방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보는 재미도 한층 끌어올린 게 워크래프트였다. 유재원의 개입으로 그래픽의 수준도 한층 높아졌고, 예전에 없던 시스템도 많이 탑재 되었다. ID 게임이라면 이제는 맵 에디터는 무조건 포함되는 게 기본이고, 워크래프트의 경우엔 관전 시스템도 탑재되었다.

시설이 좀 열악하면 어떤가.

이번 PC방 대회가 흥행하고, 이를 계기로 전국에 많은 PC방들이 생겨나 작은 대회가 생겨나면 곧 전국구 대회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대회를 통해 인기가 입증된다면 텔레비전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방송도 될 수 있다.

이전 한국에서 e스포츠가 생겨난 그 루트를 훨씬 빠르게 밟는 것이다.

몇 주 후 퀘이크를 발표할 존 카멕도 e스포츠를 노리고 있지만, 그건 FPS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지라, 속성이 많이 다르다.

유재원은 기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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