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화
#356 워크래프트와 아이들(6)
유재원은 인터넷 신문고의 글쓰기 버튼이 보기 좋게 띄워진 화면을 켜놓고, 새로운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었다. 그리곤 IP숫자로만 이뤄진 특정 주소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인터넷 브라우저에 로그인 화면만 덩그러니 나왔다.
“이러니 무슨 비밀 사이트 같네.”
말은 좀 그래도 엄선된 회원만으로 운영되는 비밀 사이트라는 건 사실이다.
바로 한국 ID 그룹의 정보팀이 사용하는 사이트였으니 말이다.
서울은 물론 각 지방에서 활동하는 정보 팀원들이 수집한 정보들 통합적으로 전산화되어 등록되는 사이트였다. 때때로 불법을 감수하고 수집하는 정보도 있었기에 그룹의 전산망과는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조그만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것이다.
유재원은 곧장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화면이 바뀌었다. HTML로 구성된 게시판이 아니라, 그냥 FTP처럼 디렉토리로 구성된 화면이 나타난 것이다.
최상위 디렉토리는 연도였고, 유재원은 1994년을 선택했다. 그러자 이번엔 월별 디렉토리가 나왔다. 여기서 유재원은 10월 달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엔 좀 달랐다. 1일부터 오늘 7일까지 쭉 있는 게 아니라 이빨이 빠진 숫자가 제법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유재원은 최신 데이터 5일을 선택했다.
비로소 문서와 사진 파일들이 나왔다.
“파일 네이밍 규칙은 철저히 지키고 있네.”
파일 이름은 아무렇게나 붙이는 게 아니라, 지역과 날짜, 그리고 간단한 요약이 파일 이름에 담기도록 지시했었다. 파일만 보고도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도록 말이다. 한국의 정보팀은 유재원의 지시를 착실하게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원하는 파일을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바로 수성대교 사진들이다.
강북과 강남을 잇는 중요한 다리 중 하나로, 시공사는 동아건설이다. ID 그룹의 한국 정보팀 자료실에 뜬금없이 수성대교 사진이 한 장도 아니고 수십 장이 업로드되어 있는 건 유재원이 모니터링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2주 후, 이 수성대교 가운데 교량이 뚝 부러지면서 한강에 처박혀버리니 말이다.
일명 수성대교 붕괴 사고는 한국병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시공사인 동아건설의 설계미스, 시공부실이 제일 큰 원인이었고, 교량의 보수와 관리 기관인 서울특별시는 그 책임을 경시한 게 다음 원인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의 급증한 통행량도 문제였다. 심지어 콘크리트를 잔뜩 담은 레미콘차량이 매일 지나면서 피로균열을 가속화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지은 지 17년밖에 되지 않은 다리가 사용 가능 연한도 견디지 못하고 붕괴했다.
한국의 정보팀에게는 사진을 찍어두라는 지시를 하면서 따로 이유를 말해주진 않았으니, 이러한 이야기가 있을 줄은 짐작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보팀이 유재원의 지시에 이상하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정보팀의 운영은 팀원들에게 목적 전체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이거이거 조사해 봐라 하는 식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딱 보이네.”
수성대교 사진은 달랑 10월 5일자 사진만 있는 게 아니다. 작년부터 수성대교를 지날 때마다 사진을 찍어두라고 지시한 덕에, 시간 흐름별 다리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사진이 무척이나 많았다.
아예 구도가 비슷한 사진도 많았다. 이걸 가지고 움직이는 사진으로 만들어 놓으니 다리 상판에 틈이 벌어지는 모습이 바로 보일 정도다.
유재원은 일단 작년 사진과 올해의 사진 두 개만 골랐다.
게시판이 죽은 상태나 다름이 없는 지금 글을 하나만 올린다고 안전 점검단이 출동하진 않을 것 같았다. 앞으로 20일까지 도배를 하려면 총알을 든든히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유재원이 ID 그룹의 회장이라는 걸 적시해놓고 인증도 하면 바로 움직이겠지만, 그러면 익명으로 만든 인터넷 신문고의 취지도 살릴 수가 없다. 게다가 괜한 논란에 빠져서 여러 모로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질 테니, 일단 20일까지 도배를 해볼 작정이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으면 버스터콜이라 할 수 있는 전명헌에게 직접 전화를 하고 말이다.
타자 속도가 빠른 유재원은 수성대교가 수상하다는 내용의 제보글과 함께 사진 두 장을 첨부하고 업로드 버튼을 꾹 눌렀다.
다음날, 아침.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아침 일찍 일어난 유재원은 컴퓨터 앞에서 혀를 차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컴퓨터에 띄워 놓은 건 어제 본인이 올린 수성대교 제보 게시물이었다.
변한 점은 딱 하나다. 0이었던 조회수가 2가 된 것이다.
확인하겠다는 리플이 없는 걸 보면 그냥 게시판을 방문했던 네티즌 중에 누군가가 호기심에 클릭해본 모양이다.
짐작은 하고 있었기에, 유재원은 실망을 크게 하진 않았다. 올릴 자료는 많이 있다. 앞으로 꾸준히 올리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재원은 다시 한 번 글을 올리면서 아침을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도배라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지만, 오늘은 할 일이 많은 날이기에 똑같은 내용의 글을 재탕하고 사진을 몇 장 더 올리는 선에서 그쳤다.
오늘이 바로 박상권 사장님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유재원뿐만이 아니라 부모님과 큰아버지까지도 두루두루 친분이 있었기에 다 같이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만약 박상권 사장님이 예전 그대로 현미유 공장 사장만 했다면, 동네잔치가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부산그룹 사장이었기에 동네잔치 식으로 결혼식을 할 수는 없었고, 서울의 큰 호텔을 빌려 식을 치르기로 했다.
오랜만에 유재원의 가족과 친지들이 동시에 출동인 행사였기에, 그 규모가 상당했다.
큰아버지부터 당숙, 삼촌들의 자동차들, 그리고 유재원과 부모님의 자동차까지 다 모이고, 경호원들의 차량까지 더해지니 10대가 훌쩍 넘었다. 게다가 이게 다가 아니다. 박상권 사장님과 아예 친구 관계였던 수경이네 부모님도 함께 가고, 학교 선생님들도 오랜만에 외출을 준비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