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69화 (36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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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워크래프트와 아이들(5)

-저작권 선진관리법 통과!

-이회창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연예기획사 표준계약서 발표!

국적기가 좋은 건 기내에서 제공하는 신문 중에 한국의 것도 있다는 점이었다. 신문을 받아 펼치니 최근 국회를 통과한 법률 하나와 공정위원회의 발표가 신문의 정치면과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성희 의원님이 일을 이렇게 잘 하시는지 몰랐네.”

한참이나 계류 중인 노동법 개정안에 비하면, 저작권 선진관리법과 표준계약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입법이 완료된 거나 마찬가지다.

저작권 선진관리법이라는 이상한 이름이지만, 실체는 전산망을 통해 오프라인 판매량을 카운트 하는 것과, 온라인에서 음악저작물이용 할 때의 가이드라인을 규정한 법이었다.

만들어진 법률을 보면 오프라인 판매점에서 전산 관리에 방점을 두고 있는데, 법률로 강제 하는 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음악계는 완전히 주먹구구인지라, 판매량은 엿가락처럼 제멋대로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다.

언론에는 수십만 장이 팔렸다고 자랑했다가, 정작 정산 때가 되면 말이 달라지는 건 예사였다.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음반을 취급하는 곳은 POS기를 도입해 판매량을 전산처리해야 한다. 또한 전산처리 된 데이터는 한국음악저작권을 통해 저작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공유되고, 실제 판매된 수량을 통해 순위 차트도 만들어지도록 했다.

나중에 이성희 의원에게 알고 봤더니, 저작권 선진관리법이 상상 이상으로 빨리 처리된 이유에는 역시나 본인의 이름값이 있었다.

이성희 의원님과 레스토랑에서 만났을 때, 이성희 의원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유재원의 이름을 팔아도 되냐고 물었다. 유재원은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당시 생각하기에 노동법 개정안도 저 모양인데, 이번 일로 자신의 이름을 팔아봐야 뭐 얼마나 빨라지겠느냐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국회의원들이 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랐다.

선진관리법을 실행하기 위해선 전산 작업과 POS기기를 도입해야 하는데, 한국서 이를 제일 잘하는 게 ID 테크놀로지였다. 그러니 이 법을 통과시키면 가장 큰 이득을 볼 사람은 가수나 음악저작권 관련자가 아닌 유재원으로 본 것이다.

유재원이 부탁한 노동법 개정안이나 개인정보 보호법, OCED가입에 대비한 여러 법률이 무작정 대기 중인 상태로 부채의식이 상당했던 여당의 국회의원들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나마 쟁정한법안이 아닌지라 쉽게 통과시킬 수 있는 저작권 선진관리법을 통과해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깔려 있었기에, 저작권물 관리를 위한 전산처리 시스템 도입에 정부 지원금을 투입하도록 명문화까지 시켜 놓았다. 어떻게 보면 유재원이 국회를 압박해서 본인의 사업에 선심성 예산을 타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유재원은 일반인과는 다른 국회의원들의 사고방식에 기가 찰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바라는 그림이 하나 그려졌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연예계 표준계약서였다.

94년 10월 이후부터는 가수들의 전속 계약 시 최대 계약기간은 7년을 넘지 못하게 했고, 소속사와의 정산 비율도 상식선에 맞춰 설정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주었다. 7:3이 기본 권고안으로 0:100과 같은 극단적인 분배 비율은 불법으로 규정했다.

0:100이라는 건 소속사가 가수의 데뷔를 위해 투자를 했다는 명목으로, 투자금 회수가 끝날 때까지 한 푼의 정산금도 주지 않는 걸 의미했다.

유재원이 봤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소속사들이 돈을 들인다면, 가수들은 본인의 재능과 노동력,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투자한다.

그것도 결국 다 돈이었다. 아니, 어쩌면 돈보다 더 귀한 자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연예기획사들은 갑의 위치를 이용해 불공정한 분배 비율을 강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표준계약서에 따라서, 100원이라는 수익이 생기더라도 분배 비율에 맞춰 나눠 정산을 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 정산에 사용되는 데이터는 선진관리법을 통해 만들어진 전산 시스템을 기초로 해야 하니, 이제는 청춘을 다 바치고도 정산 한 번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가수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 가수만 적용된 건 좀 아쉽네.”

안타까운 점은 표준계약서는 수많은 연예계 분야 중에 가수 쪽만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가수들은 저작권이 확실하게 증명되는 노래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전산화가 쉽지만 다른 분야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거라도 어디야?”

음악분야에서 바뀌면 그 영향은 서서히 업계 전반으로 번져갈 것이다. 문화라는 게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 말이다.

동시에 유재원은 마음이 급해졌다. 단순히 저작권 선진관리법을 판매량의 전산 집계에만 사용하기엔 아까웠으니 말이다. mp3플레이어도 만들고 온라인 음원 사이트도 만들어서 사용자에게도 좋고, 가수나 다른 저작권자에게도 좋은 음악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었다.

저작권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커지면 마음의 짐을 더는 것은 기본이고, 앞으로 무척이나 유망한 온라인 음원 사업의 초석을 ID 그룹에 가져온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와 함께 연예계의 오랜 폐단 하나를 제거함으로서 문화 발전에도 기여하는 것이니 여러 모로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좋게 되서 다행이네.”

신문을 내려놓은 유재원은 기분 좋게 달콤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잠깐만요. 속도 좀 줄여주세요.”

김포 국제공항에 내려 서울 시내로 이동 중이었던 유재원은 창밖 모습을 무심코 보다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오늘 운전을 맡았던 경호원 그렉은 깜짝 놀라며 비상등을 켜고 서행하기 시작했다. 새벽 비행기로 도착한 덕에 도로가 한적해서 문제는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대신 김대석이 깜짝 놀라 물었다.

이에 유재원은 창밖의 상가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80년대의 시멘트 건물로 매우 낡았고,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그런 건물의 외관이 아니었다.

“까치PC방 말씀이십니까?”

“네! 바로 그거요!”

낡은 건물 3층에 입주한 가게는 PC방이었던 모양이다. 상호는 너무도 정겨운 까치PC방이 유재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이다. PC카페 말고, 본격적인 PC방이 생겼다는 건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을 놀라게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까치PC방, 워크래프트 대회!

-상금 100만 원! 회원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

PC방 간판 아래로 걸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새것 느낌이 물씬 풍기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PC방 차원에서 게임 대회를 열었고, 그 종목이 워크래프트라는 것이다.

“저 PC방 대회에 대해 좀 알아봐 주세요.”

“까치PC방의 워크래프트 대화 말씀이십니까?”

“네! 바로 그거예요.”

“알겠습니다.”

김대석은 곧이어 전화기를 들고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돌린 유재원은 속도를 올려도 된다고 그렉에게 신호를 줬다. 자동차는 다시금 속도를 내어 로데오 거리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경쾌하게 달리는 유재원은 기분이 좋았다.

비행기 안에서 본 신문도 그렇고, 조금 전 까치PC방도 그렇고, 이번 한국행에는 뭔가 커다란 대박은 없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많았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하늘도 맑아서 여러 모로 기분 좋은 한국행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서울에 입성한 유재원은 단 1분도 허투로 쓰지 않았다.

오전에는 로데오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 들려, 이찬수를 비롯한 ID 테크노롤지 직원들을 격려해줬다. ID 오피스 95로 이뤄낸 혁신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5년차 근속자들에게 고급 시계가 선물로 나갔고, 일부는 황금열쇠로 지급된 덕에 분위기가 좋았는데, 칭찬까지 이어지니 다들 사기가 충천했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보너스 약속이었다. 유재원은 ID 오피스 95의 판매량이 전작을 능가할 경우 커다란 보너스를 주겠다고 확언했다. PC의 보급률은 날로 높아지고, 사무직은 물론 학생들까지 ID 오피스를 배우고 있는 마당이니 95버전의 판매량이 전작을 능가할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재원이나 ID 오피스 개발팀이나 다들 짐작을 넘어 확신하고 있었기에, 부푼 기대감이 더더욱 커졌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도곡동에 올라가는 ID 그룹 본사 공사장이었다. H빔 골조는 벌써 인근의 아파트는 물론 도곡 공원이 있는 뒷산보다 높게 올라가고 있었다.

101층짜리 건물인지라, 아직도 올라갈 높이가 상당했지만, 지금 상태에서도 주변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다.

현장을 방문한 유재원은 미래건설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꼭대기층까지 올라갔다. 지상에서는 고층 빌딩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서울의 전경이 탁 트이니 마음까지 다 시원했다. 101층이 모두 올라간 후에 보면 더더욱 큰 감동이 느껴질 것 같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이면 여의도의 63빌딩도 훤히 마주 볼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더더욱 날씨가 좋았다. 한국의 10월 가을 하늘은 매우 높고 파란 것이 특징인데, 오늘은 코발트 블루에 비견될 만큼 진했다.

특히 유재원에겐 미세 먼지 때문에 가려진 하늘만 기억에 남아 있던 터라 그 감동은 훨씬 컸다.

당연히 이런 모습은 그냥 보고만 지나칠 수 없어서, 이제는 이동 중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디지털 카메라로 이 모습을 담았다.

참 아쉬운 건 집에 도착해 모니터로 확인해보니, 사진기가 한국의 그 파란 가을 하늘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화소도 부족했고, 색 처리 능력도 좋지 못해서 일어난 참사였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PC용 그래픽카드나 브라운관 모니터는 현실과 똑같은 밝기나 색상을 지원하지 못하니, 아무리 좋은 전문가용 필름 카메라라도 눈으로 보았던 그 장관을 똑같이 담는다거나,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유재원은 마음 같아선 디지털 카메라도 막 만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디지털 카메라 같은 분야는 센서는 물론이고 렌즈 기술도 함께 동반되어야 하고, 거대한 공장까지 만들어야 하는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재원이 할 수 있는 건 실리콘밸리에서 CCD나 CMOS를 연구하는 소규모 벤처업체에 투자를 하는 것인데, 그건 이미 진행 중이었다.

“차라리 PC용 색표준을 따로 만드는 게 낫겠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PC에서 색을 표현하는 데 표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덕분에 비디오 카드 제조사마다 색감이 제각각이었다.

신생 업체인 3DFX나 엔비디아의 색감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녹색이 연두색처럼 나오는 건 기본이고, 뭔가 좀 칙칙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전통이 있는 ATI의 경우엔 감마값이 일정하고, 화사한 느낌이었다.

제대로 된 색감을 보려면 매트록스 같은 전문 업체의 비디오카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3D 가속성능은 0점인지라, 2D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들만 쓰는 정도였다.

오죽하면 지금 준비 중인 i웍스에 탑재될 엔비디아의 3D 가속카드는 일본의 캐노퍼스라는 영상전문장비 업체를 통해 색감을 튜닝한 모델이었다. 엔비디아가 의뢰를 한 게 아니라, ID 그룹 차원에서 의뢰한 작업이었다.

엔비디아의 3D가속 성능은 인정하는 유재원이지만, 색감은 영 아니다 싶은 유재원이 직접 튜닝을 의뢰하도록 했다. 덕분에 i웍스에 장착될 엔비디아의 3D가속카드는 3D성능도 발군이면서 색감은 매트록스 같이 정확하게 나왔다.

물론 생산 단가가 카드 한 장당 18만 원 정도 상승했지만, 유재원은 상관없었다.

지금도 초고가 PC는 뉴에그 시리즈의 전유물이지만, 앞으로 나올 전문가용 PC도 ID 그룹의 전유물이어야 한다는 게 타협을 거부하는 유재원의 방침이었다. 실제로 몇 푼 아까지고 쉽게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싸구려를 쓰는 것이 명품의 이미지에 중대한 타격을 주는 행위였다.

그렇게 야금야금 다운그레이드를 일삼다가 망한 회사들은 전생에 수도 없이 많이 봤던 유재원은 그들의 실패를 절대 따라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러면 귀국하고 나서 바로 비디오카드 업체들을 소집해야겠네.”

표준색 문제 말고도 글라이드X의 다음 버전 때문이라도 비디오카드 업체와의 컨퍼런스는 필수였다. 퀘이크 발매 후 한가해진 존 카멕이 본격적으로 글라이드X 차기 버전 개발에 참여할 계획인데, 다음 버전에는 그야말로 대격변을 일으킬 작정이었으니 말이다.

이제까지는 글라이드X의 라이브러리의 개별 함수마다 별도의 가속을 했다면, 앞으로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통합 쉐이더라는 구조로 바꾸어서, 게임 개발자들이 3D가속카드의 퍼포먼스를 100% 끌어낼 수 있도록 바꿀 예정이었다.

그걸 처리할 때 표준색 문제도 함께 처리하면 앞으로는 색감 논쟁도 사라질 것이다.

“그건 그거고, 사진 망친 건 참 아쉽네.”

생각을 정리한 유재원은 사진 파일을 닫았다. 포토샵으로 어긋난 색감을 살리려고 열심히 만져봤지만, 아무리 색감 커브를 조절해 봐도 기억에 남은 그 파란 하늘을 살려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 사건까지 며칠 남았더라?”

사진은 깔끔하게 포기한 유재원은 무슨 생각이 생각난 모양인지 바탕화면 구석에 있는 달력을 찾았다.

“21일이니까, 14일 남았네.”

그렇게 날짜를 따져 본 유재원은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고 한국 넥스트컴에 접속했다. 익숙한 페이지가 나타나자 로그인을 했고, 다음으로 넘어간 페이지는 국민 신문고였다.

예전 전명헌 총리에게 유재원이 제안했던 온라인 민원 처리 사이트가 넥스트컴 안에 국민 신문고라는 이름으로 구현된 것이다.

전명헌은 유재원의 제안이기도 했고, 인터넷 시대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국무회의 중 정식으로 건의했고 김 대통령이나 다른 장관들의 호응을 받으며 사업을 시작했다.

매커니즘은 간단했다.

민원인이 글을 올리면 모니터링 중이던 총리실 직원들이 보고 관련 부서로 이첩을 시켜주는 방식이었다. 또한, 건축물이나 교량 등의 안전에 관한 내용이라면 총리실 산하 안전 점검단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역시, 파리만 날리고 있네.”

당시엔 뉴스나 신문에 제법 크게 났을 만큼 화려하게 시작했는데, 파리만 날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실효성이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민원을 올리면 시원하게 해결되는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정치인들의 업적 쌓기식으로 만든 제도처럼 시작할 때만, 빈 수레가 요란했구나 싶은 것이다. 그렇게 낙인이 찍히니 민원인들의 외면이 이어졌다.

“그러면 이놈이 잘 작동한다는 걸 보여주면 그만이지.”

애초에 유재원이 전명헌에게 온라인 민원 페이지를 만들어보자고 했던 것도 그 사건을 최대한 부드럽게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조아라 회차 369에서 내용 이어짐. 이후 톡소다 연재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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