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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368화 (36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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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 워크래프트와 아이들(4)

회사를 하나만 선정하면 간편하고 좋다.

하지만 하나의 단일 프로그램을 선정해 기본적으로 탑재한다면 보안영역을 오픈한 의미가 퇴색된다. 해커들의 공격이 집중되는 건 물론이고, 그 회사의 실수로 민감한 취약점이 노출되면 전 세계가 똑같은 위협을 받는다.

또한, 여러 가지 권력들의 압력이 조그만 회사 하나로 몰리면 쉽게 굴복해버릴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물론 ID 그룹에도 많은 압력이 온다. 하지만 최소한 고객들의 개인 정보를 알고 싶으면 최소한 법원 영장은 가져오라고 하고 있다. 그렇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협조는 하고 있지만, 불법적인 요청은 거절 중이다.

그나마 이렇게 하는 것도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많은 정치인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불법적인 요청을 하는 작자들 중에 미국 대통령을 능가할 권위를 가진 자는 없으니 말이다.

대신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도 상당했는데, 작은 회사들에겐 이 돈도 부담일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가장 간단한 해법으로 지역마다 보안을 담당할 회사를 나눠 놓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자잘하게 나눠 놓는 것도 일인지라, 유재원은 크게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이렇게 3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놓을 생각이다.

4개 이상은 너무 많아서 관리하기도 벅찬 느낌이었고, 2개는 너무 적다. 그래서 3개가 적당한 숫자였다. 게다가 우열을 가리기 힘든 3개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걸 삼족지세라고 칭하는 말이 있을 만큼 검증된 숫자이기도 했다.

“그러면 아메리카 쪽은 시만텍, 유럽은 ESET, 아시아는 킴랩인가?”

알파랩의 리포트 점수로 딱 끊으면 저렇게 떨어진다.

“이야. 킴랩이라니.”

유재원은 아시아 권역의 경우 대만이나 일본의 업체가 제일 높은 점수를 받을 줄 알았다. 퍼스널 컴퓨터의 보급은 한국보다 두 나라가 훨씬 빨랐으니, 컴퓨터 보안의 역사도 두 나라가 앞서 시작했다.

“설마 나랑 같은 나라라고 우호적인 평가를 준건 아니겠지?”

설마 하며 유재원은 킴랩의 상세 리포트 페이지로 넘어갔다.

그러자 알파팀의 S급 인재들이 킴랩의 보안프로그램에 대해서 분석한 내용이 상세하게 표시되었다.

부가서비스는 매우 단순하지만, 데이터를 보호하고, 프로그램의 위변조를 차단하는 기능 자체에 대해선 훌륭하게 평가했다. 또한, 데이터를 암호화하거나 복호화 하는 속도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러한 평가가 이유에 대해서도 수십 대의 다양한 컴퓨터로 측정된 데이터가 깔끔한 표로 정리되어 첨부되어 있었다. 우려와 달리 매우 객관적이었다.

“다행이 그건 아니네.”

다만 걱정이 되는 건 있다.

바로 킴랩 자체의 불안요소였다.

킴랩은 유재원이 아니더라도 원래 잘 크는 회사였다. 최초의 국산 컴퓨터보안업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기 때문이다.

IMF 때에도 해외의 보안업체가 수백억 원의 가격을 부르며 V6의 판권을 넘기라고 제안했을 정도다. 이후 IMF를 극복한 다음에는 정부나 기업의 보안 시스템을 담당하게 되면서 쭉쭉 커나갔다.

영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앉아서 돈을 긁어모을 정도였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필연적으로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백신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가 심할 때도 있었을 정도다. 이후에는 창업자인 김철수가 정치판에 기웃거리면서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김철수는 행운을 얻을 준비가 된 사람이려나?”

김철수에 대한 생각은 이걸로 끝이었다. 그가 준비된 사람인가 하는 건 앞으로 지켜보면 될 일이다. 만에 하나 사후지원을 소홀하게 하면 즉각 교체하면 그만이다. 위약금 정도는 유재원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사용자의 컴퓨터 설정을 바꾸는 것도, 웬만한 PC는 인터넷에 연결되는 게 기본이니 온라인 업데이트 기능으로 처리해주면 간단하다.

유재원은 곧이어 시만텍과 ESET의 리포트도 체크했다. 점수가 제일 좋았던 시만텍은 모든 부분이 다 훌륭했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약간 느리다는 점이 전부였다. 그래도 해당 기능의 사용에 지장을 줄만큼 엄청나게 느린 건 아니고, 속도가 제일 빠른 킴랩의 제품과 비교했을 때 약간 차이가 난다는 정도였다.

ESET의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무난하다였다.

적당한 성능, 적당한 편의성으로 특색이라는 게 없다는 게 특색이라고 할 정도다. 그렇지만 보안 프로그램의 본질인 데이터 암호화 수준은 유재원이 내세웠던 기준을 충족했으니 문제는 없다.

그렇게 3개의 업체가 골랐지만, 유재원은 다음 순서로 넘어가진 않았다.

“아직 살펴봐야 할 게 하나 있지.”

유재원은 마우스를 조작해 본인의 메일함에서 새로운 문서 하나를 내려 받았다. 알파팀의 최근 동향에 대해 담겨 있는 문서였다.

매우 큰 이권이 걸려 있는 사업인 만큼, 외부에서 이것저것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움직인 정황도 확실했다. 정보팀은 그러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정리해서 유재원에게 보낸 파일이 있었다. 또한, 정보팀에서도 각 보안업체가 보낸 소프트웨어의 품질 검사를 실시했고, 그에 대한 보고서도 보냈었다.

알파팀보다 정보팀에서 훨씬 일찍 보냈었는데, 먼저 보고서 선입견이 생길까봐 지금까지 묵혀두고 있었다.

“음, 인간적으론 참 별로겠지만, 믿으려면 의심할 수밖에.”

혼자서 세상 참 복잡하게 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방심은 전생의 한 번으로 족하다.

“음, 괜찮네.”

다행히도 이번 알파팀의 보고서와 정보팀의 보고서 사이에 큰 괴리감은 없었다. 5위까지 순위는 동일했고, 이후부터 살짝 달라지는 게 있긴 했다. 하지만 5위 이하는 의미가 없으니 완전 일치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가격협상이네.”

가격 하니 다시 한 번 열이 올라오는 유재원이다.

돈에 초연한 편인 유재원이지만 그 액수가 수천억 원대가 되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애초에 이렇게 보안영역을 다른 업체에 개방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보수적인 고정관념이 단단히 박힌 책상물림 한 녀석 때문에, 수천억 원에 달하는 이익을 다른 업체들에게 내줘야 했다.

반대로 시만텍, ESET, 킴랩은 돈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보안영역 기술제공에 대한 대가로 이야기되고 있는 액수는 에디션에 따라 살짝 다르다.

개인용으로서 제일 많은 판매량을 보일 게이밍 에디션의 경우엔 패키지당 1~3달러, 기업용으로서 훨씬 강력하고 다양한 기능이 요구되는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은 10~20달러였다. 이번에 새로 나올 워크스테이션 에디션에 들어갈 것은 4~6달러 정도로예상하고 있다.

보통 패키지 가격의 10%정도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개발비나, 소비자 가격을 고려한다면 너무 비싼 것 같지만, 보안영역의 사후지원 비용까지 포함되었다고 생각하면 적정한 가격이라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안드로이드 95시리즈의 예상 판매량은 최소 2억 개였다.

90년대 초부터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PC시장은 아직도 팽창 중이었다. 슬슬 내년도 시장을 예측하는 보고서들이 월가를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예상치가 최소 5천만 대 이상이었다.

선진국의 가정마다 1대의 PC는 기본으로 보유할 것이고, 기업과 정부에서도 사무용부터 고성능 PC의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서버 분야에서도 메인프레임이 대신 클라우드 시스템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수요는 더더욱 늘어났다.

이것이 곧 안드로이드 사의 매출이고, 그만큼 보안영역 업체에 지불되는 금액도 커진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일을 초래한 작자는 국가안보부에서 잘려나갔다는 점이다.

그래봐야 사라진 이익이 되돌아오진 않겠지만, 새롭게 내정될 국가안보부 국장에 대한 기대는 할 수 있다.

CIA 출신이 유력하다는데,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고르고 있다는 풍문이라니 말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사람 보는 눈은 좋으니 확실히 기대해볼만 한 일이었다.

“에휴, 가격 협상은 케빈 존슨 사장이 잘 해주겠지.”

유재원은 가격 협상에 대해선 안드로이드 사 사장인 케빈 존슨에게 완전히 일임해버릴 생각이었다.

업체들이랑 힘 겨루기할 시간에 차라리 쉬는 게 유재원에겐 훨씬 큰 이득이었다. 그래서 유재원은 망설임 없이 게임을 실행했다. 엄밀히 따지면 근무시간이지만, 혼자 있는 서재였기에 게임을 실행하는 것에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선택한 게임은 워크래프트.

정신없이 총을 쏘는 RTCW도 넘치도록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전술을 실시간으로 바꿔가며 싸우는 RTS는 머릴 쓰는 걸 좋아하는 유재원의 취향을 확실히 저격했다.

유재원과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좀 많은 모양인지, 평일이고 낮인데도 배틀넷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어 매칭이 금방 이루어졌다.

“어? 한국인이시네?”

이 대목에서 유재원은 살짝 긴장했다. 같은 플레티넘이라도 미국인과 한국인의 게임 이해도에는 제법 큰 차이가 있었다. 진영 선택과 지도 선택이 순식간에 끝나고 곧장 게임이 시작되었다.

-록타르 오가르!

게임이 시작과 함께 유재원의 컴퓨터와 연결된 스피커에서 거친 오크의 함성이 터졌다.

며칠이 지났다.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5일만에 100만 장 돌파!

-최대 동시 접속자만 30만!

-한 때 접속 장애가 일어났을 만큼 혼잡!

-혁신적인 멀티플레이가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워크래프트, RTS라는 새로운 장르를 정립!

PC게임메거진이나 게임스팟처럼 게임을 다루는 웹진에서는 ID 엔터테인먼트의 신작 게임에 대한 기사들이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의 모든 게임 웹진 사이트들이 다 그랬다. 심지어 일간 신문에도 RTCW의 판매량에 대한 기사가 언급이 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의 예상 그대로 울펜슈타인의 판매량이 전작은 물론 이전 신기록이었던 둠2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로메로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건 당연했다.

특히 이번 성적은 일렉트로닉아츠가 보유하고 있던 거대한 게임 유통망을 사용하지 않고, 안드로이드 사의 독자적인 유통망을 사용해 이뤄낸 성과였다는 게 더욱 놀라운 점이었다. 안드로이드사가 가진 유통망으로는 조그만 시골의 소매점까지 대응하는 건 불가능했다. 대신 베스트바이부터 월마트까지 미국의 대형 마트에 게임코너를 만들어 패키지를 공급한 게 대박을 터트리는 비결이 되었다.

이전까지는 마트에서 게임을 판다는 건 좀 생소한 일이었다. 베스트바이처럼 전자제품 전문 업체라면 몰라도, 월마트처럼 생필품을 대량으로 파는 마트에는 없었던 상품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날개돋힌 듯 팔려나간 덕분에 한때, 배틀넷에 대기열이 생길 정도였다. 서버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탓에 그냥 로그인 화면만 보고 기다린 게이머들 숫자도 엄청났다.

여기서 돋보이는게 대기열이었다.

기존의 멀티플레이 게임은 서버의 수용인원이 가득 차도 신규 접속자들을 계속 받았다. 덕분에 먼저 접속한 사람들까지도 게임 플레이에 지장이 있을 만큼 렉이 일어났고, 심하면 서버 자체가 터져서 먹통이 되기도 했다.

반면 RTCW는 한계 인원에 다다르면 기존 접속자들이 종료해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기능이 있었다.

회전률이 빠른 게임인지라 대기열은 금방 차감되었다. 게다가 ID 소프트웨어의 사장인 존이나 비슷한 지분을 가진 로메로 등등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클라우드 서버의 용량을 늘리는 결정을 했기에, 대기열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더욱 빨라졌다.

이렇게 웹진은 물론 커뮤니티까지 RTCW가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워크래프트의 이야기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RTCW가 기름을 부은 것처럼 화끈하게 타오르고 있다면, 워크래프트는 마치 오래가는 장작불처럼 뒷심을 발휘하는 중이다.

“RTS에 한 번 빠지면 무섭지.”

나중에 가면 전략이 고착화되어서 피지컬 싸움으로 가겠지만, 지금은 기상천외한 전략들이 쏟아지고, 그에 따른 변수도 다양한 상황이었다. 어떤 유닛이 사기인지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였고, 특정 빌드가 유행하지도 않았다.

그냥 하고싶은데로 막 해보는 상황인데, 게임 취향만 맞으면 푹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워크래프트는 RTCW의 동접자에는 크게 밀리지만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다 봤나?”

유재원은 아쉽다는 듯 모니터를 들여 보았다. 페이지에 뜬 기사 제목들은 모두 읽었다는 표시의 보라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ID톡과 이메일도 확인했다. 인터넷 뉴스 페이지와 마찬가지로 확인하지 않은 중요 톡과 메일은 없었다.

“그럼 가볼까.”

자리에서 일어난 유재원은 여권과 한국행 비행기 티켓도 챙겼다.

바로 박상권 부산그룹 사장님의 결혼식 참석을 위한 한국행이었다. 그렇지만 유재원에게 주어지는 일이 다 그렇듯, 한국에서 할 일이 제법 있었다.

한창 시범 서비스 중인 TG모바일의 현황 파악부터, 티파니 폰의 양산 수량을 결정하는 일. 이성희 의원에게 부탁했던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의 담판도 있었다. 이성희 의원이 국회에 발의한 법안 중에 몇 가지가 통과되었다. 드디어 온라인 음악 서비스를 시작할 근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밖에도 본인만이 처리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이 있었기에, 유재원의 한국행 일정은 일주일 이상으로 넉넉하게 잡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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