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63화 (363/1,007)

<-- 파워 블로거 -->

#349 파워 블로거(5)

W3C와 ID 그룹이 공동으로 만든 HTML 2.0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다이나믹이었다.

HTML 2.0이면 상상 이상으로 동적인 웹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 화면에 눈이 내리고, 글자들이 떨리고, 파일을 쉽게 업로드 하는 것을 넘어서 별도의 응용프로그램을 설치한 것 이상으로 동적인 화면을 연출할 수 있다.

원래의 흐름이었다면 인터넷 업계에선 브라우저마다 전용 테크를 띄워 놓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규격 외의 응용 프로그램을 띄웠을 것이다.

바로 플래시라는 몹쓸 물건이었다. HTML로는 필요한 기능 구연이 불가능하니 플래시라는 구멍을 이용한 것이다.

보안성과 안정성은 최악이었고, 무겁기까지 했지만, 플래시가 아니면 만들지 못할 기능이 너무 많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쓸 수 밖에 없었다.

HTML 2.0은 플래시가 없어도 다이나믹한 웹 페이지를 만들 수 있도록 만든 물건이었다. 여기에 ID 오피스 95를 개발하면서 나온 기능들이 적극 사용되었다.

다양한 글꼴, 매끄러운 폰트 렌더링, 문단과 표 정리 등등이 ID 워드프로세서 95의 엔진을 그대로 빌려왔다. HTML 2.0에서 늘어난 테크 명령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를 낼 수 있다.

과거의 플래시가 보여줬던 벡터 애니메이션이나 동영상 처리의 기능은 ID 프레젠테이션으로 대체했다. 프레젠테이션에서는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수많은 애니메이션 효과를 지원했는데, 손이 순금으로 된 능력자들은 이를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그걸 보고서 아예 정식으로 애니메이션 기능을 탑재했다.

다만 ID 프레젠테이션이 전문적인 제작 툴은 아니었기에, 그래도 부족한 점은 많다는 걸 이찬수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벡터 이미지 편집과 애니메이션을 위한 툴을 만들겠다는 계획서도 따로 올라왔다.

이처럼 HTML 2.0에는 차기 ID 오피스의 기능을 죄다 공유해서 ID 오피스에는 남는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HTML 2.0 역시 이전과 같이 완전 무료로 기업이든 개인이든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공개할 예정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ID 오피스 95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HTML 2.0으로 저장하기 하나로 웹 시대에 완벽히 대응할 수 있다. 수많은 웹에디터들이 난립 중인데, ID 오피스 하나면 끝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려가 되는 점이 하나 있긴 했다.

단독으로 웹브라우저를 만드는 회사들이나 웹에디터를 만드는 회사들이 차기 HTML 개발을 두고 말들이 좀 많았다. ID 그룹과 W3C가 밀월관계가 너무 심하다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HTML 2.0과 ID 오피스 95가 런칭되면 이들의 반응은 불보듯 뻔했다.

그렇지만 W3C의 태도는 간단했다.

W3C는 비영리단체이고, 기술지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웹 사업으로 영리활동을 하면서 온갖 불만만 계속 쏟아내면서도 기술 지원은커녕 단 1달러의 지원도 없었던 이들이 워낙 많았다.

팀 버너스리의 일침에 말문이 막힌 사람들이 많았다.물론 염치가 없는 사람들은 그래도 입을 쉬지 않았지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지금은 어느 수준까지 왔나요?”

“완성도는 거의 90%까지 왔지. 최적화와 함께 여러 가지 테스트 중이야. 자네 직원들 능력이 워낙 대단하니 아무리 늦어도 올 가을쯤엔 완성될 거야. 조만간 공개 베타테스터도 시작할거야.”

HTML 2.0은 테그로 구성된 마크업언어와 함께 렌더링 엔진이 짝을 이룬다. 이중에 핵심은 렌더링 엔진인데, 이를 구성하는 라이브러리의 호환성 체크와 함께 버그를 없애는 작업을 하는중이라는 이야기다.

유재원이 이를 지원한다면 금방 끝날 일이다. 최적화나 버그를 잡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 마음은 없었다. 모든 일을 유재원 혼자서 하는건 앞으로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뛰어난 인재를 보유했다면 믿고 써야 하는 게 용인술의 기본 아니겠는가. 게다가 거대한 프로젝트를 직원들끼리 완벽히 마무리 하면서 얻을 경험치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래요? 잘하면 안드로이드 95 시리즈 발표와 짝을 맞출 수 있겠네요?”

“오! 소문의 그 운영체제도 출시가 머지 않았나 보군!”

“예, 올해 추수감사절을 겨냥하고 있어요.”

“따로 일정을 조율한 것도 아닌데, 일정이 비슷하군! 그러면 안드로이드 발표할 때, HTML 2.0도 자네가 하지 그러나.”

“에이, 그럴 수는 없지요. 이번에도 회장님이 하셔야죠.”

수많은 기자들 앞에 나선다는 것에 거부감이 살짝 있는 팀 버너스리였다. 그도 그럴것이 최초의 HTML을 발표했을 때, 멋모르고 나섰다가 쓸데없는 유명세에 휘말려 곤란해진 경험이 워낙 강렬했던 탓이다.

그 이후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셀럽에 대해 더는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명해진다는 건 정말 아무나 못하는 일이라는 걸 실감했으니 말이다.

“회장님이 유명해질수록 W3C의 위상도 그만큼 올라가는 거예요.”

기회가 있으면 그걸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는 팀 버너스리의 모습에 유재원은 살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흠, 알겠네.”

유재원의 응원에 팀 버너스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아! 베타테스터를 조만간 하신다고 했는데, 그거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응? 어떻게 말인가?”

“제가 이번 유럽 출장길의 기록을 디지털 카메라로 남기고 있거든요. 이걸 여행기로 정리해서 웹에 공개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좀 주지 않을까요? 그때 HTML 2.0의 기술을 잔뜩 담아 보는 거죠.”

“호오! 좋은 아이디어일세. 자네가 나서주면 반응이 훨씬 빠르겠지.”

팀 버너스리도 적극 환영했다.

W3C가 비영리단체였기에 한계가 분명했다. 무엇보다 HTML에 대한 강제성이 없었다. 그래서 웹브라우저마다 독자적인 테그를 만들어 쓰는것도 막을 수가 없었다. HTML 2.0이 잘 나온다더라도 업계나 사용자가 외면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물론 PC진영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자랑하는 ID 그룹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니 망하진 않겠지만, 팀 버너스리는 사용자와 개발자의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HTML 2.0이 표준이 되는 걸 바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이 먼저 나서준다면 금상첨화다.

유재원의 일상은 사람들이 궁금해 마지않는 가십거리가 아니던가. 이걸 가지고서 HTML 2.0의 신기술을 선전한다면 언뜻 생각해봐도 괜찮은 반응이 나올 것 같았다.

“음, 그리고.”

본론을 잘 마친 유재원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김대석이 꾸러미 하나를 바로 유재원에게 넘겨줬다.

“오다가 생각이 나서 샀어요.”

유재원은 그걸 받아서 바로 팀 버너스리에게 전해줬다.

“이게 뭔가?”

바쉐론 콘스탄틴의 오버시즈라는 모델이다. 제네바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팀 버너스리도 십자가 로고를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튀어 나오자 깜짝 놀라서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손목 좀 빌릴게요.”

유재원은 팀 버너스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움직여 그의 손목에 시계를 채웠다. 그 움직임은 무척이나 기민했다.

“이야,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잘 어울리시네요.”

빈말이 아니라, 양복 차림의 팀 버너스리와 은색의 시계는 한 몸처럼 잘 어울렸다.

사실 유재원은 팀 버너스리에게 가진 존경심을 표현하는 데엔 시계 하나로는 부족했다. 그렇기에 팀 버너스리와의 미팅을 마치면 곧바로 CERN 본부에 들려 후원금을 낼 계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향후 ID 그룹의 비즈니스는 팀 버너스리와 CERN이 완전 공개해버린 웹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서 창출될 천문학적인 수익을 생각하면 시계 하나로 끝내는건 어불성설이니 말이다.

며칠 후.

유재원은 모든 유럽 스케줄을 마치고 시애틀의 레드먼드 안드로이드 사로 복귀했다. 유럽 출장길은 완벽히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비서실에서 잡아준 숙소도 완벽했고, 유럽 입자 물리연구소에 들려 팀 버너스리를 만나는 것도 좋았다. 물론 제일 좋았던 건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받은 것이었다. 필즈상을 받음으로서 거머쥔 명예도 상당했다. 여기에 덤으로 한국의 병무청에서 필즈상 수상으로 병역이 면제 되었다는 인증까지 해주었다.

다만 완벽한 면제는 아니었고, 4주간 신병교육대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물론 그래봐야 2년 6개월짜리 병역과는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전생에 한번 다녀봤던 경험이 고스란히 있었으니, 무섭지도 않았다.

다만 예상외의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는게 살짝 흠이긴 했다. 그래도 본인이 가진 재산의 규모에 비해서는 부담 되는 액수는 아니었기에,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선물을 받은 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돈을 쓴 것 이상으로 보람을 얻었다.

-ID 그룹의 통 큰 근속 선물!

-5년 근속자 선물로 고급시계와 황금 열쇠!

심지어 그 소식이 제법 크게 기사화되기도 했다. 다만 급하게 써서 내보낸 모양인지, 어떤 기사는 시계와 황금 열쇠를 동시에 주는것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시계는 프로그래머나 연구원, 엔지니어 같이 기업의 핵심 개발 직군에 있는 이들에게 주는 것이고, 관리직이나 생산직에는 10돈짜리 황금 열쇠인데 말이다.

유재원은 곧장 정정 보도를 요청했고, 직원들에게도 공지를 해서 착각해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착각이라도 두개를 준다고 알고 있다가 하나만 주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말이다. 사실 둘 중 하나만 받아도 굉장한 포상인데 말이다.

“부모님도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했고, 티파니도 신학기를 준비한다니, 이제 나도 내 일을 해야지.”

오랜만에 본인의 컴퓨터 앞에 앉은 유재원은 가방을 뒤적였다.

곧이어 유재원의 손에 들려 나온건 유럽 출장 중에 한시도 떼놓지 않았던 소니의 디지털 카메라 F101이었다.

유럽 일정을 시작하기 전, 여분의 메모리스틱까지도 가득 채워 오겠다던 유재원의 각오는 100% 완수 되었다. 얼마나 열심히 찍었으면 따로 준비했던 5개의 스틱까지도 사진으로 가득 채워졌다.

화질 설정에서 최고 화질로 선택했기에 파일의 용량이 좀 크긴 해도, 그렇게 찍은 사진은 수백장이 넘었다.

유재원은 일단 사진 파일을 백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드 디스크에다도 옮기고, 클라우드 서버에도 올려두면 완벽하지.”

90년대쯤에 생산된 전자제품의 내구성은 21세기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기판도 두꺼웠고, 사용된 IC칩의 공정도 단순해서 엄청난 충격을 주는 식의 고장이 아니면 평생을 간다. 하지만 용량과 속도가 느려서 신제품이 나오면 뒷방으로 순식간에 밀려난다. 나중에 찾아보려면 세월의 먼지가 쌓인 창고를 뒤져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는데, 클라우드 서버에 올려놓으면 온라인 상태에서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곧이어 유재원은 회사의 전산망에 접속해 HTML 2.0 베타 버전을 지원하는 개발자용 ID웹브라우저와 ID 오피스 95 베타 버전을 받았다.

웹사이트용 편집은 ID 오피스 95로 하고, ID웹브라우저 베타 버전으로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서 업로드 하면 끝이다.

“어, 그런데 어디에다 올리지?”

준비물을 따져 보던 유재원은 마지막에 이르러 브레이크가 걸렸다.

여행기를 올릴만한 서비스가 바로 떠오르지 않았던 탓이다. 요즘 유행하는 개인 홈페이지의 경우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웹호스팅 업체에서 제공하는 서버에 본인이 직접 A부터 Z까지 모조리 만드는 것과 넥스트컴이나 라이코스 같은 대형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홈페이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전자의 경우엔 자유도가 100점이지만, 편의성은 0점이다. 후자는 반대로 편의성은 높은데, 자기가 하고 싶은걸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여행기는 블로그에 올리는 게 딱인데.”

유재원은 혹시나 하고 넥스트컴의 검색창에 블로그(blog)라는 키워드를 넣고 엔터키를 쳐 보았다.

“어라?”

생각 이상으로 검색 결과물의 숫자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은 있었지만, WWW가 없었고, 유즈넷과 같은 서비스가 대세일 때였던 1980년대 말부터 블로그의 개념이 생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아, 지금은 설치형 블로그만 있는 모양이네.”

검색 결과를 자세히 보니 유재원이 아는 그런 현대식 블로그는 아니었다. 트랙백이나 링크, RSS 피드백, 해시 태그 등의 기능 없이 단순히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가득 나왔다.

“블로그까지 넥스트컴 안에다 또 만드는건 좀 그렇지?”

넥스트컴 이후로 ID 그룹이 따로 런칭한 웹서비스는 딱히 생각나는게 없다. 사내 벤처로 P마켓을 준비중에 있지만, 웹툰이나 웹게임과 같은 신종 서비스를 기획해도 넥스트컴에 탑재하는 형식이었던 탓이다.

이는 넥스트컴을 세계 1등의 포털 사이트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의 가입자를 자랑하는 넥스트컴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포털 사이트였다.

“그러면 전용 사이트 하나 만들어 볼까?”

여행기 하나 올린다고 블로그 사이트를 만드는건 일을 너무 벌이는 것 같지만, 차후 생성될 SNS 환경을 감안하면 블로그 사이트를 미리 만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조만간 나올 HTML 2.0 기능을 적극 사용해 다이나믹한 디자인을 보여준다면 단번에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이 정리되자 유재원은 곧장 행동으로 실행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