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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파워 블로거(4)
“바젤에서는 매년 3월 말에 세계에서 제일 큰 시계 박람회가 열린답니다. 또한, 귀블린이라는 대형 시계 부티크도 있는데, 거의 모든 스위스 시계 브랜드를 한 자리에서 쇼핑할 수 있습니다.”
유재원과 가족들이 바젤에 입성하자 김대석이 알고 있던 정보들을 줄줄이 소개해 주었다. 역시 비서로서 몇 년을 근무한 경험치는 단순 누적만 되지 않고 고스란히 레벨업을 하는 데 소모되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최강욱이 딱히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김대석의 수행 능력은 눈부시게 높아졌으니 말이다.
“모처럼 스위스에 왔는데 시계를 안사고 가면 섭섭하죠.”
베른에 숙소를 푼 유재원과 가족들은 바로 김대석이 말한 귀블린이란 시계 종합 쇼핑몰로 사냥을 나섰다.
“와!”
귀블린에 입성하자 유재원 부모님은 티파니를 데리고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티파니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유재원의 부모님이 아무래도 이것저것 선물을 해주실 모양이다. 티파니도 이번 여행 목적이 유재원과의 추억 쌓기 보다는 부모님 공략이었던 모양인지, 양팔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끼고 신나게 따라 나섰다.
덕분에 유재원은 귀블린 소속의 시계딜러와 1:1로 마주 볼 수 있었다.
“유 회장님, 귀블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놀랍게도 시계 딜러는 유재원을 알아보았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했다.
사람들이 유재원을 알아보는 건 이제 익숙해진 일이었다. 마치 예전 MS의 게이츠 회장이 실리콘밸리의 심벌로서 누구나 알아봤던 것처럼, 이제는 유재원이 그 포지션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다방면에 걸쳐 활약한 덕에 유재원의 유명세는 세계적 팝스타 이상이었다.
그보다 더 신기한 건 바로 자연스럽게 나온 한국어였다.
“설마 한국분이세요?”
“예, 와치딜러 김인하입니다.”
“우와! 진짜 한국인이세요?”
“그렇습니다. 어제 필즈상 수상식 잘 봤습니다. 제가 받은 것처럼 뿌듯하더군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김인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로 유재원을 응대했다. 그 모습이 참 신기한 유재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계 부티크에서 고용하는 딜러들은 스위스를 찾는 관광객에 비례한다.
관광객 비율이 높은 나라의 말을 유창하게 하는 딜러를 배치하는 게 상식이었다. 한국의 경우엔 관광 자율화가 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나라였다. 덕분에 스위스를 찾는 관광객의 숫자도 그다지 없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이곳에서 한국인 딜러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김인하는 자기만의 인생을 사는 신세대 젊은이였다. 시계가 좋아서 스위스로 여행을 왔다가, 귀블린이란 쇼핑몰에서 한국의 여행자유화조치를 보고 한국인 인턴을 모집한다는 소리에 바로 지원했고, 덜컥 합격했단다.
그날로 김인하의 관광비자는 귀블린의 보증을 통해 워킹비자로 바뀌었고 6개월 동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번 달이 마지막 6개월째라는데, 정식 직원이 된다면 취업비자가 나오면서 장기 체류할 수 있다. 결정권은 귀블리 측에게 있는데 애매하다 싶으면 워킹비자를 연장하거나, 가망이 없다고 보이면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매우 불안정한 미래인데도, 김인하의 얼굴에서는 한 점의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반면 김인하의 실상은 그렇게 긍정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여행자유화가 이뤄졌다고 해도 물가가 비싼 스위스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탓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와야 김인하가 딜러로 나설 수 있는데, 그 숫자 자체가 적으니 매출도 적었다. 동기 인턴 전체를 놓고 보면 압도적 꼴지였다.
“찾으시는 시계가 있습니까?”
김인하의 물음에 유재원의 머릿속이 살짝 고민이 생겼다.
유재원의 원래 목적은 마음을 공유하는 지인들, 이를테면 레밍턴이나 최강욱에게 줄 선물용 시계 서너 개 정도만 구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본인의 꿈을 위해 불모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김인하를 보니 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계 딜러를 도와주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매출을 빵빵하게 올려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딜러에게 필요한 능력은 오로지 딱 하나, 영업이었으니 말이다.
“잠깐만요.”
유재원은 타임을 부르고 뒤에서 대기 중이던 김대석을 불렀다. 그러자 센스있는 김인하는 반대로 살짝 멀어졌다.
“저기, 우리 회사에 5년 이상 근속하신 분들이 몇이나 될까요?”
생각해 보니 ID 그룹의 역사는 만으로 5년째가 된 것 같다. 그러면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이들에게 기념할만한 뭔가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기업들은 보통 10년차부터 근속자들을 챙긴다 하는데, 인력 순환이 빠른 IT기업의 특성상 5년째부터 챙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딜러님, 국제전화 한 통만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김대석은 그런 데이터를 따로 추려본 적이 없기에, 전화를 찾았다. 그리곤 곧바로 본사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 모든 사원의 이력은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온라인 상태로 관리되는 ID 그룹이었기에, 김대석의 전화를 받은 비서실은 바로 답을 주었다.
“62명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42명, 여자가 20명입니다.”
“그거 밖에 안 돼요?”
의외로 숫자가 작았다.
ID 테크놀로지를 시작하면서 바로 수십 명을 고용했고, 이후 회사가 성장하면서 그 숫자는 빠르게 늘었다. 현 고용인원은 거의 1만 명에 육박하는데, 그중에 5년 근속자는 100명도 안 된다고 하니, 살짝 충격이었다.
동시에 62명밖에 안 된다고 하니, 유재원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근속자들 선물용 시계 브랜드의 로고도 바뀌었다.
“딜러님!”
유재원은 바로 김인하를 불러 특정 모델의 재고량을 물었다.
사실 5년 근속직원 선물로 롤렉스는 좀 과다하긴 했다. 앞으로 꾸준히 근속자 선물을 롤렉스로 준다고 하면 회장님이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거다. 하지만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본 유재원은 이미 견적을 내렸다.
아직은 롤렉스 브랜드에 거품이 끼기 전이라서 그렇게 부담이 되는 가격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직률이 높은 IT분야 아니던가. 능력 좋은 직원들을 뽑는 것도 일이지만, 그 직원들이 이직하는 것을 막는 것도 일이었다.
능력 좋은 직원이 빠져 나가면 단순히 ?1이 되는 게 아니라, 여러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기면서 생기는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상식에서 보았을 때 겨우 5년차 근속선물로는 롤렉스가 좀 과다해도 유재원의 눈높이에서 봤을 땐 충분히 일리가 있는 품목인 것이다.
다만 이직률이 낮은 관리직과 생산직의 경우엔 이 방식이 맞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면 해당 직군은 오메가나 브라이트링으로 하거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랑하고 환금성도 좋은 황금열쇠 같은 걸로 대신하면 적당할 것 같다.
“여기 서브마리너 데이트 스틸 모델 재고가 얼마나 되나요?”
“예? 서브마리너 재고라니요?”
유재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귀를 기울인 김인하는 순간 헉 하고 놀랐다.
와치딜러 인턴로 일한 기간이 비록 짧기는 했다. 그래도 시계 브랜드나 라인업에 대한 문의를 하는 손님은 있어도, 재고를 물어보는 손님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으니 말이다.
“62개를 살 거니까요. 남자거 42개, 여자거 20개.”
“헉! 62개나요!”
“네, 우리 그룹 5년차 근속하신 직원들께 선물용으로 사려고요.”
그런 의미에서 서브마리너라는 모델은 근속자 선물로 딱 알맞았다. 수면 아래에서 일하는 잠수부,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해준 분들과 싱크로가 딱 맞는다.
반면 김인하 입장에선 헛바람 먹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의 시계브랜드 중에서 롤렉스는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였다. 대중적이라는 건 인지도가 세계적이라는 의미이지 가격이 저렴하다는 건 아니었다. 유재원이 주문한 서브마리너 데이트 스틸의 경우엔 한국 돈으로 500만 원 후반 정도의 가격을 형성 중이었다.
그런 모델을 한 번에 62개 주문했으니, 금액으로 치면 한 번에 3억 원 어치를 지른 것이다. 하지만 아직 유재원의 주문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지인께 선물용으로 구매하고픈 것들이 있어요. 그건 따로 적어왔어요.”
그러면서 유재원은 몇 개의 모델을 말했다.
시계 업계에서 언제나 최고를 놓치지 않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이름과 특정 모델이 줄줄히 열거 되었다. 선물을 받을 분들의 성격과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를 고려해서 모델을 선정했는데, 파텍 필립부터 바쉐론까지 스위스가 자랑하는 명품 시계 제작회사의 이름이 가득했다. 그렇게 나온 모델들의 가격을 합산 해 보니 3억 원이 쉽게 넘었다.
원래 비싼 시계만 나오는 하이엔드 브랜드였다. 유재원은 그런 브랜드 모델 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 혹은 한정판을 골랐기에 순식간에 무지막지한 금액이 찍힌 것이다.
이날 김인하는 매출 신기록을 찍었다.
한국손님이 얼마 없긴 해도 3개월 동안 열심히 영업했는데, 유재원 혼자서 팔아준 액수가 그보다 몇 배는 많은 금액이었다.
다음 달 김인하 딜러의 인센티브도 역대 최대를 찍었다. 와치 딜러들의 수익은 매출액에 비례한다. 김인하는 인턴인지라 10%를 약속 받았는데, 수 억 단위 매출을 찍었으니 수천 만 단위의 인센티브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귀블린 역시 수십 년의 역사에서 하루 기준 최고의 매출액을 찍었다. 유재원만 구매력을 뿜어낸 게 아니라, 유재원의 부모님도 주머니를 아낌없이 열었기 때문이다.
두 분이서 사용할 제품은 물론이고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줄 선물도 있다. 여기에 티파니를 위해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다 보니 지출이 제법 컸다.
놀라운 점은 김인하에게 터진 대박의 행운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막대한 매출을 올린 김인하는 인턴 딱지를 떼고 정식 딜러가 되는 게 당연했다. 이후 공개된 유재원의 쇼핑 리스트는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살짝만 움직여도 뉴스가 되는 인물인데, 귀블린에서 사고 한 번 쳤으니, 사람들이 좋아할 뉴스였다. 일차적으로는 5년 근속으로 롤렉스를 받는 ID 그룹 직원들을 부러워했다. 롤렉스는 큰돈 쓰지 않고 그럴 듯한 광고 한 편을 튼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얻었다. 그리고 나서 스위스로 시계 쇼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역시 모든 물건이 그렇듯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생산지에서 사는 게 훨씬 쌌다. 몇 개만 사도 비싼 유럽행 비행기표값이 빠질 정도였다. 덕분에 스위스를 찾는 한국사람이 많아졌다. 그렇게 스위스에 온 사람들은 기왕이면 귀블리를 찾았다.
유명인이 다녀간 곳을 일부러 찾아가 발도장을 찍는 게 한국 사람의 특징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귀블리를 찾는 한국 사람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김인하에게로 구매력 넘치는 손님들이 몰렸다.
갑작스러운 행운을 맞으면 불행이 될 수도 있지만, 김인하의 경우엔 행운을 거머쥘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심지어 행운을 안겨다 준 유재원에 대해 고마움도 아는 사람이었다. AS처리에도 최선을 다해 주었고, 유재원이 필요한 모델을 찾으면 자기가 했던 일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찾아주었다.
유재원도 그런 김인하를 기억하면서 깊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모두에게 좋게 된 결말이었다.
다음 날.
시끌벅적한 쇼핑을 마친 유재원과 가족들은 제네바로 출발했다. 여행이 아닌 유재원의 공적 일을 위한 이동이었다.
바로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방문이다.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유재원이 거기서 만날 사람은 딱 한 명 팀 버너스리였다. 공적인 업무였기에 부모님과 티파니는 제네바에서 관광을 하기로 했고, 유재원만 따로 나서서 이동했다.
“아이고, 누추한 곳에 귀한 필즈상 위너께서 왕림하셨습니까.”
본인의 사무실이 있는 연구동 앞에서 유재원을 맞이한 팀 버너스리는 과장된 표정으로 환대했다.
“흐흐, 이런 거 처음 보시죠? 예는 갖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재원도 유쾌하게 받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세른에 근무하는 연구원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수두룩하다. 여기에 필즈상 수상자 하나 온다고 이렇게 요란스럽게 법석을 떨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세른이서 유재원이 방문하는 데 마중 나온 것은 팀 버너스리와 그의 직원 몇이 전부였다.
“그동안 잘 계셨어요?”
사무실로 안내된 유재원은 팀 버너스리와 마주 앉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라 대화의 시작은 안부를 물어보았다.
“자네 덕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
동시에 안부가 곧 본론이기도 했다.
팀 버너스리는 WWW의 표준을 제정하는 컨소시엄의 회장으로서 HTML의 차기 버전을 제작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단순히 몇 가지 기능만 추가하려고 했는데, 자네 덕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업데이트가 됬어. 2.0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야.”
유재원이 이번 스위스 여행 중 세른의 팀 버너스리를 찾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팀 버너스리가 WWW와 함께 발표한 HTML은 웹의 표준이 되었다. 컴파일 없이 마크업 언어 방식으로 만들어서 익히기도 쉬웠다. 몇 가지 테그를 조합하면 그럴 듯한 홈페이지가 뚝딱 만들어지고, PC는 물론 비 안드로이드 체제에서도 똑같은 화면을 볼 수 있다는 건 매우 큰 장점이었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참 강력했는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부족함을 느끼는 개발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파일의 업로드나 도표, 게시판 관리, 이미지 처리 등등 현재의 HTML언어만으로는 지원하지 못하는 기능이 많아서 PHP같은 서버사이드 스크립트 언어를 쓰는 일이 흔해졌다. 서버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것만 HTML로 처리하는 것이다.
심지어 웹브라우저 개발사가 독자적인 스크립트를 만드는 경우도 흔했다. 웹 화면에 눈이 내린다거나, 특별한 스크롤효과를 낸다거나, 정교한 글꼴 효과를 내는 비표준 기능을 만들고는, 자기들의 웹브라우저에서만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페이지를 표준을 잘 지키는 ID웹브라우저로 접속하면 화면이 깨져서 보이기도 했다.
매우 좋지 않은 현상이다.
그렇기에 유재원과 팀 버너스리는 개발자나 사용자의 요구를 십분 받아들여 파워풀한 차세대 HTML을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작년 겨울쯤의 일이었다.
“우리 직원들 능력은 어때요?”
“최고! 웬만한 일은 ID 오피스 팀이 다 했다고 봐야지. 이찬수 부장에게 고맙다고 전해주게.”
팀 버너스리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이제껏 존재감이 없었던 ID 오피스 팀과 팀 버너스리가 이끄는 W3C가 함께 작업 중이었다. ID 오피스 95 개발과 함께 HTML 2.0까지도 도맡은 것이다.
커다란 일을 두 개나 맡은 것 같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일이었다. ID 오피스 95의 가장 큰 신기능은 인터넷 지원이었으니 말이다. 안드로이드 개발과 ID 엔터테인먼트 관리에 바빴던 유재원은 개발 방향만 정해주고 이찬수에게 전권을 완전 위임했다.
팀 버너스리의 반응을 보니 기가 막힌 물건이 나온 게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