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56화 (35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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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안드로이드 95(6)

며칠 후.

많은 기자들이 레드먼드의 안드로이드 사 본사를 찾았다. 케빈 존슨이 유재원의 지시를 받아서 발표한 기자 회견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기자단이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IT 분야의 기자들, 그리고 투자 관련 뉴스를 전하는 경제지들 소속이 많았다.

또한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류도 이번에 포함되었는데, 바로 웹진 소속의 기자들이었다. 웹진은 이름 그대로 인터넷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웹에 매거진의 진을 붙여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인터넷 잡지라는 뜻으로 요즘 크게 늘어나고 있는 분야였다. 처음엔 종이 잡지를 인터넷용으로 내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종이매체 발행 없이 웹용으로만 기사를 만드는 웹진도 생겨나는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종이신문이나 방송국 등에 속한 기자들과 웹진 기자들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엄청난 수준의 정규 교육을 받고 겨우 기자가 된 전통적인 기자들과 별다른 조건 없이 그냥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웹진 기자들을 같은 기자라고 싸잡아 묶어서 취급하는 건 기본이고, 21세기만 되면 종이 매체가 사라질 거라고 떠들고 있으니, 종이 신문 기자들의 기분이 나쁜 건 당연했다.

이러한 이유로 두 부류가 모여 있으면 은근한 신경전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안이 사안인지라 감정싸움을 할 틈이 없었다.

연방정부의 공문 하나로 날아간 주가총액이 37억5천만 달러였다. 여기에 차기 안드로이드의 신제품 출시 일정에 차질이 생겨 수많은 IT기업들의 주가도 폭락한 걸 모두 포함하면 손실액수는 훨씬 커진다.

연방정부의 졸속조치라는 이야기, 안보를 위해서라면 감수해야 할 일이라는 의견이 팽배한 가운데, 유재원이 직접 향후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였으니, 기자들 사이의 기세 싸움을 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준비가 다 됐다고 합니다.”

“그래요?”

김대석의 이야기에 유재원은 작업 중이던 프로젝트를 모두 저장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알파팀의 눈이 모두 유재원에게로 쏠렸다. 지금 있던 곳은 알파팀 사무실에 마련된 유재원의 자리였던 탓이다.

중대 발표를 코앞에 두고 있었음에도 평소처럼 프로그래밍에 매진하고 있었던 유재원을 보고 알파팀원들은 응원이라도 해야 하나 어정쩡한 얼굴들이었다. 유재원은 그런 알파팀에게 그냥 제 일 하라는 듯 팔을 저어주었다.

부담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알파팀 사무실에서 나온 유재원이 김대석을 따라 이동한 기자회견장은 레드먼드 본사의 대강당이었다. 수백 명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있고, 화질 좋은 커다란 프로젝터도 있었고, 무대 장치도 완벽했다.

그런 대강당에 유재원이 들어서자,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플래시를 신호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단상에 오른 유재원은 일단 여기까지 찾아와 주신 기자들에게 꾸뻑 인사를 했고, 본인의 입장문을 발표한 후에, 질의응답을 받기로 했다.

“이번 연방정부의 조치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인터넷이란 신대륙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해 나온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감이니 뭐니 하는 외교적 수사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본심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유재원이다. 외교적인 수사를 쓰면 민감한 상대와의 대화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듣기 좋게 돌려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의미전달이 확실하지 않고,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전달해주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애매모호한 표현은 모두 빼고, 진심을 담아 입장문을 작성했다. 그렇게 작성된 입장문은 당연히 법무실장 앨런이 검토했고 진심으로 걱정했다.

정부와 충돌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의견이다. 유재원은 앨런의 우려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강행을 선택했다. 연방 정부, 정확하게는 미국 국가안보부의 헛발질이 너무도 심했고, 이 때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나중에 휘둘릴 일이 더 많아진다는 의견이었다.

덕분에 유재원의 입장문은 원문에서 몇 가지 과격한 단어를 좀 고치는 수준으로 법무팀의 검토를 마쳤다.

“인터넷이란 서로 연결된 시스템의 집합입니다. 그렇기에 하나의 시스템이 뚫리게 되면 그 여파는 전염됩니다. 특히 요즘은 연결된 속도가 광대역으로 확장된 지금은 그 전염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질 겁니다.”

유재원의 발표와 함께 보안영역의 암호화 수준 문제는 곧 안드로이드 시스템의 보안과도 매우 관련이 있다는 내용의 ID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스크린에 비췄다. 그러자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 자료를 카메라에 담았다.

어떠한 발표든 시청각 자료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유재원의 트레이드마크였고, 요즘은 많은 곳에서 그대로 써먹고 있었다, 그래도 오리지널인 유재원이 준비하는 자료 수준만큼은 아니었다.

곧장 자료사진으로 쓸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다들 대기 중이었다.

“그렇기에 차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는 한층 강화된 보안 시스템을 탑재하기로 했고, 그것이 보안영역입니다. 사용자의 편의성은 한껏 높이면서도 보안 능력은 유지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사만의 솔루션입니다.”

유재원은 연방정부에 대한 성토와 함께 자신의 광을 파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니다. 보안영역 기술은 어디 가서도 자랑할 만한 기술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연방정부가 강제하는 DES 암호기술입니다. 1975년 IBM에서 개발된 암호체계인 DES는 강력했습니다. 당시에는 말이지요.”

-그러면 지금은 문제라는 거군요?

기자단 사이의 성질 급한 누군가가 지목도 받지 않고 손을 올리며 질문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당연하게도 따가운 시선이었다. 특히나 그 기자는 웹진 소속인지라 그렇지 않아도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더더욱 안 좋아졌다.

그렇지만 돌발 질문을 던진 사람은 그런 압박적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재원을 직시했다.

“그렇습니다. 1975년의 컴퓨터 성능과 요즘 컴퓨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진보가 있습니다.”

유재원의 말이 이어지자 슬라이드도 바뀌었다.

며칠 전 정식 출시된 인텔 펜티엄III과 AMD 애슬론의 성능표였다. 기준은 1976년 출시된 8086이었으니 그 성능의 차이는 수천 배에 이르렀다. 막대 그래프를 보면 8086은 선 하나였는데, 펜티엄III나 애슬론은 왼쪽의 기준점에서 오른쪽 끝까지 길게 그어져 있었다.

재미있는건 펜티엄과 애슬론 사이에 있는 성능 격차가 슬라이드 화면에도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성능은 인텔이 더 높았다. 대신 AMD는 가격이 저렴했다.

“저의 자체분석 결과 최근 발매된 펜티엄III나 AMD 애슬론이 탑재된 컴퓨터를 이용해 DES를 뚫는다고 한다면, 어떠한 암호라도 3년 안에 해독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기자단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3년이나 걸리니 DES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이었다. 그 모습이 이 사안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다. 괜찮다는 사람은 암호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사람이었고, 화들짝 놀라는 사람은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사람이었다.

양해를 구하지 않고 질문을 던진 웹진의 한 기자는 후자였다.

“펜티엄III이나 애슬론이나 모두 PC에 들어가는 컴퓨터입니다. 즉, 오늘날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로 DES를 해독하는 데 3년이면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유재원의 부연설명이 있었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기자들이 제법 있었다. 3년이면 충분히 긴 시간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요즘 제가 연구하는게 분산처리입니다. 우리 ID 테크놀로지가 자랑하는 클라우드 서버 시스템이 바로 그 대표적인 상품이지요. 여러 대의 PC를 묶는 것이, 슈퍼컴퓨터나 메인프레임과 같은 대형컴퓨터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보다 강력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DES해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까지 유재원이 설명을 해주고서야 아 하며 입을 떡 벌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PC 1대에 3년, 그러면 2대를 동원하면 1년 반입니다. 4대를 동원하면 9개월, 8대면 4개월, 16대면 2개월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1024대를 동원한다면 며칠이 걸릴까요?”

느닷없는 퀴즈에 기자단이 당황했다.

-하루!

다행히 암산이 빠른 사람이 있었는지 몇 초 후에 답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예, 정답입니다. 정확하게는 하루 하고도 몇 십 분이 더 들긴 한데, 실제로는 하루 안에 끝날 겁니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유재원의 입장문을 이해하지 못한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컴퓨터 1천24대만 동원하면 DES로 만들어진 암호는 간단히 해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이번에 공문을 보내신 연방정부 사람들이라면 혹시 제 말이 못 미더워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시연을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리면 저희 ID 테크놀로지가 운영하는 클라우드 시스템은 25,600개의 PC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 알아두셨으면 좋겠네요.”

헉 소리가 절로 나는 엄포였다.

동시에 유재원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다른 사업가가 하는 소리였다면, 진위여부를 가린다고 더 큰 논란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유재원은 맨손으로 ID 그룹을 만든 존재였다.

특히 AES 암호화를 앞세워 시작한 시큐리티 챌린지를 통해 탁월한 보안성을 입증했고, 그것이 지금의 ID 그룹을 있게 만든 발판이었다.

기자들은 25,600대의 클라우드 서버가 모두 동원해 DES 암호를 푸는 시간을 생각해보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반면 AES는 어떻죠? 그 견고함은 두 번의 시큐리티 챌린지를 통해 증명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 시간에도 수많은 나라들이 슈퍼컴퓨터를 통해 AES를 공격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성공 사례가 보고된 건 한 번도 없습니다.”

유재원의 입장문 발표는 이것으로 끝났다. 그러자 기자들 사이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DES의 취약한 점을 못 박은 후에, AES에 대한 장점을 말했다. 모두가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다.

더불어 당장 DES를 해제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려는데, 입장문의 마무리가 기자들의 예상 밖이었던 탓이다.

연방정부에 방침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할 줄 알았는데, 그러한 말은 한 글자도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 이대로 기자회견이 끝났다면 난리가 났을 테지만, ID 그룹은 언제나 기자회견의 필수 요소인 질의응답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부터 기자님들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김대석의 말에 기자들이 다들 손을 들었다.

유재원은 그중에서 제일 앞줄에 앉은 한 기자를 선택했다. 사전협의 없이 그냥 유재원의 마음에 가는 사람을 골랐다. 그렇다고 완전 멋대로 선택한 건 아니고 일찍 온 사람을 배려하고, 다양한 언론사를 선택하겠다는 원칙이 있었다.

-LA타임즈의 도로시 해밀턴입니다. 입장문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안드로이드 사의 결정은 무엇인가요? 회장님의 입장문을 보면 DES의 수명은 끝난 것 같은데, 정부의 규정을 무시하겠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죠. 미국에 자리를 두고 있는 만큼 미국의 정책을 따를 겁니다.”

-해외판에는 DES를 탑재하겠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러면 DES의 취약점에 대해 설명하신 이유는 뭔가요?

기자 당 하나의 질문만 하도록 해야 하는데, 도로시 해밀턴이란 기자는 마이크를 넘기지 않고 또 이어서 질문했다.

“그럴 수는 없죠. DES의 유효성은 이미 끝난 상태이니까요. 이걸 억지로 채용해서 다른 나라의 사용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생각은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혼란이 왔다. 미국 정부의 정책을 지키면서 DES는 쓰지 않겠다는 유재원의 말이 도통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안을 수용하면 DES를 써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이런 혼란을 자아낸 것이다.

“북미버전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안드로이드에는 전문 보안업체의 암호 체계를 탑재할 겁니다. 간단하죠?”

유재원의 답변과 함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보안영역을 서드파티 업체에 개방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슬라이드가 스크린에 크게 걸렸다.

“연방정부의 공문을 받은 날,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AES가 현재 가장 안전한 암호체계라고 해도, 안드로이드 사 혼자서 전 세계 PC사용자의 보안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부담감이 몰려오더군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이미 세계는 능력을 인정 받은 수준급의 보안 업체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노하우와 지혜를 빌리면 이 막대한 부담을 나눠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AES는 탄탄하다.

그렇지만 돌발 변수라는 건 늘 있는 법이다. 안드로이드 사 혼자서 전 세계의 PC보안을 담당하면 무슨 사고가 생길지 모른다. 만에 하나 소프트웨어 회사라면 피할 수 없는 소스코드 유출사고라도 생기면 바로 탈이 난다.

그렇기에 보안 분야를 개방하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약간의 수익률 하락이 생기겠지만, 전 세계 해커들의 집중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만에 하나 사고가 생기더라도 책임이 분산되어 나눠 지을 수 있다.

기자들은 그제야 유재원이 입장문에 연방정부의 정책에 대해 뭔가 의견을 담지 않은 이유에 대해 100% 이해했다. 연방정부의 방침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보안성은 지키는 방법이 있으니 무슨 의견을 제시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연방정부 발표 이후 하락 중이던 안드로이드 사 주가가 상승 반전을 이뤄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반응이 온 건 시만텍이나 맥아피 같은 IT보안업체였다.

이들 업체의 주가 상승은 안드로이드 주가의 상승보다 더 큰 폭을 보였다. 주식의 덩치가 작긴 해도 엄청난 수준의 상승이었다. 반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이 있었다.

미국 국가 안보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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