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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안드로이드 95(4)
다음 날, 아침.
“재원아, 회사는 문제없는 거지?”
유재원의 아버지 유봉만이 조심스레 다가와서 물으셨다. KBS의 아침 뉴스에 간밤 나스닥 지수의 폭락과 폭락을 이끈 안드로이드 사에 대한 소식이 대대적으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아침 뉴스가 과장해서 보도한 것도 아니다.
안드로이드의 주가는 전일 대비 ?10%를 찍었다. 액수로 치면 주당 3.75 달러 정도가 깎였다. 이를 시가총액으로 계산하면 37억5천만 달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그럼요. 부정적인 소식 하나 때문에 부화뇌동하는 거예요. 저 같으면 이 때 우리 회사 주식을 막 사들일 텐데, 주가가 더 떨어질까봐 파는 사람이 많아서 하락이 가속화된 거예요.”
케빈 존슨 사장의 연락도 받고, 진짜로 날아온 연방정부 공문도 보면서 유재원은 이번 사안에 대해 고민을 좀 했다.
유재원의 손이 닿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좀 해본 결과, 이번 일은 미국의 수뇌부가 벌인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단정에 있어 대전제는 클린턴 대통령이나 앨런 부통령, 국토안보부, 국방부 장관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들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유재원이 클린턴 대통령과 앨런 부통령에게 직접 전화했고, 미국 국토안보부와 국방부에 문의한 건 레밍턴과 케빈 존슨 등의 그룹 임원이었다. 국토안보부와 국방부 장관은 유재원과 인맥이 없었는데, 임원들 중에 학연이나 지연 등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이 있었다.
덕분에 이번 사건의 원인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연방정부 명의로 날아온 공문의 실제 작성자도 어느 정도 예측했다. 역시나 문제의 국가안보부(NSA)가 맞았다. 사무엘 아서라는 국장급 인물이 강하게 주장해 윗선들을 통과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문이 안드로이드 사까지 날아왔다.
유재원은 두 번의 시큐리티 챌린지로 본의 아니게 국가안보부를 물 먹인 일이 있었다. 하나는 ID 오피스의 암호화 시스템이였고, 다음에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네트워크 시스템이었다. 두 가지를 뚫어 보라는 게 시큐리티 챌린지의 요체였다.
숨겨진 이야기지만 당시 NSA도 전력을 다해 참가했다. 그것도 1차, 2차 모두 말이다.
상당한 금액의 예산을 받는 연방정부의 힘쎈 부처이긴 해도, 1억 달러라는 상금은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더구나 시큐리티 챌린지에 참가 제한은 없었으니, NSA가 보유한 슈퍼컴퓨터를 동원한다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적극 참가했다.
물론 그 결과는 유재원의 기부에서 보듯, NSA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시큐리티 챌린지에 참가한다고 NSA의 슈퍼컴퓨터를 전용한 탓에, 원래 풀어야 할 것들을 풀지 못해서 큰 질책을 받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안드로이드에 보안영역이라는 게 만들어진다는 것이 베타판을 통해 공지가 된 것이다.
인터넷과 연결되는 모든 컴퓨터 시스템의 감청을 목표로 하는 NSA에게는 매우 탐스러운 비밀의 공간이었다. 개인정보가 다 보관될 공간이라고 하니 이것만 넣으면 그 사람의 비밀스러운 활동을 다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공간을 AES-256비트 방식으로 암호화한다니 좋다가도 좋지 못했다. 오히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AES 암호 체계는 NSA 안에서 난공불락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세상에 등장한지 벌써 2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해법은커녕 취약점 하나 발견하지 못했던 탓이다. 동시에 이런 암호체계를 유재원이란 인물에 대해서 무서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기에 국가안보부가 선택한 방법은 난공불낙 AES대신 대처 방법이 있는 DES로 보안영역 암호화를 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냐?”
이처럼 어제의 공문 사건은 매우 복잡한 내력이 담겨 있었지만, 유재원의 가벼운 설명에 아버지 유봉만도 가볍게 넘겨버렸다.
본인의 걱정거리를 부모님께 넘기는 건 유재원의 성격상 절대 못할 일이었고, 이번 문제의 경우에는 속사정은 복잡해도 해법은 간단한 일이었다. 큰 틀을 수정하지 않고 풀어나갈 있는 일이었으니, 유재원의 표정은 평소와도 같았다.
“오늘도 서울 올라간다지? 날 더우니 조심해라.”
덕분에 유봉만은 주가 폭락 뉴스는 치우고, 오늘 유재원의 스케줄을 걱정해줬다. 유봉만이 안드로이드 사의 주식을 대량 보유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유재원은 아주 칼 같이 가족이나 친척에게도 주식 하나 주지 않았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나스닥에 상장된 주식을 살 방법도 없었으니, 폭락의 여파에서 자유로웠다.
“실내에서 하는 행사라 더위는 문제없어요.”
동시에 더위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아버지, 요즘 학교에 에어컨 잘 틀고 계시죠?”
“그럼! 우리 학교에서 춥다고 하는 특이체질이 한둘은 있어도 덥다고 말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단다.”
유봉만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두 학교는 유재원의 94년도 지침에 따라 전교실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학년별로 12학급씩 있는 학교라서 커다란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한다고 돈이 좀 들긴 했는데, 여름이 되고나서 아들의 선경지명에 다시 한 번 무릎을 치고 있는 유봉만이었다.
수많은 여름을 보내본 유봉만이지만, 이번 여름은 뭔가 다를 거라는 전조가 7월 초부터 들기 시작했다. 8월이 되면 어마어마한 무더위가 올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8월에는 방학이니 학교는 괜찮은 거 아니겠느냐 하겠지만,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에겐 여름방학이란 게 없다. 겨우 3일 정도 쉬고 자율학습이란 미명에 학교에 나오는 게 일반적인 고등학생들의 방학이었다.
유재원이 이렇게 학교 이야기를 꺼내니, 유봉만도 학교 운영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 하나가 떠올랐다.
“저기, 재원아.”
“네? 무슨 할 말이 있으세요?”
“대학교 말이다. 우리 사학재단에 대학교도 넣으면 구색이 맞춰질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대학교?
한국의 여러 재벌들이 특정 대학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는 많았다. 장학 사업이라는 이유도 있고, 좋은 인재를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유재원도 중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까지 수직화를 시키는 게 그렇게 나쁜 생각인 것 같진 않았다.
ID 그룹이 커질 때마다 ID 파운데이션에 매년 납입하는 기부금의 액수도 날로 커져가고 있다. 그 돈이면 서울 소재 대학교를 인수하고도 남을 금액은 된다.
다만 대학교의 경우엔 전통과 이름값이 단번에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인수한 대학교에 ID 그룹에 취업 시 가산점을 준다고 하면, 좋은 반응이 올 테고 그러면 인재들도 보다 많이 보일 건 확실하다. 그래도 전통과 명성을 다 가진 서울 최상위권 명문대에 비기진 못할 것이다.
“음, 종합대학은 무리고, 이과 쪽으로 특화된 공학대학교라면 괜찮은 거 같네요.”
유재원이 잠깐 고민한 결과가 전문 대학교였다.
전기전자와 신소재, 반도체 등만 다루는 전문 대학교를 만들어서 집중 육성한다면 괜찮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더욱이 그렇게 만들어진 전문대학교는 유재원의 마스터플랜과도 연결이 된다.
유재원은 기억의 궁전에 담아놓은 미래 기술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게 지상과제였다. 그래서 만든 게 하이테크연구소였고, 지금도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드론이나 보안기술은 물론 원자력까지도 연구하고 있는 조직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유재원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였다. 의학, 약학, 생물학, 생명공학 등등 사람의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IT와는 다른 분야의 신기술들이 가득 있는데, 이를 풀어낼 자연스러운 방법은 그다지 없었다.
대학교는 유재원이 생각해둔 방법 중 하나였고,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대? 과기원 같은 거 말이냐?”
“네! 바로 그런 특수 대학교요. 대신 처음부터 그렇게 대규모로 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만들면서 늘려나가는 거죠.”
유재원의 긍정적인 말에 유봉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실 대학교 이야기를 먼저 꺼내긴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대학교 인수에 대해 먼저 알아보긴 했는데, 돈이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었다.
오늘 말을 꺼내본 것도 미래를 대비해서 차근차근 준비해보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아들인 유재원은 바로 구체적인 제시까지 했다. 종합대학이 아닌 반쪽짜리 공대라고 해도 언감생심이었기에 유봉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그리고 대학교를 만드는 김에 유치원도 만들지요?”
“유치원?”
요람부터 무덤까지는 무리겠지만,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만들어 놓으면 ID 그룹의 영향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유치원은 단순한 유아들의 교육뿐만이 아니라, 부모들을 위한 시설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전업주부들이 많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 맞벌이 가정이 크게 늘어난다. 그러면 어린 아이를 맡기는 게 큰일이 된다.
ID 파운데이션이 나서서 믿을 만한 유치원을 만든다면 여러 모로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유치원은 대학교처럼 복잡한 설립인가가 필요 없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특징이었다.
“ID 파운데이션의 생활밀착형 복지 서비스라고 하고, 전국 대도시에 몇 개씩 만들어 놓으면 좋겠네요.”
“알겠다.”
유봉만은 본인에게 주어진 짐이 더 늘어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하나 있는 아들녀석이 미국에서 활동했고, 순식간에 어른이 된 것 같은 섭섭함이 늘 있었다.
아들 덕에 받고 있는 호사가 좋긴 해도, ID 그룹이라는 회사에 아들을 빼앗긴 듯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학교를 맡아서 아이들 커나가는 걸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쭉 커가는 걸 볼 수 있으니 대리만족감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아참, 아버지.”
“응? 왜?”
“여름쯤에 스위스 여행 갈 일이 있을지 모르니 여권 잘 챙겨 놓으세요.”
“스위스 여행이라고? 허허, 알겠다.”
유재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ID 파운데이션을 보다 키우려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TG모바일 시범서비스 1호 가입자이신 장명균님께 정성으로 준비한 사은품을 드리겠습니다! 상품은 무려! TG모바일 무제한 요금제 1년 사용권! 여기에 최신의 부품으로 무장한 뉴에그2 PC입니다!”
행사용 목소리로 톤을 한껏 올린 사회자의 말이 TG모바일 강남 직영 대리점을 진동시켰다.
실내행사라 문제가 없기는 개뿔이었다.
본사 직영 대리점으로 TG 모바일의 모든 상품을 팔고, 고객의 AS도 담당하기 위해 만든 대리점은 ID 플래그쉽 스토어를 확실히 참고한 것처럼 깔끔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할 만큼 행사장은 시장통처럼 북적이고 있으니말이다.
혹여 이번 행사가 파리만 날리지 않을까봐 걱정한 실무진에서 억지로 사람들이 나오도록 행사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시범서비스 당첨자 중에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 15일에 개통하고 싶으면 이곳 강남대리점에 오도록한 것이다. 당연히 서울의 다른 지역에도 직영 대리점이 몇 개 더 있었고, 정식 서비스 개통을 위한 대리점 모집도 하는 중이었음에도, 그렇게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TG모바일의 이용권 사장은 물론 유재원까지 참석하는 행사였던 탓이다. 결과는 지금 보는 바와 같이 구름과 같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한국의 초고속 성장을 이끈 빨리빨리 정신은 이미 뼛속에 각인된 모양이다.
하루만 뒤로 미뤄도 집에서 가까운 대리점에서 개통할 수 있었음에도, 다들 강남점으로 왔다. 심지어 지방에서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온 사람까지 있었다.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에어컨을 최대치로 틀어 놔도 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니, 그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덕분에 그림은 잘 나왔다.
유재원과 이용권이 첫 번째 방문객에게 사은품을 주는 모습은 잘 찍혔으니 말이다. 유재원도 나름 괜찮았다.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 죄송한 일이었지만, 이렇게나 뜨거운 열기를 직접 체감하니 TG모바일의 성공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개통하는 모습을 한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재원은 티파니의 고유색인 스카이민트 색상의 조그만 박스에서 휴대폰이 개봉될 때, 감탄을 하는 고객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막 개통이 끝나서 손에 쥔 티파니 폰을 만지작거리는 구매자의 즐거움이나 그걸 구경하는 유재원의 기쁨은 같았다.
티파니 폰을 만든다고 작년부터 온갖 일을 다 벌인 당사자였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앞으로도 더 멋진 제품을 많이 만들어서 ID 로고가 달린 제품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겨냥한 테클 하나를 뛰어 넘는 게 순서였다.
TG모바일의 시범서비스 행사를 마친 유재원은 이용권과 약속한 저녁은 아니지만, 점심을 함께 먹는 것으로 서울 출장을 모두 마쳤다. 그리곤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예전 같으면 원격으로 알파팀과 소통할 수도 있었지만, 국가안보부가 눈에 불을 켜고 있다는 걸 뻔히 아는 데 그럴 수는 없다.
전화는 됐고 일단 미국으로 가서 엄한 놈이 걸어온 태클을 걷어차 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