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353화 (35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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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안드로이드 95(3)

김대석이 단축번호 5번을 꾹 누르자 2, 3초간 묵음이었다가 전자음으로 만들어진 벨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곧바로 반응이 나오지 않은 건 티파니폰에 무슨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통화요청이 미국 시애틀까지 전달되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탓이다.

벨소리는 단순히 따르릉 하는 아날로그 전화벨을 전자음으로 바뀐 수준을 넘어서, 여러 가지 악기로 화려하게 리믹스된 소리였다. 티파니폰에 사운드를 처리하는 별도의 칩을 달아서 띵띵거리는 FM음원뿐만이 아니라 AAC음원까지도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이용해 벨소리도 사용자가 직접 커스텀마이징 하면서 화려한 벨소리가 가능했다.

다른 PCS폰들은 16화음이니 32화음이니 하는 동시발성 성능을 가지고 아웅다웅할 때, 티파니폰은 한 차원 앞에서 노는 것이다.

아쉬운 건 내장 스피커의 성능이다.

티파니폰 개발팀은 실리콘밸리는 물론 한국이나 일본의 중소기업을 다 뒤져서 제일 좋은 걸 골랐지만, 이 시기에 휴대폰 납품을 염두하고서 소형 스피커를 만드는 곳은 없었다.

대안으로 선택한게 휴대용 게임기의 소형 스피커였다. 휴대폰에 탑재해도 이상이 없을 만큼 작고, 전력소모도 그다지 심하지 않다. 다만 휴대용 게임기에 맞춰진 탓에 음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대중화된 휴대용 게임기는 전자음 소리만 나고, 스피커도 이에 맞춰지다 보니 음질이 매우 나빴다.

고성능 음원 칩의 조그만 스피커 하나가 다 깎아먹고 있는 것이라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이번에 계약된 마이크로 스피커 생산 업체에서 휴대폰용으로 적합한 음역대를 가진 제품을 개발한다니 다음번에는 기대해 볼만 했다.

비단 마이크로 스피커뿐만이 아니라, 티파니폰에 들어간 대부분의 부품들은 유재원의 눈높이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들이었다. 후면의 카메라도 그렇고, 플래시 메모리의 용량이나 속도도 다 별로였다.

그나마 최소한의 기준을 겨우 넘겨서 티파니폰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티파니폰이나 타 제조사의 휴대폰이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간다면 휴대폰용 부품을 만드는 회사들도 늘고, 그러면 성능 경쟁도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라서 유재원은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티파니폰의 화려한 벨소리 솔로 무대는 전화가 연결이 되면서 곧 끝났다.

“여보세요? 케빈 사장님? 저, 김대석입니다. 네네.”

짧게 대화를 마친 김대석이 전화기를 유재원에게 넘겨 주었다.

“여보세요? 유재원입니다.”

-예, 회장님, 안드로이드 사의 캐빈 존슨입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어디서 한국식 전화 예절을 배운 것인지 몰라도 케빈 존슨은 매우 공손한 태도였다.

“괜찮아요. 그보다 지금까지 근무중이신거예요? 시애틀은 지금 밤 10시가 넘었을 텐데요?”

-아닙니다. 저도 회장님의 말씀에 따라서 항상 정시 퇴근 하고 있습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케빈 존슨이 얼른 답했다.

고위 계약직은 근무 시간에 대해 최소값은 정해져 있지만, 최대값은 정해놓지 않았다. 그러니 자기가 원한다면 얼마든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유재원이 그런 걸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ID 그룹 임원들도 정확한 근무시간 준수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그런데 제 비상연락망에 등록된 친구들 중에 몇이 매우 중대한 정보를 보내왔습니다.

중대한 정보?

-내일 안드로이드 주가가 크게 출렁거릴지도 모른다는 정보입니다.

“그래요?”

귀를 기울이던 유재원은 주가가 출렁거린다는 소리에도 조금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사실 유재원과 같이 주식 매각 의사가 없는 사주에게 상장 후 주가는 큰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상장할 때 많은 지분을 매각한 상태였고, 이 이상 지분을 팔면 경영권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주가의 등락은 장부상 가치의 변화일 뿐이다. 주식 담보대출 같은 걸 받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주가의 변동은 유재원에겐 성적표 이상의 의미는 없다. 다만 주가가 괜히 출렁거리지는 않을 테니, 그 원인이나 정보를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몹시도 궁금해졌다.

-다름이 아니라, 연방 정부에서 차기 안드로이드의 특정 기능을 안보기술 문제로 지정해 수출 금지 조치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예? 안보기술 수출 금지요?”

티파니폰에 귀를 기울이던 유재원은 케빈 존슨 사장의 말에 깜짝 놀랐다.

주가가 출렁거릴 원인에 대해서 나름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 봤는데, 케빈 존슨이 말한 수출 금지 같은 건 유재원의 예상 답안에는 없었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뜬금없이 수출 금지라니?

안드로이드는 PC 시장의 표준이었다. 그런데 세계로의 수출이 금지되면 PC시장 점유율에 심각한 타격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케빈 존슨은 당장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미국 연방정부가 문제 삼은 기능은 보안구역 암호화 수준입니다.

보안구역?

그건 중요한 개인정보를 담기 위해 만드는 특수한 저장 공간이다. 운영체제를 설치한 사용자도 접근할 수 없고, 운영체제 자체적으로 관리되는 영역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개인 정보는 물론이고 다양한 사이트의 로그인 ID나 패스워드 등도 저장해 놨다가, 클릭 한 번으로 로그인이 되도록 할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발효된 개인정보 보호법은 인터넷 서비스 회사가 사용자의 정보를 고의로 혹은 실수로 유출했을 때, 엄벌을 가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니 개인정보는 사용자의 컴퓨터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사용자에게 요청해서 전송 받는 식으로 서비스가 이뤄지는 방식을 강제했다.

그러니 사용자 데이터를 본인의 PC에 저장할 공간을 만들고, 아무나 접근할 수 없도록 고도의 암호화를 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재원은 강력한 암호 체계를 가져다 쓰지도 않았다. 유재원을 스타덤으로 올려준 AES방식에 몇 가지 기법을 추가로 더해서 보안성을 좀 높였을 뿐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가장 민감한 건 256비트 암호화를 기본 설정으로 두신 게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ID 오피스 때는 아무 말도 않더니, 이제 와서 왜 그러죠?”

-ID 오피스는 추가로 설정해야 256비트를 고를 수 있었는데, 이번엔 기본 설정이지 않습니까.

케빈 존슨의 부연설명에 유재원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기본 설정, 추가 설정 두 차이가 크냐고 물어보면 유재원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ID 오피스의 암호화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고, 설사 암호화 기능을 사용한다더라도 패스워드를 만드는데 시간을 쓰지, 추가설정에 들어가서 최고 단계 암호화를 켜는 작업은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야말로 극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하는 기능인데, 차기 안드로이드에서는 보안구역을 설정할 때 256비트 AES방식을 기본설정으로 두면 인스톨할 때 다음만 연타하는 평범한 사용자들까지도 다 적용되도록 했다.

이런 결정이 아날로그 시대 때부터 애셜론 프로젝트라는 걸 운용해 전 세계적 감청을 시도했던 나라인 미국의 심기를 살짝 건드린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ID 오피스도 운이 좋았다.

시큐리티 챌린지를 하고 나서 AES암호화 방식을 탑재한게 아니라, 그냥 발매하고 나서 보안성을 강조했으니, 미국이 뭔가 조치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베타판을 통해 신기능을 맛보기 식으로 보여주고 있어, 미국 연방정부가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연방정부의 요구는 뭐예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사기업인데 무작정 수출 금지는 못할 거 아니에요.”

-예, 친구들 예상으로는 암호화 수준을 64비트 수준으로 낮춘다면 수출 허가를 줄 것 같다고 합니다.

64비트?

AES는 최소블록 길이가 128비트였다. 그 이하로는 설정할 수도 없다. 64비트라면 AES가 나오기 전까지 표준이었던 DES방식을 따르라는 말이었다. 1977년에 IBM이 만든 암호화 표준 규격이다.

64비트를 통째로 암호키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검증용 패리티 비트가 8비트 붙어 있어서 실제 키의 길이는 56비트였다. 암호화 방식 자체는 견고한데 56비트짜리 키로는 무섭게 발전하는 현대 컴퓨터의 연산 성능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당장 연방정부로부터 공문이 날아온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 헛소리를 할 사람들은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케빈 존슨은 또 다시 친구를 언급했다.

정황상 연방정부의 고위 관료나 NSA에 있는 매우 친밀한 사람인 건 확실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통화로 전해주는 정보를 얻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그 친구들의 정체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따져 물어보지 않았다.

더욱이 미국이 고급 암호화 체계를 수출 금지하는건 이전 역사에서도 실제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한국 인터넷 환경 중에 전자결제 부분을 매우 비효율적으로 만든 공인인증서나 수많은 보안용 액티브X가 나오게 된 계기가 바로 미국의 고급암호체계 수출 금지 때문이었다.

DES는 허락하고 AES는 하지 않도록 하는 걸 보면 NSA에 있는 슈퍼컴퓨터들은 아직 AES 암호화 방식을 뚫지 못한게 확실하다. 하긴 256비트 AES암호화 체계를 뚫는건 웬만한 슈퍼컴퓨터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암호화 체계를 뚫는 것보다, 그냥 사람 자체를 해킹하는게 훨씬 빠를 것이다.

참고로 사람을 해킹한다는건 잡아다가 암호를 실토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통화나 대화, 일상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해서 그가 설정한 암호를 유추하는 것을 말한다. 무작정 암호를 대입하는 것보다 그렇게 개인의 취향을 고려해 예상하는게 더 빠를 거라고 유재원은 장담했다.

반면 DES는 암호키가 짧은 만큼 무작정 돌려도 때려 맞출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

NSA의 존재는 극비였기에, 이곳에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수십 대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지금은 없다.

이미 NSA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 능력까지도 확실히 아는 유재원은, NSA가 DES암호화를 해제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어쩌면 2000년대 초에나 밝혀질 DES의 취약점도 지금 시점에서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AES는 막고 DES를 강제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알겠어요. 일단은 개발 스케줄은 예정대로 진행하고, 내일 중으로 연방정부에서 정식으로 연락이 오면 그때 제대로 다뤄보기로 하죠.”

-예, 회장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케빈 사장님 잘못도 아닌데, 죄송할 일도 아니죠. 그럼 쉬세요.”

통화를 마친 유재원은 잠시 곤란한 표정이었다.

이대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그 끔찍한 액티브X 같은 게 범람할 수도 있다는 상상이 절로 들었던 탓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웹브라우저 시장은 수많은 변종들로 중구난방이긴 했지만, 그런 변종들이 공통으로 이용하는 라이브러리는 ID웹브라우저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ID웹브라우저는 팀 버너스리 경이 이끄는 W3C의 표준안을 100% 따르고 있었다.

W3C 표준안 제정에 있어 ID 그룹이 파트너로서 함께 하고 있었고, 실제 ID 하이테크의 SSL과 같은 보안기술이 무료로 제공되기도 하니, 공동 개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니 W3C 표준안에는 액티브X와 같은 설치형 프로그램을 깔아서 보안체계를 만드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과거처럼 이런저런 잡다한 보안 프로그램이 깔려 컴퓨터가 느려지고, 심하면 다운까지 되는 일은 유재원부터 싹을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이와 함께 보안의식 없이 컴퓨터를 마구 써도 운영체제가 개인정보를 보호해줌으로서 해킹에 대한 피해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도록 설계했다.

그런데 미국정부 때문에 강력한 태클이 걸렸다. 미국 정부의 방침에 따르던가 아니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음 날.

케빈 존슨의 전화는 다 들어맞았다. 뉴욕의 나스닥이 열리고 나서 유재원의 안드로이드 사 주식 가격은 좀 오르는가 싶더니 대량의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하락 반전했다. 상승 랠리 막판이라서 대량의 매물이 쏟아져 나오긴 했는데, 이번에는 규모가 제법 컸다.

2% 후반대로 상승했던 주가가 순식간에 상승률을 다 토해냈고, 하락 반전하더니 ?4%를 순식간에 찍었다. 그리고 나서도 하락이 계속되었다.

연방정부의 비밀스러운 친구들이 단지 케빈 존슨하고만 친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나스닥에서 ID 인베스트먼트 쪽으로 제공해주는 전산 정보를 보면 안드로이드 주식의 주요 매도 창구를 알 수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곳이 리먼브라더스와 골드만삭스였다. 매도 창구와 실제 매도한 세력을 동일시하는건 살짝 문제가 있긴 해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정보였다.

그렇게 월스트리트의 두 거목이 매도물량을 풀어내니, 다른 회사들도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낙폭이 커졌다.

심지어 IT섹션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하는 경계심리가 발동했는지, 다른 IT 대형주도 영향을 받아 주가의 상승세가 떨어지기도 했고, 하락 반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안드로이드를 따라 주가가 떨어지는 업종을 보면 델과 컴팩, HP같은 대형 컴퓨터 제조업체나 인텔이나 AMD 같은 반도체 대형주도 있었다.

그만큼 안드로이드 사의 존재감이 월스트리트에서 대단했던 것이고, 갑작스러운 주가 폭락의 여파도 컸다.

덕분에 월스트리트의 수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안드로이드 사로 갑자기 주가 폭락한 원인에 대해 물어보는 전화가 쇄도하기도 했다.

혼란이 풀린 건 장 마감 30분을 남겨두고 미국 연방정부의 안보관련 수출금지 조치가 발표되면서다. 해당 문건에는 관련된 기술로 차기 안드로이드에 탑재될 보안영역 기술이 명시되었다.

독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안드로이드 차기 버전의 해외 수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장 막판에 접어들면서 하락세가 좀 멈추는가 싶던 안드로이드 주가는 연방정부의 발표와 함께 바나나 껍질을 밟은 카드라이더처럼 쭉 내리막길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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